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68)
268화 강동오협(江東五俠)
“방 장군께 인사드립니다.”
초휴가 용기금군을 사칭했던 일화를 아는 자는 많지 않았다. 천죄 타주는 청룡회 총타로 복귀한 지 오래니, 용기금군 측과 맞닥뜨릴 만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속아 넘어간 백호당 타주도 천죄 타주에게 피살되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남은 건 초휴의 심복들뿐인 셈이다. 그러니 무얼 두려워하겠는가. 방진기는 여전히 냉랭한 표정으로 초휴의 인사를 받으며 말했다.
“산장 내의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소. 시신도 잘 보존해놓았으니 언제든 조사를 진행해도 좋소이다.”
그러자 왕근이 소란을 일으켰던 자들을 가리키며 언짢아했다.
“대체 저자들은 뭐요?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소란을 피워! 관중형당 조사단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곳에 들이지 말라고 폐하께서 분부하지 않으셨는가.”
방진기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청년이 비분강개하여 끼어들었다.
“이곳은 엄연히 우리 추가의 사택입니다. 선친께서 이곳에서 비명횡사하셨거늘, 아들인 제가 어째서 남 취급을 받아야 한단 말입니까?”
이에 왕근이 의아하여 물었다.
“추진성의 아들은 아비와 함께 죽지 않았나? 이 자는 대체 누구야?”
“추진성의 사생아인 추동무(秋冬茂)라고 하는군요. 줄곧 상양군에 머물다가 추진성의 비보를 듣고 달려온 모양입니다.”
방진기의 답변에 왕근이 고개를 끄덕인 것과는 달리, 옆에 서 있던 초휴는 미심쩍은 정황을 감지하고 왕근에게 전음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왕 공공, 뜬금없이 사생아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추진성이 무슨 대단한 세가 출신도 아니고 천인합일의 실력자가 아내 이외의 여인에게 후사를 보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닌데, 굳이 집밖에 사생아를 두었다니요.”
대개 돈 많은 거상이야 처첩을 한 무더기 거느리기 마련이다. 특히나 추진성과 같은 높은 경지의 무사가 비마목장 장주의 신분까지 가졌으니, 여인을 몇 명을 거느리건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리고 명문세가에서는 고귀한 혈통을 유지하려고 비슷한 수준 세가의 여식과 혼인 동맹을 맺게 된다. 이런 세가의 자제들이 밖에서 사고치고 숨겨 키우는 자식이 사생아이다.
그러나 추진성은 이런 속박에 얽매일 필요 없는 낭인 출신의 무사다. 당연히 자손을 많이 둘수록 좋은 입장인데 사생아가 웬 말일까?
이에 왕근이 전음으로 설명했다.
“추진성은 그야말로 남의 말이나 키워주며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최말단 출신인 셈이오. 그의 처는 그런 추진성에게 시집을 왔지. 미천한 처지로 혼사를 치를 당시, 추진성은 일평생 그녀만을 사랑하겠노라고 맹세했다더군. 이 일화는 동제 무림에서 미담으로 전해오고 있소. 그러니 정말로 추진성에게 사생아가 있다면, 그건 아내에게 한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밖에서만 키운 거겠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군.”
마지막 말과 함께 왕근이 힐끗 방진기를 쳐다보자 그도 역시 수긍하는 눈치였다. 이로써 추동무가 추진성의 아들인 것은 어느 정도 입증된 셈이었다. 용기금군도 자체적인 정보 계통을 갖추고 있으니 추동무가 고인의 친혈육이 아니라면 애당초 그를 들어오도록 허락했을 리 만무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뭐요?”
왕근의 질문에 방진기가 답했다.
“속칭 ‘강동오협’이라고, 지난날 추진성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답니다. 이번에 특별히 추진성의 유일하게 남은 혈육을 여기에 데려다준 거고, 복수도 힘껏 도울 거라는군요. 그럴 주제가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방진기의 말투에서 비웃음이 느껴졌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동제 황실이 달려들어도 알아내지 못한 흉수를 저들 몇 명이 어떻게 찾아내어 복수한단 말인가. 하지만 초휴는 ‘강동오협’의 이름을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몇 번이나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른바 ‘강동오협’은 동제 강동군(江東郡) 출신의 다섯 젊은 준걸이 취의장의 결성 취지를 본받아, 고난에 처한 이들을 구제하려는 의협심으로 뭉친 의남매 조직이었다.
