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0)
초휴는 집안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패를 죄다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능력치는 최대한 드러내되, 무공실력은 살짝 감추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초종광의 물음에 초휴가 대답했다.
“이충이 응혈경의 고수이긴 하나 늙었으니까요. 제 수하가 먼저 이소를 습격해 사로잡고, 옆에서 협박을 했습니다. 이충의 신경은 분산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틈을 노려 해치울 수 있었습니다.”
초휴의 말에는 일부 거짓이 섞여 있었다. 물론 이소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이충의 마음이 다급해졌던 건 사실이지만, 완전히 집중력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목격한 사람도 없고 초종광도 이씨 가문에 대한 이충의 지극한 충성심을 알기 때문에, 초휴의 말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이씨 가문에서 문객으로 있던 응혈경 고수들이 죄다 떠나간 와중에도, 이충만이 남아 삼형제가 다시 집안을 일으킬 수 있도록 충심으로 보좌해 왔다고 했다. 그러니 초휴가 이소를 붙잡고 협박했다면 당연히 마음이 흐트러져 허점을 보이고도 남았을 터였다.
초종광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해산을 명했다. 초종광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초휴가 돌연 말을 걸어왔다.
“아버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또 무엇이냐?”
“아버님, 이 일은 우리 가문에 있어 다시없을 호재입니다. 가장 믿었던 이충이 죽어버렸으니 이씨 문중은 심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졌을 겁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가 쳐들어간다면 사흘 내로 이씨 가문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굳이 아버님까지 나서실 필요도 없습니다. 문객 몇 명만 제게 내어주십시오.”
이 말에 장로들의 눈이 대문짝만하게 커지며 빛났다. 그들도 초휴의 제안에 흥미를 느낀 것이다. 가문에 충성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재산이 늘어나면 자신들에게 떨어질 콩고물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씨 가문을 삼키는 순간, 이 통주부는 초씨와 심씨 둘만의 세상으로 재편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건 아니었다. 초개와 초생의 일그러진 표정이 그들의 속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현재 문중에서 초휴는 충분히 높은 위상을 확보한 상태였다. 애당초 그가 초종광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었다면 승부는 진즉에 끝났을 터였다. 굳이 그들 셋이 가주 자리를 놓고 다툴 필요조차도 없다는 말이다. 거기에 더해 초휴가 가문을 이끌고 이씨 가문을 무너뜨린다면, 그 공로는 자신들이 제아무리 용을 쓴다 해도 따라잡을 수준의 것이 아니다. 초씨 가문의 가주 승계자는 초휴로 확정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초종광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뗐다.
“자꾸 일을 벌이려 들지 말라고 했다. 한 가문을 무너뜨리는 게 애들 장난처럼 간단하고 만만할 거 같으냐. 그 일은 허락할 수 없으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말거라. 명심해. 내 허락 없이는 이씨 가문에 손을 대지 말란 말이다.”
그 말에 장로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초종광이 허락하지 않은 이상, 자신들이 아무리 참견해봐야 입만 아플 게 뻔했다. 반면, 초개와 초생의 눈에는 다시금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초휴는 고개를 숙인 채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표정이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되었는데도 주저하는 부친의 태도를 납득하기 힘들었다.
작금의 상황에서 살짝만 건드려도 백전백승의 승률로 이씨 가문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건 바보천치라도 알 만한 이치다. 그런데 바보천치는커녕 가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건 안 된다고 선언하니 초휴인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까.
초종광은 엄연히 이 가문의 우두머리이고, 그의 명을 가문 사람들은 예외 없이 받들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초휴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리를 뜨자 다른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이때 초종광의 뒤에 있던 진 집사가 한마디 하려다가 탄식을 내뱉는 것으로 하려던 말을 대신했다. 그러자 초종광이 담담히 말했다.
