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6)
회의실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초종광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이런 일을 가장 혐오해왔다.
초휴가 품은 속셈이야 뻔했지만 정말로 초생 모자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초종광이 초생 모자를 향해 물었다.
“너희들이 정말 그런 짓을 저질렀느냐?”
그러자 둘째 부인이 일어서더니 억울하다는 듯이 읍소했다.
“당치 않습니다. 다른 이들이야 그렇다 쳐도 어찌 대인까지 저를 못 믿으세요? 집안에 손해를 끼칠 짓을 대체 왜 제가 했겠어요? 제가 광석을 판 것은 맞지만 엄연히 제 친정아비한테 판 겁니다.”
“그럼 그 광석이 왜 이씨놈들 수중에 있단 것이오?”
“제 아비의 개산무관에 병기가 좀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이 통주부 전역에서 이씨 집안의 병기 제조기술이 단연 뛰어나지만, 그들은 삼급 이상의 병기는 아예 처음부터 연나라 청원진에서 만든다고 하더군요. 그야말로 흔치 않은 명품인데다 초씨 사람인 저와의 관계도 껄끄러우니, 저들에게 아무리 진귀한 병기가 있다 해도 제 아비한테는 팔 리가 없겠지요. 그래서 제 아비가 고육지책을 내놓은 것이, 광석을 이씨들에게 판다는 조건을 제시하면 저들이 기꺼이 병기제조를 도와줄 거라고 여겼던 겁니다. 정개산이 제 아비라고는 하나 저도 엄연히 초씨 가문의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제가 직접 이씨 집안에 광석을 넘기겠어요?”
둘째 부인은 말을 마치자 은자 오만 오천 냥을 꺼내어 초종광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정말 누가 봐도 억울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오만 이천 근의 광석이면 아무리 최고 시세로 값을 쳐도 오만 이천 냥에 불과할 것을 제가 삼천 냥이나 더 받아냈어요. 최고시가보다 삼천 냥이나 더 많이 받았단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 광석을 연나라에 갖다 팔면 더 많이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적어도 상단을 움직여야하는 일이죠. 반면, 제 아비한테 직접 팔아서 상단을 움직이는 비용도 굳고 시간도 절약되었으니 이 얼마나 잘 된 일인가요? 더군다나 대인께서 잊으신 모양인데, 이 가문이 막 통주부로 왔을 때 제 아비가 얼마나 많이 도왔습니까? 그런데 수고한 공로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비난만 받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이란 말인가요?”
초휴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묵묵히 둘째 부인의 연기력을 지켜보았다. 이제 보니 둘째 부인이 아무 준비가 없었던 게 아니었다. 핑계거리를 진즉에 다 마련해두지 않았는가?
그러나 제아무리 그녀가 온갖 구실을 갖다 붙인다 해도 광석이 이씨 문중에 넘어간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니 초종광이 그냥 넘어가진 어려웠다. 그런데 장로들은 둘째 부인이 은자를 내놓자 입을 다물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일로 집안에 손실이 생긴 것은 아니라는 것이 판명된 때문이었다.
초종광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정개산’이라는 이름 석 자를 그녀가 들이대는 바람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초씨 가문이 순조롭게 통주부에 뿌리내리는 데 있어 정개산이 적잖이 힘을 보탰던 건 사실이었다.
비록 가문 차원에서 정개산에게 충분히 보상을 하여 더 이상 신세진 게 없다고는 해도, 남도 아닌 장인을 질책하기는 곤란했다. 그런 까닭으로 결국 초종광은 코웃음 몇 번 치는 것으로 이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만하면 되었다. 초휴 너도 더 이상 이 일을 문제 삼지 말거라.”
그러고는 둘째 부인을 향해 근엄하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부인 속내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어쨌거나 초씨와 이씨, 두 집안은 함께 갈 수 없는 사이인 것은 분명하니까. 이번 일은 이 정도로 넘어 간다 쳐도, 다음에 또 이씨들과 얽힐 시에는 결코 간단히 눈감아 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구려.”
