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72)
272화 초휴를 죽여라!
시종일관 당당하던 강문원도 초휴의 이 말에는 낯빛이 살짝 변했다. 이건 그저 사소한 허점, 아니 기껏해야 하나의 가설 혹은 의문점에 불과했다. 하지만 초휴가 하필 이 부분에 착안하여 취룡각 전체로 혐의를 확장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강문원은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다.
“취룡각에는 취룡각만의 규칙이 있다. 손님의 개인정보를 어찌 사사로이 외부에 유출할 수 있단 말이냐. 설령 관중형당일지라도 그럴 자격은 없느니라. 열 셀 동안 썩 꺼지지 않으면 뒷일은 나도 책임질 수 없다!”
말과 함께 강문원이 손짓을 하자 열 명도 넘는 문객들이 초휴 일행을 포위했다. 여차하면 공격할 기세였다. 동제에서 강문원은 이처럼 기고만장해도 될 자격이 충분한 인물이다. 그에게는 ‘면사금패(免死金牌)’라는 것까지 있었다. 동제 황실도 그를 어찌하지 못하는 마당에, 초휴와 같은 외지인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정주해가 초휴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초 형, 일이 성가시게 된 것 같습니다. 잠시 퇴각하는 게 어떨까요?”
정주해가 나이는 젊어도 관중형당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노련한 강호 포두다. 다른 지역으로 임무 수행도 많이 가본 그였지만, 이런 경우는 그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대개 관중형당에 도움을 청한 이상 현지 세력은 무조건 그들의 수사에 협조하는 게 순리였다. 하지만 협조는커녕, 거센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들은 사건 해결을 위해 온 것일 뿐, 저들의 기득권에 손대려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무력 충돌까지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퇴각? 퇴각이야 쉽지. 그러나 지금 우리는 관중형당을 대표해 이들과 맞서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퇴각하는 그 순간, 관중형당의 명예는 어찌 되겠소? 당주 대인의 성격은 그대들도 잘 알 터인데 그분이 우리가 잘했다고 하시겠소?”
초휴의 지적에 정주해는 말문이 막혔다. 당장 분함을 참는 건 쉽지만 명예는 어찌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지만 그때 강문원이 여세를 몰아 소리쳤다.
“아직도 안 꺼지고 뭘 하는 게야? 좋다. 정 버티겠다면 내가 쫓아내 주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강문원 휘하의 문객들이 초휴 등을 향해 치고 들어왔다. 그들은 내강경, 외강경, 삼화취정, 그리고 오기조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섞여 있었다. 머릿수만으로도 관중형당 측을 압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격돌하면 관중형당 측은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제압될 게 뻔했다.
특히 초휴는 여기서도 ‘특별 대우’를 받은지라, 오기조원 무사가 무려 세 명이나 협공해 왔다. 그러니 초휴인들 어쩌겠는가. 연신 뒤로 밀려날 수밖에. 하지만 사실 초휴가 이 정도까지 형편없이 밀릴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 싸움에서 전력을 다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애당초 그가 동제에 온 가장 큰 목적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함이 아니라 추진성의 무공비급 때문이었다. 그러니 굳이 여기서 목숨 걸고 싸울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저 취룡각의 위압에 맞서 관중형당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만 막으면 그걸로 족할 터였다.
밀리는 상황일지라도 초휴가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았지만, 정주해 등 나머지 사람들은 전력을 다해 맞서는 중이었다. 삼화취정도 하나 없는 그들의 실력이 여기서 통할 리 만무했다.
그들이 거의 무릎을 꿇을 즈음, 초휴가 퇴각하는 척하려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멈춰라!”
곧이어 왕근이 잔뜩 노한 표정으로 다급히 들어섰다. 황실에 중간보고를 올리러 잠시 도성에 다녀온 사이에 이런 사달이 났으니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
왕근은 만만한 초휴부터 혼내고 볼 작정이었다.
“추진성의 사인을 밝혀달라고 불렀건만 여기서 이게 무슨 난동이오? 뭘 조사할 게 있다고.”