“진 집사,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네. 내가 이씨 가문을 정말 칠 생각이 있었다면 굳이 초휴가 말을 꺼낼 것도 없어. 그 노인네가 죽었을 때 진작 끝내버렸을 거란 말이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하필 연구가 한창 중요한 시기에 접어든 이때, 굳이 그렇게 일을 벌려야하겠느냔 말일세. 더군다나 이씨 가문을 수중에 넣고 나면 심씨 가문의 눈길을 끌게 될 게 뻔하지 않은가 말이네. 나는 그들 뒤에 버티고 있는 창란검종이 영 찜찜하단 말이지. 지금은 그저 조용히 지내는 게 상책이야.”
진 집사는 또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그 물건 때문이로구나. 가주가 진작 그것을 포기했더라면 초씨 가문은 지금보다 족히 열 배는 더 세력을 키울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초종광이 초휴의 제안에 퇴짜를 놓은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는 아들이 너무 빨리 성장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초종광이 아들 사형제에게 바라는 것은 어느 수준 이상의 강한 능력과 실력을 갖추는 게 아니라, 아비가 죽으라고 명하면 죽는 시늉도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순종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바람과는 반대로 초휴 이 녀석은 그 좋은 능력을 사고치는 데 쓰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부친이자 가주인 자신에게 맞서기까지 하려 들었다. 이것은 초종광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초휴가 본가를 나서 자신의 처소로 돌아오자 마활이 물었다.
“이씨 가문을 치기로 결정이 난 건가?”
하지만 초휴의 얼굴은 어두웠다.
“아니요. 내 ‘부친’이라는 사람한테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러자 마활의 얼굴은 온통 물음표로 도배가 되었다. 한 집안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그 정도 결단력도 없다고? 초종광이 초휴의 부친만 아니었어도 마활은 찰진 욕을 한바탕 퍼부었을 것이다.
“그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우선 좀 쉬어야겠어요.”
평범한 사람이 근골을 다치면 보통 백일 넘는 요양이 필요했다. 초휴는 워낙 강건한 근골을 가진 데다 효과 좋은 약도 있어서 백일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흘간은 안정을 취해야 했다. 이때 고비가 들어와 보고했다.
“공자님, 이씨 가문에서 뺏어온 물건들은 본가에 전해드렸고 광석 오만 칠천 근은 일단 남겨두었는데, 거래가 끝나고 대금을 받으면 그것도 본가에 나눠드리겠습니다.”
“네가 알아서 처리해.”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이던 초휴는 멈칫하더니 고비를 붙잡고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광석이 모두 몇 근이라고?”
“오만 칠천 근이요.”
고비가 당황하여 말하자 초휴가 미간을 찌푸리며 재차 물었다.
“계산 제대로 한 거 맞아? 이씨들이 다른 데서 사온 광석이 우리 광석에 섞였을 수도 있잖아?”
고비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잘못 계산했을 리가 없어요. 죄다 우리 집안에서 나온 광석이 맞습니다. 남산 광구에 계실 때 공자님도 보셨잖아요? 우리 집안에서 정련을 거쳐 나온 광석에는 모두 특별한 표식이 있거든요. 우리 광석이라는 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요.”
순간 초휴의 눈이 심상치 않게 번뜩였다. 애초에 둘째 부인이 자기 입으로 정개산에게 오만 이천 근을 넘겼다고 했건만, 이제 와 뜬금없이 오만 칠천 근이라는 숫자로 바뀌다니 어찌된 영문이지?
의문도 잠시, 초휴는 광석의 양에 차이가 발생한 이유를 곧 눈치챘다. 이런데도 계속 오리발을 내밀어 보시겠다 이거지.
초휴가 고비에게 지시했다.
“우선 광석을 본가로 보내서 장부에 올리고 여러 사람의 검수도 거친 후, 상단으로 되가져와.”
고비가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한집안 사람들끼리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증거를 남겨야 하니까.”
초휴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 폐관하러 들어갔다.
초휴의 이번 폐관은 단순히 요양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응혈경에 이르는 마지막 관문을 뚫기 위한 게 목적이었다. 이미 쉬체경의 최고 단계에 이르러 응혈경까지 코앞에 남겨둔 상태였으나, 응혈단을 그렇게나 많이 먹고도 여직 마지막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충과 겨루면서 몸속 기혈의 변화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고, 그 깨우침을 바탕으로 응혈경의 벽을 깨부술 자신감도 생겨났다.
