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제대로 당하다!
채경승의 일에 대해서라면 초휴도 진작 알고 있었다. 관중형당 비무 때, 위구단이 귀띔해주었으니까. 채경승의 병세가 심해서 조만간 사임할 거라고 말이다.
당시 초휴는 여천호를 불구로 만들어 위구단의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위구단은 채경승 산하의 두 개 주부를 초휴에게 주기로 약속을 하지 않았는가. 위구단이 한 약속이 지켜진다면 초휴는 관서 지역에서 가장 막강한 세력을 지닌 순찰사로 거듭나게 될 터였다.
상주부(商州府) 순찰사를 위구단의 양자인 양릉이 맡아서 위구단에게만 충성을 다하고 있긴 하나, 알고 보면 양릉도 초휴의 사람이었다. 따라서 관서 권력의 태반이 초휴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지금껏 초휴가 알고 있는 바로는 확실히 그러했다. 하지만 두광중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런데 채 대인 산하의 두 개 주부 말입니다. 그중 안주부(安州府)는 아직 관리자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영주부(靈州府)는 새로 관중형당에 들어온 구원 위가 출신의 삼화취정, 위장릉(衛長陵)이 맡게 되었습니다. 이 일 때문에 순찰사 여러 명이 불만을 토로했고요. 사실 일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대인께서 관중형당에 들어오실 때야, 초원승 대인의 천거를 거쳐서 당주 대인께서 친히 순찰사로 임명하셨죠. 그러나 위장릉이란 자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거든요. 그런데도 위구단 대인이 그자를 막무가내로 밀어주시는 바람에 순찰사들의 반대가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위장릉은 의기양양하게 영주부에 입성해서, 현재 구원 위가의 위세에 힘입어 영주부를 확실히 장악한 상태입니다.”
보고를 끝낸 두광중은 초휴의 낯빛이 굉장히 어두운 걸 발견하곤 화들짝 놀랐다.
그 표정이 어찌나 차가웠던지, 자기가 말실수라도 한 거 같아 간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대인, 왜 그러십니까?”
두광중이 조심스레 묻자 초휴가 내뱉듯이 답했다.
“별것 아닐세. 그저, 제대로 당했구나 싶어서 말이지.”
이건 확실히 초휴가 위구단에게 보기 좋게 당했다. 위구단이 어떤 인간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처럼 염치를 국에 말아 먹는 쓰레기일 줄은 몰랐다. 지난번 초휴는 위한산의 상주부를 차지하지 않고 양릉에게 넘겼다. 자신이 힘이 너무 커지면 위구단이 경계하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건은 애당초 위구단이 분명히 약조했던 사안이 아닌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여천호를 묵사발로 만들어 자신의 분함도 풀어주고 체면도 세워준다면, 채경승 산하의 두 개 주부를 주겠노라고 위구단이 제 입으로 분명 말했었다. 그러나 초휴가 없는 사이에 보란 듯이 뒤통수를 칠 줄이야!
위구단이 쓰레기 같은 인간일망정, 조직 내에서는 엄연히 초휴의 상관이요, 실력 면에서도 천인합일의 고수다. 강호의 대선배로서 매사에 모범을 보여도 부족할 마당에, 새카만 후배이자 직속 수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희롱하다니! 이것은 그저 부도덕하고 염치없는 짓으로만 치부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수하의 충성심을 보란 듯이 걷어 차버린 쓰레기 같은 상관에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충성을 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위구단은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그저 눈앞의 이익을 취하는 데만 혈안이 되었을 뿐, 옳고 그름을 분간할 만한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지금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뼛속까지 초휴의 사람들이다. 해서 그는 굳이 숨길 필요 없이 자초지종을 밝혔다. 그의 말을 들은 두광중 등의 표정도 심각하게 굳었음은 물론이다.
