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만민의 공적
당혹스럽게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초휴가 출수를 한 것이다. 감정 기복이 심해 희로애락을 종잡을 수 없는 그 성격은 그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절대로 알 수 없을 터였다.
검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고 팔다리에는 마음이 없는 법이다.
강호인 간의 다툼은 말다툼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주먹이 올라가는 순간 사소한 마찰이 전면적인 충돌로, 그다음에 사생결단으로 변하는 순서를 밟게 된다. 일이 이렇게까지 확대되면 싸움은 절대로 간단히 끝날 수 없게 되기에, 대부분은 웬만해서는 주먹을 쓰기 전에 말다툼 단계에서 끝내려는 것이다. 해서 좌중은 초휴의 갑작스러운 출수에 반응할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오기조원은 뭐가 달라도 다른 법이라 방유명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그가 수중의 장검을 휘두르자 은백색을 띤 예리한 검강이 찬란히 발출되었다. 하지만 그가 검세를 제대로 펼치기도 전에 상대의 칼끝에서 지독한 마기를 품은 도강이 눈을 찌를 기세로 터져 나왔다. 뒤이어 엄청난 강기의 충돌음과 함께 방유명의 검세가 격파되었음은 물론, 그의 몸도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주위에서 지켜보던 무사들은 화들짝 놀란 나머지 힘을 보태기는커녕 앞다투어 사방으로 물러났다. 검은 머리 짐승은 믿을 게 못 된다더니, 좀 전만 해도 비분강개하던 자들이 나 몰라라 하자 방유명은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지금은 발등의 급한 불부터 끄는 게 우선이었다. 천마무의 마기가 수그러들 기세 없이 연신 터져 나오더니 급기야 시뻘건 살기를 토해냈기 때문이었다.
아비도삼도가 잇달아 그를 압박하니, 제 일도가 그의 검세를 완전히 분쇄했고 제 이도가 수중의 장검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이윽고 제 삼도가 코앞에 닥치자 그는 경황없이 두 손에 인법을 결인하여 강기를 모았다. 기혈과 강기로 검지(劍指)를 만들어 상대의 가공할 일도를 막아낼 생각이었던 거다. 하지만 이 역시 사정없이 격파되고 말았다.
‘약하다! 약해도 너무 약하다!’
방유명은 그간 초휴가 상대한 오기조원 가운데 단연 최약체라 할만했다. 오기조원이 아니라 심백이나 동개태와 같은 삼화취정 무사도 그보다 수 배는 족히 더 강할 터였다. 오기조원 경지라고 그간 어깨에 힘깨나 주고 다녔는데, 아무리 아비도삼도가 대단해도 한 번도 제대로 막아내질 못하다니, 형편없어도 이렇게 형편없을 수가!
이제 초휴의 칼날 아래 고스란히 목을 내어놓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돌연 초휴가 칼을 거두고 대금강륜인을 취하더니, 대뜸 방유명의 단전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게 아닌가. 이어서 초휴는 울컥 피를 토해 엉망이 된 그의 목을 거칠게 움켜잡더니 비웃듯 윽박질렀다.
“어떠냐. 이게 내 해명이다! 이제 만족하겠는가?”
방유명이 두들겨 맞은 개 마냥 초휴에게 당하는 꼴을 본 주위의 무사들은 감히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초휴의 출수를 직접 보고 나니, 지금까지 막연히 소문을 들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실감이 났다. 명불허전이라는 게 이런 경우에 쓰라고 있는 말이구나 싶었다.
방유명이 동제 전체로는 대단한 축에는 못 든다. 그래도 손바닥만 한 엄주부에서는 절대 고수 소리를 듣던 인물이다. 그런 자가 일 초식도 못 받아내고 저런 몰골이 되고 말았다. 초휴가 도중에 칼을 거두었으니 망정이지 아니라면 진작 목이 날아갔을 게 아닌가.
죽은 듯 늘어져 있던 방유명의 입술이 들썩였다. 분한 마음에 욕이라도 한마디 내뱉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목은 초휴의 손아귀에 잡혀있다. 초휴가 손만 까닥해도 당장 목뼈가 으스러질 판이라, 결국 그는 이마저도 포기하고 말았다.
초휴의 눈에 비웃음이 감돌았다.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실력으로 감히 나한테 해명을 요구해? 같잖지도 않은 쓰레기 같으니! 나는 관중형당 휘하의 관서 순찰사다. 그런 나를 무슨 명분으로 죽이려 하느냐? 내가 여기 가만히 선 채로 죽여보라 해도 감히 못 죽일 놈이! 안 그래?”
