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사건의 경위
초휴를 완전히 자기 쪽 사람이라고 믿은 육 선생은 사건의 전모를 서슴지 않고 털어놓았다. 동제의 개원제(開元帝) 여호창(吕浩昌)은 동제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황제도 아니고, 가장 능력이 출중했던 황제도 아니었다. 대신 인생역정이 순탄치 않기로는 단연 최고였다.
선대 황제가 후사를 남기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로 급사(急死)하자, 내분에 휩싸인 동제 황실은 피비린내가 가실 날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조정의 세력들도 타격을 입었고, 결과적으로 동제는 국력의 손실이 적지 않았다.
수련을 위해 오랜 은둔생활 중이었던 동제 황족 출신의 노야가 친히 나서서 상황을 수습하자, 정국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적통 황족들 가운데 하필 천부적 자질도 떨어지고 능력도 평범했던 여호창이 황제로 선출되었다.
여호창은 황위에 오르자 아들을 낳는 일에 전력을 쏟았다. 후사가 없어서 극심한 혼란이 야기되었던 선대 황제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은 때문이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여호창이 제대로 완수한 일이라곤 없었다. 그나마 최대 성과라면 아들만 서른 명도 넘게 낳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정작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살아 있고, 퇴위할 의사도 전혀 없었다.
여호창의 능력이 평범할 뿐이었던 것과는 달리, 자식들은 뛰어난 인재가 많았다. 특히 맏아들을 비롯한 앞쪽 서열의 아들들이 특히 그랬다. 이번 추진성 사건만 해도 동제 태자와 이황자 간의 암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여호창은 일찌감치 태자를 책봉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위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변칙적으로 다른 황자들에게도 나름의 기회를 주어왔다.
특히 야심이나 능력이 절대로 태자에 뒤지지 않는 이황자 여륭광(吕隆光)은 태자 자리를 넘본 지가 오래였다. 여륭광의 야심이 갈수록 노골화하자 위기감을 느낀 태자는 자신의 우군이 되어줄 인재를 계속 찾았다.
강문원은 태자의 우군 중 하나였고, 또 한 명이 더 있었으니 바로 백호당 타주였다. 그러나 그는 태자의 제안을 승낙하고 영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외의 죽음을 맞았다. 해서 서둘러 타주를 대체할 인물을 물색했는데, 그게 바로 비마목장의 장주인 추진성이었다.
한 달 전 추진성이 초대를 받고 취룡각으로 가서 만났던 자가 다름 아닌 태자 측 사람이었다. 하지만 추진성을 영입하려던 태자 측의 시도는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추진성이 단칼에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태자가 암암리에 추진성을 뒷조사한 결과, 뜻밖에도 그가 이미 이황자와 선이 닿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까놓고 말해서 비마목장은 동제에 매우 중요했지만, 정작 추진성 본인은 목장만큼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 게다가 추진성은 천인합일에 불과했다.
그 정도라면 강호 전체로는 강호인들의 존경과 흠모를 받는 대단한 존재일지 몰라도, 동제 조정에서는 그저 중견역량에 불과했다. 예컨대 일개 부총관에 불과한 왕근, 일개 참장에 불과한 방진기도 죄다 천인합일인 것이다. 한마디로 동제 조정에는 이 정도 경지가 지천으로 깔렸다는 얘기다.
따라서 추진성이 이미 이황자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태자는 그를 죽이려는 마음까진 먹지 않았다. 굳이 없애야 할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강문원이 육 선생을 사주해 추진성을 죽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이황자의 실력이 태자를 능가하지 않고, 쌍방이 팽팽한 접전을 이어가는 상태를 지속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리함으로써 동제 황실이 서로 죽이고 죽이는 내분에 휩싸이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들은 초휴가 장탄식을 내뱉었다. 이 일이 자신과 관련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나비효과의 파급력은 진정 엄청나고 두렵지 않은가. 애당초 백호당 타주가 죽지만 않았어도, 태자는 대체할 인물로 추진성을 영입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도 없었을 게 아닌가 말이다. 이렇듯 추진성이 초휴로 인해 죽게 된 건 하늘의 농간이오,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었다.
순간 뭔가가 떠오른 초휴가 다급히 물었다.