역시 무사를 성장시키는 건 실전 경험이야.
이런 생각으로 요양에 힘쓰는 한편, 체내 기혈의 응축 수련도 병행했다. 그가 입은 내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호전되어 갔다.
그로부터 열이틀이 지나 완쾌된 그는 방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자신의 몸속에서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체내 기혈이 내력에 힘입어 빠르게 용솟음치고 있다는 증거였다. 체내 기혈이 선천공의 진기와 합쳐져 빠르게 몸 안을 도는 가운데, 온몸은 시뻘겋게 변하고 혈관과 힘줄도 울룩불룩 튀어나왔다. 매우 섬뜩하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한참 뒤 기혈이 안정을 되찾자 초휴는 자신의 내력이 크게 늘어난 것을 느끼며 두 눈을 번쩍 떴다. 응혈경에 도달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 순간이었다.
초휴가 방문을 열고 나오자, 마당에서 둔중한 검을 휘두르고 있던 마활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초 공자, 그대의 수련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내가 질투가 다 나는군그래.”
처음 만났을 때, 초휴가 결코 자신의 적수가 될 만한 수준이 아니었음을 마활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 응혈경이 되다니, 이거야말로 빛의 속도가 따로 없지 않은가.
초휴는 빙긋이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의 수련이 이렇게나 빠른 진전을 보인 데에는 선천공의 힘이 컸다. 이로써 도가의 비전무공인 선천공은 토대를 닦는 데 있어 효과가 대단함이 입증된 셈이다. 선천공을 수련한 덕분에 지난날 부실했던 그의 기본기가 모든 결함을 극복하고, 단시간 내에 강력한 성장세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아 참, 그간 무슨 큰일은 없었죠?”
초휴의 질문에 마활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큰일이야 없었지. 이씨 그놈들부터가 제 식구가 죽어나가도 쥐죽은 듯하고 있는데, 큰일이 날 게 뭐가 있겠소?”
초휴가 담담히 대꾸했다.
“잠자코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는 거겠죠.”
초휴의 짐작대로 이씨 가문은 아무 짓도 벌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이소를 죽인 여세를 몰아 초휴가 공격해 올까 두려워, 이소와 이충의 장례식조차 소리 안 나게 초출하게 치렀으니 말이다.
그러나 열흘이 지나도록 초씨 가문 쪽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비로소 그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승과 이운은 숨 막힐 듯이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소도 죽고 이충도 죽었다. 초씨들은 선심을 쓰는 것처럼, 더 이상의 공격은 해오지 않았지만 이씨 형제들은 이 원통함과 분노를 이대로 삼킬 수만은 없었다.
그때 스무 살도 안 된 앳된 청년 하나가 조심스레 들어와서 인사를 했다.
“큰형님, 둘째 형님.”
이운이 인상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넌 또 무슨 일이야?”
이승은 이운에게 눈을 흘기더니, 애써 웃는 낯으로 청년의 인사를 받았다.
“아택(阿澤. 이씨가문 4공자 이택의 아명)이로구나, 무슨 일로 왔느냐?”
아택이라 불린 청년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형님들, 셋째 형님은 돌아가셨지만 우리 가문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저도 이제 돕게 해주세요. 다음번에 연나라로 상단을 보내실 때,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이운이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들은 척도 안 했지만, 이승은 온화한 목소리로 그를 달랬다.
“아택, 너는 아직 어리고 가문일은 우리 둘만으로도 처리할 수 있다. 지금 너는 어떻게든 수련에 정진해 실력을 끌어올릴 생각만 하거라.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를 돕는 길이란다. 우리 가문은 무너지지 않을 테니 걱정할 거 없다.”
이택은 형님들도 자기 나이일 때, 이미 상단을 이끌지 않았느냐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고, 그저 입안에서만 중얼거리다가 도로 삼켜버렸다. 그는 공손하게 예를 갖춘 후 물러났다.
끝
ⓒ 봉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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