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사나운 팔자
강문원이 모반을 꾀할 야심을 품었던 것은, 그에게 그럴만한 저력과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믿을 구석도 없으면서 멋대로 나댄 것이라면 미치광이, 팔푼이와 뭐가 다를까. 따라서 장양 같은 무도종사와도 대등하게 맞설 만한 실력자가 강문원의 원군으로 등장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장양이 골똘히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순양도문(純陽道門)에서 내쳐졌다던 ‘구궁열양(九宮烈陽)’ 두한위(竇寒威)가 아니신가? 지난날 실수로 동문을 죽게 한 죄로 순양도문에서 제적당하고 추살에 쫓겨 생사가 묘연하다는 소문이었지. 멀쩡히 살아서 무도종사까지 되었을 줄은 몰랐구려. 무도종사가 되었으니 이제 순양도문에서 당신을 죽일 엄두는 못 낼 텐데, 굳이 죽음을 자초할 필요가 있겠소?”
순양도문은 삼대 도문 중 하나로, 거기서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강호인들이 먼저 알았다. 두한위가 왕년에 순양도문에서 대단한 명성을 날렸던 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명지배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동문을 죽인 일이 탄로 나고 말았다. 해서 줄곧 순양도문에 쫓기는 신세가 되는 바람에 강호에서 유명세가 더해진 인물이다.
당시 그는 천인합일의 경지였고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났으니, 세간에서는 다들 그가 죽었으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뜻밖에도 안락왕부에 숨어 지내면서 무도진단의 경지에까지 오른 것이다.
두한위가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결연히 말했다.
“실수로 죽게 했다고? 그건 틀린 말이군. 실수가 아니라 진작부터 벼르다가 죽인 거였으니까. 더러는 반드시 죽여야 할 자들이 있기 마련이오. 종문의 패륜아로 낙인찍혀 쫓겼어도, 노부는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소. 자, 지난 일은 이쯤 해둡시다. 선대 안락왕께서 위험을 무릅써가며 노부를 거두어주지 않으셨더라면, 무도종사가 되기는커녕 진작 썩어 가루가 되었을 몸이오. 그 은혜는 갚아야 하지 않겠소. 죽을지 살지는 싸워보면 알게 되겠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한위가 긴 소매를 휘두르자, 널따란 소맷자락 안에서 순양강기로 번쩍이는 장검들이 잇따라 발출되기 시작했다. 아홉 자루 남짓한 장검들은 눈도 멀게 할 강력한 순양강기를 머금고 장양에게 날아들었다.
이때 두한위의 뒤에 있던 강문원은 두 눈 가득 노기를 띠며 짙은 불복의 의사를 내비쳤다. 강씨 가문에서 어렵사리 고수를 영입하여 무도종사로까지 양성했건만 뜻하지 않게 오늘 같은 자리에서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필 동제 조정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장양과 생사결을 벌이게 된 것이다. 강문원 본인조차도 이 싸움에서 두한위가 이길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이때 강문원 뒤에 있던 기백이 보다못해 그를 잡아끌며 재촉했다.
“왕야! 빨리 가십시다. 두한위 선배가 얼마나 버틸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머뭇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됩니다!”
“가자.”
결국, 강문원은 이를 악물며 문객들의 호위 아래 왕부를 빠져나갔다. 두한위와 장양은 이미 격렬한 싸움에 돌입한 상태였다. 천하 삼대 도문 중 하나인 순양도문 제자인 두한위는 지극히 심후한 실력과 저력의 소유자였다.
순양강기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극강의 양기로 이루어진 강기에 사악한 기운을 억누르는 신비로운 위력이 실려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장양의 극독 어린 강기를 무력화시키는데 최적화된 강기라고 할 만했다.
더구나 두한위가 수련한 무예도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지난 십여 년간 구병순양검(九柄純陽劍)을 집중적으로 수련해왔다. 적과 맞설 때 순양강기로 공세를 제어함은 물론, 혼자의 힘만으로도 아홉 자루의 검으로 ‘구궁열양검진(九宮烈陽劍陣)’을 형성할 수 있으니, 총체적 위력이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까닭에, 두한위가 장양보다 늦게 진단경에 이르고 실전 경험이 적을진 몰라도, 당장의 싸움에서는 백중지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에 장양이 자기 무리를 향해 소리쳤다.
“전부 출수하라! 강문원이 포위망을 빠져나가게 해선 안 된다!”
