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절망의 순간
정불휘의 검세는 기민하고 날렵하지 못한 대신, 지곤(地坤, 대지를 말함)의 기운을 받아 묵직하고 패도적이었다! 그가 일검을 내리치자 초휴의 마기가 격파된 건 물론이오, 검을 끝까지 내리치기 전에 땅 전체가 뒤흔들리면서 지면에 한 줄기 깊숙한 검흔이 남았다. 이 정도 위력이 사람을 덮쳤으면 형체도 남지 않을 터였다. 다행히 초휴는 내박인을 출수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살심이 제대로 동한 정불휘가 정혈까지 태운 마당에 그를 순순히 보내줄 리가 만무했다. 정불휘가 경악에 대고 선혈 한 모금을 내뿜자 검붉은 선혈이 괴이한 부적 문자와도 같은 형상으로 응집되더니, 천근도 아닌 무려 만근의 힘을 검신에 불어넣었다. 그가 검을 휘두른 순간, 주위의 모든 것이 검세 속으로 빨려들면서 그의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강기 폭풍이 형성되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정불휘가 숨겨온 비장의 무기이자, 그가 가장 시전을 꺼리는 무예이기도 한 마도의 비법, ‘곤자검결(坤字劍訣)’이 세상에 위용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정불휘가 터득한 무공은 그 출처와 이력이 잡다해서 복잡했다. 그중 주로 수련한 건 패검산장 대대로 내려오는 단순한 내공과 검법이었다. 비록 평범한 것이긴 하나 그는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수련하여 지금의 경지까지 이르렀고, 심지어 자기보다 상승의 무공을 익힌 초휴와도 대등한 대결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불휘가 이런 기초적인 무공 외에는 내세울 만한 재주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이 곤자검결도 그가 가진 비장의 무기 중 하나였다. 정불휘는 오랜 세월 협행을 하면서 적잖은 사마외도 들을 처단했고, 그들에게서 강력한 마도 비급도 대거 노획했다. 하지만 그런 무공의 대부분이 사악하고 비정상적인 노선을 지향한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은 수련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추구해온 무도와 너무나도 방향이 달라서, 수련하고 싶어도 어려운 탓도 있었지만 말이다.
곤자검결은 지난날 강호를 진동시킨 바 있는 마도 무공으로 팔급 마전(魔典)의 일부였다. 정혈만 있으면 운용할 수 있어서 별달리 대가를 치를 필요도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그가 유일하게 수련한 마공이자,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지막 패로서 쓸 수 있는 구명줄이라고 해야 할 터였다. 더없이 거칠고 맹렬한 경악의 기세에 곤자검결까지 더해지자, 강기 폭풍이 끊임없이 휘몰아치며 사방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초휴는 이에 휩쓸리지 않고 버티려고 내박인을 시전했으나, 주위의 강기가 그를 가만두지 않고 계속 거칠게 끌어당겼다.
그 강기 폭풍의 진원지에는 살기로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든 정불휘가 우뚝 서 있었다. 평생 그는 딱 한 번, 진심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패검산장이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당시로, 흉수를 죽이려고 미친 듯이 색출에 나선 바 있었다. 물론 그때 정불휘가 죽이고자 했던 건 여동이 아니라 청룡회에 패검산장의 몰살을 의뢰했던 청부인이었다. 그다음으로 죽이고 싶어진 게 지금 눈앞의 초휴다. 강동오협을 처참하게 붕괴시켜놓은 초휴 말이다!
정불휘의 가공할 일검에 맞서기 위해 초휴는 칼을 거두고 수인을 취했다. 그러나 이번 인법은 복잡하기 그지없고, 시전에 소요되는 시간도 길었다. 강기 폭풍을 동반한 상대의 일검이 바로 목전까지 닥친 그제야 인법이 완성되며 위력을 토해내니, 이 세상의 것이라 볼 수 없을 신비로운 빛이 터져 나왔다. 오색의 광채가 초휴의 수중에서 끊임없이 아른대며 이어지니, 마치 바퀴가 돌아가듯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영원히 지속할 것만 같은 빛의 향연이라고 할 만했다!
재자결 · 일륜인 (在字訣 · 日輪印)!
이 인법은 ‘다섯 원기’에 주력하여 사악한 기운을 억누르는 특징을 가졌다.
다섯 원기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를 말한다. 각기 다른 속성과 힘을 가진 원기들이 동시에 발출되면 오행의 힘이 상생상극(相生相克)을 이루어 끊임없이 회전하는 태양의 모습을 방불케 하니, 이게 바로 일륜인이다.