한 조직의 최고위직에 앉은 자가 이 지경까지 썩어빠지기도 어려울 터였다. 자칫 이런 자를 종문의 수장으로 두었다가는 머지않아 그 종문이 간판을 내리게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위구단은 엄연히 장형관의 신분이다. 자고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도 있다. 제아무리 파렴치하게 신의를 저버린들, 그 밑의 수하들로서는 딱히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초휴와의 일은 무슨 확약서를 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구두 약속에 불과했다. 이제 와서 초휴가 관사우에게 디밀며 하소연할 만한 증거라곤 전혀 없는 것이다.
설령 확약서가 있다 한들 문제는 여전했다. 관중형당의 인사권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순찰사가 사적으로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둘 간에 모종의 확약이 오갔다는 사실이 새어 나가면 위구단도, 초휴도 처벌을 면치 못할 터였다. 한마디로 초휴가 어리석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일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초휴의 사전에 이를 악물고 억울함을 삼키라는 말 따윈 없었다.
초휴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가 말한 위장릉이 구원 위가의 사람인가? 위한산과 같은 가문 출신의?”
그는 예전에 두광중이 했던 말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위한산이 관서의 세력가 중 하나인 구원 위가의 사생아이며, 그가 순조롭게 순찰사가 되었던 데에는 구원 위가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고 했던 그 말이. 해서 당시 위한산을 죽였을 때, 구원 위가가 도발하지 않을까 경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구원 위가는 사생아의 죽음 따위는 별로 개의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물론 위한산의 죽음과 초휴와의 연관성을 찾지 못해 잠자코 있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건 이로써 구원 위가의 복심(腹心)이 드러난 셈이었다. 죽은 위한산을 대체할만한 인원을 다시금 관중형당에 심어 넣는 것! 그리고 때맞추어 채경승의 지병이 덧나면서, 그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때 강호 포두가 회의실에 들어서더니, 위구단 쪽에서 전갈이 왔음을 알렸다. 초휴가 복귀한 것을 알고, 관서지부에 한 번 다녀가라는 내용이었다.
초휴는 냉소를 머금었다.
“보아하니 위 대인이 시시각각 나한테서 눈길을 못 떼고 있는 모양이로군. 좋다. 가서 이 썩어 뒈질 늙은이가 무슨 변명을 나불대려는지 들어나 봐야겠다.”
두광중 등은 초휴가 감히 위구단을 ‘썩어 뒈질 늙은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듣고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 그깟 욕이 대수겠는가. 평소 초휴의 성질머리로 봐서는 당장 위구단을 때려죽이려 들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초휴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관서지부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영주부의 방화, 임주부의 사도행, 인주부의 강도연 및 상주부의 양릉 등, 네 명의 순찰사도 와 있었다.
초휴가 들어서자 그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신병대회에서 관중형당의 위상을 드높인 공로와 용호방 십 위권 내에 진입한 쾌거에 대한 축하의 말을 잊지 않았다.
갓 관서지부에 왔을 때의 초휴는 근본도 없고 허울뿐인 하급 순찰사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혁혁한 공을 세우고 금의환향한, 명실상부 조직 내 젊은 세대 중의 일인자이다. 관사우의 직계 제자인 울지마저도 내려다보는 위치로 올라선 것이다.
이들이 예전에야 선임자랍시고 거드름 피우며 초휴를 무시해댔지만, 지금은 처지가 역전되어 먼저 인사를 건네는 형국이 되었다. 좌중의 순찰사들 가운데 강도연이 삼화취정의 경지이긴 했다. 그러나 감히 평범한 일개 삼화취정이 자그마치 용호방 십 위권의 존재와 맞먹을 수나 있겠는가. 하지만 이처럼 융숭한 대접을 받고도 초휴의 안색은 별로였다.
지금 그는 속이 화산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내색하지 않는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담담하면서도 독기 어린 면모를 위구단에게 보여줄 참이었다. 순찰사들과 한담을 주고받고 있는데, 위구단이 삼화취정의 무사 한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 무사는 마흔 남짓한 나이에 양 갈래로 수염을 기른 모습이었다. 초휴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으나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대인을 뵙습니다.”
