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목숨을 걸다
여러 세력과 연계하는 노력 끝에 드디어 동제 황실의 손을 빌려 강문원을 제거할 기회가 생겼건만, 초휴가 어찌 그를 쉽게 보내줄 수 있겠는가. 다만 초휴가 간과한 부분이 하나 있긴 했다. 지난 세월 강문원 혈통이 쌓아온 저력은 실로 대단했는데, 그 저력은 단순히 수련자원과 같은 물질적인 게 아니라 바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강호의 추악한 일면 중 하나가 자신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한다는 점이었다.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정도 종문 이라 해도 그랬다. 말끝마다 인의 도덕을 부르짖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툭하면 이를 헌신짝 취급하는 게 현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넓은 법이다. 그런 세력들 중에도 충효와 인의를 목숨처럼 중시하는 이들이 있었다. 예컨대 아까 두한위가 그러했고, 지금 한동락도 그랬다. 이런 충신들의 숫자가 너무 적은 건 애석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 강문원이 처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이런 자들이 좀 더 있다 한들 대세를 바꾸는 것은 무리일 터였다. 아무래도 오늘부로 안락왕부는 지하 세계로 이전할 것으로 보였다.
기백이 흠칫 놀란 눈빛으로 초휴를 돌아보았다. 지난번 취룡각에서도 이 둘은 겨뤄본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초휴의 실력이 고강한 건 알았지만, 이처럼 신법의 속도가 가공할 만치 빠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쾌만구자결 가운데 극강의 속도를 특장점으로 내세우는 내박인은 내력 소모가 지대했다. 해서 과도한 장시간 시전이 어렵다는 단점을 제외하면, 단거리 습격에 있어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무공이었다. 호흡 몇 차례 만에 기백을 따라잡은 초휴가 일도를 내리쳤다. 혈련신강을 품은 광기 어린 마기가 엄청난 위세를 발하며 기백을 덮쳤다.
강문원을 등에 업은 기백은 물러날 방법도 없거니와, 감히 물러날 수도 없었다. 그저 제자리에서 전신의 강기를 터뜨려 상대의 일격을 막아내니, 엄청난 굉음과 함께 입가에 선혈이 흘러내렸다.
별수 없이 강문원을 내려놓은 기백이 그를 돌아보며 결연히 말했다.
“지난날 왕야께서 구해주지 않으셨다면 이 늙은이는 진작 썩어 문드러졌을 몸입니다. 아무래도 오늘이 왕야를 뵙는 마지막 날인 듯싶습니다. 속히 서초와 북연으로 피하시어 후일을 도모하십시오. 부디 내내 자중하시고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백이 수인을 취한 순간, 그의 기세가 무섭게 폭등하더니 단숨에 외강경에서 삼화취정으로, 다시 오기조원으로 뛰어오르더니 결국 천인합일에 이르렀다. 이는 기백이 최전성기였던 시절의 실력인 셈이었다. 무도종사의 경지를 뚫기 전에 문제가 생기지만 않았어도 지금의 실력이 결코 두한위에 뒤지지는 않을 터였다.
이때 기백의 낯빛은 섬찟할 정도로 창백하게 변했다. 심지어 경맥을 흐르는 진기가 줄기마다 요동치는 모습이, 사악하고도 괴기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가 무도종사의 경지를 뚫는 데 실패했을 당시, 그의 육신은 썩어 문드러졌었다. 강호의 신의라 불리는 ‘기사염라’ 풍불평이 급히 손을 쓴 덕에, 가까스로 소생하여 외강경이나마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몸을 하고서 오래도록 봉인되어 있던 천인합일의 실력을 억지로 발현시키려 하고 있으니, 이것은 자살 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천우신조로 초휴를 격퇴한다 해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경맥이 파열되어 죽게 되는 건 필연일 터였다. 이처럼 마지막 남은 화력을 찬란히 터뜨려낸 그는 초휴를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갔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지면에 수 장 크기의 구덩이가 팰 정도로 강력한 화력이었다.