방유명은 얼굴이 허옇게 질려서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사람들의 입방정에 등을 떠밀려 왔던 것이니까. 초휴가 주루에 온 것을 본 사람들이 나가서 그를 찾았던 것이고, 그리해서 여기 오기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찬찬히 생각할 겨를이나 있었을까. 초휴의 말을 듣는 방유명은 자기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저질렀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사실 여기에 온 것도 초휴에게 망신이나 좀 주려는 것이었을 뿐, 죽이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건만······. 어쨌거나 자기가 너무 경솔했다. 초휴의 말처럼 자기는 같잖지도 않은 쓰레기라는 패배감이 몰려왔다. 선대로부터 근근이 이어지다 못해 이제 얼마 남지도 않은 가문의 알량한 위세도 이제 끝이다. 설령 초휴를 죽였더라도 큰일 날 뻔하지 않았는가. 관중형당의 보복을 무슨 수로 감당할 수가 있겠는가.
“자, 이제 불어라. 누구의 지시를 받고 이런 짓을 벌였느냐?”
초휴가 그를 살려둔 건 자비심이 일어서가 아니라, 이 일이 어딘지 수상쩍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한 지역의 협객에 불과한 강동오협의 이름이 이처럼 엄청난 파급력이 있을 리 만무하지 않는가. 단지 그들을 죽였다고 해서 동제 전역의 무사들이 자기를 적대시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대놓고 무력을 쓰려 들고 있다. 이쯤 되면 자기가 죽인 게 강동오협인지 아니면 동제오협인지가 헷갈릴 판국이었다.
게임 줄거리에서는 정불휘 등의 실력이 현실보다 더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영향력은 이만큼 대단하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한 가지 추론이 가능해진다. 누군가가 강동오협 피살을 빌미로 뒤에서 모략을 꾀한 것이다.
초휴의 추궁에 방유명이 가까스로 쉰 목소리를 내었다.
“지시한 자는 없소. 단지 당신이 우리 땅에서 강동오협을 죽여서 기고만장하니, 동제 무사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했을 뿐이요. 나뿐 아니라 동제 무사라면 하나같이 그런 심정일 거요. 더욱이 나는 동상의와 교분이 있었고, 그걸 아는 사람들이 당신이 엄주부에 나타났다고 귀띔을 해 줘서 알았소. 그래서 얼떨결에 출수를 감행하게 된 거요. 내 말이 거짓이라면 나는 패배자에 더해 ‘비겁한 겁쟁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될 거요.”
초휴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들어보니 방유명은 그저 충동적으로 욱해서 달려든 게 맞는 것 같았다. 자기만의 계략이나 신념이 있어서 벌인 일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한심했으니 말이다. 애당초 강동오협과의 친분을 과대 포장해서 떠벌리고 다닌 역풍을 맞은 셈이었다. 하지만 초휴는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서 다시 물었다.
“내가 강동오협을 죽인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강호에서 늘 일어나는 사필귀정에 따른 처단이었단 말이다. 하지만 내가 언제 동제 무사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거냐? 그럴 만한 언행을 한 적은 전혀 없는데?”
강동오협을 처단한 일이 순식간에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일대 사건으로 비화했다는 건 이치상 말이 되지 않았다. 초휴가 더러 미칠 때가 있어도, 앞뒤 재지도 않고 그렇게 폭발력이 큰 짓을 저지르겠는가.
초휴의 질문에 방유명은 순간 멍해 있다가 더듬거리며 답했다.
“그건 나도 모르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소. 당신이 강동오협을 죽인 건 동제 무사 전체를 도발한 거나 다름없다고, 바로 우리 동제를 무시한 처사라고······.”
방유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초휴는 누군가 뒤에서 수작을 부리는 자가 있음을 확신했다.
“꺼져라!”
초휴가 거칠게 손을 휘두르자 방유명은 구석으로 나가떨어졌다. 지옥 문턱에서 돌아온 그는 혼비백산한 나머지 자기가 여기에 왜 와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줄행랑을 쳤다. 초휴의 실력이 얼마나 무지막지했던지, 욕설 한마디 내뱉을 담력도 없이 빨리 돌아가서 상처를 치료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초휴 역시 이런 판국에 식욕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그도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다시금 여정에 올랐다.
