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41)
241화 심백의 운명
‘강호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죽는다고?’
심백은 억울했다. 자신뿐 아니라 사부는 물론, 창란검종 전체가 억울할 터였다.
심백의 죽음은 그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다. 한 종문의 존망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심백은 이 막중한 책임감으로 버텨왔고 앞으로도 버틸 수 있을 터였다. 그것은 일종의 부담감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 그에게 살아남을 길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일단 체면 불고하고 장검산장 측에 도움을 요청하면 저들이 안 나설 리가 없다. 신병대회가 개막되자마자 비무대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건, 주최 측으로서는 당연히 피하고 싶을 테니까.
문제는 이 대결은 심백 본인이 자청한 거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패배를 자인한 것도 모자라, 구원의 손길까지 요청한다면 자신의 체면은 어찌 되겠는가. 심백은 그 창피를 참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싸우는 것뿐이다. 결단을 내린 그는 온몸의 강기를 오른팔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왼손으로 오른팔을 긋자 예리한 강기가 그의 오른팔에 거대한 상흔을 남겼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상처에서 뿜어낸 선혈이 사방으로 흩어지기는커녕, 강기의 제어 아래 뚜렷한 형태를 갖춘 혈검(血劍)으로 변했다!
이는 피로써 검을 응집해낸다고 해서 ‘이혈응검(以血凝劍)’이라 불리는 초식이다. 하지만 창란검종 고유의 초식은 아니었다. 지난날 창란검종의 어느 선배가 마도 무사를 죽인 후, 그자의 시신에서 찾아낸 마공이었다. 자신의 선혈로 검을 만들어 강기로 제어한다니, 이 얼마나 사악하기 그지없는 무공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 무공을 완벽히 시전하려면, 상대의 기혈을 흡수할 수 있는 무공과 연계를 이루어야 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선혈을 소모해서 상대를 죽인 후에, 조금이나마 몸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심백은 오로지 이혈응검만을 시전하려 했다.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대문파 제자라면 최후의 일격이나, 도주를 도모할 만한 비장의 무기 한두 가지쯤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강직한 성정의 심백은 도주라는 선택지를 용납할 수 없었다. 해서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이혈응검을 최후의 일격으로 택한 것이다. 원래 마공은 사악함에 비례하여 부작용 또한 심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강기막으로 둘러싸인 혈화검(血化劍)을 만들어낸 대가로 심백의 오른팔은 선혈로 참담히 물들었다. 온통 시뻘겋게 젖은 그 팔은 창백해진 안색과 대비를 이루어, 더욱 섬뜩하고 사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초휴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대금강륜인을 내질렀다. 손에서 날카로운 금빛 광망이 터져 나온 모습에서는 악귀를 처단하려고 강림한 금강역사의 현신이 엿보였다.
조금 전, 지옥에서 뛰쳐나온 악귀를 방불케 한 초휴의 모습을 본 관중들은, 이 극적인 반전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말을 잃었다.
초휴가 관중형당 순찰사라는 사실이 사전에 알려져 있었으니 망정이다. 아니었다면 정도 무림 측에서 누구든 뛰어나와 그의 사악함을 징벌하려 들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아까 심백이 검기로 초휴에게 맞서던 모습은, 목숨을 걸고 대마두와 일전을 벌이는 청년 협객의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초휴가 광명정대한 불가의 무공을 쓰는 반면, 심백은 사악하고 기이한 마공으로 맞서고 있지 않은가. 아까의 대마두와 청년 검객의 싸움이 이제는 불가 고승과 악귀 간의 싸움으로, 선악(善惡)의 역할 구도가 뒤바뀌며 양상도 달라졌다.
대금강륜인과 혈화검이 정통으로 맞부딪힌 순간, 짙디짙던 기혈이 인법의 괴력에 절반 가까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혈화검은 심백의 체내로부터 기혈을 보충받는가 싶더니, 어떤 손상도 입지 않았다는 듯, 재차 초휴를 찔러왔다. 혈화검은 심백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대비해 준비한 비장의 무기였다. 초휴의 일격에 쉽사리 파괴될 것 같으면, 어떻게 비장의 무기라 할 수 있겠는가.
혈화검의 기혈 보충이 이뤄진 후, 심백의 안색은 더 창백해졌다. 이처럼 기혈의 소모가 계속된다면, 이긴다 한들 원기가 크게 손상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초휴는 심백의 원기가 손상될 기회조차 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다시금 원상 복구된 혈화검이 초휴를 치기 직전, 외사자인이 위력을 발했다. 손가락 사이에서 엄청난 진동을 동반한 불음이 터져 나오자 비무대 전체가 흔들렸다.
외사자인이 몰고 온 충격에 심백은 머릿속이 텅 비는 듯했고,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그가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춤한 사이, 초휴의 두 눈이 심연처럼 변하더니 몽롱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심백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기 시작했다.
원래 이혼대법은 동급 무사를 상대할 경우, 어신술만큼의 강력한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심백은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어서, 아직 원래의 자신감과 강인함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혈화검을 운용한 탓으로 기혈이 막대한 손상을 입었다.
기혈이 왕성할 때와는 달리, 이혼대법 같은 원신비법의 공략에 극히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순식간에 이혼대법의 늪으로 빠져든 그는, 더는 자신의 강기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강기를 이용해서 만들어냈던 오른팔의 혈화검이 순식간에 응집력을 잃고 사방으로 선혈을 뿜기 시작했다.
