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구분당(九分堂)
제일 먼저 관심을 표시한 건 막천림이었다.
“초 형, 좀 더 상세히 말해주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찌하자는 건지 말일세.”
“내 구상은 간단해. 이번에 세 사람이 나를 도와준 은혜를 나중에 내가 갚는 것과 같은 이치인 셈이지. 이번 일은 상황이 허락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주먹구구식의 협조 말고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일을 해결할 능력이 되는 사람이 체계적으로 도움을 주자는 거야. 물론 옛말에 친형제 간에도 계산은 확실히 하라 했으니, 거저 돕자는 건 아니지. 도움을 받은 측은 물건으로든 인정으로든, 신세 진 것을 갚기로 하는 거지. ‘이익’이라는 게 참으로 묘한 놈이라서 제일 미덥지 못한 동시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거니까. 실질적인 이익을 매개로 결성된 조직이라면 의리로 맺어진 관계보다도 더 공고하게 유지되기 마련이지. 한마디로 정리해 보면 이래. 나는 우리가 몸담은 세력을 철저히 배제한 채, 순전히 우리 넷만을 위한 연합조직을 만들고자 하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되겠는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모두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초휴가 무얼 의도하는지 그들이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일단 개인과 세력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초휴가 결성하려는 조직은 각자 몸담은 세력의 꼬리표를 떼고, 순전히 이들 넷만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들 각자가 도움이 필요하게 될 경우는, 현재 각자의 세력 내에서 처한 곤경과 연관될 가능성이 컸다.
예컨대 초휴만 봐도 관중형당 곳곳에 숱한 위기가 잠재해있다. 관중형당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력 기반이 약한 것에 더해서, 위구단이라는 상관은 툭하면 수하들 간의 암투를 조장하려 든다. 막천림은 문중 내 젊은 세대 중 가장 촉망받는 인물이지만, 아직 자신의 위상을 확고히 굳힌 상태가 아니었다. 여차하면 그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릴 작정으로 눈을 시뻘겋게 부릅뜬 경쟁자들이 부지기수였다. 낙비홍의 처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사소루가 이들 넷 가운데는 가장 속이 편한 입장이었다. 천하맹의 절대지존인 진청제가 그의 사부이기 때문이었다. 사부가 버티고 있는 한, 그는 앞으로도 속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근심 걱정 없는 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천하맹 내에도 기회만 있으면 그에게 반기를 들 궁리를 하는 자들은 존재했다.
예전에야 이런 어려움에 홀로 맞서야 했다. 제아무리 가까운 친구 사이라 해도 막상 도와달라는 말을 꺼내기는 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초휴의 구상대로 조직이 결성된다면 여전히 교분을 나누면서, 이익 관계로도 엮이게 된다. 그러면 위급한 상황이 생길 경우 떳떳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훗날 어떤 형태로든 빚진 걸 갚으면 되니 마음이 불편할 게 없는 것이다.
초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조직은 계속해서 다른 이들도 영입할 수 있어. 낭인 출신이건 종문에 몸담고 있건 간에 미덥다고 판단만 되면,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거란 말이지. 예컨대 여봉선도 영입될 수 있다는 뜻이야. 여 형은 나뿐만 아니라 사 형과도 아는 사이로,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니까. 실력도 출중하니 도움이 필요할 때, 상상한 것 이상으로 큰 몫을 해낼 가능성도 있고.”
초휴의 설명을 들을수록 세 사람은 점점 더 마음이 동했다. 다들 각자의 인맥을 동원하여 인재를 영입하면, 조직은 실력과 규모 둘 다 무궁무진한 발전을 꾀할 수도 있을 터였다. 구상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중간에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십년도 못 가서 덩치를 눈덩이처럼 불려 장대한 규모를 갖추는 조직이 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사소루가 돌연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러나 중도에 배신자가 생기면 어쩌지? 우리가 암암리에 따로 조직을 만드는 건 관중형당과 천하맹에서, 그리고 막가와 낙가에서도 엄청난 금기사항일 텐데. 이 사실이 외부로 새어 나가면 엄청나게 곤란할 거란 말이지.”
