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69)
269화 의문점
장내가 안정되자 초휴는 계속 강동오협을 상대하는 대신, 초효덕 등에게 분부했다.
“그대들은 들어가서 조사를 시작해 주게.”
이에 초효덕을 비롯한 조사단은 산장 내, 방마다 들어가서 흔적을 조사하고 검시도 시작했다. 그러자 추동무가 물었다.
“이제 관중형당 사람들이 왔으니, 제가 선친의 시신을 봐도 되겠습니까?”
강동오협도 초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초휴와 마찰을 일으키는 건 원치 않았다. 그러나 아들이 선친의 시신을 보게 해달라는 사소한 요구조차 초휴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너무 지나친 처사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추진성은 그들에게 은인이고 추동무는 그의 유일한 혈육이니 그들은 언제라도 추동무를 위해 나설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우려와는 달리 초휴는 그들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고 이렇게만 경고했다.
“그리해도 좋소. 다만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자칫 사건 현장을 훼손했다가는 그 책임을 감당하기 어려울 테니.”
오천동만 냉랭히 코웃음을 쳐 보였을 뿐, 나머지 네 사람은 고분고분 추동무와 함께 시신을 보러 갔다. 추가 사람들의 시신은 용기금군에 의해 빈방 한곳의 얼음관 속에 안치되어 있었다. 추진성은 쉰이 넘은 중년의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삼화취정에 이른 나이가 늦었던 탓인지 외모는 늙은 감이 있었지만, 시신이나마 기개만큼은 반듯하고 당당했다.
그런데 추진성의 시신에서는 아무런 상흔도 보이지 않았다. 낯빛이 회백색으로 변한 데다, 뭔지 모를 검푸른 기운이 발산되는 게 상당히 사악한 느낌을 주었을 뿐이었다. 추진성의 시신을 보자 추동무는 철퍼덕 주저앉아 얼음관 앞에서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간장이 찢어질 듯 오열하는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정불휘가 그를 위로했다.
“추 공자, 선친께선 이미 가셨으니 슬픔을 추스르게. 흉수를 찾아내는 게 시급하지 않은가. 그놈을 찢어 죽여 영전에 바치세나.”
추동무가 비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으나 여전히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어찌하진 못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초휴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뭔지 모를 위화감이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위화감의 출처는 바로 추동무였다. 원래 초휴는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이 아니다. 해서 최대한 나쁜 쪽으로 사람을 예단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추동무는 추진성의 사생아다. 이치상 추진성의 실력과 신분으로만 보면, 추동무 역시 그의 당당한 자손인 셈이다. 애당초 사생아라는 꼬리표가 붙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본부인의 아들은 부친 곁에서 자상한 보살핌을 받고 성장하여, 장차 비마목장의 승계자가 될 터였다. 그에 더해서 동제 조정에도 들어가고 강호에도 이름을 떨치며, 추진성의 인맥까지 이어받는 창창한 앞날이 보장된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날 본부인만 바라보며 살겠다는 추진성의 맹세 때문이라고는 하나, 추동무는 상양군에 버려진 채로 부친 얼굴을 일년에 몇 번 보지도 못하며 가련하게 살아왔다. 또한, 추진성의 본처 소생 맏아들인 추동녕(秋東寧)이 내강경이었던 데 반해, 추동무는 약관이 넘었는데도 아직 응혈경에 불과했다. 같은 아비를 둔 두 아들의 처지가 천양지차라는 말이었다.
이처럼 억울한 상황이라면 누구든지 불공평하다는 생각으로 원망이 차고 넘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지금 추동무는 저토록 비통해하고 있으니, 만약 저 모습이 진심에서 우러난 거라면 이유는 둘 중 하나일 터였다. 뼛속까지 효성이 깊은 사람이라 부자지간의 정만 생각할 뿐, 자기가 어떤 대접을 받고 살았는지는 개의치 않는 유형일 수가 있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혼을 불사른 연기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쳐도 연기력이 너무 뛰어난 탓에, 그 슬픔의 진위를 가려내기 힘들다는 게 문제였다. 저 모습은 누가 봐도 부친의 죽음을 극도로 비통해하는 효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해서 눈치가 예리한 초휴조차도 딱히 트집 잡을 만한 구석을 집어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을 믿는 초휴는 전자보다 후자의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었다. 상식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지독한 차별을 받으며 자란 사람 중, 정신적으로 건강할 인물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때 정주해가 담담히 말했다.
