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4)
통부주에서 이십 년간 개산무관을 운영해 온 정개산은 나름 이곳에서 행세 깨나 하는 지역유지로서, 통주부 삼대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이었다. 이씨 집안 삼공자의 심복인 문하생 덕분에 정개산은 이씨 댁에 들어서자마자 통보 한 번으로 삼공자의 영접을 받을 수 있었다.
잠시 후 스물 남짓 먹은 준수한 청년 하나가 비단도포 차림으로 걸어 나오더니 그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정관주님 오셨습니까? 진작 맞으러 나왔어야 했는데 실례를 저질렀군요.”
“삼공자, 그런 말은 마시구려. 매일같이 공사다망한 양반이 몸소 이 늙은이를 맞아주니 내가 영광이오.”
그 청년은 다름 아닌 이씨 집안의 삼공자 이소(李昭)였다. 정개산이 이처럼 깍듯하게 그를 대하는 것은 비록 이씨 집안의 가주가 고인이 되어버리긴 했으나 통주부에서 그들의 위상은 여전히 변함없었기 때문이었다.
왕년에 이씨 집안의 가주가 건재하던 시절에는 통주부의 가문 서열이 심씨, 이씨, 초씨의 순서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씨 집안의 가주가 정개산보다도 어린 육순의 나이로 무공수련 중, 주화입마에 걸려버렸던 것이었다. 그는 결국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황천길에 오르고 말았다.
당시 이씨 집안에는 선천경에 이른 무사가 한명도 없어서, 이대로 이씨 집안이 주저앉게 될 거라는 예상이 유력했다. 그러나 세간의 예상을 깨고 가주의 세 아들이 각자 가업을 승계하더니, 무공실력이나 사업수완을 막론하고 출중한 면모를 과시해 명실상부한 ‘이씨 집안 세 호랑이’라는 찬사를 듣기까지 이른 것이다.
현재 그 삼형제 중 막내 이소만이 아직 쉬체경이고, 첫째와 둘째는 응혈경을 터득한 상태였다. 만약 그들 모두가 선천경에 이르게 된다면 초씨는 물론 심씨 집안한테도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접견실에 이르자 이소가 차를 내오게 한 후 물었다.
“정관주님께서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셨는지요?”
그러자 정개산이 웃으며 대답했다.
“공자께서는 혹시 초씨 가문의 셋째아들인 초휴를 아시오?”
순간 이소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물론 알지요. 사실은 개인적으로 갚아주어야 할 빚이 있습니다.”
얼마 전 초휴는 원보진에서 이씨 집안의 사람을 죽여 그들의 체면을 실추시켰다. 무엇보다도 이형은 이소 본인이 발탁한 인물이었기에, 이형을 건드린 것은 이소 본인을 도발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소는 진작부터 복수하고픈 마음이 있었지만 형들이 그의 속내를 눈치 채고서 경거망동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씨 집안에 선천공에 이른 고수가 하나도 없는 만큼 매사에 몸을 사릴 필요가 있었다. 굳이 무리한 사고를 치지 말고 피해갈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해가는 게 좋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혈기왕성할 젊은 나이인 이소였지만 그도 최소한의 분별력은 있어서 일단 그 일은 덮기로 하고 이형을 따끔히 혼내준 다음 한구석으로 내쳐버렸다. 그가 화가 난 건 이형이 사고를 쳤다는 그 자체가 아니었다. 사고를 치고 나서도 상대방의 실력이나 성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너무도 한심했던 것이다.
얼떨결에 이소와 초휴 사이의 갈등을 알게 된 정개산은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더 이상 캐 묻지는 않았다. 대신 자신의 외손자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만 대략 들려준 후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꺼냈다.
“삼공자, 지금 그 광석이 내 수중에 있으니, 원한다면 은자를 가져오시구려. 그렇다고 해서 초씨 가문에 미안할 짓을 하는 건 전혀 아니오. 나는 그저 초휴 그놈만 쳐내면 되고 나머지 일은 내 여식이 알아서 잘 마무리할 테니, 이씨 가문에 누를 끼치는 일은 없을 거요. 이 일은 삼공자가 마음먹기에 달렸소.”
이소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빛났다. 초씨 가문의 내분에 대해서는 그도 들은 바 있었지만 정작 본인이 형제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 터라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초씨 가문의 내홍이 이 정도로 깊어졌을 줄은 정말 몰랐다. 이건 차라리 외부인에게 득을 보이는 한이 있더라도 형제가 잘 되는 꼴은 막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지 않은가?
