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삼화취정(三花聚頂)
초휴가 막천림과 사소루를 향해 공수의 예로 뒤늦은 감사를 표했다.
“아까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오.”
광기에 젖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아무것도 모를 만큼 완전히 이성을 잃었던 건 아니었다. 적어도 주변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지친 틈을 타서 백무기가 공격하려는 것을 두 사람이 막았다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 둘이 아니었다면 초휴는 꼼짝없이 백무기 무리의 협공을 받았을 것이다.
초휴는 원한을 잘 기억하지만 입은 은혜 또한 좀처럼 잊지 않았다. 아무리 정신이 흐려진 상태였다고는 하나, 막천림과 사소루에게 신세를 졌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물론 두 사람이 각자 주판알을 튕긴 끝에 도와준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공명과 이익을 계산하는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물론 만약 이 자리에 여봉선이 있었다면 서슴지 않고 처음부터 초휴를 도와 협공에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세상에 여봉선은 단 한 명뿐이다. 여봉선과 비교하면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이 분명했으나, 어쨌든 두 사람이 큰 도움을 준 것만은 확실했다.
옹졸하고 사리 분별 못 하는 사람 같으면 왜 좀 더 일찍 돕지 않았느냐고 원망을 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초휴는 도량이 큰 편은 아니어도, 그렇게 쪼잔한 인간도 아니었다. 그는 늘 결과만 볼 뿐, 과정은 따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은혜를 입었다면 당연히 그 고마움을 기억해 감사함을 전했다. 하지만 초휴가 감사를 표하자 막천림은 당황했다.
“초 형, 너무 예를 차릴 건 없소. 우리는 그저 백무기한테 경고를 했을 뿐이니까요. 딱히 힘을 쓴 것도 아니었소.”
“아니요.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요. 아까 내 상태로는 백무기를 막아내기 어려웠을 거요. 설령 막아냈다 해도, 큰 대가를 치러야 했을 테지요. 이 은혜는 꼭 기억하겠소이다.”
사소루와 막천림이 서로 눈치를 힐끗 보더니, 초휴가 취했던 예를 똑같이 돌려주며 말했다.
“초 형이 그리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소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지금 초휴가 보인 태도는 정확히 그들이 기대했던 것이었다. 이 정도 인사도 못 받을 거라면, 아까 굳이 백무기와 맞서면서 초휴를 도울 이유도 없었다. 세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더 나눈 후, 요양이 필요한 초휴를 위해 곧장 제주부로 향했다.
초휴는 오늘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무위를 과시했다. 연달아 삼화취정 두 명을 해치웠을 뿐만 아니라, 백여 명에 달하는 상대를 대적했다. 그래서 본인의 진기와 내력 소모가 지대했고, 마기의 부작용으로 인해 내상도 깊었다. 소백우가 체내의 마기를 몰아내 주지 않았더라면, 방금처럼 웃고 대화하는 건 생각지도 못했을 터였다.
막천림은 제주부에서 초휴가 편하게 요양할 만한 객잔을 물색해 주었다. 동제의 거대 세력 중 하나인 막가는 동제 전역에 걸쳐 가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제주부와 같은 주요 도시에도 당연히 가업이 있었고, 객잔도 그중 하나였다.
사흘이 지나자 초휴의 내상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하지만 출관을 서두를 생각은 없었다. 이참에 정기신을 집중적으로 수련하여 삼화취정을 뚫어 볼 심산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연정정은 그에게 좋은 계기를 마련해 준 셈이었다. 그는 외강경의 최정상 수준에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고, 삼화취정을 뚫기엔 넘어야 할 관문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 일전은 그간 그가 겪어온 싸움 중 역대급으로 치열한 격전이었다.
물론 천죄 타주와 붙었을 때도 험한 싸움을 치러야 했지만, 당시는 그저 방어 위주의 수동적 싸움이었다. 가까스로 한 초식만 막아낸 데 그쳤던 터라, 본인의 수련을 위해서는 별로 득 될 게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연달아 두 명의 삼화취정을 격퇴한 데 이어서, 내강경 및 외강경 무사들의 대규모 협공까지 막아내며 적잖은 수련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현성도인의 가르침도 큰 깨달음을 주었다.
