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84)
284화 추동무(秋冬茂)
그 무렵 초효덕도 상양 쪽 소식을 갖고 돌아왔다. 정주해와 종평은 초휴와 초효덕이 모종의 관계를 맺은 사이라는 걸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눈치 하나는 빨라서, 초효덕이 초휴에게 뭔가 긴요하게 할 말이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자, 알아서 자리를 비켜 주었다.
상양군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초효덕은 초휴의 편에 서기로 한 결정이 옳았음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구분당의 신물을 갖고 막천림을 찾아갔더니 그는 군말 없이 추동무의 뒷조사에 착수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상양 막가의 힘이 동제 조정 못지않다는 사실도 체감했다. 크고 작은 현지 무림 세력들, 심지어 낭인 무사들마저도 기꺼이 상양 막가의 체면을 세워주려 했고, 막가의 말 한마디면 죽은 시늉이라도 해 보였으니까.
막가의 힘을 체감하니, 그 힘이 자신에게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될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급기야 그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을 정도였다.
물론 구분당의 힘을 공짜로 막 끌어다 쓸 수는 없다. 자기가 혜택받은 만큼 조직에 헌신해야 하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혈혈단신 혼자서 헤쳐나가야 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가 아니겠는가.
“추동무 쪽은 뭔가 소득이 있었는가?”
“물론이죠. 과연 문제가 있는 자가 맞더군요. 그는 한 달 전까지, 아니 자그마치 일년간 상양군을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태자는 추진성이 자신의 영입 제안을 뿌리치자, 추동무에게 사람을 보내어 뭔가를 지시했습니다. 그때부터 추동무는 추진성에게 보낼 자양제 종류를 적잖이 사들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게 한 달 전 일이고요. 추동무가 예전에도 이런 행동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는 추진성에게 잘 보이려는 고육지책이었죠. 이번에는 극비리에 이런 것들을 모아들인 겁니다.”
초휴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번뜩였다. 지금까지의 전개는 자신이 추측했던 바와 다를 게 없었다. 태자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머리통을 장식으로만 달고 다니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실 추진성이 이황자 편에 섰다고 해서 큰 문제는 아니었다. 대신 추진성의 아들을 영입하면 그만이니까. 독은 추동무가 탄 게 분명했다. 그가 추진성에게 선물로 보낸 자양제에 칠월해당의 독이 섞여 있었으리라고 초휴는 확신했다.
웬만한 무사들 같았으면 평범한 자양제들은 성에도 안 찼을 것이다. 하지만 추진성은 워낙 천성이 소박하고 검소했다. 비마목장의 장주이자 천인합일 고수라는 사회적 지위와는 걸맞지 않게 늘 박주산채(薄酒山菜)를 즐기기도 했다. 그런 인물이니 추동무가 보내온 것들을 조금이라도 낭비할세라 다 챙겨 먹었고, 급기야 가족들과도 나눠 먹었을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도중에 강문원이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추동녕은 칠월해당으로 독살당했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중독 증상이 없는 대신 주화입마와 상당히 흡사한 증상을 보이니, 누가 봐도 진기의 부작용으로 죽은 양 비쳤을 것이다.
이리되면 추진성에게 남은 아들이라고는 추동무 하나뿐이다. 결국, 추진성의 모든 지위와 재산이 추동무에게 넘어가는 건 정해진 순서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복형을 독살한 추동무의 약점을 손에 쥔 태자는, 그를 협박하며 두고두고 많은 일을 도모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어가던 태자의 계획은 강문원의 개입으로 인해 좌초되고 추진성은 급사했다. 이로써 추동무의 이용 가치도 뚝 떨어졌다. 추동무의 실력이 조금만 더 강했어도 동제 조정은 비마목장의 관리를 그에게 맡기는 선택을 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선천경에도 못 미쳤다. 그런 그에게 일국의 군마 양성을 책임지는 비마목장을 탐낼 자격이 어디 있단 말인가.
조정 차원에서 약간의 부귀영화를 보장해 주며, 그가 평생 안정되게 살 수 있도록 배려는 하겠지만, 그걸로 끝일 게 뻔했다.