이와 동시에 장양의 도포 자락이 세차게 펄럭이더니 강기가 휘몰아치며 찬란한 일곱 빛깔 독무(毒霧)가 터져 나왔다. 독무는 두한위를 그 한가운데 가둔 채, 상대가 품은 천지의 원기마저도 부식시켜나갔다. 두한위가 의외로 완강히 버티며 자신의 성명절기를 위협하자, 장양도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일곱 빛깔 독무 안에 갇힌 두한위가 어떤 상황인지 확인이 어려울 즈음, 갑자기 금빛 찬란한 광망 한줄기가 그 안으로부터 떠올랐다. 뒤이어 두한위가 순양검을 향해 선혈 한 모금을 뿜어냈다. 그러자 혈기가 타오르는 가운데 순양검 아홉 자루가 그의 몸 주위를 감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작열하는 태양을 보는 듯했다.
“부숴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순양검 아홉 자루가 연속으로 발출되었다. 발출되는 개수가 더해질수록 그 위력도 강해지더니, 결국 독무로 고립되었던 공간이 파괴되었다.
“눌러라!”
이번엔 순식간에 아홉 개의 검이 서로 고리 지어 연결되더니 검진을 형성해 장양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일거에 전세가 역전되는 광경이었다. 그곳의 모든 사람은 무도종사급 인물들의 싸움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이처럼 대단한 존재들의 싸움은, 관전하는 것만으로도 스승 열 명 이상의 가르침 못지않은 이점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구경은 구경이고, 그들은 엄연히 이곳에 임무를 수행하러 온 것이다. 강문원이 도주하자 그들도 추격을 시작했다. 강문원의 목을 차지하겠다는 일념은 그들을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그동안 강문원이 끌어들인 실력자들은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천인합일의 고수만도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왕근 및 방진기부터가 천인합일인 데다, 장양이 이끌고 온 전전사 무리에도 천인합일 무사들이 적잖이 포진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대의 악착같은 반격에 대부분 발이 묶인 상태였다.
안락왕부의 문객들은 하나같이 강문원이 갖은 예를 다해 초빙해서 극진히 대접해온 인사들이었다. 그들은 그동안 대접받은 은혜를 제대로 갚을 작정인 모양이었다. 안락왕부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들은 목숨을 걸고 저항하고 있었다. 물론 도중에 빠져나가는 자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소수에 불과했다.
이때 초휴 일행도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잇달아 참살하며 강문원을 뒤쫓고 있었다. 정주해, 종평, 그리고 왕천평이 초휴의 뒤를 바짝 따랐다. 관중형당 측 인원이 무리 중 가장 적긴 했다. 그러나 적을 하나라도 더 베면 그만큼 공이 늘어나는 셈이니, 나중에 동제 조정의 포상도 기대할 수 있을 터였다. 적어도 관중형당에서 받는 봉록보다는 많지 않겠는가.
그러나 뒤따르는 내내, 초휴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왕천평의 눈빛이 적의와 원한으로 번들거리는 꼴이 심상치가 않았다. 어제 초휴에게 당한 수모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혼란한 기회를 틈타, 초휴에게 기습을 해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위험한 잡생각은 떨쳐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초휴를 기습한다는 건 여러모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었다. 어제만 해도 일 합도 못 버티고 초휴에게 제압당했는데, 오늘이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는가. 게다가 기습이 성공한다 해도 정주해와 종평이 함께 있는 게 문제였다, 그들까지 죽여 입을 막지 않는 한, 평생 관중형당으로 돌아가는 건 꿈도 꾸지 못할 터였다. 죽을 때까지 관중형당의 추살 위협에 시달리게 될 게 뻔했다.
관중형당에서 초휴가 가진 상징적인 위상 때문에라도 더욱 그랬다. 막말로 어제 왕천평이 초휴의 손에 죽었더라도, 조직은 초휴를 엄히 벌하는 선에서 그쳤을 것이다. 초휴에 비해 이처럼 하찮은 취급을 받는 그가, 임무 현장에서 초휴를 기습해 죽게 만든다면 이건 절대 용서받지 못할 중죄였다.
제아무리 관중형당이 모든 일원을 대함에 있어 절대적인 공평과 공정의 기치를 표방한다지만, 개개인의 실질적인 위상은 엄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초휴와 왕천평의 경우에는 천양지차라고 봐야 할 터였다.
왕천평이 머릿속이 그런 생각들로 어수선하여 집중을 못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온몸이 지독한 마기로 휩싸인 마도 측 무사 십여 명이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 바람에 추격에 여념 없던 현장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며 긴장감이 짙게 깔렸다.
사실 강문원이 마도와 결탁을 했네, 어쩌네 운운했던 건, 장양이 아무렇게나 지껄여댄 구실에 불과했다. 못난 황자들 간의 지저분한 암투 때문에 목을 자르게 되었노라고 떠들어댈 일이 못 되었으니까.