얼핏 봐도 마른 고목에 불을 불인 것과 다름없는 기백의 몸이 화르르 타올랐다. 머지않아 사그라들어 한 줌의 재로 변할 성싶었다. 어차피 오래 버티지 못할 바에야 초휴를 죽이는 데 아낌없이 최후의 전력을 토해낼 작정이었다. 죽이는 대신 중상만 입혀도 초휴가 강문원을 공격하는 걸 저지 하는 건 가능할 터이니, 그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강문원은 뒤에서 이를 악물고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결국 혼자 도주하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강문원이 거둬들였던 수많은 문객과 객경 가운데 기백이야말로 진정한 충복이었다. 젊은 시절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주종관계이자 좋은 벗이기도 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강문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했다. 자신을 위해 끝까지 목숨을 던져 싸우려는 기백의 희생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때 기백을 바라보던 초휴의 눈동자가 살벌하게 빛났다. 마지막 남은 저력을 불살라낸 기백의 막강한 위세가, 육 선생이나 천죄 타주와 같은 천인합일 고수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육신의 힘이 다소 달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 부족한 부분은 어느덧 천지의 힘으로 메워지고 있었다. 그의 강기가 천지 사이로 융합되어 들어간 순간, 한 줄기 천지의 힘이 그 강기에 실리면서 온 천하를 진동시킬 엄청난 포효가 울려 퍼졌다.
이에 초휴가 양손으로 결연히 칼을 움켜잡자, 순식간에 도신 전체가 아비지옥에서 쏟아져나온 죽음의 마기로 휩싸였다. 지금 기백 정도의 고수와 맞서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아비도삼도 중, 제 이도부터 사용해 속전속결로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기백의 막강한 강기가 실린 권세(拳勢)와 초휴의 마기 품은 도강이 정면으로 충돌하자,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충돌음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핏빛 도강이 산산이 파괴되며 초휴의 몸이 연신 뒤로 밀려났다.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수 척 크기의 구덩이가 파일 만큼 충격이 전신에 전달되었다.
이처럼 연달아 십여 보 남짓 밀려나서야, 가까스로 멈춰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충격을 못 견디고 양손에 경련이 일자, 수중의 천마무마저 떨리고 있었다. 이건 완전히 힘의 승부에서 패한 셈이었다. 초휴의 무예가 제아무리 고강해도 압도적인 힘의 격차는 좀처럼 극복하기 힘들었다. 물론 나쁜 조짐만 보인 건 아니었다. 지난날 천인합일 경지를 상대했을 때보다 확연히 성장했음은 자신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예컨대 과거에 독고인으로 천죄 타주의 일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던 건, 자신의 온 힘을 쏟아낸 결과였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지금 초휴에게는 여전히 한 번 더 싸울 힘이 남아있었다. 기백은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다시금 양손을 결인하더니 산을 통째로 동강 낼 기세로 초휴를 내리쳤다. 아까의 일권이 비록 초휴를 십여 보나 날려버리긴 했으나, 정작 기백 자신의 오른팔도 온통 선혈이 낭자한 것이, 아무래도 머지않아 제 기능을 잃을듯 보였다. 기백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이다!
기백의 두 번째 권인(拳印)은 위력 면에서 초휴의 대금강륜인을 철저히 압도하고도 남았다. 권세가 미치는 곳마다 연신 고막이 터질듯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고, 급기야 초휴 주변의 모든 공간이 봉쇄되면서 피하거나 물러날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상대의 권인이 끊임없이 기세를 더해가자 초휴 역시 공간을 지배하는 지권인으로 맞섰다. 그러자 그의 전신에 어려있던 강기가 서서히 응집되는가 싶더니, 기백을 맞바로 뒤덮었다.
지권인은 내력의 소모가 지대한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공수를 겸비하는 그 위력은 다른 어떤 무공에도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기백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한데다, 필사의 의지로 달려드는 바람에, 지권인의 효과는 오래 가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다시금 기백의 권세 앞에 노출된 초휴는 다급히 독고인을 취해 전신의 강기를 철옹성처럼 굳건히 응집시켰다.
하지만 잇달아 두 가지 인법을 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백의 막강한 권인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독고인으로 쳐놓았던 강기 방어막이 단숨에 파괴된 데 이어서, 그의 발마저도 지면 아래로 쑥 파고드는가 싶더니, 몸 전체가 뒤로 밀려났다. 그 바람에 지면에는 양 갈래의 발 흔적이 길게 남고 말았다.
초휴의 입가에는 연신 선혈이 흘러내렸고, 뒤흔들린 내장 때문에 통증까지 뒤따랐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슬그머니 미소가 그려졌다. 기백 쪽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그의 양팔이 축 늘어져서 어깨에 간신히 붙어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잇따라 막강한 힘을 발출한 후 쇠잔할 대로 쇠잔해진 그의 노구는 결국 팔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기진맥진한 기백은 자기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이로써 최선을 다했으니 여한은 없지만…….’
그는 초휴의 실력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고강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백이 전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초휴는 그저 내장이 뒤흔들리는 충격을 받는 데 그쳤을 뿐, 여전히 이를 막아내지 않았느냔 말이다.