말을 마친 초종광은 폐회를 선언하고 나가버렸다. 초생 모자도 희희낙락한 얼굴로 회의실을 나섰다. 초생이 나가기에 앞서 의기양양한 승자의 미소를 초휴에게 날렸지만, 초휴는 냉정을 유지할 뿐이었다.
초종광이 내린 결정은 그야말로 엿 같았다. 명백한 이적행위를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는 초씨 문중 늙은이들도 마찬가지로 엿 같았다. 초휴가 본가에서 돌아오자 마활이 실실 쪼개며 물었다.
“초공자, 자네 부친이 그 모자한테 중벌을 내렸소?”
초휴가 고개를 내젓자 마활이 황당하여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이런 엄청난 일을 그냥 넘어갔다고? 도대체 당신 부친은 무슨 생각을 하신단 말이오?”
야생마처럼 사는 마활같은 인물조차 초생 모자가 얼마나 큰 금기사항을 어겼는가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집안에 내분이 일어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초씨 가문처럼 규모가 작은 명문세가는 말할 것도 없고, 강호상에서 행세깨나 하는 가문들의 내분은 더욱 격렬해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힘이 없으면 매번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마다 피바람이 몰아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어떤 내분에도 불문율이 있었다. 여하한 경우에도 가문에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점만은 모든 가문이 마찬가지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초생 모자가 간교하게 은자를 내밀어 집안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음은 증명되었다. 그러나 정작 손해를 입은 건 초휴였다. 외부인을 끌어들여 같은 집안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다니, 나는 이 집안사람이 아니었단 말이냐? 초휴가 침통한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 나도 아버지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소. 그러나 이 일은 끝난 게 아닙니다. 준비를 잘 해서 이소, 그놈을 칠겁니다.”
마활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 대형더러 나서달라고 할 생각이오?”
“아니요. 우리가 직접 해야 하오. 이소를 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초씨 가문 전체를 몰아붙여야겠습니다. 정상적인 절차대로 일을 진행했다가는 결코 가주 자리를 넘볼 수 없겠어요.”
초휴는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부친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총애하던 초상이 불구가 되었다고 해서 초상에게 쏠렸던 부친의 총애가 나에게로 옮겨오진 않는다. 그리고 부친은 앞으로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집안사람들 모두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눈앞의 이익만 좇고 있었다. 그런 그들과 의미 없는 소모전을 벌이느라 계속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기에는 더 이상 그의 인내심이 따라주지 않았다.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가주 승계자가 되려면 초개와 초생을 확실히 끝장내 버리든지, 아니면 아무도 넘볼 수 없는 큰 공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 마침 이씨 집안이 절호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소를 건드리는 건 그저 서막에 불과했다. 이씨 집안 전체를 부셔버리는 게 그의 진정한 노림수였다.
초휴가 이씨 집안을 철저히 멸문시킴으로써, 지난날 저들이 초씨 가문에 저지른 죗값을 일거에 되갚아주는 것이다! 그 공로만으로도 게임은 끝날 게 분명했다.
비록 본인 혼자 이씨 집안을 압도할 실력은 아직 갖추지 못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잠들어 있던 초씨 가문을 일깨워 가문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릴 자신은 있었다.
마활은 한쪽에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어쨌거나 지금 초휴에게 은자를 타 쓰며 그의 일을 돕고 있으니 당연히 그가 하자면 따라야 되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마활은 요즘 초휴와의 동업이 마음에 들었다. 훗날 초휴가 가문을 승계한다면 더 많은 실권을 갖게 될 거고, 결국 자신에게도 더 많은 콩고물이 떨어질게 아닌가 말이다.
“아참, 초공자, 이씨 상단이 어느 길로 가는지 아쇼? 만약 못 알아냈으면 내가 한 대형한테 유심히 지켜보라고 일러두도록 하면 어떻소?”
