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일검침강(一劍沈江)
지난번 검왕성 비묵이 초휴와 대적했을 당시, 혼신의 힘을 쏟아서 싸웠음에도 아비도삼도의 제 일도에 피를 토하고 말았다. 이제 상대는 심백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는 후퇴하기는커녕 앞으로 치고 나왔다. 그의 검세가 돌연 바뀌는가 싶더니, 베일 듯 예리한 기세는 어느새 묵직한 웅혼함으로 바뀌었다. 망망대해처럼 끝없이 거대한 검세가 해일처럼 초휴를 덮쳐왔다.
관중들은 초휴와 심백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저 엄청난 검기가 두 사람을 뒤덮은 가운데, 초휴의 검은 도광만이 자욱한 안개 속에서 간간이 빛을 발할 뿐이었다. 바야흐로 ‘창란한해(濸瀾瀚海)’가 천하를 집어삼킨 순간이었다!
원래 창란검종의 검법은 사납고 맹렬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왕년에 류공원이 ‘일검침강(一劍沈江, 일검으로 상대를 강바닥에 수장시킨 데서 비롯된 별호)’이라 불리게 된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심백은 창란검종 검법의 위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상태였다. 아비도삼도가 막강한 건 사실이지만, 심백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엄청난 규모의 검기로 충분히 대항할 수 있었다.
막상막하인 두 사람의 격전을 지켜보는 중인들은 삼화취정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경호산장과 장검산장에도 삼화취정의 고수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이 둘 만큼 막강한 진기를 가진 자는 없었다. 이 정도 수준의 진기라면 오기조원의 무사조차도 비교가 안 되지 않겠는가.
‘괴물! 괴물이 둘이나 나타났다!’
초휴가 이런 저력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천부적 자질보다도 기연으로 얻은 무공 덕이 컸다. 사실 자질로만 따진다면 초휴는 평범한 축에 속했다. 그런 그가 선천공, 유리금사고 그리고 대혼원공에 이르기까지, 여러 기연을 만나 자질을 축적해나간 끝에 지금 이 정도 수준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심백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천부적 자질부터가 독보적인 그를, 류공원이 소싯적부터 친히 가르쳐왔다. 그가 고행을 이어온 십년은 제삼자가 상상도 못 할 만큼 혹독하기 그지없는 세월이었다.
바깥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차단되어, 불가의 고승 못지않은 호되고 엄격한 수련 생활을 이어 왔으니까. 과연 천부적 자질과 혹독한 고행으로 일궈낸 저력은 초휴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었다.
이때 폭풍처럼 몰아치는 검강의 소용돌이 속에서 초휴가 아비도삼도의 마기를 몸속으로 받아들여, 혈련신강의 힘을 더욱 폭발적으로 배가시켰다. 이 힘으로 심백의 검세와 정면승부를 볼 작정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초휴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방식을 가장 선호했다. 동급 무사든 자신보다 우위인 무사든, 축적된 힘의 양과 강도에 있어서는 아무도 그를 못 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적수를 제대로 만난 셈이었다.
창란검법의 검세가 워낙 묵직하고 심후한 데다, 심백이 이를 극도로 강화하자, 초휴도 단번에 이를 뚫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검강을 어찌하지 못하는 상대의 모습에 심백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내가 분명 경고했었지.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고. 네가 익힌 사악한 마공이 가공할 폭발력을 지닌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종국에는 힘이 바닥나고 말 터. 내가 너를 죽이기도 전에 마공의 부작용을 못 견딘 네가 자멸하고 말 것이다.”
그러자 초휴가 돌연 고개를 들더니 찌를 듯한 눈빛을 발했다.
“내가 마공만 할 줄 안다고 누가 그러던가?”
초휴의 무도에는 사실 고정된 이론이 없었다.
기(奇)한 것에는 정(正)한 것으로 맞서고, 정(正)한 것에는 기(奇)한 것으로 맞선다!
늘 상황에 따라서 가변적인 게, 그가 추구하는 무도고, 그 무도의 핵심이 바로 극강의 살상력이다. 무도의 종류를 막론하고 살상만 잘할 수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이걸로 해 보다가 안 되면 저걸로 해 보는 방식. 저걸로도 안되면 또 다른 걸 시도하는 방식. 그것이 초휴가 세상을 헤쳐나가는 방법이다.
