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드디어 터진 살기
초휴가 부채질한 강동오협 간의 갈등은 갈수록 그 수위를 더해갔다. 뒤에 숨어있던 추동무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동제 땅에서 강동오협의 명성이 그리 크다고는 못해도, 그 명성은 하나같이 긍정적인 것들 일색이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강동오협 가운데 한 명이라도 무도종사급 경지에 오른다면, 그리고 거기에 강동오협이 그간 축적해온 인맥까지 더해진다면 ‘동제의 취의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거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오늘 초휴의 말 몇 마디로 파경의 위기를 맞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그들이 제각기 내뱉는 말이라는 게 서로의 심장을 사정없이 파고드는 날 선 비수와도 같았다. 이제 이들의 우정에 생긴 이 극심한 균열을 메꿀 방법은 없어 보였다. 이때 여동이 두 눈을 질끈 감더니 무슨 각오라도 선 듯, 결연한 어조로 정불휘에게 말했다.
“형님, 나 여동의 목숨은 형님이 구해주신 것이니 형님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청룡회 살수로 살던 시절, 단 하루도 내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습니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이 살인병기로서 목숨만 이어가던 제가 형님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패검산장을 멸문시킨 것은 청룡회의 소행이 맞습니다. 형님의 선친도 제가 그리 만든 게 맞고요. 이 점에 대해선 초휴의 말이 모두 사실입니다. 하지만 과거지사를 되돌릴 방법이 없으니, 이 더러운 목숨으로 그 빚을 갚게 해 주십시오. 이참에 형님 앞에 놓인 이 장애물부터 깔끔히 치운 다음 자진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세에서도 저는 여전히 당신을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여동의 피혈검에서 몽롱한 핏빛 광망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이 어찌나 짙었던지 그의 상반신이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여동은 자신의 정혈을 불살라 최후의 일전을 펼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정작 경악할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중인들은 그가 당연히 초휴를 공격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여동은 뜻밖에도 검을 동상의에게 겨누며 달려들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가 말한 장애물이 초휴가 아니라 동상의였음을 알아차렸다. 여동은 원래 천성이 극단적이고 과격하며 집요했다. 그가 일단 결심을 하면 정불휘조차도 그를 저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한 셈이다.
지금 여동이 내린 결론은 이랬다. 자신은 내응은 고사하고, 이미 죽기를 각오한 입장이다. 오천동과 류경경의 실력이라면 설령 내응을 해도 정불휘에게 큰 위협은 될 수 없다. 그리고 어차피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강동오협을 떠날 가능성이 큰 자들이다.
그렇다면 유일한 불씨는 동상의 하나뿐이다. 그의 야심이 초휴에 의해 간파된 이상, 정불휘에게 큰 위협을 가할 게 분명하다. 예전에도 그는 이미 수차례나 자신의 야심과 현실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그러니 반드시 동상의를 죽여없애야 했다. 설령 동상의와 생사결을 벌이다가 자신이 져서 죽더라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니, 그나마 덜 부끄럽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요행히 이기고 살아남은 다음 자진하더라도 형님을 위해 뭔가는 하고 가는 셈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묵은 빚을 조금이라도 청산할 수 있으리라는 게 여동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여동이 동상의를 향해 치고 나가는 걸 본 정불휘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그만둬!”
하지만 지금 여동은 가림막을 해서 양옆이 보이지 않는 경주마와도 같았다. 일단 죽을 각오를 하고 결단을 내린 이상, 어떤 말로도 그의 질주를 막기는 불가능했다.
정불휘는 다급한 나머지 즉각 출수해서 자신의 몸으로 그를 막으려 했다. 여동이 선친을 죽인 흉수인 걸 안 직후에는 여러모로 심경이 복잡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도량이 남다른 그는 냉철하게 상황을 직시했다.
