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확실히 종지부를 찍다
백무기가 처음 초휴를 만났을 당시, 초휴는 소속도 없는 무명지배에 불과했다. 초휴가 여양산 보물을 탈취했다고는 하나, 별로 개의치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백무기에게 있어서 그 일은 집도 없는 떠돌이 개한테 고기 조각하나 나눠 먹인 셈 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고작 두 해도 못 되어 그 떠돌이 개 취급했던 초휴가 자신의 머리 꼭대기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렇다면 지난날 초휴에게 보물을 빼앗겼던 흑역사를 분명 누군가 들춰낼 테고, 그리되면 백무기는 꼼짝없이 초휴의 용호방 순위를 올려준 발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컸다.
물론 그동안 초휴의 출수를 지켜보았으니,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일대일로 붙는다면, 자신도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극북표설성의 비전절기까지 총동원해도 초휴를 이길 승산이 있을 거라고 장담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백무기는 한평생 정정당당하게만 싸워온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우물에 빠진 사람한테 돌을 던지는 짓도 버젓이 해왔다. 해서 지금 초휴의 힘이 다 빠진 틈을 노려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순간, 그의 눈에는 짙은 살기가 충만해졌다. 그는 곁에 있던 방회 등 북연 무사들에게 넌지시 일렀다.
“좀 있다가 내가 출수할 때, 그대들도 합세하도록 하게.”
하지만 방회는 깜짝 놀라 만류했다.
“백 형, 신병대회가 바로 코앞인데 지금 붙으시려고요? 앞으로도 기회는 많을 텐데 굳이 서둘 필요가 있을까요?”
초휴와 싸우고 싶으면 백무기 본인이나 나서면 될 일이다. 원치 않는 사람들까지 물귀신처럼 끌어들이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물론 초휴를 쓰러뜨릴 승산이 있다면, 이참에 극북표설성 소주(少主)에게 잘 보이는 것도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초휴의 가공할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그는 엄연히 관중형당을 대표해 신병대회에 참가한 순찰사다. 순찰사는 관중형당의 중견에 해당하는 직급이다. 그런 자에게 죄를 짓는 무리수까지 두어야 할 이유를 그들은 찾지 못했다.
만약 지금 백무기를 돕는다면 관중형당은 분명 그들에게 타당한 해명을 요구해 올 것이다. 지금까지 관중형당이 삼국 틈바구니에 끼어서 큰 존재감 없이 몸을 사려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위세만으로도 방회 등과 같은 군소 세력에게 위협을 가하기엔 충분했다. 그들에게는 자기 가문의 안위를 돌볼 책임이 있는 만큼, 승산 없는 싸움에 섣불리 끼어들고 싶진 않았다.
그러자 백무기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흥! 그대들이 뭘 두려워하는지 내가 모를 거 같나? 관중형당이 두려운 거겠지. 이 일은 나 혼자 덮어쓸 테니 염려하지 말게. 관중형당에서 시비를 걸어오면 그 책임을 극북표설성으로 모두 넘겨버리면 될 일이 아닌가.”
그래도 다들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그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뭐야. 내 말이 우습게 들리나! 아니면 초휴가 두려워서 출수하기가 겁나는 건가?”
방회 등은 울상이 되어 서로 눈치만 봤다. 백무기가 위협을 하고 있는데, 계속 주저하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초휴를 공격하면 저 멀리 관중형당에 죄를 짓게 되지만, 이를 거부하면 같은 지역에 있는 극북표설성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북연을 떠날 생각이라면 모를까, 오랫동안 자리 잡은 터전인 북연에 계속 머물려고 하면 극북표설성의 눈 밖에 나서는 곤란했다. 갈등에 시달리던 그들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백무기의 명에 따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이런 조짐은 막천림과 사소루에게 감지되었고, 두 사람은 북연 무사들 앞을 가로막고 섰다. 자고로 남이 곤란에 처했을 때, 돕는 것이 호감을 사는 첩경(捷徑)이라고 했다. 초휴가 실력 면에서 자신들의 벗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게 입증된 이상, 이쯤 해서 먼저 우정을 표하는 게 자연스러울 터였다. 뜬금없이 두 사람이 자기 앞을 가로막자 백무기는 심히 언짢아졌다.