결국, 태자도 추동무가 필요치 않게 될 것이나, 지금 초휴에게는 그를 요긴하게 사용할 여지가 남아있었다. 추진성의 산장을 이미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무공비급은 고사하고 진귀한 수련자원 및 그 외 귀중품들을 보관해두었을 만한 장소는 전혀 찾지 못했다.
그런 것들을 육 선생도 챙겨가지 않았고 추진성도 몸에 지니지 않았으니 남는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어딘가에 숨겨둔 것이다.
추동무가 비록 사생아라고는 하나, 사생아도 엄연히 아들이다. 게다가 그의 실력으로는 추진성에게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못할 터. 해서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거나 퇴로를 열어두기 위해서라도, 추진성이 이런 것들의 존재를 추동무에게만 말해 두었을 가능성은 매우 컸다.
얼마 전 정주해가 산장을 조사할 당시 추동무가 보였던 예민한 반응 또한 그 가능성에 힘을 보태는 게 아니겠는가.
“그럼 무슨 증거라도 찾았는가?”
“증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태자가 추동무에게 보냈던 사람은 고작 한 차례 모습을 보이고는 그걸로 끝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추동무의 일 처리가 얼마나 주도면밀한지 아무것도 남겨둔 게 없더군요. 주변이 아주 깔끔했어요. 심지어 칠월해당도 태자가 그에게 건넨 게 틀림없습니다. 추동무가 칠월해당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남겼을 만한 흔적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초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직접 나서야 할 때가 온 듯했다.
추진성의 비급은 초휴가 오래도록 눈독을 들여온 것이니, 기껏 어렵사리 찾아내서는 다른 이와 공유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에 그는 곧장 정주해 등을 불러서 말했다.
“여러분, 이제 이곳 임무도 마무리되었으니, 관중형당으로 복귀하여 임무 완수를 보고하시구려.”
‘여러분’이라고? ‘우리 함께’가 아니고?
정주해가 궁금함을 참지 못해 물었다.
“초 형께서는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여기 임무가 끝났다고는 해도 완전무결하게 마무리하려니, 처리할 게 좀 남아서 그럽니다. 여러분까지 나설 것도 없고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 먼저들 돌아가시구려. 나도 일이 끝나면 곧 뒤따르겠소.”
그제야 정주해는 초휴의 속내를 눈치챘다. 관중형당의 이름을 빌려서 사적으로 은밀하게 처리할 일이 있는 게 아니겠는가. 떳떳한 일이라면 혼자 남아서까지 처리할 필요도 없을 터.
하지만 정주해는 왕천평처럼 초휴와 맞설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무릇 세상사란 좋은 게 좋은 거란 생각을 한 그는 선심이라도 쓰듯 호쾌하게 답했다.
“그럽시다. 먼저 돌아가서 초 형을 기다리고 있겠소이다. 당주님께 임무에 대한 보고도 똑바로 잘 할 테니 염려 마시구려. 물론 초 형의 공로를 감히 가로채는 일은 없을 거요.”
물론 그들 모두가 함께 복귀하면 관사우 에게 보고할 이는 당연히 초휴일 터였다. 하지만 초휴가 나중에 오겠다니, 관사우는 먼저 도착한 이들에게 임무를 잘 수행했는지 물어볼 게 뻔했다. 그들은 초휴에게 아무런 악감정도 없으니, 관사우에게도 사실 그대로 고할 뿐, 치사하게 초휴를 음해하는 시도를 할 리가 없었다.
“정 형 등의 인품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소. 그럼 잠시 작별을 고하도록 합시다.”
말을 마친 초휴는 추동무를 만나러 추진성의 산장으로 향했다. 산장은 여전히 용기금군에 의해 봉쇄된 상태였다. 강문원과 연계된 일은 비록 해결되었으나, 차후에 비마목장이 어찌 처리될지 결정이 나지 않은지라, 아직 봉쇄조치가 풀리지 않았다.
초휴가 다가오자 입구를 지키던 용기금군이 다소곳이 인사를 건넸다.
“초 대인 오셨습니까.”
이 용기금군도 초휴가 강문원 추살 작전에서 큰 공을 세웠음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자기 군영의 참장 방진기와도 사이가 나빠 보이진 않는 터라, 이렇듯 공손히 초휴를 대하는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초휴가 살짝 미간에 힘을 주었다.