결국, 혈화검은 초휴에게 파괴된 셈이었다. 심백은 마공의 시전이 남긴 부작용으로 인해, 이혼대법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핏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더는 혈화검을 사용할 수 없는 그에게 다시금 대금강륜인의 위협이 닥쳐왔다. 심백은 검기를 발출시켜 방어할 생각으로 손을 휘저었다. 초휴의 눈에 그 행동은, 파리 한 마리도 못 잡을 의미 없는 손짓에 불과했다.
대금강륜인의 괴력에 정통으로 가격당한 심백은 두 팔이 비틀어진 채, 사정없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는 관중들은 약속이나 한 듯, 탄식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승부가 났다.
심백은 창란검종이 종문의 명운을 걸고 야심 차게 내보낸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창공을 비상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처참하게 날개가 꺾여서 추락해 버리고 말았다.
기세도 당당하게 비무대에 오르던 심백의 모습이 아직도 관중들의 뇌리에 선연했다. 불과 한 초식 만에 백무기를 날려버린 가공할 실력도 여전히 짙은 잔영을 남긴 상태였다. 그가 휘둘렀던 일검은 신병대회를 장악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그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자는 없었다.
그는 비무대 위에 올라서도, 극강의 실력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 주었다. 특히 일검침강은 그를 용호방 십 위권에 올려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마지막 순간에 상대를 잘못 골랐다.
이로써 파죽지세였던 그의 강호행은 한 시진도 못 되어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물론 신병대회가 끝난 후, 심백의 이름도 강호에 알려지기는 할 것이다. 초휴의 전적을 빛내줄 패배자의 이름으로 알려지겠지만······.
초휴는 심백을 날려버린 뒤에도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쓰러진 심백을 쫓아간 그가 일장을 내지르려 손을 번쩍 들었다. 누가 봐도 숨통을 끊을 의도가 명백한 살초였다.
그는 심백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운명이다. 초휴는 심백의 아우를 죽였고, 창란검종도 그를 추살하려 들었다. 그리고 그는 이 일과 관련해서, 창란검종과 화해할 마음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끈질긴 악연을 끝내버리는 것이 정답일 터였다.
관중들도 초휴의 결단에 큰 반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가 이렇게 나오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한 바였다. 물론 끝장을 보는 대신 손속에 사정을 남기는 게 강호의 미덕이라지만, 초휴가 언제 강호의 관행이나 규칙을 신경 쓰는 인물이었던가.
신무문 종주의 고명딸도 죽이려 했고, 검왕성의 정예 제자도 불구로 만든 자가 무슨 짓인들 못 할까. 지금 심백을 폐인으로 만들어도, 사람들은 으레 그러려니 할 터였다. 새삼 놀랄 일이 전혀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던 정정봉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의 심백은 반항할 능력이 조금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초휴가 잔악한 살초로 목숨을 빼앗는다면 그의 과도한 살성(殺性)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심백과 초휴 모두 생사결을 펼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심백이 류공원의 일검침강을 출수하는 것을 본 정정봉은 그가 창란검종의 마지막 희망임을 확신했다.
그런 심백이 여기서 죽도록 내버려 둔다면 류공원이 장검산장에 따지러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물론 강호의 대선배인 그가 막무가내로 나올 위인이 아닌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심백은 단순한 제자가 아니라, 종문의 희망을 짊어진 자였다. 평소 점잖던 사람이 이성을 잃고 폭주하면 더 무서운 법이 아니겠는가.
물론 장검산장이 창란검종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류공원 하나 상대하자고 장검산장 장주가 직접 나설 필요도 없다. 정정봉 선에서도 류공원에 대처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류공원이 죽을 날을 지척에 앞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진 게 없는 자는 잃을 게 없고, 잃을 게 없는 자는 눈에 뵈는 것도 없는 법이다. 그가 제대로 열 받는다면, 그 불똥이 장검산장 지붕 위로 떨어지고, 산장 전체로 불길이 번질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서 정정봉은 중재에 나섰다.
“초 소협, 관용을 베풀 줄도 알아야지. 이만 손을 멈추게나.”
하지만 초휴는 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손을 멈추기는커녕 더 힘을 주었다. 연정정을 죽이려 했을 때는 소백우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소백우가 연회남에게 신세 진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연정정을 보호해야 할 사정이 있었다. 해서 소백우의 체면을 봐서 그녀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엄연히 비무대에서 대결하는 중이다. 그것도 단순한 비무가 아닌, 생사결을 펼치기로 양자 간 합의도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미 패배한 심백을 봐주라니, 너무 한쪽에 치우친 처사가 아니냔 말이다.
당당한 무도종사인 정정봉 본인의 체면은 어쩌고? 장검산장의 위신과 신병대회의 공정성은 또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설마 심백이 그 모든 것의 위에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초휴는 관중형당을 대표해 참가한 몸이다. 주최자인 정정봉이 대회 운영 중, 편파적인 판정을 내린다면 누구보다도 공정성을 중시하는 관사우도 가만있지 않을 터.
설마 장검산장은 창란검종이 시비를 거는 건 두렵고, 관중형당은 안중에도 없단 말인가. 이치대로만 따질 것 같으면 정정봉은 초휴를 말릴 명분도 자격도 없었다. 해서 초휴는 심백과 얽힌 인과응보를 종결짓는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다.
초휴가 중재를 무시하고 공격을 강행하려 들자, 정정봉은 반사적으로 검지(劍指)를 내지르며 빛의 속도로 몸을 날렸다. 시작은 초휴가 한 발 빨랐으나, 정정봉의 몸은 어느새 심백을 막아선 채로 초휴의 앞에 서 있었다.
그의 검지는 초휴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심백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초휴가 인법을 지권인으로 전환해 공간을 장악했다. 일신의 강기를 터트려 상대의 검기를 가둬버린 그는, 심백의 단전을 향해 대자양수를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