동제에서 원수진 자들이 하도 많으니, 대관절 누가 뒤에서 이런 상황을 조정하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가 않았다. 자신이 태자의 일을 여러 번 망쳐 놓았으니 태자가 꾸미는 짓일 가능성이 있었다. 또한, 이황자를 상대로 협박하다시피 ‘천절지멸망아살권’을 받아냈으니, 뒤늦게 그가 앙심을 품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장검산장도 배제할 수 없었다. 감히 정정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심백을 폐인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그가 괘씸죄의 대가를 치러 주기로 작정했어도 이상할 게 없지 않은가.
그야말로 도처에서 미운털 박힌 자의 위기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대체 누가 그런 짓을 꾸몄는지 금방 알아내기가 어렵다는 것! 누군지는 몰라도 그자의 계책은 단순하고도 효과가 뛰어난 셈이었다. 졸지에 강동오협을 동제오협으로 승격시킨 것만으로 동제 무사들의 심기를 건드려 선동하는 데 성공하다니 말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백에 아흔아홉 명은 이에 휩쓸리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번만큼은 그리되어버렸다. 강호 무사들도 충분히 이성적이고 실리적인 인간들이다. 그간 타국인의 손에 죽은 동제 무사가 한둘이 아니건만, 왜 하필 초휴가 강동오협을 죽인 일만 가지고 이 난리일까?
그건 바로 강동오협의 명성이 너무 좋은 반면, 초휴의 명성은 너무 나쁘기 때문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선악의 대비가 극명한 데다, 누군가의 악의적인 선동질까지 더해졌다. 물론 명석한 사람은 사안의 본질을 금세 꿰뚫고 휩쓸리지 않겠지만, 강호에는 어리석은 자들 또한 상당히 많았다. 백 사람 중 자칫 한 사람만 어리석게 휩쓸리고, 바로 그자가 초휴를 걸고넘어진다고 해 보자. 차후로 그런 자가 두 명, 세 명 계속 불어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초휴가 엄주부를 벗어난 뒤에도 누군가의 미행이 감지되었다. 방금 일벌백계의 의미로 방유명을 혼쭐을 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누군가가 따라붙었단 말인가. 초휴가 그자를 손봐줄 작정으로 돌아서려는 순간, 오히려 상대방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뜻밖에도 외강경의 중년 사내였는데 공수의 예까지 취하며 인사를 건네왔다.
“삼공자님의 하인 막오(莫五)가 초 공자님을 뵙습니다.”
“혹시 막천림이 보냈소?”
초휴가 의혹 어린 눈초리로 물었다. 막천림은 막가의 젊은 자제들 가운데 항렬이 세 번째였다. 해서 다들 그를 ‘삼공자’라고 불렀다.
“맞습니다. 삼공자님이 말씀을 전해드리라 하셔서요. 누군가가 뒤에 숨어 초 공자님한테 해가 될 일을 꾸미고 있다고요. 게다가 그 계책이 주도면밀하기 그지없어서, 이대로 계속 여행하시면 조만간 누군가가 제대로 공격할 터이니, 당분간 행적을 숨기고 매사에 조심하라 당부하셨습니다. 아니면 차라리 대량성으로 행선지를 바꾸시는 것도 생각해보시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곳은 동제의 도성이니, 거기서라면 함부로 공자님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급적 두 번째 제안을 따르시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하고 덧붙이셨고요. 지금 동제에서 공자님에 대한 평판이 워낙 나빠 노리는 자들이 많다 보니, 행적을 은밀히 하신다고 해도 종내에는 발각 날 거라면서요. 현재 삼공자님은 집 안에 갇혀 수련 중이십니다. 가주께서 삼화취정에 오르기 전에는 절대 바깥 구경할 생각 말라고 엄명을 내리신 터라, 당분간 초 공자님을 도울 수가 없으십니다.”
“그랬었군. 돌아가서 삼공자의 호의에 감사드린다고, 조언을 새겨듣겠다고 전해 주시오.”
막천림이 나서서 도울 수가 없는 상황이지만, 뭔가 미심쩍은 정황을 눈치채고 위험을 알려온 것이다. 그로서는 이것이 초휴를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일 터였다. 그리고 설령 그가 나선다 해도 초휴에게 별 도움이 못 될 터였다.
아직 외강경의 실력인데 몇 명이나 막아줄 수 있겠는가. 막가의 힘을 동원하는 건 더욱 안 될 말이었다. 막가가 그 개인의 소유도 아닌데 가주가 그런 짓을 벌이도록 내버려 둘 리 만무했다.
막천림의 말을 다 전한 막오는 다시 허리 굽혀 인사했다.
“그럼 소인은 물러가겠습니다. 부디 안전한 여정이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