졸지에 어부지리를 얻게 된 이소는 사실 오래 전부터 그 광석에 눈독을 들여왔었다. 초씨 가문이 병기제조에 있어서만큼은 젬병인 게 확실한 것이, 고작 이급 칼날을 만드는 것도 툭하면 실패하여 그 아까운 광석들을 낭비하기 일쑤였다.
그 자재들을 차라리 이씨 집안에 넘겼더라면 완벽한 성공률을 자랑하면서 삼급 칼날도 잘 만들어냈을 것이었다. 이에 이소는 더 이상 생각하고 자시고 할 거 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정관주님, 그걸 넘겨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제가 그 오만 칠천 근을 칠만 냥에 쳐드리지요. 이만하면 시가보다 일만 삼천 냥을 더 얹어드리는 겁니다. 그중 일만 냥만 이윤으로 남기시고 나머지 삼천 냥은 제가 관주님께 술을 거하게 대접한 셈 치지요.”
이에 정개산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좋소이다. 역시 삼공자는 통이 크다니까. 지금 당장 내 무관으로 사람을 보내어 광석을 가져가시구려.”
이소의 모습을 보며 정개산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씨 공자가 대인관계에 임하는 자세나 일처리 하는 수완이 자신의 못난 여식보다 훨씬 나아보였기 때문이었다.
출가외인이라더니, 그 망할 딸년은 이 아비의 주머니 사정이 어떤지는 물어볼 생각도 않고 그저 자기 집안에 손해가 나는 것만 걱정하지 않는가 말이다.
집안 형편이 받쳐주지 않으면 무공을 배울 엄두도 내지 말라는 말도 있듯이, 정개산의 개산무관이 통주부 경내에서 큰 명성을 얻게 되자, 수련제자를 새로 거둘 때마다 매달 학비가 적어도 일인당 두 냥씩은 들어왔고 많게는 열 냥에 이르기도 했다.
현재 개산무관에 등록된 문하생이 족히 백 명은 넘으니, 이를 평균 내보면 매달 적어도 천 냥에 육박하는 수입이 들어오는 셈이었다. 그러나 정개산도 결국엔 무사의 몸인지라, 선천경에 이르는 건 글렀다 쳐도 오래라도 살 욕심에 기혈을 보하고 수명연장에 도움이 되는 약재들은 열심히 사 모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나가는 지출이 만만치가 않아서 정개산의 주머니 사정은 늘 빠듯했다. 이런 까닭에 그는 칠만 냥 가운데 자기 몫을 챙기고 남은 오만 오천 냥만 초씨 가문에 넘길 심산이었다. 어쨌거나 초씨 가문에는 오만 이천 근으로 기록되어 있을 테니 표면상 시가보다 삼천 냥은 더 얹어준 셈이고, 이걸로 초씨 가문에 인사치례도 충분히 한 게 된다는 것이 그의 계산이었다.
이소가 정개산을 배웅하고 돌아오자 큰형 이승(李承)과 둘째형 이운(李云)이 물었다.
“아우야, 정관주가 무슨 일로 널 찾아온 거냐? 그는 자신이 득 볼 일이 없으면 누구든 상대도 안하는 능구렁이다. 그런 사람과 어울려봐야 우리한테 유익할 게 없다는 걸 알아야지.”
그러자 이소가 웃으며 대답했다.
“큰형님, 이번에는 틀리셨어요. 그 늙은이가 우리한테 선물을 주고 갔습니다.”
이어서 그는 두 형에게 일의 전후사정을 설명해주었다. 그의 말을 듣는 동안 이승과 이운이 석연찮은 표정을 짓더니, 결국 이승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우야, 이번에 네가 좀 경솔했구나. 지금 우리는 가급적 초씨 가문과 부딪히지 않는 게 좋아. 아버님 사후에도 우리 집안이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우리 삼형제의 공로도 컸지만 무엇보다도 심씨와 초씨 가문이 우릴 건드릴 마음이 없는 때문이었다. 심씨 가주 심묵은 가주 자리를 이어받자마자 잇달아 장로들을 참살하고 가문을 안정시키느라 바깥으로는 아예 신경 쓸 여유가 없었지. 초종광 그 늙은이는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는 몰라도 폐관수련을 한답시고 하루 종일 틀어박혀 우리한테는 관심조차 없었어. 그 덕분에 우리가 가문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야. 그러나 이번일로 초종광을 자극하기라도 한다면 우린 무척 골치 아파지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소는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큰형님, 걱정 마시라니까요. 정씨 늙은이가 말하길, 이 일은 순전히 자기 외손자에게 가주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초씨 가문 내부적으로도 이 일을 덮어줄 보호막정도는 마련해 두었을 거예요. 모르긴 해도 초종광의 귀에까지 들어갈 리는 없을 겁니다.”