만약 그가 전성기 때의 실력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초휴를 반드시 격퇴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으로서는 ‘설령’이나 ‘만약’과 같은 가정의 말들이 죄다 부질없다는 사실이었다. 당장 그에게는 잔혹할 만큼 생생한 현실만이 남았을 뿐이니까. 그저 초휴를 잠시나마 막아내어, 강문원의 살길을 조금이라도 더 지속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따름이었다.
팔을 잃은 게 대수이겠는가. 그에게는 아직도 다리가 두 개나 남아있으니…….
기백은 온몸의 힘을 자신의 양다리로 쏟아부어서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러자 발밑의 지면이 거북이 등가죽처럼 쩍쩍 갈라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탄환이 발사되듯 그의 몸이 허공으로 격발되었다.
그의 몸이 허공에 머물렀던 것도 잠시, 이내 그의 한쪽 다리가 공격을 시작했다. 초휴를 향해 다리를 내지를 때마다 엄청난 폭발음이 동반되었다. 이처럼 그의 마지막 공격은 실로 집요했다. 다만 애석하게도 기백은 남은 심지가 얼마 남지 않은 탓에, 이번 공격에서 위력을 충분히 발휘하진 못했다.
무사는 궁극적으로 몸을 수련하는가, 아니면 기를 수련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 문제는 먼 옛날부터 정답이 없었다. 다만 세간에서 상식적으로 통하는 이치에 따르면 육신이 강건할수록 더 많은 진기를 담을 수 있고, 더 강한 힘도 견뎌낼 수 있다고 한다.
해서 무도 입문 시, 대개는 기를 담을 그릇인 육신부터 수련한 다음에야 기를 제어하는 수련에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지금 기백이 발출해낸 힘은 육신이 견뎌낼 수 있는 한도를 초과한 지 오래였다. 천인합일에 해당할 힘을, 실제로는 외강경에 불과한 노쇠한 몸으로 쏟아내고 있었으니,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건 당연한 이치였다.
상대의 다리 공격이 견딜만하다고 판단되자 초휴는 물러서기는커녕, 되레 권인을 취하며 바짝 다가갔다. 이윽고 초휴의 권인에서, 구름 한 점 없는 창공의 작열하는 태양 같은 광채가 눈부신 빛을 발했다. 그러자 만민이 우러를 한없는 광망이 터져 나와 눈을 멀게 했다.
전자결(前字訣), 원만보병인(圓滿寶甁印)!
이는 여태껏 초휴가 익힌 쾌만구자결 공법 가운데, 단연 최강의 위력을 자랑하는 인법이라 할 수 있었다. 해서 무리하게 시전할 경우, 진기의 부작용을 동반할 소지가 있었다.
지난번 신병대회 때도 초휴는 이 무공으로 동개태를 참살했다. 극강의 광채와 함께 무궁무진한 강기가 발출되고 격렬한 진기의 폭발마저 뒤따르자 결국 주변 십여 장 반경 내 지면이 쩍쩍 갈라졌다. 급기야 이미 수리(數里) 밖까지 도망친 강문원마저, 어두워지는 밤하늘이 한낮처럼 밝아진 걸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폭발의 한가운데 우뚝 선 초휴는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방에 자욱이 깔려 있는 연무와 먼지가 흩어지자, 다소 창백해진 얼굴이 드러났다. 하지만 기백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혈무만이 표표히 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초휴의 일격에서 발출된 강력한 힘이 기백의 노구를 송두리째 파괴해서 한 덩어리의 혈무(血霧)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이미 금이 갈 대로 가버린 몸뚱이가 극강의 힘과 정면으로 충돌한 결과였다.
초휴는 안타까운 마음에 탄식했다.
“망할 영감 같으니라고…….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가 있다는 말이오!”
기백 정도의 실력이라면 외강경을 초과하는 힘을 쓰지만 않는다면, 앞으로 수십년도 너끈히 살 수 있을 터. 어쩌면 강문원보다 더 길게 살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두광위도, 한동락도, 그리고 기백마저도 기꺼이 남을 위한 희생을 선택했다. 그런 선택을 하는 심리는, 초휴로서는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목숨은 부모로부터 받은 소중한 것이다. 따라서 본인 말고는 그 어떤 제삼자를 위해서도 함부로 내놓아서는 안 된다. 기백 등의 눈물겨운 헌신과 충심이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건 사실이나, 초휴는 평생토록 그들의 이타적 선택을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