“추 공자, 잠시 비켜 주시구려. 우리가 선친의 시신을 좀 검사해 봐야겠소.”
그의 수중에는 가늘고 정교하기 짝이 없는 작은 칼이 들려있었다. 예리한 칼날에는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
추동무가 안색이 싹 달라지며 물었다.
“당신들, 대체 시신을 어떻게 검사하겠다는 겁니까?”
하지만 정주해가 답변하기도 전에 초휴가 불쑥 끼어들었다.
“추 공자, 우리가 검사를 어찌하건 간에, 그대가 나설 일이 아닌 듯싶소만? 설마 우리가 하는 일을 미주알고주알 그대에게 보고라도 해야 하오?”
그러자 추동무가 잔뜩 비통함을 머금은 표정으로 정주해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내 선친의 시신을 훼손하는 걸 가만히 앉아서 지켜만 보라는 말씀입니까?”
이에 정불휘가 다시 추동무를 달래기 시작했다.
“추 공자, 관중형당의 사건 조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저들이 나선 이상, 빠른 시일 내에 흉수를 찾아낼 수 있을 거요.”
그제야 추동무가 한옆으로 비켜섰다. 하지만 끝까지 정주해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걸 잊지 않았다. 이윽고 정주해가 매의 눈으로 시신의 외관을 살펴보다가 시신의 의복을 벗겨냈다. 그러자 시신의 가슴에 찍혀있던 흑자색의 손자국이 드러났고, 사람들의 시선이 저절로 초휴에게로 향했다.
풍만루가 용호방에 초휴에 대하여 기재한 내용을 떠올린 것이다. 초휴가 익힌 무공 중 사악한 장법이 있어서 상대의 몸에 저런 흔적을 남기며, 마염이 체내에 유입된 후 상대의 경맥과 오장육부를 태운다고 되어있었다.
수많은 강호인이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추진성의 죽음에 초휴가 연루되었으리라 여기는 이는 좌중에 없었다. 추진성이 죽을 당시 초휴는 관중형당에서 폐관 수련 중이었고, 더욱이 추진성은 오래전에 천인합일의 경지에 오른 막강 고수였다. 설령 초휴가 죽이려 들어도 죽일 수 없는 상대인 데다, 강호에는 저와 같은 흔적을 남기는 장법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주해가 시신을 개복하자 부패해서 검게 변한 내장이 드러나며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정주해는 인상을 찌푸리며 기괴한 도구와 약병 등을 꺼내더니, 좀 더 정밀한 검사에 들어갔다.
이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그가 추진성의 시신을 봉합하고 다른 시신들도 살펴본 끝에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초휴가 물었다.
“결과는 어떻소?”
“추진성의 사인은 이렇습니다. 어떤 고수가 음험하고 사악하기 그지없는 장력으로 가슴을 공격했고, 그 장력이 고인의 경맥을 파괴했고, 거기에 더해서 내장까지 손상한 겁니다. 한마디로 일장으로 숨을 끊었단 말이지요. 시신에 엉켜 싸웠던 흔적이 남은 것으로 보건대, 흉수는 무도종사급은 아니고 천인합일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다만 실력이 추진성을 능가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가 설명하자, 너도나도 묻고 싶은 표정들이 되었다. 그가 허언을 지껄인 게 아니라면, 추진성의 실력을 능가하지 못하는 흉수가 어찌 일장으로 그를 죽일 수 있었단 말인가.
정주해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둘 다 천인합일이었으니 고인을 죽이는 건 어렵지 않았을 테지요. 직접적인 사인은 장력에 의한 것이지만, 부차적으로 고인의 체내에서 ‘칠월해당(七月海棠)’이라 불리는 만성 독약 성분이 발견되었습니다. 미미한 독성분을 가진 영약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겠군요.”