초휴가 내사자인을 결인하자 마기가 감돌던 몸이 안정을 되찾았다. 이어서 그가 빛의 속도로 지권인을 내지르자, 그를 중심으로 수 장 반경이 강기망으로 봉쇄되면서,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의 움직임이 정체되었다.
무소불위의 기세로 덮쳐오던 심백의 검강이 지권인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자, 확연히 속도가 늦춰지기 시작했다. 초휴의 강기에 묶여버린 검강은 결국 강기망 속에 단단히 갇히고 말았다.
이때를 놓칠세라 몸을 날린 초휴는, 앞을 가로막고 있던 심백의 검강을 대금강륜인으로 하나하나 깨부수기 시작했다. 검강은 초휴의 몸에 닿는 족족 무력하게 파괴되었다. 경이롭기 그지없는 쾌만구자결의 여러 인법이 잇달아 출수 되자, 심백의 표정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인법들을 처음 겪는 그로서는 어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게다가 이런 식의 출수는 그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공간을 장악하여 그 안에 검세를 가두어 와해시키더니, 이제는 맨손으로 근접전(近接戰)을 불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초휴가 칼에나 능한 줄 알았던 심백으로서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주저함도 잠시, 심백이 검신을 눕히자 검날에서 작디작은 얼음으로 된 검의 형상들이 촘촘히 떠올랐다. 그러고는 우박이 우수수 떨어지듯 초휴를 향해 무수히 날아들었는데, 그 모습은 암기 공격을 방불케 했다.
심백은 지난 십년간 창란검종 내의 모든 검전(劍典)을 섭렵했다. 종문 내 비밀리에 전승되는 과 더불어 방금 시전한 도 정통한 경지까지 터득한 상태였다.
강기와 검기를 융합시키고, 공기 중의 수중기를 응결시켜 검으로 삼으면 위력도 엄청나고 공세도 변화무쌍해진다. 다만 검기와 강기를 동시에 제어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해서 창란검종에서는 섣불리 이를 익히려 드는 자가 없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데다, 최종 입문도 어렵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백은 타고난 자질이 뛰어난 데다, 십년에 걸친 고행을 이어오면서 마음가짐도 태산처럼 굳건했다. 해서 그 까다로운 제어법을 거뜬히 터득하여 입문의 경지까지 이르렀다.
미세한 얼음 조각 하나하나가 한 줄기 검기였다. 하지만 초휴의 대금강륜인에서 눈을 찌를듯한 불광이 터져 나온 순간, 금강역사의 불같은 노여움이 그 많은 얼음 조각을 분분히 녹여 버렸다.
심백의 검날과 초휴의 권인이 정통으로 맞부딪히며 발생한 충격으로 심백은 한 발짝 밀려나고 말았다. 하지만 대금강륜인의 괴력에 그 정도 버틴 것만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과연 육급 보검의 진가가 확인된 순간이었다.
그런 보검을 류공원이 준 것만 봐도, 그가 심백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설령 천인합일의 고수라 해도 아무나 육급 보병을 만질 수 있는 행운이 따르는 건 아닐 테니까.
초휴는 상대가 흔들린 틈을 놓칠세라, 잇달아 세 차례나 대금강륜인을 내질렀다. 매번 전력을 다한 출수였다. 한 번 출수할 때마다 심백은 한 발짝씩 뒤로 밀려났다. 누가 봐도 초휴가 심백을 압도하기 시작했고, 심백은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의 격전을 지켜본 관중들은 찬탄을 금치 못하며 한 동작이라도 놓칠세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것은 어디에 내어 놔도 손색없는 명승부가 아닌가.
그런데 관중의 찬탄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심백의 검에서 날카로운 광망이 터져 나왔다. 그가 자신의 모든 강기를 검신에 집중시킨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강기는 흩어지는 대신 응집되어 하늘 높이 치솟더니, 산도 가르고 강도 끊어 버릴 검의를 토해냈다. 이 가공할 일검의 위력을 보자, 줄곧 잠자코 있던 정정봉조차 안색이 돌변하여 읊조렸다.