그의 지적은 매우 합당했다. 어느 종문이나 세가가 되었든, 제자가 자기 세력에게만 전심전력으로 충성해주길 바라는 건 인지상정일 터였다. 하지만 남몰래 꼼수를 피워 또 다른 세력에도 한 다리를 걸친다면 결코 곱게 보아넘길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런 행태를 순순히 용인해줄 수장이 하늘 아래 어디 있겠는가.
초휴는 차갑게 웃더니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나는 배신자를 가장 혐오하네. 이 조직을 통해 엄연히 본인이 이득을 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와해를 획책하는 자가 있다면, 모두의 공적으로 간주 될 수밖에 없겠지. 모두의 공적으로 지목된다면, 결국 어떤 대접을 받게 될 건 가는 긴 설명이 불필요할 걸세.”
막천림은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이 조직이 정말로 일정한 수준까지 성장한다면 조직원은 이 자리에 있는 네 사람을 훨씬 넘는 숫자가 될 터였다. 그 많은 사람이 배신자를 공적으로 간주한다면, 어떤 말로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만 해도 오싹했다.
“나는 이 제안이 썩 마음에 들어요. 난 찬성!”
“나도 이의 없어.”
낙비홍도 막천림도 동의를 표했다. 특히 막천림은 초휴와 이미 한 차례씩 도움을 주고받은 바 있다. 우정으로 뭉친 관계를 통해 실리도 취하는 게 어떤 건지, 이미 맛을 보았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도 이럴진대 조직이 더 크게 성장한다면 본인이 얻게 될 실리도 그만큼 늘어날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잠시 생각 끝에 사소루가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이 조직의 수장은 누가 맡는 게 좋을까?”
그는 말을 하는 동시에 초휴를 응시했다. 그는 이미 초휴의 실력 앞에 흔쾌히 무릎 꿇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거야 실력의 비교에서 그랬을 뿐, 막상 자기가 초휴 밑으로 들어가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속내를 읽고 초휴가 웃어 보였다.
“이처럼 단순한 조직에 딱히 수장씩이나 필요할까. 그저 감독만 하면 될 테지. 모든 구성원이 동등하게 감독관이 되어 서로를 감독하는 거로 하지.”
그제야 사소루도 표정이 밝아졌다.
“좋소. 나는 찬성이야.”
그러나 이번에는 낙비홍이 질문을 던졌다.
“잠깐만요. 인원이 적긴 해도 조직은 조직이니까 그럴듯한 이름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강호의 모든 실력자에게 기회를 줄 작정이니, 천하의 고수를 총망라한다는 의미가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천하회(天下會)’라는 이름은 어떨까.”
막천림의 의견에 사소루가 눈을 흘겼다.
“우리 ‘천하맹’하고 맞짱이라도 떠보겠다는 거야, 뭐야? 우리 사부님께서 이 일로 열 받으시는 날엔 나도 자네를 구해줄 수가 없다고.”
“그럼 자네는 뭐라고 이름을 짓고 싶은 건가?”
막천림이 승복할 수 없다는 기색을 내비치자, 사소루가 수중의 표우도를 탁탁 치며 대꾸했다.
“다들 칼과 검을 다루니까 ‘도검맹(刀劍盟)’은 어때?”
하지만 이번에는 낙비홍이 홍연을 가리키며 발끈했다.
“그건 칼과 검을 다루는 사람만 가입할 수 있다는 말이 되잖아? 별 편파적인 이름을 다 듣겠네.”
그러고는 초휴에게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어째 이 두 사내는 미덥지가 않네요. 이건 당신의 제안이니 당신이 짓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뭐라 하면 좋을까요?”
초휴가 잠시 생각 끝에 답했다.
“이 조직은 우리가 암암리에 결탁하여 세운 것이니 좀 다소곳한 게 좋지 않을까 싶소. 너무 거창해서 튀는 이름 말고……, ‘구분당(九分堂)’이라 하면 어떨까?”
세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며 생뚱맞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소곳한 것까진 좋은데, 너무 얼토당토않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낙비홍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구분당? 무슨 이름이 그래요?”