그러자 초휴가 고개를 저으며 심상치 않은 눈빛을 띠어보였다.
“그럴 필요 없어요. 내게 방법이 따로 있소.”
초휴는 고비를 불러서 이렇게 지시했다.‘
“그 이형이라는 놈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봐다오.”
일전에 이소가 이형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원보진에서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릴 뻔 했다. 그런데 이소 덕분에 좋은 방법이 생각난 것이다.
사실 이형이 이소가 고용한 사람이라고는 하나, 총관도 아닌 한낱 보잘 것 없는 하인에 불과하니, 그의 현재 상황이나 행적 따위가 대단한 기밀사항은 아닐 터였다. 그 무렵 이형은 작은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자기 가문이 운영하는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게 여러모로 대접도 받고 좋을 텐데, 그는 굳이 평범한 장사치가 하는 허술한 주점을 택했다. 여기라면 자기를 비웃고 조롱하는 이씨 문중 하인들의 눈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형은 야심가다. 어려서부터 줄곧 그래왔다. 지금은 비록 이씨 문중의 하인으로 있으나, 평생 하인 노릇을 하고 싶진 않았다.
물론 그런 의지를 가진 사람은 많지만 대부분 백일몽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이형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과감히 실천에 옮기는 행동파였다. 그래서 지금 당장 하인노릇이 힘들더라도 기를 쓰고 위로 올라가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하인노릇이 싫다 해도 그 하찮은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나중에 남의 웃전노릇인들 잘 해낼 수 있을까? 이런 각오로 열심히 살아왔고 그 덕분에 수많은 하인들 가운데 단연 두각을 드러내어 삼공자의 신망도 얻었다. 그런데 원보진에서 저지른 딱 한 번의 실수로 그간 쌓아올렸던 공로가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었다.
이형의 일로 큰 곤욕을 치른 총관 이통은 통주부로 돌아온 후 줄곧 그에게 화풀이를 해대고 있었다. 밖에서 신중하게 처신하지 못하고 사고를 쳤다면서 삼공자도 한바탕 그를 꾸짖었다.
표면상으로는 꾸지람을 받는 걸로 그쳤지만 실상은 삼공자의 눈 밖에 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이통이 계속 그를 갈구는 데도, 이 큰 집안에서 그를 위해 말 한마디 거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지금 이형은 도대체 누구를 미워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그에게 수치감을 던져주어 사단을 일으킨 초휴가 미워해야할 상대일까, 아니면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여 정작 초휴에게는 맞장 뜰 엄두도 못 내면서 그에게만 화풀이를 해대는 이통일까?
이도저도 아니면 옛정은 온데간데없고, 가차 없이 그를 내친 이소일까? 슬슬 술기운이 올라오고 있을 무렵 갑자기 누군가가 그의 곁에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이형, 우리 공자님께서 좀 보자고 하시네. 쉿, 소리는 지르지 말게.”
말과 함께 은근슬쩍 이형의 어깨에 올려온 손이 지그시 힘을 가해왔다. 그 위압적인 힘을 느낀 순간, 이형은 자신이 말을 거는 인물의 상대가 못됨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술이 확 깬 이형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당신네 공자가 대체 누구요? 나 같이 보잘 것 없는 놈한테 무슨 볼일이 있다는 거요?”
“가보면 알 것이다.”
그 자는 술값으로 은전 한 닢을 탁자 위에 던지다시피 놓더니 이형을 부축해 주점을 나섰다. 얼마 뒤 그들은 인근 객잔으로 들어섰다.
방문이 열리자 금색 비단도포 차림의 젊은 공자가 혼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 옆 탁자 위에는 안령도 한 자루와 소금물에 담긴 땅콩 한 접시, 황주 한 단지가 놓여있었다. 그 공자의 얼굴을 알아본 순간, 이형은 아연실색하여 두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초휴, 당신!”
끝
ⓒ 봉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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