초휴는 쾌만구자결 가운데 이미 대부분의 인법을 터득한 상태였고, 그중 진기 소모가 단연 큰 인법으로는 원만보병인과 일륜인을 꼽았다. 원래 초휴는 지금 일륜인을 시전할 생각이 없었다. 일륜인은 오기조원의 경지에서나 최대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었다.
오기조원의 경지에서는 오행이 막힘없이 순환하고 다섯 원기가 합일을 이루므로 일륜인을 시전해도 전혀 부작용을 겪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상대의 곤자검결은 그 힘이 너무도 막강하여 다른 방법으로는 막아낼 길이 없었다. 이에 필적할 만한 막강한 힘이 초휴에게 필요했고, 그러자면 일륜인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시종일관 정불휘가 견지해온 무도는 신묘한 변화라고는 없이, 극강의 힘으로 모든 걸 제압하는 원리였다. 오색 광채가 끊임없이 회전하며 변화를 일으키는가 싶더니 마침내 정불휘의 일검과 정통으로 충돌한 찰라! 경천동지할 충돌음이 터져 나오며 사방의 무수한 강기들이 동반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주위의 대지가 쩍쩍 갈라지고 깨진 돌조각이 무수히 난무했다.
이처럼 강기 폭풍의 한가운데에 휩싸인 상태에서, 초휴가 발출하는 오행의 힘은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내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저 내사자인의 강력한 힘을 빌려 간신히 몸을 지탱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덧 열 걸음 뒤로 밀려나 있었다. 급기야 두 팔이 떨리더니 혈흔이 가닥가닥 드러나며 팔 전체가 온통 벌겋게 물들었다.
일륜인과 곤자검결이 엄청난 힘으로 충돌하며 발생한 충격을 초휴의 몸이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입에서도 선혈이 흘러내렸으나 초휴는 천연덕스럽게 쓱 닦아내며 폭풍 속 정불휘를 주시했다.
이때 정불휘의 상세가 자기보다 더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생사결을 벌일 때는 먼저 목숨을 거는 자가 패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정불휘는 마음이 앞서고 살의(殺意)에 눈이 뒤집힌 나머지, 자기 몸이 상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 무리수를 두었다. 결과적으로 초휴를 죽이지 못했으니 이제 무모한 수를 던진 대가를 치를 차례였다.
이윽고 자욱한 연무와 강기가 흩어지자 창백해진 얼굴로 흐느적대는 정불휘의 몸이 드러났다. 곤자검결에 팔급의 위력이 있다지만, 이도 역시 정혈까지 태워내는 마도의 비기(秘技)인 지라, 그 부작용이 일륜인보다 훨씬 더 컸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수중의 경악을 치켜들려는 순간, 저쪽에서 여동이 동상의를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는 광경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여동이 체내의 정혈을 모조리 태워서 자신의 몸과 피혈검을 사악한 핏빛으로 물들인 후, 목숨을 건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그리고 그 일격은 동상의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이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지난날 강동오협이 의형제를 맺을 당시, 나이순대로 서열을 결정하긴 했지만 사실 그것은 실력순이기도 했다. 서열이 두 번째인 동상의는 실력도 두 번째이다. 서열 세 번째인 여동보다 한 단계 우위에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동상의가 여동의 손에 죽고 말았다. 동상의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자신에게 닥친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애당초 초휴와 손잡고 저들을 죽이지 않은 걸 후회했다. 하지만 이내 자각하고 뉘우쳤다. 자기가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인지, 형제들의 목숨보다 자신의 목숨과 영달을 더 중히 여기는 쓰레기였던지를 말이다. 여하튼 그에게 두 번의 기회란 없었다. 이게 다 초휴가 주었던 첫 번째 기회를 본인이 제대로 움켜잡지 못한 탓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이제(二弟)!”
비통함을 참지 못한 정불휘가 비통함을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다. 동상의의 야심이 크고 다른 꿍꿍이를 품었던 건 사실이나, 그들은 이미 십년을 한 몸처럼 동고동락했다. 어깨를 나란히 맞대며 적을 처단했고, 서로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었으며 힘겨울 때마다 서로 부축하여 목적을 달성한 것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적의 공격이 아닌 형제간의 피 튀기는 싸움 끝에 죽고 죽이는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정불휘가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처럼 그의 정신이 붕괴한 틈을 노린 초휴는 내박인을 출수해 빛의 속도로 그에게 다가섰다. 곧이어 구중천(九重天)도 뚫을 기세로 치솟는 막강한 마기의 힘을 실어 천마무를 내리쳤다.
정불휘는 비통한 와중에도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이를 막아냈다. 순간 초휴의 눈동자에 잔잔한 물결이 일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심연으로 변했다. 그리고 정불휘의 정신을 그 속으로 끌어당겨 깊숙이 빠뜨린 후, 방금 여동이 동상의를 죽이던 장면을 끊임없이 재현해냈다.
