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무슨 원한이 있기에
동개태의 낭패한 모습에 초휴가 빈정댔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저 세 사람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그리고 하후무강을 과대평가하는 것 또한 곤란하다고.”
사실 초휴는 사소루와 막천림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아직 그들의 진정한 실력을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비홍만은 믿음이 갔다. 장차 저 여인이 어떤 모습으로 난관을 헤치고 성장해나갈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여인이 허술한 실력을 갖췄을 리는 만무할 터였다.
“내 하후무강은 보내준다만 너는 여기에 남아줘야겠다!”
비록 내상을 입은 몸이었지만 초휴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곧이어 지권인을 내질러 동개태의 몸을 묶어버린 그의 입가에 옅은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이제야 이 화근덩어리를 제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 스스로 죽여달라 애원한 마당이니 거리낄 것도 없었다.
하후무강이 예고도 없이 사라진 탓에 동개태는 졸지에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 초휴가 중상을 입은 몸이긴 하나, 그의 실력으로 봐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동개태는 생각했다. 더욱이 하후무강을 꽁무니 빼게 만든 낙비홍 등이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네 사람이 함께 협공을 펼친다면 도망가고 싶어도 기회가 없을 터였다. 그는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때는 지금이다. 도망치자!’
하지만 이미 초휴의 지권인에 사방팔방의 공간이 봉쇄된 뒤였다. 그는 늪에 빠지기라도 한 듯 꼼짝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몸 상태를 자각했다. 이윽고 초휴가 혈련신강을 뿜어내며 홍수도를 뽑아 들었다. 동개태는 앉은 자리에서 사지가 묶인 채로 상대의 공격에 몸을 내맡길 수밖에 없는 꼴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이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초휴의 몸 상태가 온전치 못하다 보니 지권인의 지속시간이 길지 못했다.
동개태는 지권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자 온몸의 마기를 폭증시켰다. 자신의 몸조차 보이지 않게 만들 정도로 짙은 마기가 그의 주위를 잔뜩 에워쌌다. 그러자 마기 속 동개태의 몸은 괴기스러운 전설에 등장하는 귀신처럼 어른대며 극도로 섬뜩한 형상을 내비쳤다. 그를 중심으로 반경 수장 내 깔렸던 마기는 거대한 발톱 형상으로 응집되더니 가공할 기세로 초휴를 덮쳐왔다. 그 발톱은 얼핏 동개태의 성명절기인 ‘수라조(修羅爪)’를 연상시켰지만, 어찌 보면 다르기도 했다. 더없이 막강한 마기가 응집되면서 짙디짙은 피의 살기까지 섞였기 때문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초휴도 망설임 없이 홍수도에서 마기를 터뜨려냈다. 아비도삼도 중 두 번째 칼날을 내리치자 마귀의 칼날과 발톱이 정통으로 격돌했다. 강대강의 충돌로 마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니, 사방으로 퍼지는 기운의 음산함에 비무대 전체가 오싹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귀의 칼날과 발톱은 맞부딪히자마자 서로를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갑자기 흑영 하나가 쏜살같은 속도로 저만치 사라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동개태가 수라조를 출수하기가 무섭게 도주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출수는 퇴로를 뚫기 위함이었을 뿐, 근본적으로 초휴와 생사를 건 싸움을 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동개태의 모습은 분명히 겁에 질려 달아나는 자의 그것이지 않은가. 미치광이처럼 행동하던 그의 모습에 익숙한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초휴는 내박인을 출수해서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순식간에 동개태를 따라잡았다.
“경호산장 전체가 진법으로 봉쇄된 상태다. 도대체 어디로 도망가겠다는 것이냐?”
초휴만이 아니라, 하후무강과의 교전을 끝내고 정신을 가다듬은 낙비홍 등도 서서히 동개태를 포위해왔다. 다시금 낭패를 면치 못하게 된 동개태가 억지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저 밖으로 도망가야지. 저기 좀 보라고. 하늘이 날 돕고 있지 않은가!.”
