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8)
다음날 새벽 이씨 집안 상단은 수레마다 짐을 싣고 기세당당하게 통주부를 떠났다. 수레에는 광석과 함께 위군의 특산물도 실려 있었다.
이소의 곁에는 굳은 표정의 쉰 살 남짓한 중년 사내가 동행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린 머리였고 간편한 무인 복장에, 등 뒤에는 족히 팔뚝만한 굵기의 쇠몽둥이를 메고 있었다. 그는 바로 이씨 집안의 대총관, 이충이었다.
강호상에서 몽둥이를 병기로 삼는 무사는 드물었다. 몽둥이의 위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어느 경지 이상으로 수련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왔기 때문이었다.
검이나 칼을 쓰는 무사들은 전형적인 무림인의 길을 걷고, 군영 출신의 무사들은 대부분 위압감이 넘치고 기세가 살벌한 창을 사용했다. 몽둥이의 경우 입문 초기에는 익히기가 어려워, 그 살상력이 검이나 칼로 단번에 치명상을 입히거나 창으로 구멍을 뚫어버리는 것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러나 수련이 궁극의 경지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졌다. 몽둥이질 한 번으로도 사람을 짓이길 수 있어, 위력 면에서 다른 병기들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상단을 이끌고 상망산 초입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이소는 가벼운 표정으로 이충과 무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로 그때 전방에서 어딘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소, 내 물건을 어디로 빼돌리는 중인가?”
수풀 뒤에서 초휴가 느린 걸음으로 걸어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마활의 무리가 이소 일행을 에워쌌다. 이소는 갑작스런 일에 당황했지만, 그들의 인원수가 상단의 절반인 수십 명에 불과한 것을 알자 여유를 되찾았다.
“초휴, 광석을 문제 삼아 더 이상 사고치지 말라고 네 아비 초종광한테 훈계도 들었다면서 또 시작이냐? 아무래도 내게 일부러 시비를 걸기로 작심한 모양이로군 그래.”
그러자 초휴가 허리에 차고 있던 안령도를 뽑아들고 서서히 상단을 향해 다가오며 음산하게 말했다.
“초종광이 문제 안 삼을지 몰라도 나는 문제를 삼아야겠다!”
“기어이 이따위로 나올 작정인가? 네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말은 그리 했지만 이소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초휴가 제 정신이 아니라도 그렇지, 자기 부친의 함자를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도 그렇고, 저렇게 적은 수로 상단을 치려는 무모한 패기 또한 예사롭지 않아보였다.
그러나 초휴가 이렇게 도발해온 이상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소가 손을 휘저으며 외쳤다.
“모두 나와라!”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상단의 무사들이 일제히 수레에서 병기를 꺼내들고 마활의 무리와 대치하기 시작했다. 마활도 무거운 검을 세우더니 근엄하게 소리쳤다.
“형제들! 그동안 초공자의 밥을 많이도 얻어먹었으니 이제 밥값을 할 때다. 우리가 밥을 많이 축내긴 하지만 솜씨도 끝내준다는 걸 초공자한테 보여주자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활과 그의 수하들은 상단 무사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싸우기 시작했다. 마활의 무리가 사람 수는 적어도, 명색이 왕년의 북방 삼십육대도 출신들로서 대부분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있었고, 심지어 북연 군대와 교전까지 했었다.
그러니 이씨 상단의 절반 밖에 안 되는 인원수인데도, 얼마 되지 않아 서서히 상대편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마활도 이소와 한데 뒤엉켜 접전을 벌였다.
하나는 둔중한 검을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흔히 볼 수 있는 가느다란 검을 사용했다. 따라서 검세도 하나는 중후하고 다른 하나는 민첩했다.
기본기만 본다면 명문세가 출신인 이소가 우월하긴 했다. 아무리 이씨 집안이 작은 가문이라 해도 이소는 풍부한 수련자원을 제공받은 반면, 마활은 북방 삼십육대도에서도 작은 역할을 맡았던 야인 출신 도적인 것이다.