물론 현성도인은 오기조원에 대해 설법했지만, 무도의 이치는 경지의 구분 없이 어디에나 적용되기 마련이었다. 어기오중 가운데 삼화취정과 오기조원은 하나의 단계로 묶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했다. 삼화취정은 정기신이 하나로 응집되어 선학(禪學)으로 이르는 관문인 현관(玄關)의 혈(穴, 구멍)에 모인 후, 최종적으로 완전히 승화(昇華)를 이룬 경지를 말한다.
삼화취정에 오르면 외강경에 비해서 그 폭발력이 배 이상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늘어나는 정도는 무사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가에 달려 있었다. 기본기와 저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삼화취정의 경지에 도달해도, 그리 큰 도약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일례로 신무문의 삼화취정 노장들이 초휴에게 밀린 것도 그런 경우였다. 그들의 힘 자체가 약하다기보다는 초휴를 이길 정도로 세지는 못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초휴는 객잔의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좌정했다. 온몸의 진기를 끌어올린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그의 기세는 부단히 상승하고 있었다. 정기신이 궁극의 경지까지 응집되자 온몸 곳곳에서 작은 기류의 회전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점차 혈관의 혈로 모여들었다. 한데 응집된 이 힘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그는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잡고 있던 끈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그러자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막혀있던 무언가가 와장창 뚫리고 궁극의 경지까지 치고 올라가며 승화가 일어났다!
그의 머리 위로 희뿌옇게 피어오르던 안개는 세 갈래로 갈라졌다. 마지막 단계로 초휴가 이 안개를 체내로 거두어들이자, 그의 전신은 찬란한 광채로 뒤덮였다. 삼화취정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눈을 번쩍 뜬 그는 긴 입김을 내쉬었다. 그가 토해낸 입김의 실체 또한 안개처럼 희뿌연 강력한 진기였다. 이로써 그는 진정한 정기신의 최고봉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삼화취정에 이르고도 자신의 힘이 크게 변화했는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출수한다면 종전보다 몇 배나 증강된 폭발력을 뿜어낼 자신이 있었다. 진정한 삼화취정의 경지를 뚫고 체험한 지금 ‘어기오중’의 단계 구분이 피부로 느껴졌다.
내강경과 외강경은 가장 간단한 수준의 진기 운용에 불과하다. 거기서 난도가 조금 높아진 수준이 강기에 대한 장악력 정도였다. 일전에 자신이 강기로 몸을 감싸 비를 피했던 것, 또 사소루가 강기의 힘으로 호수 위를 질주했던 것 등이 이런 수준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 정도면 외강경에서는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삼화취정은 아예 강기 장악력의 범주를 초월하는 수준이다. 몸이 아닌 정신으로 기를 제어하여, 마음이 향하는 대로 따르고 자연도 움직일 수 있었다. 해서 정기신 합일의 산물인 폭발력도 수 배나 늘어나는 이치였다. 그는 한바탕 기지개를 켜더니, 방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마셨다. 내상 치유와 회복 수련을 거쳐 삼화취정을 뚫기까지, 놀랍게도 고작 엿새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 신병대회가 열리기 전이었으나 개막일이 다가온 만큼, 점점 더 많은 무사가 제주부로 모여들고 있었다. 객잔 입구를 지키고 있던 점원은 초휴를 보자 황급히 달려와 물었다.
“초 공자님, 수련을 마치셨습니까?”
초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점원이 말을 이었다.
“저희 대공자님께서 이르시길, 공자님께서 나오시면 자운루(紫雲樓)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대공자님과 사소루 공자님 모두 거기에 계십니다.”
자운루도 제주부에서는 큰 주루 축에 속했다. 다만 의아한 건, 왜 그들이 취룡각이 아닌 자운루로 갔냐는 것이었다. 취룡각이야말로 온갖 무사들의 집결지나 다름없었으니까.
“취룡각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네. 문제가 좀 있습죠. 동제를 오가는 무사들이 워낙 많으니, 서로 은원관계를 맺은 자들도 꽤 있거든요. 취룡각에서 맞닥뜨리면 싸움이 날 소지가 크죠. 안락왕의 위엄으로 운영되는 곳이기는 해도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에만도 벌써 여러 건의 싸움박질이 터졌답니다. 안락왕께서 직접 나서서 말리셨지만, 결국 취룡각은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해서 안락왕께서는 신병대회가 열리는 동안 취룡각의 잠정 폐쇄를 결정하셨다는군요.”