“막천림, 사소루! 자네들이 언제부터 초휴와 알고 지냈다고 편을 드는 건가? 고작 하루 만에 절친 사이라도 됐나 보지?”
이에 막천림이 차분히 답했다.
“알고 지낸 시간과 우정의 깊이가 비례하는 건 아니잖소. 보아하니 백 형의 공명심이 너무 지나친 듯하오. 용호방 순위가 그렇게나 중요합니까? 그리도 출수가 간절하면 신병대회까지 기다리는 게 좋지 않겠소. 초 형은 지금 많이 지친 터라 공정한 싸움이 될 수가 없으니 말이지. 그런데도 꼭 비겁한 싸움을 하겠다면 우리를 먼저 넘어야 할 거요.”
“너희들이 감히!”
백무기가 기다란 창을 든 손에 힘을 주자 사소루도 묵묵히 표우도(飄羽刀)를 뽑아 들었다. 대개 용호방 이십 위까지를 하나의 관문으로 보고, 그중에서도 십 위까지를 상위 관문으로 본다. 사소루는 이미 용호방 십이 위에 올라있었다. 말인즉슨 십일 위에서 이십 위까지 중에서 상위 십 위권에 가장 근접한 실력자 중의 하나라는 뜻이었다. 그가 삼화취정에 들어설 즈음이면 상위 십 위권에 진입할 가능성이 컸다.
사소루가 서초 땅에서 활약하며 쌓은 명성은 백무기도 익히 알고 있었다. 사소루 한 명만 해도 단독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판에 막천림까지 가세한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물끄러미 두 사람을 바라보던 백무기는 결국 창을 내리며 말했다.
“좋다. 오늘 일은 내가 꼭 기억해두지. 신병대회 때 다시 만나 시비를 가려보자고.”
백무기는 애써 분을 삼키며 창을 거둬들였다.
그가 시야에서 멀어지는 동안, 초휴는 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있었다.
초휴가 여전히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다시 연정정에게 다가서자 현장의 무사들은 다시금 간담이 서늘해졌다.
정말 연정정을 죽여서 끝장을 보려는 건가?
이때만큼은 막천림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연 소저를 죽이려는 생각일까? 그녀를 죽이면 연회남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두렵지도 않나 보지?”
무릇 막천림과 같은 명문세가 출신들은 일을 행함에 있어 사람 된 도리를 중시했다. 해서 무자비하게 끝장을 보는 방식보다는, 종국에는 상대에게 여지를 남겨주며 한 발 물러나는 방식을 쓰곤 했다. 하지만 초휴는 정말 끝까지 가려는 생각인지 전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연정정이 연회남의 여식이라는 사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게 분명했다.
막천림의 질문에 사소루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저 여자가 사고를 치는 수위가 점입가경이니, 어찌 가만둘 수 있겠나? 살려 두었다가는 두고두고 후환거리가 될 거 아니냐고. 내가 초휴라 해도 죽여 버렸을 걸세.”
막천림이 얄밉다는 듯 사소루를 힐끗 째려봤다. 그의 눈빛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네야 손속이 매섭기로 유명한, 그 서슬 퍼런 진청제(陳靑帝)를 사부로 두었잖나. 뒤가 든든하니 그런 말도 나오는 것이지.’
하지만 초휴는 사소루와 처지가 완전히 다르다. 관사우는 그저 상관일 뿐, 초휴는 제대로 된 스승 같은 건 두지 못했다. 정말로 연정정을 죽여서 연회남을 화나게 했을 경우, 관사우가 초휴를 위해 나서 줄지에 대한 여부는 불확실했다.
사실 초휴는 지금 깊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원래 우유부단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그의 지각과 의식은 아직 광기에 젖은 상태였다.
‘네가 어떤 신분이건 나중에 어떤 후환이 닥치건 간에, 네가 나를 죽이려 했으니 나도 너를 죽이겠다.’