모두가 일어나 위구단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러나 초휴를 바라보는 위구단의 시선이 어쩐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다들 앉으시오. 오늘 모두 모이라고 한 이유는 우선 초휴를 열렬히 환영하기 위함이오. 관중형당을 대표해, 신병대회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움으로써 조직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소. 이는 우리 관서지부의 영광이기도 하지. 이 밖에도 우리 지부의 신임 순찰사인 위장릉을 정식으로 소개하려 하오. 채경승의 후임으로 왔소. 초휴 자네는 동제에 가 있었으니 위장릉과는 안면이 없었을 테지. 오늘부로 다 같은 동료이니 잘 협조해서 일해 보게나.”
그때 초휴가 손을 번쩍 들더니 발언했다.
“대인, 신병대회에서의 일로 대인께만 단독으로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인사를 나누는 거야 급할 게 없으니, 보고 후에 하도록 해 주십시오.”
위구단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초휴의 발언을 대놓고 무시하기도 뭣하여 승낙했다.
“좋아. 날 따라오게.”
이윽고 밀실에 초휴와 단둘이 있게 되자 위구단이 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겐가?”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려는지 대인께서는 모르시겠다는 겁니까. 당연히 제 몫이 되어야 할 주부 중 하나가 어째서 위장릉의 수중에 떨어진 겁니까?”
초휴의 불편한 심기가 말투에 오롯이 묻어났다. 하지만 위구단도 기 싸움에서 지지 않았다.
“자네,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는 건가?”
“저는 다만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리고자 함입니다.”
초휴도 이번만큼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위구단은 이런 초휴의 태도가 괘씸했지만 불쾌한 기색을 비치는 건 자제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 초휴의 위상은 옛날과는 천양지차였다. 예전처럼 만만한 풋내기로 그를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불손한 태도를 문제 삼아 초휴를 징계하거나 그의 지위를 박탈한다면 공신을 홀대한다며 관사우가 나설 게 뻔했다. 그것은 관중형당 전체 구성원의 사기 문제이기도 한지라, 자칫 위구단의 부당한 처사도 도마 위에 오를 소지가 다분했다.
퇴직을 코앞에 둔 마당에 문젯거리를 만드는 건, 피하고 봐야 했다. 위구단은 일단 그를 달래보기로 했다.
“초휴, 자네가 내 고충을 좀 이해해 주게나. 내가 내 의지로 위장릉을 조직에 들여놨다고 생각하는가? 그냥 부득이한 결정이었네. 위한산은 구원 위가의 사생아였어. 하지만 위가에서는 그에게 많은 투자를 했었지. 하지만 위한산이 그렇게 죽고 말았으니, 위가 입장에서야 얼마나 원통하고 아깝겠는가.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지난날 자네가 위한산과 대립할 당시, 위가에서 자네를 칠 계획을 세웠었네. 내가 그걸 막았단 말이네. 위가는 자네를 치는 계획을 중지하는 대가를 요구했지. 그게 뭔지 아나? 위가의 자손에게 채경승의 주부 하나를 맡겨달라고 하더군. 나는 불똥이 자네한테 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지못해 그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세. 그 덕에 위가가 자네를 건드리지 않은 거였어. 세상에 공짜가 있는 줄 아는가?”
단숨에 여기까지 말을 마친 위구단이 짐짓 초휴를 안쓰럽게 여기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몇 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너무 억울해할 필요 없어. 내가 채경승 산하의 주부를 전부 위장릉에게 넘긴 건 아니니까. 아직 하나가 더 남았다는 거지. 그건 자네 몫일세.”
위구단의 말은 겉만 번지르르할 뿐이었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릴지 몰라도, 실상은 바보 천치라도 코웃음을 칠 소리가 아닌가. 위가에서 초휴를 손봐 주려 했다면 그렇게 하도록 놔두면 될 일이다. 초휴가 그깟 위가 따위를 겁낼 위인으로 보였다고? 그들이 관서에서는 입김이 셀지 몰라도, 여기는 관서가 아닌 관중이다. 관중형당에 속한 관중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