“그런데 선배님께서 추진성과 싸울 때, 뭔가 이상한 낌새는 못 느끼셨습니까? 우리 관중형당에서 사체를 검시한 결과, 추진성이 이미 칠월해당의 독소에 중독된 상태인 것을 알아냈거든요.”
“허허, 당연히 나도 눈치를 챘지. 추진성이 낭인 출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명지배는 아니지 않은가. 해서 그를 죽이자면 어느 정도는 힘을 써야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리 쉽사리 싸움이 끝나버릴 줄은 몰랐으니까. 처음에는 강문원이 나 몰래 암수를 쓴 줄 알았네. 나중에야 그의 짓이 아닌 걸 알았지만.”
결국, 이번 사건은 정주해가 추론했던 대로, 독을 쓴 자와 죽인 자가 동일 인물이 아닌 것이 확인되었다. 이로써 이 일에 뭔가 내막이 숨겨져 있음이 분명해졌다. 이번엔 육 선생이 물었다.
“추진성은 내가 죽였고, 지금은 강문원이 자네를 죽이려 드는군. 자네는 어쩔 셈인가?”
“염려 마십시오. 이번 일에 무상마종이 드러날 일은 없을 겁니다. 누가 봐도 무상마종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만. 사실 이번에 강문원이 저를 죽이려 들지만 않았어도, 그자가 뭔 짓을 하건 저는 관여치 않았을 겁니다. 태자와 이황자 간의 암투를 밝혀낼 정도로 깊숙이 강문원을 조사해야겠다는 필요성도 못 느꼈을 테고요. 하지만 강문원이 저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이상, 얘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번에 제가 눈감아준다 한들, 그자는 절대 저를 가만두지 않을 게 아닙니까.”
동제에서 강문원은 지극히 특수한 존재다. 죽은 듯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강문원이 가진 힘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지금 강문원은 무상마종과 협력 관계에 있다. 강문원에게 접근이 쉬운 무상마종을 초휴가 부추겨서, 그를 죽이라고 사주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강문원 휘하에는 천인합일의 고수만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섣불리 손댈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네에게 생각이 있는 듯하니 그걸로 되었네. 같은 성교 사람으로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게. 체면 차릴 것 없으니. 그리고 설령 관중형당에 자네의 정체가 노출된다 해도 겁낼 것 없네. 까짓것 무상마종으로 들어오면 그만 아닌가. 성교는 소멸했어도 성교 관련 세력 버젓이 존재하는데, 설마 자네가 몸 둘 곳이 없겠는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아니지, 아니야. 체면 차릴 것 없대도. 성교가 이처럼 쇠락했어도 자네는 엄연히 성교의 직계 제자가 아닌가. 그러니 무상마종에 들어오면, 우리는 자네를 성교 사람으로 대우할 것이네.”
말을 맺은 육 선생은 초휴 뒤의 공간을 슬쩍 보더니, 목소리를 낮춰 은밀히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한테 쥐새끼 한 마리가 붙은 모양이군. 기세를 은닉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걸. 나조차도 눈치를 못 챌 뻔했으니 말이야.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게. 난 가봐야겠으니.”
말을 끝낸 육 선생의 모습이 사라졌다. 초휴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이는가 싶더니, 약간의 몸짓과 함께 내박인을 터뜨렸다. 속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그의 신형은, 순식간에 자신의 등 뒤로 나 있는 뒷골목 한가운데에 이르렀다. 거기서 모습을 드러낸 쥐새끼는 놀랍게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도주할 태세를 취하고 있는 초효덕이었다!
초효덕은 그야말로 후회막급이었다. 여기까지 초휴의 뒤를 밟았던 자신의 선택이 저주스러울 정도였다. 초휴가 가벼운 마음으로 제주부를 둘러보러 왔듯이 초효덕도 순전히 그런 마음에서 온 것일 뿐, 일부러 그의 뒤를 밟은 건 아니었다. 우연히 초휴의 모습을 발견했고, 반가운 마음에 막 아는 체를 하려는 순간, 초휴가 괴이한 흑영을 따라 사라지고 말았다. 해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의혹을 품고 뒤쫓은 것이었다.