알고 보니 초휴와 동개태가 싸우는 동안 무상마종과 장검산장 간의 싸움도 승부도 가닥이 잡혀가고 있었다. 정정봉은 사도려의 적수가 못 되었고, 그의 수하들도 무상마종 측에 제압된 상태였다. 아무래도 무상마종에 마검을 빼앗기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마검을 내준들 무상마종이 순순히 그들을 보내준다는 보장은 없었다.
지난날 장검산장은 곤륜마교를 협공한 것은 물론, 무상마종의 추살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었다. 서로간에는 단순히 마검을 넘기고 말고 하는 일과는 다른 차원의 원한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말이다.
이 사실을 정정봉이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는 상황이 여의치 않자 큰 결단을 내렸다.
그는 자신의 정혈을 태워 가면서까지 장검산장의 비전 절기를 시전하여 경호산장을 봉쇄한 진법을 파괴했다. 그리고는 동료들을 뒤에서 엄호하며 밖으로 치고 나갔다. 파괴된 진법에 구멍이 뚫렸으니, 누구든 경호산장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동개태는 얼떨결에 구명줄을 잡은 셈이었다.
“초휴, 그 심장은 잠시 네 몸에 맡겨두도록 하지. 하지만 언제든 기회만 있으면 내 차지가 될 거라는 것을 명심해라.”
마지막까지 허장성세를 부린 동개태는 신법의 속도를 끌어올려서 진법의 깨어진 틈새로 사라졌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초휴의 눈에는 짙은 살기가 차올랐다. 하지만 끝까지 쫓아가 끝장을 보기에는 몸 상태가 여의치 않았다. 심백과의 일전에서 진기 소모가 컸던 데다,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동개태와 교전한 후유증까지 더해진 상태였다. 게다가 이런 몸으로 추격을 강행하기에는 동개태의 신법이 워낙 빨랐다.
동개태가 심장의 비밀을 눈치챘으니 사방팔방에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초휴가 가장 우려하는 건, 그 비밀이 묘강 배월족에게 흘러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사람의 연상력이란 파급효과가 크기 마련이다. 강호에는 유리금사고에 대해 아는 자가 적지 않다. 다만 유리금사고가 어떤 효능을 가지는지를 정확히 아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묘강 배월족이 그 극소수중 하나였다.
초휴의 심장에 특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배월교가 알게 되면 초휴의 기괴한 ‘천부적 자질’에 의구심을 품게 될 테고, 유리금사고를 연상하게 될 수가 있다. 일이 이렇게 전개될 가능성이 확률상 적다고는 해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말의 위험 요인이라도 싹을 틔우기 전에 말살하는 것이 안전할 터. 아무리 생각해도 동개태는 오늘 죽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결단을 내린 초휴는 내박인을 출수했다. 강기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그의 주위가 온통 혈무로 가득 차올랐다. 정혈이 끊임없이 타오르는 가운데, 활시위를 떠난 화살인 양 몸을 날린 그는 순식간에 동개태의 앞을 막아섰다. 초휴가 이처럼 빠르게 자신을 따라잡자 동개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로서는 초휴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혈을 태워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추격해올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초휴는 아까 심백과 싸울 때도 이처럼 사생결단으로 행동하진 않았다.
동개태가 사사건건 심장을 들먹이며 끊임없이 초휴를 도발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말뿐이었고 실질적으로 그에게 해를 미친 건 없었다. 그런데도 일을 이처럼 크게 벌이는 의도가 이상하고 찜찜했다. 자신이 미친 건지 아니면 초휴가 미친 건지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동개태가 길게 의문을 품도록 초휴가 내버려 둘 리 만무했다. 초휴가 홍수도를 내리친 순간, 끝없이 피어오른 마기가 수중의 홍수도는 물론, 사람까지 집어삼키며 처절한 귀곡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비지옥에서 흘러나온, 영원히 구제받지 못할 망령들의 곡소리였다!
이 초식은 동개태도 익숙했다. 아까 초휴가 이 초식으로 심백을 격퇴하는 걸 똑똑히 보았으니까. 그리고 그 결말 또한 충분히 짐작이 갔다. 초휴가 심백에게 이 초식을 시전 한 후 기진맥진했던 모습은 모두가 목격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처럼 단시간 내에 두 번씩이나 시전할 정도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동개태를 끝장내주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닌가.