초휴와 같이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의 눈에는 그들의 의협심이 우습게 보일 법도 했다. 특히 이들이 본받으려는 대상이 취의장이라니 더욱 그랬다. 물론 작금의 강호에서 취의장의 명성이 대단한 건 사실이었다.
삼십년 전에 다섯 사람이 의형제를 맺은 데서 시작한 취의장은 삼십년 후, 인화육방의 일원으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속사정이 있었다. 지난날 다섯 사람으로 시작된 취의장이 종국에 가서는 왜 한 사람만 남았을까? 이 질문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컸다.
물론 강동오협은 이제 막 시작된 조직이니, 정말로 순수한 의리로만 뭉쳐 근래에만도 협행을 적잖이 이어왔다. 강동군 인근에서는 명성이 자자했고, ‘강동오협’이라는 별호도 강동 무림에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다만 초휴가 게임 줄거리를 통해 알고 있는 것은 결국, 그들이 와해하여 지리멸렬의 운명을 맞는다는 사실이었다. 그 과정의 사연이 어찌나 흥미로웠던지 수개월 동안이나 강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을 정도였다.
강동오협은 가히 ‘젊은 준걸들의 결성체’라는 부연 설명이 부끄럽지 않을 만한 실력을 갖췄다. 물론 초휴처럼 용호방 순위에 오른 존재와는 비교할 바 못 되지만, 그래도 그만하면 젊고 강한 축에 드는 셈이었다. 이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인 ‘혈염단청(血染丹靑)’ 정불휘(程不諱)는 마흔이 좀 넘은 나이에 오기조원의 실력을 갖췄다. 거친 무명옷 차림새에 등에는 질박하고 둔중한 검을 메고 다녔다. 기세가 비범하고 용모도 반듯하니 의연해 보이며, 사람됨도 침착하고 신중했다.
둘째인 ‘고심류수(高深流水)’ 동상의(董相宜)는 마흔 가까운 나이에 외모가 영준하고 수염을 두 갈래로 길렀다. 비단 도포 차림에 손에 든 쥘부채까지, 얼핏 세가의 풍류 공자와도 같은 모습으로 역시 오기조원이었다.
셋째인 ‘피혈검(避血劍)’ 여동(吕瞳)은 서른 남짓한 나이로 좌우 양 뺨에 칼자국이 나란히 나 있어서 첫인상이 매우 차갑고 험상궂었다. 그 또한 오기조원의 실력자이지만, 아직 초기에 불과했다.
넷째인 ‘추월도(秋月刀)’ 오천동(吳天冬)도 서른 남짓한 나이로 준수한 외모에 쾌활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얀 무사복 차림에다 허리에는 쌍칼을 찬 모습이, 영락없는 강호의 호쾌한 협객의 모습이었는데 삼화취정의 경지였다.
그들 중 단연 눈길을 끄는 인물은 오협 가운데 홍일점 막내인 ‘무류회풍(舞柳回風)’ 류경경(柳卿卿)이었다. 실제로는 나이 서른을 넘겼지만, 일찍이 삼화취정에 오른 덕에 동안을 유지하여 얼핏 스물 남짓으로 보였다. 눈과 같이 새하얀 비단 치마를 입었으나, 폭이 넓은 소매와 허리 부위를 끈으로 질끈 동여맨 모습이었다. 거추장스러운 옷차림이 싸울 때 방해가 될까 봐 그리한 모양인데, 그것이 되레 여인의 굴곡진 몸매를 더욱 드러내 보였다.
초휴는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줄곧 그녀를 주시했다. 자고로 미인이 화근이라 했지만, 그다지 절색 축에는 들지 못할 저 미모가 장차 큰 화근이 될 터였기 때문이었다. 게임 줄거리에 의하면 거침없이 전도유망하던 강동오협은 저 여인의 손에 붕괴한다. 물론 그녀가 뜻한 바는 결코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때 초휴의 따가운 시선을 느낀 그녀가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났다. 상대의 관심을 역겹게 생각하는 눈치가 뚜렷했다. 그간 어여쁜 여인의 몸으로 강호를 종횡무진 누비며 별의별 일을 다 겪었을 테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러나 초휴의 시선은 다른 사내들의 시선과 좀 달랐다. 왠지 모르게 자기를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 유난히도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
류경경의 불편한 심기를 가장 먼저 눈치챈 이는 넷째 오천동이었다. 그가 한발 성큼 나서 그녀 앞을 막아서더니, 초휴를 향해 호통쳤다.
“뭘 보는 거야! 여인을 처음 보나?”