“추동무 등은 어디로 갔소?”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여기서 영정을 지켰는데, 강문원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강동오협과 함께 야음을 틈타 가 버렸거든요.”
“가 버렸다고?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대충 방향은 서쪽이지 싶습니다. 서둘러 서쪽 묵류성(墨琉城)으로 가자는 말을 언뜻 들은 것 같기도 하고요.”
‘목적지가 묵류성이라고?’
실로 뜬금없었다. 추동무가 거기엔 왜 간단 말인가.
묵류성은 사실 태반이 광산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전체가 얼음처럼 차갑고, 진귀한 장식물로도 쓰이는 ‘묵류리(墨琉璃)’라는 기이한 보석의 유명 산지였다.
묵류리는 진법 설치도 가능한 물건이라, 단가가 만만치 않은 건 당연했다. 초휴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추동무는 자기가 살던 상양군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동제 대량성(大梁城)으로 가서 태자에게 의탁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묵류성이라니?
그러나 초휴는 이내 생각을 바꿨다. 태자에게 의탁하기 위해 묵류성으로 갔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제의 황자들은 동제 각지에 자기만의 봉토를 보유하고 있다. 초휴의 기억이 맞는다면 묵류성은 태자의 여러 봉토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상양군은 원래 추진성이 추동무를 숨겨 키우기 위해 써먹었던 곳이니, 돌아가기 싫을 법도 했다. 대량성도 얼마 전 태자가 황제에게 혼쭐이 난 곳으로, 지금쯤 거기서 두문불출하며 근신 중이기 쉬웠다. 그곳으로 찾아간들, 자기 살아남기만도 바쁠 태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만나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묵류성은 태자의 봉토이자 값진 묵류리의 산지로서 태자에게 중요한 곳일 수밖에 없다. 그곳에 태자의 역량도 적잖이 축적되어 있으리라는 추론도 가능했다. 추동무가 그곳으로 간다면 신변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있을 테고, 태자가 살길을 마련해 줄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추동무는 위기를 감지하는 즉시, 그곳으로 몸을 피하는 영민함을 보였다. 하지만 초휴가 순순히 그를 놔줄 리는 만무했다. 제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다 한들 초휴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터!
한편, 그 무렵 묵류성으로 가는 길.
강동오협은 여전히 추동무를 보호하기 위해 동행 중이었다. 아마 묵류성까지 그를 데려다주는 이번 여정이 그들의 마지막 호위 길이 될 터였다. 애초에 그들이 여기까지 왔던 건 은인의 마지막 혈육을 호위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의 은인인 추진성의 복수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동제 조정에서 안락왕이 마도 무리와 결탁하여 추진성을 죽였음을 밝혔고, 그 흉수의 목도 이미 날아갔으니, 복수할 필요는 없어진 셈이었다. 따라서 추동무을 무사히 묵류성에 데려다 주면 그길로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묵류성으로 가는 길 내내, 추동무는 누가 뒤에서 쫓아오기라도 하는 양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강문원과 태자가 연계되어있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관중형당 무리가 태자를 조사하는가 싶더니, 단숨에 강문원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관중형당의 수사망이 강문원한테 뻗쳤다면 자신인들 피해갈 리가 없지 않은가?
추동무는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조사단의 우두머리인 초휴를 볼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초휴의 앞에만 가면 온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자신의 속마음을 죄다 들킨 것만 같아 절로 오금이 저렸다.
해서 안락왕부가 몰락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태자 측과 연락을 취했다. 그쪽의 지침인즉슨, 일단 대량성 대신 묵류성에 가 있으면 그다음 일은 태자가 알아서 조치해 놓을 거라고 했다.
지금 자기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마당에, 태자가 추동무까지 챙길 정신이 어디에 있겠는가. 해서 일단 그를 묵류성에 데려다 놓은 다음 찬찬히 고민할 작정인 듯했다.
일행이 묵묵히 걸음을 재촉하던 와중에 오천동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불쑥 물었다.
“그런데 추 공자, 이처럼 다급히 묵류성으로 가는 이유가 무엇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