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03)
303화 정면 돌파
막천림의 귀띔을 계기로 초휴는 지금 상황을 더욱 경계하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군중심리라는 게 있다. 방유명의 경우만 해도 뭣도 모르고 달려들지 않았던가. 그런 자들을 본보기로 몇 놈 손봐주면 성가시게 굴 자가 더는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발적이고 즉흥적인 도발과는 달리, 누군가 진두지휘하는 자가 있어서 결정적인 한 방을 준비하는 거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사실 막천림의 충고는 크게 도움 될 게 없었다. 동제는 워낙 사방이 탁 트인 평원이라 숨을 만한 숲이나 계곡도 드물었다. 외양을 바꿔가며 행적을 은닉하려 애써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량성으로 가자니 관중형당으로의 복귀가 너무 늦어지게 된다. 게다가 그 흉수가 만약 태자나 이황자라면, 대량성으로 가는 것은 범의 아가리 속에 머리를 들이미는 거나 진배없지 않겠는가.
사실 대량성이야말로 이 두 황자의 터전인 셈이었다. 초휴가 제아무리 관중형당 소속이라도 동제의 심장부에서 동제의 황자를 무슨 수로 당해내겠는가. 해서 초휴는 힘들어도 정면으로 돌파하여 속히 관중형당으로 복귀하는 쪽을 택했다. 초휴가 무모해서 이런 결단을 내린 게 아니라 그럴 만한 자신감과 저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휴는 언제나 상대와 맞서는 데 있어, 그 상대에 걸맞은 태도를 취해왔다. 신중해야 할 때는 신중하고, 패기로워야 할 때는 패기로웠으며, 광기가 필요할 때는 한바탕 광풍을 일으키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강동오협의 실력 수준을 감안할 때, 강동오협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나선 자들도 그리 고강한 실력자는 아닐 터였다. 그들의 친구이거나 신세 입은 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가정할 때, 친구라면 유유상종이니 그들과 비슷한 실력일 것이요, 신세를 졌다면 실력이 그들보다 못하지 않겠는가. 해서 초휴는 지금 덤빌 테면 덤벼보라는 식으로 뚫고 나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일의 주동자는 이 일을 배후에서 사주한 자가 누구인지를 당연히 알 것이다. 일단 상대의 마각(馬脚)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니, 초휴는 어떻게든 상대방 측 수뇌가 누구인지 알아낼 작정이었다. 그러자면 상대와 맞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다. 복수는 천천히 해도 늦지 않다. 상대의 실체를 알아내기만 하면, 어떻게든 기회를 포착해서 받은 만큼 반드시 되돌려주고 말 테다!
그로부터 사흘 후, 관중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지나야만 하는 하양부(河陽府).
임남업과 요락산을 위시한 십여 명이 그곳에 집결해 있었다. 그간 그들은 하후무강의 지령을 받들어 동제 무사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선동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제 그 작업이 얼추 마무리된 터라,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초휴를 죽일 태세를 갖추는 중이었다. 이때 하양부 내 최대 규모의 주루에는 족히 천여 명에 달하는 무사가 운집해 있었다. 다들 한목소리로 강동오협의 복수를 부르짖으며 ‘타도 초휴!’를 외치는 중이었다.
물론 이들 중에는 구경꾼들도 꽤 있었다. 실제로 출수할 작정인 자는 그중 십 분의 일이나 될까. 아직도 강호에는 현명한 자들이 더 많은지라 물불 안 가리고 끓는 혈기로만 행동할 열혈 무사는 소수에 불과했다. 물론 자그마치 천 명 가운데 백 명이니, 십 분의 일도 놀랄 만한 숫자이긴 했다. 초휴가 만군(萬軍)을 상대할 수 있는 무도종사급의 고수도 아니지 않는가. 설령 이 자들의 실력이 초휴만 못해도, 머릿수로만 밀어붙여도 그를 한 방 먹이기에 부족함은 없을 터였다.
주루 맨 위층의 임남업이 아래에 운집한 무사들을 내려다보더니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죄다 오합지졸이 아닌가. 제대로 한몫할 만한 자는 몇 명도 채 안 되겠구먼.”
기왕에 초휴와 결판을 내기로 작정한 이상, 첫술에 배부르길 바라는 마음이 왜 없겠는가. 다들 단번에 속전속결로 끝장낼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보려 애써도 이쪽의 실력이 양에 차지가 않았다.
임남업의 속내를 눈치챈 요락산이 한소리 했다.