동개태가 이를 악물자 팔뚝의 힘줄과 혈관이 불끈 솟아오르며, 그 위로 무수한 혈무가 피어올랐다. 그 상태로 내지른 것은 단순한 마조(魔爪)가 아니라 혈무로 물든 혈조(血爪), 즉 동개태의 비장의 무기, ‘읍혈마수(泣血魔手)’였다! 이는 한 차례의 시전만으로도 전신 혈기의 소모량이 지대한 탓에 한동안 팔을 못 쓰는 무리수가 따르는 초식이었다.
하지만 홍수도와 함께 아비지옥의 마기가 휩쓸고 지나간 순간, 읍혈마수는 산산이 무너지고 말았다. 지독한 마기와 마기의 대결! 두 사람의 대결은 마도 간에 벌어진 생사결 그 자체였다.
강력한 충돌로 인해, 초휴도 순간적으로 밀려든 마기의 부작용 때문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의 눈동자는 짙디짙은 마기로 뒤덮인 상태였다. 동개태는 초휴보다도 입은 타격이 더 컸다. 읍혈마수를 시전했던 오른팔 전체에 선혈이 낭자함은 물론, 살점마저 쩍쩍 갈라져 뼈가 허옇게 드러났을 정도였다.
‘미친놈!’
동개태는 신음하며 속으로 상대를 욕했다. 세상 사람들이 죄다 동개태를 미쳤다고 욕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초휴야말로 진정한 미치광이였다. 물론 동개태가 살인한 후 심장을 취하는 행태가 광인의 짓인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목적이 뚜렷한 행동이었다.
반면에 자기 몸이 상하는 것도 개의치 않고 끝장을 볼 때까지 달려드는 초휴의 행태는 대체 무엇을 위함이란 말인가.
어쨌건 팔까지 이 모양이 되었으니, 도주만이 살길이었다. 뒤에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는 낙비홍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강호가 그의 적이었다. 그와 개인적인 원한이 없는 제삼자도 그가 곤경에 처한 틈을 타서 공격해 올 소지가 다분했다. 그의 목을 용호산 천사부에 갖다 바치면 후한 포상금을 받게 될 테니까.
동개태가 다시금 도주할 기미를 보이자 초휴가 돌연 칼을 거두고 양손을 결인했다.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인법이었다. 왼손으로 가볍게 주먹을 쥔 채, 오른 엄지로 왼쪽 식지 관절을 감싼 수인. 그러자 한낮의 태양과도 같은 광채가 작열하여 눈을 멀게 했다.
중생이 원만한 삶을 영위하길 기원하노니, 더없는 천상의 광명이 온 세상을 밝히도다!
드디어 쾌만구자결 가운데 전자결, ‘원만보병인(圓滿寶甁印)’을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이 인법에서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힘을 감지한 순간, 동개태는 외마디 일갈과 함께 전신에서 지독한 마기를 터뜨려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 강렬한 빛의 힘에 노출된 마기는 햇살 아래 눈 녹듯 사그라지고 말았다. 마기가 소멸하기가 무섭게 충돌음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동개태의 몸뚱이는 헌신짝처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가 쓰러진 곳에는 도저히 사람의 형상이라고 볼 수 없는 처참한 형체만 나뒹굴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초휴도 강시를 방불케 할 만큼, 얼굴에 핏기라곤 한점도 남아있지 않았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그의 온몸 경맥을 따라 피부가 속속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샘물이 터지듯 선혈이 솟구쳤다. 누가 보면 누군가한테 능지처참이라도 당한 듯한 몰골에 다들 할 말을 잃은 가운데, 황급히 달려오던 낙비홍도 멈칫했다.
다들 동개태가 미친 줄은 알았지만, 초휴가 그보다 더한 미치광이였을 줄은 몰랐다.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가 졌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출수로 끝장을 본단 말인가. 동개태와는 두어 번 가벼운 충돌을 빚었을 뿐인데 말이다. 이처럼 자해 수준의 초강수를 두어가면서까지 사생결단을 낼 필요는 없었다는 얘기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무슨 원한이 있기에?
초휴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에 공포가 어렸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사람들에게 극심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초휴는 상식적으로 해석이 불가한 두려운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