“류공원이 일검침강의 검의를 심백에게 가르쳐준 모양이군. 단단히 미쳤군! 아니면 정말로 심백을 창란검종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단정한 것이겠지.”
지금 심백이 시전한 일검은 정정봉에게도 익숙했다.
왕년에 류공원이 일검침강으로 강호에 이름을 날리던 시절, 정정봉은 아직 무도종사의 경지에 오르기 전이었다. 류공원에 비하면 애송이에 불과했던 그에게 일검침강은 실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일검침강이 단순히 검법에 그치는 게 아니라, 검의의 일종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웠다. 류공원은 평생에 걸쳐 검을 수련했다. 검도에 대한 본인의 깨달음을 고스란히 실어낸 절정의 일검! 이는 근본적으로 문자나 해설을 통해 전승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물론 이 일검을 배우는 건 매우 간단했다. 류공원은 심백이 보는 앞에서 이것을 한 차례 시연해 보임으로써 대략적인 맛만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전수자가 할 일은 그걸로 끝이었다. 나머지는 전승자에게 그 검의를 깨우칠 능력이 있는지에 달린 것이다. 그렇다면 정정봉은 왜 그를 미쳤다고 말했던 걸까.
류공원이 강호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지, 십년도 넘었다. 지금쯤 노쇠할 대로 노쇠하여 수명이 다해갈 터였다. 그리고 일검침강은 그의 몸이 최절정이었던 시절에 시전해도 원기 소모가 막대했던 초식이다. 그런데 꺼져가는 촛불 같은 몸으로 이를 제자에게 시연해 보였다는 건, 그가 엄청난 대가를 치렀음을 의미했다. 그 대가는 바로 자신의 목숨일 터였다!
일검침강을 시전하고 난 심백이 냉랭히 말했다.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걸 인정하지. 내가 예전에 너를 과대평가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반대로 과소평가한 것임을 알겠다. 이 일검은 원래 너를 위해 준비한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본의 아니게 사용하게 되었으니, 영광인 줄 알아라.”
대결 시작부터 심백은 선언했다. 초휴는 자신의 강호 진출을 위한 발판에 불과하다고. 그가 진정으로 노렸던 적수는 하후무강 같은 용호방 십 위권들이었던 만큼, 일검침강 또한 그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하지만 초휴와 제대로 맞붙자, 애당초 자신이 상대를 너무 과소평가했음을 깨달았다. 도대체 어떻게 수련을 했길래, 불과 몇 년 사이에 이처럼 심후한 저력을 쌓을 수 있었단 말인가. 단순히 천부적 자질이나 들먹여서 설명될 문제가 아니었다.
초휴에게 그토록 뛰어난 자질이 있었다면 창란검종도 보는 눈이 있는데, 이런 천재를 내버려 두었을 리 만무하다. 그 손바닥만한 위군에서 초휴의 능력을 간파 못 했을 리가 없다. 다시 말해 애당초 류공원의 마지막 제자로 선택되었을 인물은 심백이 아니라 초휴였을 거라는 얘기다.
심백은 상대의 능력을 확인하자 자신의 숨은 패를 남김없이 드러내어, 대결에 종지부를 찍을 결심을 한 것이다. 하지만 초휴도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나를 위해 준비한 게 아니었다고? 그럼 알게 해 주지. 나를 위해서도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어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신은 그저 류공원의 검의를 흉내나 냈을 뿐이야. 당신이 깨달은 검의가 아니란 말이지. 왕년에 류공원이 일검침강으로 한 끗발 날렸을지는 모르나 당신은 아니야!”
초휴가 일검침강의 검세에 맞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심백에게 다가갈수록 그의 전신에 감도는 마기가 짙어지며 위세를 더해갔다.
바로 앞까지 다가갔을 무렵, 그의 온몸은 저주 어린 마기로 휩싸인 상태였다. 그 마기의 한가운데에 초휴가 사신(邪神)처럼 우뚝 서 있었다. 그의 마기에서 느껴지는 것은 광기만이 아니었다. 역설적이게도 그건 신성한 위엄마저도 깃든 마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