“어르신, 이 정도라도 다행입니다. 왕년에 저들이 오죽 형편없었으면 강동오협의 도움을 받았을까요. 지난 수년간 더 수련했어도 아직 강동오협의 실력을 뛰어넘을 만한 자는 별로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 쪽 인원수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저들 중 최약체 실력이 선천경이니까요.”
하지만 임남업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아무래도 부족해. 뭔가를 더 보태는 게 어떨까?”
“그러면 어르신 생각을 말씀해 보시죠.”
강동 임가장은 강동군에서 명망이 높고, 임남업에 대한 강호의 평판도 좋았다. 하지만 요락산 정도 되는 실력자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이 어르신이 젊은 시절 얼마나 손속이 매서웠는지, 임가장을 굴기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살육을 저질렀는지 말이다. 늘그막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죄악을 씻기라도 하려는 듯, 도가와 불가에 마음을 붙이고 호인(好人) 소리를 들으며 남들 돕는 일에 앞장서고는 있지만.
“후한 상을 내걸면 없던 용기도 생기지 않을까? 뜨거운 혈기에만 의존해서는 곤란해. 초휴에게 몇 명 박살이 나고 나면, 그 들끓던 피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릴 테니까. 그러니 실리적인 대가를 제시할 필요가 있겠어. 예컨대 우리 모두 수중의 값진 것을 내놓으면 어떨까. 누구든 초휴를 죽인 자에게 그것을 주는 거지. 하지만 우리만 내놓아서는 불공평하지 싶군. 하후씨도 우리에게 뭔가를 보상해줘야 할 텐데, 선아 소저가 보기엔 어떻소?”
임남업의 시선이 한구석으로 향했다. 뜻밖에도 거기에는 하후무강의 시중을 들던 아름다운 시녀, 선아가 서 있었다. 하후무강이 자칫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문중에서 주시하고 있는 탓에 그는 일을 도모하기가 불편했다. 해서 대신 선아를 현장에 보내서 돌아가는 형국을 지켜보게 한 것이다.
선아가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죠. 그게 뭐든 어르신 마음대로 하세요. 수련자원으로 보상해드리면 될까요? 여러분이 무엇을 얼마나 내어놓건, 일이 다 끝나면 하후씨에서 곱절로 보상해드릴 겁니다. 이깟 일이야 제 선에서도 얼마든지 장담할 수 있어요.”
이에 임남업과 요락산이 희색이 만연하여 하후씨의 후한 씀씀이와 넓은 아량을 칭송했다. 하지만 지금 선아가 속으로 냉소를 날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일이 끝난 뒤에 살아있을지 저승에 가 있을지 모르는 자들에게 무슨 진지한 확답이 필요하랴.
하후씨의 것이 그리 만만하게 가질 수 있는 건 줄 알았더냐!
얼추 올 만한 인원은 다 왔다고 판단되자 임남업이 일행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들이 내려오는 걸 본 무사들은 공수의 예로써 그를 맞이했다.
임남업도 군중을 향해 답례하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여기에 왜 모였습니까. 긴말이 필요치 않을 테지요. 강동오협은 우리 동제 정도 무림의 자랑스러운 준걸로서 정의롭기 그지없는 협객들이었소. 여기 모인 분 가운데 그들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소이까? 그런데 초휴라는 일개 타국인이 우리 땅을 제 맘대로 휘저어놓고, 기고만장입니다. 강동오협이 그자의 손에 무참히 살해되었으니, 우리가 나서서 복수해야 하지 않겠소?”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군중 속에서 초휴를 규탄하는 목소리들이 하늘을 찔렀다.
요락산은 좌중을 진정시킨 후 발언을 이어갔다.
“자, 자, 여러분,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 말을 좀 들어보시오. 우리 동제 무림이 이처럼 능욕당했는데 좌시만 할 겁니까? 이건 우리 모두의 공적인 분노요! 또한, 나는 정불휘 대협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소. 하지만 정 형은 흉수의 손에 무참히 살해되고 말았소. 이는 사적인 원한이요! 지금 나는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놈에게 치를 떨고 있소이다. 이로써 나 요락산과 초휴 그놈은 같은 하늘 아래 숨 쉬며 사는 게 영원히 불가능하게 되었소. 이에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걸 여러분 앞에 내놓겠소. 그게 누구든 초휴를 죽여 강동오협의 영령을 위로해주는 분에게 이걸 죄다 드리겠다는 말이외다!”