그가 초사마의 양자이긴 하지만, 서역의 무공은 별로 배운 게 없었다. 그저 우연한 기회에 하나 습득한 게, 신법의 속도를 높이고 기세를 은닉하는 정도의 무공이었다. 그는 이 무공 덕에 지척에서도 육 선생과 초휴의 대화를 은밀히 엿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추진성의 사인은 그러려니 했다. 황실 암투도 딱히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관중형당에서 지내온 세월이 얼마인데, 그런 유형의 사건을 한두 번 겪어봤겠는가.
하지만 곤륜마교와 관련된 대화에 대해서는 얼마나 놀랐던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초휴가 곤륜마교와 관련되어 있다니, 이 얼마나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란 말인가! 심하게 놀란 나머지 마음이 흐트러지면서 은닉했던 기세에 허점이 생겼고, 그 바람에 결국 육 선생에게 들킨 것이었다.
초휴가 그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내가 곤륜마교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말하면 자네가 믿어줄까? 그저 상대를 속여넘기기 위한 고육지책에 불과했다고 말한다면, 믿어주겠느냐는 말일세.”
초효덕이 우느니만 못한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되물었다.
“내가 믿겠노라고 답한다면 초 형은 내 말을 믿어줄 겁니까?”
초효덕의 답변은 얼핏 말장난처럼 들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감 없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처럼 엄청난 일을 목격하고 초휴의 말을 믿어준다고 답한들, 그가 어찌 믿겠는가? 자기가 초휴의 입장이라도 신뢰하기가 어려울 터였다.
초휴가 주변을 힐끗 둘러보더니 태연히 말했다.
“이곳이 무사의 발걸음이 닿을 만한 곳이 아닌 줄은 잘 알 테지. 내 실력은 자네도 잘 알 테고. 도와줄 이가 전혀 없는데, 내 손아귀에서 도망칠 자신은 있나?”
초효덕의 심장이 바위가 굴러떨어지듯, 쿵 하고 내려앉았다. 현재 삼화취정에 이른 초휴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난날의 비무에서 겪었던 외강경의 초휴도 그로서는 마냥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당시 여천호는 초효덕에게 엄청난 모멸감과 함께 패배를 안겼었다.
그런 여천호마저 가뿐하게 뭉개버린 초휴다. 그러니 초효덕과 초휴 간의 실력 차는 더 말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앉아 죽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초효덕이 목숨 걸고 임전 태세를 갖추려는 순간, 초휴가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자네는 죽고 싶은가, 아니면 살고 싶은가?”
당황한 초효덕의 눈동자가 멍하니 빛을 잃은 것도 잠시, 반사적인 대답이 튀어나왔다.
“당연히 살고 싶소.”
“그렇다면 내가 살 기회를 주겠네. 사실 내가 곤륜마교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아. 자네가 모든 걸 봤으니, 이대로 자네를 풀어줄 수도 없는 일이고 말이야. 예로부터 곤륜마교 내에 은밀히 전승되어 내려오는 인장이 있다네. ‘성화인(聖火印)’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서곤륜 정상에서 불타오르는 무근성화(無根聖火)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이야. 그 인장이 어떤 형상인지 나는 잘 알고 있어. 지금 자네의 팔뚝에 성화인을 찍어줄 생각이야.그러면 자네는 순식간에 곤륜마교 사람이 되는 거지. 이로써 서로의 약점을 쥐게 되는 셈이니, 내가 자네를 죽일 필요가 사라지게 되네, 어떤가?”
그러자 낯빛이 하얗게 질린 초효덕이 더는 참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렸다.
“말인즉슨, 나더러 당신의 노예가 되라는 게 아니오? 당신이 조작해낸 내 약점으로 날 맘대로 쥐고 흔들어보겠다는 건데, 그럴 거면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
초효덕의 눈에 비친 초휴는 영락없이 곤륜마교 사람이었다. 사실 이 사실이 발각되어도, 초휴는 원래의 역할대로 무상마종으로 옮겨가면 그만이다. 관중형당의 상징적인 영웅이 하루아침에 마도의 영웅으로 탈바꿈하면 세간은 엄청난 충격에 빠지겠지만, 적어도 본인이 억울할 일은 없을 터였다.
그러나 초휴와 달리 초효덕은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한평생 곤륜마교 사람이라는 억지 누명을 쓴 채, 초휴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된다고? 그러느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그냥 죽는 게 낫지 싶었다. 한 마디로 이건 초효덕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거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