다만 마활이 이소보다 실전경험이 월등 많아서 양쪽은 막상막하의 전력을 보였다. 이윽고 이충도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등 뒤에 메고 있던 쇠몽둥이로 초휴를 겨누며 준엄하게 꾸짖었다.
“초공자, 정말 우리 이씨 집안과 갈 데까지 갈 작정이요? 그쪽 가주의 성질을 나도 잘 알기에 하는 말인데, 당신이 계속 우리를 공격하면 분명 가주의 귀에 들어가 곤경에 빠지게 되겠지. 지금이라도 물러가면 아무 일 없었던 걸로 해주겠소.”
“내가 물러가지 않겠다면?”
초휴가 칼을 고쳐 쥐며 도발했다. 그러자 이충이 손에 들고 있던 쇠몽둥이를 초휴에게 겨누며 차갑게 웃었다.
“물러나지 않겠다면 다리를 분질러 네놈 집으로 보내주는 수밖에 더 있겠느냐. 너를 죽이면 네 아비의 노여움을 살 테니, 그건 안 되겠지. 그러나 너는 아비의 명을 어기고 우리한테 행패를 부렸으니, 다리병신을 만들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을게다.”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거 좋아하네. 지금 여기서 네놈들을 모두 죽여 없애는 거야말로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거다.”
초휴가 다짜고짜 혈도를 뽑더니 광풍이 몰아치는 듯한 기세로 이충에게 달려들었다. 이충도 거침없이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초휴의 칼을 맞받았다.
칼과 몽둥이가 부딪히며 쨍쨍한 쇳소리가 울려 퍼지자, 초휴는 순간적으로 거대한 힘이 덮쳐오면서 두 손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충은 연신 쇠몽둥이를 휘두르는 와중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쉬체경과 응혈경이 한 단계 차이라고는 하나, 그 차이는 몸 안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네놈의 힘이 동급의 쉬체경 무사들보다 더 강력한 이유는 모르겠다만, 기혈을 응축시키는 수련이 받쳐주지 않으면 제아무리 근골이 강하다 해도 소용이 없단 걸 알아야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충의 쇠방망이가 온 우주의 힘을 실은 듯한 위력으로 내리쳤다. 초휴가 간발의 차로 몸을 틀어 뒤로 피했다.
그런데 이충의 쇠몽둥이가 부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마치 기다란 창이라도 된 양, 불전에 엎드려 절하는 것처럼 초휴를 향해 연달아 세 번을 찔러왔다. 초휴가 다급히 칼끝을 세워 막아보았지만 잇달아 세 번의 공격을 막아내는 동안 내리 세 걸음을 뒤로 밀려났다.
팔뚝도 마비될 정도로 저려오고 체내 기혈도 요동을 치니, 초휴는 이를 애써 참느라 얼굴이 온통 뻘게졌다. 그런 와중에도 칼끝처럼 예리한 그의 눈빛은 여전히 상대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응혈경의 힘이었다. 쉬체경이 밖에서 안으로 향한다면 응혈경은 안에서 밖으로 향한다. 기혈의 힘이 폭발하는 것이 겉으론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맞붙어 싸우는 가운데, 기혈이 요동치며 발출해낸 폭발력은 전신의 감각에서 느껴질 만큼 강력했다.
갑자기 초휴가 이충의 손에 들린 쇠몽둥이에 시선을 고정하더니 탄식했다.
“복호항마곤(伏虎降魔棍)! 대광명사 출신이 이씨 집안에서 하인노릇이나 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구나!”
이생에서의 그는 견식이 보잘 것 없지만, 전생에서의 그는 수많은 무공들과 그 출처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다. 두 세상의 기억이 한데 뒤엉킨 바람에 초휴의 기억이 흐릿해질 때도 있긴 했다. 그러나 방금 전 이충의 공격을 수차례 막아내면서, 그가 사용한 초식이 바로 북불종 대광명사 수도승의 필살기인 복호항마곤임을 알아본 것이다.