“제가 취룡각을 조사하려는 게 아니라 사건의 단서가 취룡각을 가리키더군요. 왕 공공, 우리는 이쪽 방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입니다. 근거 없이 엄한 사람들을 닦달하려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초휴는 그간 알아낸 사실과 자신들의 추론을 왕근에게 들려주었다. 다 듣고 난 왕근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지위로 밀어붙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강문원만큼은 곤란했다. 왕근은 전전사의 부총관이자 황제의 심복으로서, 관직은 크게 높지 않아도 동제에서 목에 힘주고 다니기엔 충분한 존재였다. 방계 황족들조차도 그에게 굽실댈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강문원은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운 존재다. 여씨 황실은 새 황제의 성덕을 과시하여 민심을 보듬기 위한 차원에서, 강씨 황족 혈통에게 평생 안락하게 살 수 있는 특권을 보장했다. 그런데 인제 와서 강문원을 건드린다면 여씨 황실은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자기 뺨 때리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해서 동제 조정 측에서도 웬만하면 강문원을 건드리지 않고, 존경은 하되 가까이하지는 않는 모호한 태도를 보여온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이와 같은 사달이 벌어진 이상, 왕근은 뭐라도 입장표명을 해야 했다. 이에 강문원에게 다가가 공손히 중재에 나섰다.
“안락왕 전하, 추진성의 죽음으로 폐하께서 적잖이 놀라셨습니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조사 결과 이번 일이 정말로 취룡각과 무관하다는 게 밝혀지면, 더는 전하께 불편을 끼쳐드리지 않을 겁니다. 고작 손님들 명부가 아닙니까. 어차피 취룡각에서 매일 기록해 왔을 테니, 한번 훑어보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닐 테고요.”
“명부? 우리 취룡각을 드나드는 강호인이 하루에만도 대체 몇 명인데, 그 기록을 오래 남겨 두어 뭣에 쓴단 말이냐? 당연히 며칠 간격으로 폐기하고 있다.”
하지만 강문원의 이 말은 누가 봐도 어깃장에 불과했다. 오죽하면 왕근마저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취룡각은 여타의 주루들과는 다르다. 개나 소나 드나드는 데가 아니라, 강호에서도 이름난 자들, 즉 귀빈급 인사들이 오는 터라 한 명, 한 명 상세한 기록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며칠 간격으로 그 기록을 폐기하고 있다니, 설마 위풍당당한 안락왕에게 고작 명부 몇 권 보관할 자리조차 없다는 말인가. 왕근이 반박할 기색을 보이자 강문원이 틈도 주지 않고 다시금 으름장을 놓았다.
“왕근, 내가 자네와 같은 환관내시에게 이처럼 길게 설명한 것만도 자네 체면을 생각해준 거네. 그래도 취룡각을 수색해야겠거든 폐하를 모셔오게나. 그럴 능력이 되는지는 모르겠네만. 그게 아니고서는 설령 전전사의 장양(張讓) 대총관이 온다 해도, 여기에 한 걸음도 들여놓지 못하게 할 테니까!”
강문원이 내뱉은 ‘환관내시’라는 말에 왕근은 분노가 치밀었다. 물론 자기가 환관내시인 건 사실이고, 본인조차 이런 말로 자신을 스스로 비웃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를 모욕하려고 그런 표현을 쓰는 건 문제가 달랐다. 하지만 강문원과 낯을 붉힐 용기는 여전히 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태감에 불과하며 황실의 노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훗날 강문원이 권세를 잃는다면 옳다구나 하며 그를 성토하는 무리에 가세하여 짓밟아 줄 의향은 있었다. 하지만 동제 황실이 그를 건드릴 생각이 없는 한 그런 날은 요원할 터였다.
왕근은 초휴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물러납시다. 이 일을 폐하께 고할 테니, 폐하께서 어찌 처분하실지를 기다릴 수밖에 없겠소.”
왕근까지 이렇게 말하니, 초휴 등도 더는 뻗대지 않고 그를 따라 물러났다. 취룡각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은, 황제의 심복인 전전사의 부총관마저 안중에 두지 않는 이성왕(異姓王) 강문원의 위세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멀어져가는 초휴 일행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강문원의 눈가에는 살벌한 냉기가 흘렀다. 다시 구층으로 돌아오니 육 선생이 여전히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래층에서 벌어졌던 상황들을 지켜본 그로서는 강문원의 처신이 다소 지나쳤다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지금 강문원이 가진 모든 것은 동제 황실이 그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만 유효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는 이 사실을 망각한 채, 기고만장하여 황제의 심복한테조차 대놓고 수모를 주는 엄청난 우를 범해버린 것이다.