청룡회는 살수조직일 뿐이다. 그곳에 소속된 살수들은 고용주의 손에 들린 칼에 불과하다. 그들의 정체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감정도 허락되지 않는 살인병기가 아닌가. 엄밀히 따져서 정불휘의 진정한 원수는 여동이 아니라 청룡회에 살인을 의뢰한 청부인이다. 그리고 당시 여동이 출수하지 않았어도 청룡회는 다른 살수를 보내어 패검산장을 끝장내고야 말았을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우연의 일치요, 운명의 장난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한 정불휘와는 달리 여동은 여전히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오로지 자기 목숨으로 죄를 씻어내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초휴가 번쩍하고 나타나더니 정불휘의 출수를 막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정 대협, 이제 드디어 본 막이 오르려 하는데, 이 재미난 구경을 중간에 끊으면 곤란하지 않소? 지금 당신의 상대는 나인 것 같은데 말이지.”
“꺼져라!”
초휴에게 일갈하는 정불휘의 두 눈이 살기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지금까지 초휴와 대척점에 섰던 것은 추동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고, 더 나아가 자신의 숭고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초휴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초휴가 독사 같은 세 치 혀를 저주스럽게 놀린 바람에 강동오협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 되어버렸다. 이 다섯 사람이 오늘 모두 살아남는다고 해도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터였다.
게다가 지금도 초휴 때문에 삼제가 이제를 죽이려 들고 있다. 정불휘가 어찌 이것을 그냥 보고 있겠는가. 동상의가 정말로 사특한 생각을 품었어도 그걸 행동으로 옮기지만 않는다면 십년 가까이 이어온 인연을 끊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초휴의 간교한 혀 놀림이 모든 걸 망쳐 놓고 말았다. 형제들 간에 분열의 불씨를 던져 형제 상잔의 비극까지 불러일으킨 초휴를 절대 살려둘 순 없는 일!
경악의 검신에서 엄청난 위력이 강렬한 폭발음을 동반하며 폭풍처럼 몰아쳤다. 태산이 통째로 머리 위에 떨어지는 듯한 위압감도 함께 몰려왔다. 좀 전에 맞붙었을 때야 각자 계산이 따로 있어 술렁술렁 간을 보는 데 그쳤다. 그러나 지금은 양측 모두 제대로 살기가 동한 상태였다. 연극의 본 막이 오르고 정불휘가 끝까지 자신의 계획에 저항하려는 결심을 굳힌 이상, 초휴도 손속에 인정을 남길 이유가 없었다.
사실 초휴는 정불휘의 사람됨을 높이 평가했다. 다만 애석하게도 자신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정불휘와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을 터였다. 해서 어설프게라도 정불휘를 본받거나 흉내 낼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강대강의 결판을 볼 일만 남은 것이다. 초휴는 정불휘의 출수에 맞대응하는 지권인을 내질렀다. 제아무리 위세 등등한 중검일지라도 지권인이 덮어버린 강기망을 뚫고 나가기란 수월치가 않아서, 결국 움직임이 정체되고 말았다.
이와 동시에 초휴 수중의 천마무가 더없이 사악하게 변하더니, 지독한 마기에 시뻘건 혈련신강까지 더해지면서 위력이 급강화된 아비마도로 거듭났다. 그러나 초휴는 막강한 도세의 힘을 동원하진 않았다. 대신 아비마도가 일으킨 마기를 체내로 끌어들여 사악함의 결정체로 승화시킨 도세로 정불휘를 후려갈겼다.
아까 정불휘와 맞붙었을 때, 초휴는 그 싸움을 계기로 자신의 경지를 더욱 탄탄히 다졌을 뿐만 아니라 상대의 무도 노선에 대한 분석도 끝냈다. 사실 정불휘가 터득한 무도는 내공이건 초식이건 간에 평범한 유형에 속했다. 아무래도 패검산장이라는 작은 세력 출신인지라 제대로 된 사부의 가르침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제삼의 세력에 의탁해 보려고 노력한 적도 없었다. 일신에 갖춘 힘이라는 게 죄다 강호 실전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과정에서 저절로 터득된 것이다 보니, 단순하고 평면적이라고나 할 터였다.
그저 힘의 세기로 승부를 보고자 하는 정불휘에 비해 초휴의 무도는 훨씬 복잡다단했다. 한없이 사악한가 하면 더없이 거칠었고, 혹은 더없이 기괴하게 변하기도 했다. 속성이 판이한 무도 간의 다채로운 전환은 실로 종잡기도 어려웠다.