말과 함께 그는 몸에 차고 있던 주머니를 펼쳐 보였다. 그 안에는 여러 영약 등의 수련자원이 들어있었다. 요락산과 같은 무소속 무사에게 이 정도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임남업 등도 잇따라 무엇무엇을 내어놓겠다고 공언했다. 지금 당장 내어놓지는 못하지만, 초휴를 죽이면 그것들을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갖게 될 거라고 말이다. 물품이 없는 말만으로도 좌중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여기 모인 자들 대부분이 낭인이나 소규모 세력 출신들인지라, 임남업 등 십여 명이 제시한 어마어마한 것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애당초 그들 모두가 들끓는 혈기로 여기까지 온 자들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런 자들은 피가 빨리 끓지만 식는 속도도 빠른 법이다. 그들에게 짭짤한 미끼를 던져 동기부여를 해야만 식는 속도가 늦춰질 터였다.
바로 그때, 군중을 헤치며 삼화취정의 중년 무사가 앞으로 나서더니 임남업 등에게 소리 낮춰 말했다.
“여러분, 송구하지만 여기 하양부에서는 출수를 자제해주실 수 없겠소? 여러분이 초휴에게 복수하고픈 마음은 알겠으나, 애먼 우리 청호방(靑虎幇)은 뭔 죄란 말입니까?”
그 무사는 하양부의 지역 유지인 청호방 방주로, 곤욕스럽기 짝이 없는 처지였다.
다들 강동오협에 신세 진 걸 갚기 위해 복수를 도모하려는 건 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청호방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들은 강동오협과 일면식도 없을뿐더러, 급기야 숨어서 온갖 더럽고 치사한 짓을 저질러왔다. 그들이 강동오협과 인연을 맺었다면 그건 분명 나쁜 인연이었을 게 분명하다. 강동오협의 칼날에 처단될 게 두려워, 피해 다니기 급급했을 거란 얘기다. 따라서 강동오협이 그리되었을 때, 이들은 오히려 좋아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일이 벌어졌다가 만에 하나 초휴가 살아남거나 혹은 죽는다고 하자. 어느 경우든 관중형당이 책임을 물으러 올 가능성이 크니, 이곳의 토착 세력인 청호방도 책임을 면치 못하고 덩달아 불벼락을 맞지 않겠는가. 하지만 상대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임남업이 차갑게 내뱉었다.
“초휴가 우리 동제의 준걸을 죽여 무림의 존엄을 훼손했소. 당신네 청호방이 돕기 싫다면야 우리도 강요하진 않겠소. 그러나 우리 앞을 막아서는 건 얘기가 다르지. 설마 청호방은 동제 무림의 일원이 아니란 말이오?”
그러자 현장 모든 무사의 따가운 시선이 청호방 방주에게로 집중되었다. 그 바람에 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 한마디도 더는 꺼내지 못했다. 이들에게서 이젠 광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청호방 방주는 한옆으로 물러나 속으로 이를 갈았다.
‘흥, 네놈들이 초휴에게 호되게 당해봐야 정신 차리지. 아주 할 일들이 없어서 무료해 죽을 판에 신바람들이 났군. 강동오협이 네놈들 아비 어미라도 된단 말이더냐? 설령 아비 어미가 초휴에게 죽었어도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을 것들이!’
정말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라도 하는 날엔 청호방은 터전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걸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건 하양부에서 계속 무사하게 발붙이고 살기는 그른 듯싶었다. 이때 한 무사가 소리 높여 알려왔다.
“여러분, 초휴가 지금 하양부 쪽으로 오고 있다는 전갈입니다. 이미 지나온 엄주부에서 방가의 가주, 그러니까 ‘고산유수’ 동상의의 죽마고우인 방유명이 초휴에게 해명을 요구하러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을 끝맺기도 전에 초휴에게 중상을 입어서 사람 구실도 못 할 뻔했다지 뭡니까.”
이 말에 임남업이 비분강개하여 나섰다.
“여러분, 초휴가 이처럼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고 있소이다. 방 장주마저 놈의 독수에 당하고 말았소.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지금, 우리는 초휴에게 시시비비를 따지기 위해, 그리고 동제 무림의 존엄을 되살리기 위해 대동단결하여 초휴를 굴복시키는 수밖에 없소!”
좌중의 호응이 불같이 뜨겁게 달아오르자 임남업과 요락산 등은 의미심장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의도한 바를 이뤘다는 회심의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 일만 잘 처리되면 자신들의 명성이 강동오협을 능가하는 건 시간문제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