초휴의 생각은 이처럼 단순명료했다. 그런 초휴한테 제대로 말이 통할 성싶지 않자, 신무문 무사들은 겁을 집어먹고 연정정을 잡아끌다시피 도주하기 시작했다. 꼼짝없이 개죽음당하게 생긴 마당에 상하 간, 남녀 간의 예법을 따질 때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연정정도 어느 정도 제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눈에 충만했던 적대감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두려움이 대신 차지했다. 지금까지 초휴를 맘껏 증오했던 건, 그를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모든 수단을 다 쓰고도 초휴를 어찌해볼 수 없음을 똑똑히 자각한 순간, 그녀는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다. 들이대는 수단마다 모조리 무력화되니, 이제야 죽음과 직면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듯했다. 예전에 툭하면 죽겠다고 제 목숨을 가지고 협박해 대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북연 땅을 통틀어 연정정이 연회남의 외동딸이자 신무문의 대소저임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을까. 연회남은 고명딸이 너무 억세게 자라는 걸 원치 않았다. 연정정을 나긋나긋 온화한 여인으로 고이 키우고자 했던 그는, 추호도 그녀를 여장부처럼 단련시킬 생각이 없었다.
해서 그녀가 출타할 때마다 호위할 종문 제자들을 한 무더기씩 붙여주곤 했다. 그러니 그녀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위험과 맞닥뜨릴 일이 있었을 리가 없었다.
너무도 철딱서니 없던 자신의 실체를 똑똑히 직시하게 된 지금, 반성의 겨를도 없이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게 되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판국에 악노천이고 애정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초휴가 너무도 끔찍하고 무섭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언제 그를 증오했었는지 기억조차 안 났다. 해서 신무문 제자들이 잡아끌어도, 그녀는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끌려갔다. 아니, 오히려 가장 앞장서서 도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양측 간에 거리가 좀 있긴 해도 그들이 움직이는 속도가 워낙 느렸다. 상대적으로 몸놀림이 둔한 애물단지를 챙기려다 보니, 초휴가 내박인을 출수하지 않아도 그들이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강기를 터뜨리며 성큼성큼 초휴가 거리를 마구 좁혀오기 시작했다. 사신(死神)처럼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연정정은 까무러지게 비명을 질러댔다.
“날 죽이지 마! 다시는 성가시게 굴지 않을 테니, 제발 나를 놔달라고!”
이 말은 절대적으로 그녀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오늘 초휴는 공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 여파로 인한 후유증은 남은 인생 내내 그녀를 괴롭힐지도 몰랐다. 그 후유증을 극복하기 전에는, 초휴에게 복수를 한다는 건 감히 꿈도 못 꿀 터였다.
하지만 초휴는 그녀의 말에 아랑곳없이, 이미 홍수도를 빼든 상태였다. 핏빛 도강이 공기를 가르고 살기충천한 혈련신강은 일말의 자비도 없이 터져 나왔다.
이를 보는 신무문 무사들과 연정정의 눈은 처참한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제 정말 끝이로구나!
바로 이때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일며 격랑(激浪)이 출렁이는가 싶더니, 호수 한가운데서 물기둥이 형성되어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러고는 화살처럼 날아들어 연정정의 앞을 가로막더니 이내 폭발을 일으켜 혈련신강을 무력화시켰다.
다들 놀라 경호 쪽을 바라보니, 작은 배 한 척이 질주하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순전히 강기로만 움직이는 배가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강기로 움직이는 배가 바람과 물살을 가르며 경호 수면을 날다시피 가로질렀다. 그 속도는 시위를 떠난 화살보다 더 빠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배 위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하나는 백의를 입은 단아한 외모의 중년 사내로,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또 다른 한 명은 비단 도포 차림의 영준한 청년이었는데, 늘씬한 체형에 머리는 상투관을 올린 모습이었다. 그 영준한 청년 옆에는 적홍색의 기다란 창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 청년을 찬찬히 살펴보면 단순히 영준한 외모라고 하기엔 뭔가 남다른 구석이 엿보였다. 일단 이목구비의 윤곽부터 여인처럼 섬세하고 입술엔 붉은빛이 돌았으며, 자그마한 콧날도 예뻤다. 끝이 살짝 올라간 눈썹도 수려하게 다듬어진 상태였으며, 무엇보다도 봉긋하게 솟은 가슴이 그가 여인임을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