지권인이 포진시킨 강기망이 소멸하지 않고 남아있는 와중에, 혈련신강을 품은 아비마도가 다양한 기세 변화를 시도하며 가세했다. 그 복합적인 공세는 기이하기 그지없어 일종의 신비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정불휘가 한껏 살기를 머금고 수중의 경악에서 찬란한 검망을 터뜨려낸 순간, 검신에 천근의 무게가 실리며 서로 간에 강대강의 충돌이 일었다. 이로 인해 자신의 내력이 얼마나 막대히 소모될지를 뻔히 알면서도 그는 초휴와의 정면 승부를 택한 것이다. 순전히 힘만으로 일궈낸 정불휘의 이번 일격에 지권인의 공간 봉쇄도, 아비마도가 끌어낸 마기도 속속 무너지고 말았다.
결과만 보면 초휴가 몇 수 밀린 듯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 힘의 소모가 막대했던 건 초휴가 아니라 정불휘였다. 그는 마음이 다급해져서 속전속결로 끝낼 작정으로, 일거에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냈다. 저쪽에서도 동상의와 여동 간의 격전이 불꽃을 토하고 있었으니, 그 싸움을 말려야겠다는 생각에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여동은 그야말로 죽자 살자 달려들고 있었다. 정불휘를 위해서 죽이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느껴졌다. 여동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상대의 치명적인 급소만을 노렸고, 그보다 실력이 살짝 앞섰던 동상의는 연신 뒤로 밀려나며 그의 공격을 제대로 받아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여동이야 죽기를 각오한 몸이지만, 동상의는 죽을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까. 마침내 동상의는 수세에 몰린 끝에 냅다 부르짖었다.
“사제, 오매!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거야? 삼제가 미친 거 안 보여? 같이 막아야 할 게 아니냐고!”
오천동과 류경경의 눈가에 번뇌의 빛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게 다일 뿐, 둘 다 동상의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오천동은 그 두 사람 모두에게 원망을 품고 있었기에 움직이지 않았다. 미워서 죽이고 싶은 자들끼리 죽기 살기로 싸우는 광경을 보면서 희열마저 느끼는 중이었으니까. 게다가 여동이 죽기를 각오한 이상, 무모하게 끼어들었다가 미쳐 날뛰는 그의 일검에 자신이 당할 우려도 컸다.
류경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 망신살이 제대로 뻗치고 말았다. 지금 이대로 서 있는 것만도 민망해 죽겠는데, 어설프게 나섰다가 더 큰 망신을 당할지나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물론 이토록 다급한 상황에 체면 따위가 웬 말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그녀의 실력으로는 저들의 싸움을 제대로 뜯어말릴 가능성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머릿속은 오천동보다도 더 바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초휴가 동상의의 속내를 드러내 보이면서, 각자 그간 그에게 품어왔던 의심들 일제히 수면 위로 올라왔다. 구체적인 물증은 없어도 동상의에게 야심이 있다는 건 다들 아는 바였고, 이제 그 의심이 구체화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불휘는 절대 동상의를 제거할 리 없다. 그러니 이참에 여동이 동상의를 해치우게 놔두는 편이, 정불휘를 위해서라도 나을 것 같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정불휘에게 해로울 수 있는 화근을 제거함과 동시에, 이번 사달의 모든 책임을 그에게 짊어지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닌가.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결과적으로 정의를 세우기 위해 의형을 참한 여동은 비운의 영웅으로 거듭날 것이고······.
그야말로 일석삼조가 아니겠는가! 그러면 자신들은 강동사협으로라도 유지되면서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지금 정불휘의 머릿속은 류경경의 구상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어떻게든 동상의를 구하고 여동을 진정 시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가뜩이나 마음이 급해 미칠 것 같은데, 초휴는 되레 더 달려들며 방해를 하고 있으니, 갈길 바쁜 그로서는 자신의 정혈을 태우는 초강수를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경악의 몸체가 화염에 휩싸이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적홍색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