평상시 같았으면 정불휘 정도의 고수에게 이혼대법의 효과는 제한적일 터였다. 아니, 아예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더 컸다. 정불휘의 실력이 초휴보다 우위인 데다가, 초휴가 허점을 찾아낼 수 없을 만큼 심신 수련이 극도로 강화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상의의 죽음은 정불휘에게 막대한 정신적 타격을 안겼다. 그 덕분에 초휴가 쉽사리 그의 정신력을 장악하는 게 가능했다. 사태를 파악한 정불휘는 아차 싶어 벗어나려 애썼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천마무를 휘둘러 그의 중검을 쳐낸 초휴는 이어서 그의 가슴에도 선혈이 낭자한 칼자국을 남겼다. 정불휘의 반응이 조금만 더 늦었어도 칼자국으로 그치지 않고 그의 목숨이 날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칼자국은 깊었고, 이내 마기가 몸속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왈칵 피를 토한 그는 초휴의 공격에 맞서는 한편, 오천동과 류경경에게 소리쳤다.
“사제, 오매! 그간 우리가 함께 강호를 누비고 다녔던 세월을 생각해서라도 지난 은원은 따지지 말기로 하자. 내가 이렇게 부탁하마. 추 공자를 묵류성으로 데려다주고 강동오협의 명성을 지키거라. 차가운 지하에서라도 나는 강동오협이라는 네 글자를 자랑스럽게 기억할 것이다!”
그러자 초휴가 연신 천마무를 내리치면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굳이 이럴 필요까지야 있겠소? 남의 목숨을 지키려고 자기 목숨은 안중에도 없다니, 안타까워 못 보겠군. 그것도 저런 쓰레기 같은 놈 때문에 이처럼 큰 대가를 치르려 하다니, 내가 보기엔 전혀 그럴 가치가 없다니까!”
초휴의 잇따른 공격으로 경악에는 이미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불휘는 끝까지 초휴의 공격을 받아내며 결연함을 잃지 않았다.
“한평생 이익만을 우선하는 세상을 살아내느라 너무 지쳤다. 우리 다섯은 일찍이 은공께 은혜를 입었으니 그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 우리가 은혜를 갚느라 치르는 대가가 은혜 자체의 무게보다 수십 배가 더 무거워도 달라질 건 없다! 협행이란 말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내가 몸소 이를 추구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니, 내 마음에 한 점 부끄러움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초휴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정불휘라는 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병적이리만치 단호하고 편집증적인 태도란······. 하지만 무릇 큰일을 해낸 위인들 가운데 십할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팔할은 저런 특징을 보이긴 했다.
다만 끝까지 버티다가 꺾여버리는 팔할에 비해 요령껏 융통성을 발휘해 살아남은 이할이 더 오래도록 세인들의 기억에 남는 게 문제일 뿐이다. 저러다 죽으면 이도 저도 아닌 개죽음밖에 더 되겠는가. 세상은 그의 이름 석 자를 빠르게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참다못한 초휴도 오천동과 류경경을 향해 차갑게 몇 마디 내질렀다.
“나는 당신들 각자에게 한 번씩 기회를 주었고, 이제 정말로 마지막 기회를 주려 하오. 당장 추동무를 제압하시오. 그리고 내가 정불휘를 죽이면 놈을 내게 넘기시오. 그러면 당신들은 살 수 있음은 물론, 심지어 지금보다 더 잘살게 될 거요. 그렇지 않을 시에는 당신들 모두 지하로 보내줄 테니 거기서 새로 도원결의를 맺든 말든 알아서 하고!”
오천동과 류경경이 번뇌가 가득한 눈길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지금 자신들의 실력으로 정불휘를 구하겠다고 나서봐야 달걀로 바위 깨기 일 것이 뻔하고, 자칫 본인들의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울 터였다. 초휴의 실력은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고, 누가 봐도 삼화취정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었다. 제 목숨 귀한 걸 안다면, 어찌 이런 자에게 섣불리 덤빌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구차하게 초휴의 편을 들어 목숨을 부지하는 선택은 둘 다 어려울 것 같았다. 오천동이 비록 정불휘 등에게 앙심을 품긴 했지만, 그래도 형제처럼 지내온 그간의 세월이 어디 가겠는가. 다른 사람이야 그렇다 쳐도, 정불휘는 실로 많은 것을 가르쳐 준 든든한 큰형님이었다. 그런 심정은 류경경도 다를 바 없었다. 정불휘는 혼인 동맹의 도구로 팔려 가려던 자기를 구해준 은인이다. 초휴의 편을 들면 안락한 삶이 보장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불휘를 배신할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