얼핏 듣기에 충분히 납득이 가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쩐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문원이 대관절 누구란 말인가. 누가 감히 그의 위엄을 짓밟으려 든단 것인가.
얼마 전 백무기가 취룡각 칠층에서 그에게 시비를 걸었을 때도, 그곳이 취룡각이라는 이유만으로 물러났다. 웬만해서는 시비가 일어나기도 힘든 곳이 아닌가. 게다가 무사들끼리 시비가 생겨 몇 차례 충돌을 벌였기로서니, 그깟 일로 취룡각을 폐쇄하다니. 무도를 익혔다는 자의 도량과 배짱이 설마 그것밖에 안 된다는 말인가.
물론 그건 강문원의 일이니, 그가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해서 점원을 앞세워 자운루를 찾아갔다. 자운루도 제주부에서 내로라하는 주루인 만큼, 당연히 뒤를 봐주는 세력을 끼고 운영되었다. 물론 제주부 내에서나 통하는 현지의 군소 세력이지만 말이다.
즉 이곳에서 은원관계로 인한 싸움이 벌어질 경우, 취룡각과 마찬가지로 자운루 역시 자체적으로 중재를 해서 일을 좋게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뜻했다.
그래서 자운루가 내세운 해결책은 ‘그냥 내버려 둔다’였다.
실내에서 굳이 싸우겠다면 이로 인해 파손된 기물에 대해 두 배로 배상하든가, 아니면 아예 나가서 싸우든가 했다.
뒷배 없는 낭인 무사들에게는 맘 편히 바가지를 씌웠고, 버젓한 종문세가 출신 무사들이야 워낙 체면을 중시하니, 자발적으로 배상금을 내놓았다. 더러는 수 배에 달하는 금액을 내놓은 자들도 있었으니, 이런 방식도 나름대로 수입이 짭짤했다.
자운루는 명문세가 제자들이 차지한 맨 꼭대기 층만 조용할 뿐, 나머지 층은 난리도 아니었다. 술에 취해 마구 권법을 휘두르는 말단 무사에서부터, 어느 세력에 빌붙어 볼까 하고 여기저기 들이대는 군소 종문 제자들에 이르기까지, 소란스럽기가 시장바닥을 방불케 했다. 급기야 신병대회의 최후의 승자를 맞히는 도박판까지 벌어졌다.
자운루 일층에 세워둔 알림판에는 신병대회에 참가할 젊은 준걸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그 이름마다 배율(賠率, 도박에서 선이 졌을 때, 고객에게 도박 자금을 지불하는 비율)이 적혀 있었다. 온몸에 부티가 좔좔 흐르는 무사가 미소를 지으며, 몰려든 사람들에게 신병대회 참가자들 관련 신상정보와 배율 등을 침을 튀기며 설명해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설명을 참고하여 돈을 걸 후보를 결정했다.
설명을 맡은 무사는 제주부 오원방(五元幇)의 당주, ‘소면호(笑面虎)’ 한규(韓奎)라는 자였다. 사실 자운루의 운영주가 오원방이라서, 한규가 여기서 대놓고 내기판을 벌일 수가 있던 것이다. 자기 뒤에 놓여 있는 알림판을 가리키며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자, 자, 여기에 후보들의 신상정보와 배율이 적혀 있으니 다들 돈 걸기 전에 확인하시오. 그러니까, 오군 낙가의 대소저 낙비홍, 용호방 십일 위, 주무기는 붉은 창 ‘홍연’, 배율은 세 배요. 천하맹 사소루, 용호방 십이 위, 배율은 두 배요. 관중형당 순찰사 초휴는 숨은 강자로서 며칠 전 수운관에서 혼자 백 명을 물리쳤지. 용호방 순위는 십팔 위지만 배율은 낙비홍과 같은 세 배요!”
경호 수운관에서 일당백의 격전을 벌인 초휴는, 어느새 이번 대회에서 예상 밖의 기대주로 떠오른 상태였다. 용호방 순위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인식 아래, 그는 낙비홍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다들 왁자지껄 떠들며 돈 걸기에 한창일 때, 초휴가 일층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흠칫 놀라 물러나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이 속속 입을 다물기 시작하자, 초휴의 얼굴을 모르는 이들까지 덩달아 침묵을 지키며 물러났다. 그 소란스럽던 자운루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