“물론 여인을 처음 보는 건 아니지만, 저렇듯 자기도취에 빠진 여인은 처음이오. 오군 낙가의 낙비홍이 내 절친이지. 낙 소저가 하는 짓이라고는 여인 같은 구석이 한 군데도 없어도, 용모만큼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오. 하지만 그대는 물론, 저 여인도 이 세상 사내들이 죄다 자기한테 관심 있는 줄 착각하는 모양이군. 자기가 여염집 규수라도 되는 양 눈 한 번 마주쳤다고 저리 호들갑을 떨다니, 그래서야 어찌 험난한 강호를 다니겠소?”
초휴의 송곳 같은 반격에 류경경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강호인이기에 앞서 엄연한 여인이다. 세상에 어떤 여인이 자기도취에 빠졌다는 둥, 미모가 누구만 못하다는 둥 하는 노골적으로 비웃는 말을 쉽사리 받아들이겠는가. 설령 객관적으로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원래 오천동의 성격이 불같은 데다, 류경경은 그가 줄곧 사모하는 여자였다. 초휴의 말은 그를 폭주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대뜸 허리춤에 차고 있던 가느다란 추월도 두 자루를 뽑아 들며 일갈했다.
“어디 그 건방진 주둥이를 한 번 더 나불대보시지!”
하지만 초휴가 대응하기도 전에 왕근이 한껏 쇳소리를 높여 호통쳤다.
“다들 조용하지 못할까!”
천인합일의 고수, 그것도 전전사 부총관까지 맡은 왕근의 호통 소리에 오협의 맏이인 정불휘가 오천동을 제지하며 속삭였다.
“넷째야, 이성적으로 행동해라. 어서 칼을 거두라니까.”
강동오협 중에서도 가장 명망 높은 맏형이 나서자 오천동은 분함을 삼키며 칼을 도로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왕근이 냉랭히 말을 이어나갔다.
“추진성 사건은 지금부터 관중형당 초휴 대인에게 일임한다. 다들 초 대인의 지휘에 따라야 할 것이야. 그리고 강동오협! 추동무의 동행임을 참작하여 그대들도 한옆에서 지켜볼 수는 있게 허락하겠다. 그러나 방금처럼 난동을 부렸다가는 오협이고 나발이고 간에 당장 쫓겨날 줄 알라!”
추진성은 엄연히 동제 조정의 일원으로, 근년 들어 조정을 위해 우량종 마필을 적잖이 양산해온 큰 공로자였다. 동제 황실은 그의 죽음으로 공황 상태에 빠진 민심을 보듬기 위해서라도 이 일을 철저히 규명해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추동무가 추진성의 유일한 자손이다. 장차 그가 동제 조정으로부터 대를 이어 우대받을 것이 자명하니 왕근은 그의 체면을 세워주려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강동오협을 굳이 대접해줄 이유가 없었다. 강호에서 제아무리 명성이 자자하다고 해봐야 낭인 출신들에 불과하다. 왕근이 꺼지라고 하면 순순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보잘것없는 족속들이란 말이다.
한편, 정불휘 등은 왕근의 무례한 겁박에 분노하기에 앞서 초휴의 신분에 매우 놀랐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초휴가 관중 형당 조사단의 일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신병대회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로 그 초휴라니! 그야말로 놀랄 노 자였다.
사실 동제에서 초휴의 명성은 관중형당보다 더 높을 정도로 대단했다. 신병대회에서 초휴의 위용을 친히 목격했던 이들의 대다수가 동제 무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강동오협도 동제 출신이니 당연히 초휴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상대의 신분을 확인한 순간, 이들 다섯 사람의 표정은 약속이나 한 듯 굳어졌다.
초휴가 어떤 인물이던가. 신병대회 개막을 전후로 해서 그와 대척점에 섰던 자들은 하나같이 죽거나 불구가 되었다. 비범한 사람도 그런 운명을 맞았는데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초휴가 얼마나 뼛속까지 잔악한 악귀처럼 보였겠는가. 그의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이에 정불휘가 슬며시 오천동의 팔을 잡아당겼다. 당분간 초휴와 마찰을 빚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들은 이번에 추동무를 여기까지 보호해서 왔다. 추진성 일가가 몰살당했고 추동무는 그의 유일한 혈육이니, 그의 안전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왕년의 은인인 추진성을 위해 복수할 작정이기도 했다. 이런 마당에 초휴와 마찰을 빚는다면 여기까지 따라온 의미가 통째로 사라지는 셈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