강호에 불교의 맥을 잇는 사찰들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명실상부한 양대 최고봉이 있었으니, 하나는 남쪽에 있고 하나는 북쪽에 있어 소위 ‘남북이불종(南北二佛宗)’으로 불렸다. 남불종 ‘수보제선원’은 불법의 수행이, 북불종 ‘대광명사’는 신체의 단련이 각기 주를 이뤘다.
대광명사의 입문무공이 바로 ‘복호항마곤’과 ‘금강나한권’이었다. 이충이 머리를 파르라니 깍은 데다, 강호에서 보기 드문 쇠몽둥이를 병기로 사용하는 게 유별나긴 했다. 설마 강호 문파들 가운데서도 서열이 정상급에 속하는 ‘대광명사’ 출신이었다니.
이충이 차분히 대꾸했다.
“지난날 나는 대광명사에서 법호도 없이 부엌에서 밥이나 짓던 화두승이었을 뿐이다. 감히 나 자신을 대광명사의 제자라고 칭하여 종문에 누를 끼칠 생각은 없다. 초휴, 내 정체를 알았는데도 계속 싸움을 고집할 것이냐?”
“싸움을 고집할 거냐고? 당연하지, 복호항마곤으로는 날 어찌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초휴가 허공으로 몸을 날려 사악하기 그지없는 혈도 검법을 마구 펼쳤다. 그의 칼끝이 예상치도 못한 방향에서 치고 들어와 이충의 급소를 노려댔다.
불문제자들이 초식보다는 기본기 수련에 치중하고, 지난날 이충이 한낱 밥 짓는 화두승에 불과했다고는 하나, 입문무공인 복호항마곤을 수십 년에 걸쳐 연마한 그의 실력은 대단했다. 그의 방어는 물샐 틈이 없어서 초휴에게 빈틈을 내주지 않았다.
이충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게 변했다. 초휴의 칼질이 어찌나 사악하고 괴이한지, 자신이 방어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서 막고는 있어도, 자칫 허점을 보여 초휴의 접근을 허용하는 날엔 자신의 쇠몽둥이를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당할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마활 쪽에서 서서히 승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활의 수하들은 이씨 상단을 도륙하다시피 했고, 마활 자신도 이소와의 싸움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이소가 마활의 적수가 못되는 것을 본 이충은 서서히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복호항마곤은 공격과 수비가 일체를 이루는 침착함과 안정감이 뛰어난 무공이다. 그러나 이소가 수세에 몰리자 이충의 평정심은 급속히 흐트러졌다. 이대로 계속 싸움을 끌었다가는 이소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어 보였다.
이충은 과감히 초휴를 밀어내더니, 수비에 치중하던 초식을 공격 위주로 전환해 온 힘을 다해 초휴를 내리쳤다. 그야말로 땅도 갈라지고 악마도 굴복시킬 위력이었다.
그러나 초휴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안령도로 쇠몽둥이의 공격방향을 틀어버렸고, 그 바람에 쇠몽둥이가 땅바닥에 꽂히면서 작은 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땅이 움푹 파였다.
그리고 살기를 품은 혈도의 칼끝이 불꽃을 튀기며 쇠몽둥이의 겉면을 타고 미끄러지듯이 이충을 향해 찔러왔다. 그러나 이충은 이런 공격을 예상한 것처럼 몽둥이를 쥐고 있던 손을 과감히 놔버리고,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더니 불상처럼 단단하게 초휴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쳤다.
이는 바로 마귀를 억누르고 사악함을 징벌한다는 금강나한의 모습이었다!
지난 수년간 이충은 복호항마곤뿐만 아니라 금강나한권도 꾸준히 수련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초휴는 피할 생각도 않고 이충의 주먹에 자신의 가슴을 고스란히 내어준 채 몸을 위로 솟구쳤다.
그의 소매 안에서 은색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이충의 두 눈에 그 빛이 가득 차올랐다. 이충은 초휴가 비수를 숨기고 있다가 그토록 빠르게 찔러올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충이 대응하기도 전에 그의 눈앞에 현란한 은빛이 쏟아져 내렸고, 곧이어 온 세상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피였다. 결국 머리 없는 시신 한 구가 ‘쿵’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끝
ⓒ 봉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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