동제 황실에서 언제까지 그의 오만방자함을 눈감아 줄 것인가. 황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강문원의 운명은 끝장일 터였다. 그때가 되면 왕근처럼 지난날 그에게 모욕을 당하고도 어쩔 수 없이 참아 넘겼던 자들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 그를 짓밟으려 들 것이다. 하지만 강문원은 육 선생이 무슨 생각을 하건 관심도 없이 자기 할 말만 내뱉었다.
“육 선생, 오늘 적당한 시간을 골라서 초휴를 해치워줘야겠소.”
“네? 하지만 왕야, 방금 초휴와 극심하게 대립했는데, 그를 죽이려 하시다니요. 자신이 초휴를 죽인 흉수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작정이십니까? 천하의 바보 멍청이도 놈의 죽음과 왕야를 대번에 연관 지어 알아챌 겁니다.”
“그렇지. 천하의 바보 멍청이라도 나와의 연관성을 의심할 테지. 바로 그래서 지금 당장 죽이라는 거야. 자네 눈에는 내가 그런 머저리 짓을 할 사람처럼 보이는가? 범인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하필 이 시점에 초휴를 죽일 정도로 내가 얼간이로 보이느냐고. 아니, 천만에. 아무도 나를 그 정도로 구제 불능의 바보라고는 생각 안 해. 아마도 다른 일로 인해 죽었거나, 또는 진범이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그를 해쳤겠거니생각하겠지.”
순간 육 선생은 당황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강문원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그동안 계속 강문원의 정신 상태가 마음에 안 들었건만, 나름 머리를 굴리는 걸 보니 아직 최악의 상태는 아닌 모양이었다. 다만 인간적으로 강문원의 신분과 처지가 애석할 따름이었다. 그가 허울만이 아닌 진정한 황족이었다면, 저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싶었다.
“왕야께서 결심이 서셨다니, 곧장 실행에 옮기도록 하지요. 날이 어두워지면 제가 손을 쓸 터이니 마음 놓으십시오.”
육 선생은 이 말을 마치자 공기처럼 사라졌다. 실로 귀신과도 같은 몸놀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자 왕근은 황제에게 올릴 상소문을 쓰기 위해 붓을 들었다. 이참에 강문원을 신랄하게 비판할 생각이었다. 막 도성에서 돌아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골머리를 썩일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그냥 상황이 어떻다는 경과보고만 하면 끝이었을 테니까.
한편, 관중형당 측은 초휴만 별생각이 없을 뿐, 다른 이들은 이 사건을 어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한지라 수심이 가득했다. 초휴야 추진성의 비급에 눈독을 들이고 온 것이니 사건이 해결되지 못해도 본전치기요, 해결되면 공을 세우는 셈이니 어느 경우이건 손해 볼 게 없었다.
물론 실패하더라도 상황 그대로 보고해서 안 될 건 없었다. 관중형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애썼으나 동제 조정 내 복잡한 권력 암투로 인해 수사가 벽에 부닥쳐서 사건 해결에 실패했다고 보고하면, 관사우가 설마 문책이야 하겠는가. 남의 집안싸움에 외부인이 끼어들기가 얼마나 곤란한 일인지, 당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모를 리 만무했다.
해서 심각할 게 없는 초휴는 고심 중인 동료들과는 달리, 객실에 틀어박히는 대신 제주부로 바람을 쐬러 갔다. 솔직히 말해서 신병대회 기간에는 제주부를 제대로 구경도 못 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컸다. 그간 오죽 사연이 많았던가. 초휴가 누군가를 죽이려 들지 않아도 누군가가 초휴를 죽이려 드는 긴장된 상황의 연속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번 동제행은 기필코 비급을 획득하고야 말겠다는 의무감보다는 그저 손에 넣으면 다행이오, 못 하면 팔자려니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결행한 것이었다. 그런데 초휴가 막 뒷골목으로 들어섰을 무렵, 어디선가 짙은 살기가 덮쳐왔다. 초휴는 반사적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천마무를 뽑아 들어 아비마도로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