“구할 만큼만 애써도 십할의 성과를 거들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할까? 다들 매사에 너무 힘 빼고 골머리 앓지 말자는 뜻이오. 어떻게든 자신을 위해 약간의 힘은 남겨두자는 얘기지. 강호에서는 하루하루 무수히 많은 도전과 시련을 맞게 되니까. 난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삶의 연속인 셈이지. 내가 여러분과 힘을 합해 구분당을 세우려는 취지는, 그저 여러분이 난세에서 강호 생활을 좀 더 여유롭고 안전하게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서야. 혼자서 십할의 전력을 다해가며 심신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나머지 일할은 동료들이 채워주자는 의미라고나 할까.”
그제야 다들 수긍하는 표정이 되었다. 심지어 감격한 눈치였다. 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 같던 낙비홍도 이번만큼은 진지해 보였다. 그간 여자의 몸으로 세상의 편견과 질시에 맞서가며 얼마나 힘겹게 살아왔겠는가. 그녀는 모처럼 든든한 우군을 얻은 기분에 가슴 한쪽이 다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말을 마친 초휴는 금화 하나를 꺼내 들었다. 동제에서만 통용되는 구룡폐(九龍幣)였다. 동제는 워낙 경제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통상적인 동판과 은 냥만으로는 부족하여 이런 화폐까지 주조해 유통하고 있었다. 화폐 겉면에는 그 옛날 동제 강씨 황족 중 한 명이 아홉 용에게 신공비법(神功秘法)을 전해 받는 장면이 새겨져 있었다. 여씨 황족은 황위 찬탈 후 자신의 넓은 아량을 과시하려고, 이 화폐의 거래를 금하지 않고 계속 발행하도록 허락한 것이었다.
초휴가 구룡폐의 한 귀퉁이를 똑 부러뜨리며 말했다.
“자고로 천하가 태평하려면 누구든 공평히 이익을 취할 수 있어야겠지.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구분당은 의리가 아닌 공동의 이익을 위해 뭉친 집단이오. 그러니 정도와 마도의 구분 없이 신뢰할 수만 있다면, 또 실력만 받쳐준다면 누구든 구분당에 들어와도 좋겠지. 이 구룡폐는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으니, 이제 구할 만큼만 온전한 화폐인 셈이지. 이걸 우리 조직의 표식으로 삼읍시다. 앞으로 신입 조직원은 이 구룡폐 표면에 자기만의 고유한 무공 표식을 남겨 상대에게 보이게 될 것이야. 즉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셈인 거지. 우리 모두 강호 곳곳에 흩어져 지내야 하니, 조직원들끼리 서로를 몰라보고 불미스러운 충돌이 생길 수가 있으니까. 그런 참담한 일의 발생을 미리 방지하자는 것이네.”
과연 초휴는 그들의 생각 이상으로 주도면밀했다. 대략적인 사항들에 대한 협의를 마친 후, 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흩어졌다. 사실 구분당에 대해서는 비중 있게 마음에 담아두진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친목을 위한 계모임 정도에 지나지 않는 어설픈 조직인 데다,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는 그들 자신도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초휴는 객잔 창가에 서서, 멀어져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손에는 살짝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구룡폐가 쥐어져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낙비홍 등을 끌어들여 구분당을 만든 것은 즉흥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진작부터 막연하게나마 이런 구상을 해왔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강호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실력이 단연 최고라지만, 그 옛날 천하를 쥐락펴락했던 ‘선인’ 영현기와 독고유아 정도의 실력이 아닌 바에야 혼자만의 힘으로 천하를 평정하기는 불가능했다. 자신을 천하무적이라고 감히 칭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게임 원본 줄거리 상으로는 곤륜마교 교주가 된다지만, 선대 교주인 독고유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일 터. 게다가 여러 나비효과로 인해 이미 줄거리에 변화가 생겨났다. 가만히 앉아서 교주가 되기만 기다린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구분당의 설립은 그가 그린 큰 그림의 한 부분이었다. 여봉선이건 낙비홍이건 간에 게임 줄거리상 뛰어난 활약상을 보였던 인물들과 최대한 친교를 맺어 종국에는 강호 전체를 뒤덮을 초대형 그물을 짜는 것! 그리고 초휴 본인이 그 그물의 주인이 되는 것! 아까 구분당의 수장을 누가 맡으면 좋겠냐는 사소루의 질문에 초휴는 수장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당장은 없다는 뜻일 뿐, 미래에도 여전히 없을 거라는 의미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