이승이 생각 끝에 말했다.
“네가 말을 그리 해도 나는 걱정이 되는구나. 내일 네가 직접 개산무관으로 가서 광석을 인수하고, 상단을 시켜 그걸 청원진으로 옮겨, 거기에서 병기를 만들라고 그곳 총관에게 지시해 놓도록 해라.”
이씨 집안은 워낙 병기제조에 능한 데다, 점포가 통주부 경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나라 인근의 청원진에도 있었다. 그 많은 값나가는 병기들을 가지고 상망산을 오가다가 도적들에게 빼앗기기라도 하는 날엔 손실이 엄청날 게 뻔했다. 그래서 애초부터 연나라에 팔기로 계획된 병기는 아예 위군에서 청원진으로 자재를 옮겨, 그곳에서 직접 제조하는 편이 시간도 절약되고 수고도 덜 수 있었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이소는 수하들을 이끌고 개산무관으로 광석을 가지러 갔다. 그리고 바로 그때, 초씨 상단의 유유성이 울상이 되어 초휴에게로 달려왔다. 수련 중이던 초휴는 유유성의 방해를 받자 못마땅한 표정으로 질책했다.
“또 무슨 일이야? 상단을 잘 관리하라고 너희들한테 맡겼는데, 문제만 생겼다하면 쪼르르 달려오니, 내가 뭘 믿고 너희에게 일을 맡기겠느냐?”
유유성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공자님, 이번 일은 정말 소인들 선에서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일전에 우리가 연나라 거상과 체결한 거래를 공자님도 아시잖아요. 그런데 이번 달 채굴한 광석을 집안 차원에서 다른 사람한테 팔아버렸다지 뭡니까. 뭐 거래가 깨지고 돈 물어주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요. 문제는 그 거상의 뒤에 연나라 세도가가 있었더라고요. 계약이 깨지는 날엔 우리 상단의 명성이 타격을 입는 건 물론이고, 청원진에서 거래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겁니다. 산 넘어 산이라고요.”
순간 초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직 이것들이 부릴 꼼수가 남아 있었던 거야? 이번에는 또 어느 놈의 수작이냐? 속으로 중얼거리는 그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순조롭게 가주 승계자가 되고 가문의 자원들을 확보해 선천경에 이르고 나면, 초휴는 누가 말려도 통주부를 떠날 계획이었다. 그때는 누가 가주가 되든 말든 전혀 알바가 아니란 말이었다. 자신의 앞길에 걸림돌만 되지 않으면 그도 굳이 남을 해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이놈저놈 돌아가며 한 번씩 도발을 해대고, 급기야 그 도를 더해가지 않는가? 이제는 급기야 가문의 이익에 손해를 입히면서까지 자신을 몰아세운다고? 이것들이 정말로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군 그래!
“누구 짓이냐?”
초휴 눈에 살기가 감도는 걸 본 유유성은 벌벌 떨며 대답했다.
“둘, 둘째 부인이요. 둘째 부인이 광석을 자기 부친에게 팔았다고 합니다. 개산무관의 관주인 ‘열금수’ 정개산이라는 사람인데. 정개산이 다시 그 광석을 이씨 집안에 팔았고, 오늘 아침 이씨 집의 삼공자가 개산무관으로 광석을 인수하러 갔다고 합니다.”
“이씨 집안?”
초휴는 납득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씨와 초씨, 두 집안 사이의 해묵은 갈등은 물론 알고 있었다.
통주부 경내에서 심씨 가문이 고고하게 자신들만의 갈 길을 가는 반면, 이씨와 초씨 가문은 오래 전부터 씻을 수 없는 적대관계에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둘째 부인이 광석을 이씨 집안에 팔았다고? 초종광에게 문책 당하는 게 두렵지도 않단 말인가?
어찌된 상황이건 간에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초휴는 곁에 둔 안령도를 집어 들더니 마활 등을 불러 함께 개산무관으로 향했다.
끝
ⓒ 봉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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