“칠월해당은 묘강에서 자랍니다. 매년 칠월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서만 활짝 피는데, 약리적으로 좀 복잡한 식물이죠. 진기를 정체시키고 경맥을 보강하는 등의 효과가 있어서 치료약의 재료로도 쓰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정제를 거치지 않을 시에, 미미한 독성을 띤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을 장기간 복용할 경우, 경맥이 서서히 굳어져서 신체 기능이 손상될 수 있음은 물론, 진기 부작용을 일으켜서 중상으로 이어질 위험도 초래하니까요. 추진성이 이처럼 쉽게 죽은 이유도 이것이죠. 경맥과 내장이 굳어진 흔적이 엿보이는 것으로 봐서 흉사가 있을 당시 이미 중독된 상태였고, 이로 인해 출수 동작도 한 박자가 늦어졌을 겁니다. 이런 고수끼리의 싸움에서 한 박자 늦어진다는 건 치명적인 일이지요. 결국, 흉수에게 빈틈을 내어줬을 테고, 결정적인 기회를 포착한 흉수는 일격으로 죽일 수 있었던 겁니다.”
“다만 추진성을 중독시킨 독소가 상당히 기괴한데요……. 원래 칠월해당은 색도 맛도 없고, 엄밀히 따져 독약이라 할 것도 못 됩니다. 그러니 서서히 중독되는 과정에서 추진성과 같은 고수가 출수에 전력을 다하지만 않으면, 거의 이상 증후를 못 느끼기 마련이죠. 아무리 많이 복용했어도 진기의 부작용도 없다시피 했을 테고요. 해서 제가 추론한 바로는, 아무래도 이 칠월해당은 애당초 다른 사람 때문에 쓴 것으로 보입니다. 중독시키려던 대상이 추진성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지요.”
“산장 내의 모든 시신에서 이 독소가 검출되었습니다. 특히 추진성의 아들 추동녕은 내강경에 불과하여 강기의 흐름이나 경맥이 굳건한 편이 못됩니다. 해서 이 독소를 수 개월간 더 복용했다면, 제일 먼저 추동녕이 폐인이 되었을 겁니다. 말인즉슨, 이 독소가 겨냥한 것은 추동녕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정주해가 단숨에 검시 결과를 줄줄이 읊어댔다. 초휴가 흡족해했음은 물론이다. 관사우에게 선견지명이 있어서 정주해 등을 함께 파견한 건 정말 현명한 결정이었다.
초휴 혼자 덩그러니 왔더라면 기껏해야 추진성이 일장으로 피살당했다는 정도만 알아내는 데 그치지 않았겠는가. 칠월해당에 대해 알아내는 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흉수에 대해서 알아낸 건 없소?”
초휴의 질문에 정주해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출수가 워낙 짧게 이루어진 탓에 시신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쌍방이 엉켜서 싸웠다고는 하나, 고인이 열 합도 못 겨루고 숨졌으니 남은 흔적이 없거든요. 게다가 유일하게 남은 손자국도 요즘 강호의 대문파나 낭인 무사들의 성명절기(盛名絶技)로 인한 게 아니란 말이지요. 아마도 누군가 사사로이 창안해낸 무공이거나 상고시대 비전함에서 찾아낸 공법 같은데, 이런 경우는 그 출처를 알아낼 길이 없으니까요.”
“또 한 가지 특기할만한 것은, 독을 쓴 자와 살인한 자가 동일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입니다.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면 살인범은 칠월해당의 특성을 잘 알고 있으니, 이깟 약물로는 추진성과 같은 고수에게 약간의 영향은 미칠지 몰라도 치명타는 가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겠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살인범은 추진성이 중독 사실을 알아챌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즉 추진성의 체내에 칠월해당 성분이 오랜 기간 쌓이길 기다린 후에야 공격을 가했다는 말인데, 이건 앞뒤가 안 맞거든요. 그렇잖습니까. 아무리 기다려 봤자 그런 독으로는 추진성을 어찌하지도 못하는데, 뭐하러 주야장천 기다리겠습니까. 해서 제 추론으로는 살인범이 추진성이 중독된 사실을 몰랐음이 분명합니다. 한마디로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거죠.”
초휴는 뭔가 골똘히 생각한 끝에 물었다.
“추진성과 다른 이들은 언제쯤 중독된 것 같소?”
“대략 한 달 전쯤? 다만 추진성은 수련이 깊은지라 독소의 침투가 열흘 후, 더는 깊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계속 깊이 진행되었지만요.”
초휴가 고개를 끄덕이는가 싶더니 돌연 추동무에게 물었다.
“추 공자, 그대는 한 달 전 어디에 있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