해서 다들 강문원이 진짜로 마도와 결탁한 줄만 알고 그의 간 크기에 탄복을 금치 못했다. 게다가 지금 강문원과 한 패거리로 추정되는 마도 무리가 나타났기로서니, 새삼스러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마도 무리는 강문원의 도주를 도우려고도, 추격조를 막거나 공격하려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목적과는 전혀 상관없이 무조건 달려들 태세를 갖추는 게 아닌가. 하필 그들이 노리는 방향은 초휴 일행 쪽이었다.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초휴가 크게 소리쳤다.
“뒤로 물러서!”
이 외침과 함께 초휴가 몸을 피하자, 정주해와 종평도 잠깐 당황하다가 즉시 길 양옆으로 물러섰다. 마도 무사들은 최약체가 외강경일 정도로 실력이 고강했고, 대오를 이끄는 자는 천인합일의 고수였다. 저들과 섣불리 맞붙었다가 무슨 낭패를 당할지 모르니, 초휴가 잠시 물러나게 한 것은 나름 현명한 조치였다. 하지만 마도 측은 마치 포위를 뚫기라도 하려는 양, 초휴 등이 물러난 뒤에도 앞만 보며 거침없이 돌진해왔다.
그리고 초휴와 정주해, 종평이 잽싸게 물러나 길을 터준 것과는 달리, 잡생각을 하느라 멍청히 서 있던 왕천평은 그만 동작이 한발 늦고 말았다. 마도 측 수장인 천인합일 고수가 빛의 속도로 왕천평을 스쳐 지나는 순간이었다! 그가 일장을 내지르자 열 장 남짓 크기의 거대한 마수(魔手)가 무방비 상태로 있던 왕천평을 그대로 날려버리는 게 아닌가. 충격으로 오장육부가 파열된 왕천평은 즉사하고 말았다.
그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조차 영문을 몰랐다. 그 마도 무사는 초휴 곁을 지날 때도, 그리고 정주해와 종평의 곁을 지날 때도 출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하필 왕천평의 곁을 지날 때 갑자기 일장을 날려 그를 죽인단 말인가. 그것도 마치 눈 앞에서 윙윙거리며 짜증 나게 하는 파리 한 마리를 때려죽이듯, 무지막지한 손짓 한 방으로 말이다.
일장으로 왕천평의 숨통을 끊은 마도 무사는 돌진하던 여세를 몰아, 저 멀리 도주해 사라졌다. 마치 멧돼지나 들소 무리가 떼를 지어 질주하듯, 초휴 등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획 하니 지나가 버린 것이다. 정주해와 종평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약속이나 한 듯, 초휴를 쳐다보았다. 의혹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왕천평이 초휴의 등에 칼을 꽂으려다, 망신살이 제대로 뻗친 게 바로 어제였다. 그런데 오늘 뜬금없이 길거리에서 비명횡사를 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공교로운 우연이 있을까. 그들의 의혹에 찬 시선이 초휴를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초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왜 그런 눈들로 나를 쳐다보시오? 방금 내가 그대들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소리치지 않았던가? 왕천평 그 머저리가 무슨 생각에 빠져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지. 좌우간 굼뜨게 굴다가 그만 저자들의 길을 가로막은 형국이 되어 숨통이 끊어진 걸, 나더러 어쩌라는 거요? 생사는 하늘에 달렸다지 않소. 다 왕천평의 팔자가 사나운 탓인 게지.”
초휴의 태연한 응수에 정주해와 종평은 말문이 막혔다.
이게 팔자가 사나운 탓이라고?
하긴 어설픈 해석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렇게밖에 설명할 길이 없기는 했다. 현장의 수많은 이들이 왕천평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똑똑이 지켜보았다.
게다가 정주해와 종평은 남의 일에 신경 쓰는 성격도 아니고, 평소 왕천평에 대해 껄끄러운 감정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해서 그의 죽음을 계속 신경 쓰는 대신, 다시 안락왕부 무리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같이 붙어있지 말고 흩어져 다닙시다. 우리는 제삼자로서 포상이나 챙기자고 온 것이니, 안락왕부 사람들이 도주에 성공해도 우리와는 무관한 일이오. 그러니 무리하지는 마시구려.”
초휴의 말에 정주해와 종평도 수긍의 뜻을 표했다. 초휴가 굳이 그런 말을 안 했어도, 그들은 그리했을 터였다. 조금 전처럼 또 상대편 고수들이 불쑥 튀어나와 파리 잡듯, 살초를 휘두른다면 왕천평과 같은 꼴밖에 더 나겠는가. 이리하여 일행과 헤어진 초휴는 이미 봐둔 목표가 있기라도 한 듯, 어느 한 방향을 주시하며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