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월녀궁의 반도(叛徒)
거리에 온통 시뻘건 핏물이 흘러 내를 이루는 광경은 섬찟하기 짝이 없었다. 초휴가 헤집고 다니는 곳마다 삼화취정 이하 무사들은 맥을 못 추고 단칼에 쓰러져갔다. 그들은 사력을 다해 도주하려 했으나 헛수고일 뿐이었다. 임남업이 도망치는 곳마다 초휴가 순식간에 따라잡으며 칼을 휘둘러댔기 때문이다.
이쯤 되자 현장의 무사들은 임남업을 찢어 죽이고 싶어 환장할 지경이었다. 이 교활한 능구렁이가 초휴와 사생결단을 내야 한다고 잘도 떠들어 대놓고, 인제 와서 혼자만 살겠다고 사방팔방 도망 다니기에만 급급하지 않은가.
그것도 생각 없이 도망 다니는 게 아니라, 사람이 많이 몰려있는 곳만 골라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어디로 피해도 초휴를 따돌릴 수가 없으니 다른 사람들을 칼받이로 삼을 작정으로 하는 짓이었다. 이 얼마나 간악한 머리를 굴리는 자인가.
바로 그때, 허공에서 한 줄기 검광이 번쩍하며 발출되었다. 더없이 가늘면서도 예리한 위력이 실린 검광의 공격에 초휴는 경각심을 곧추세웠다. 임남업 뒤쫓기를 잠시 멈춘 그는 수중의 천마무를 치켜들어 혈련신강과 아비마기를 응집시킨 후 곧장 쏘아냈다. 그러나 얼핏 별것 아닌 듯 보였던 검강은 놀랍게도 초휴의 반격을 순식간에 와해시키며 천마무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금속성 충돌음이 울려 퍼지며 초휴의 몸이 몇 보나 밀려났다. 충격을 못 이긴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곧이어 허공에서 뛰어내린 한 인영이 초휴의 앞에 섰다. 서릿발 같은 인상을 한 그의 손에는 괴이하기 짝이 없는 검이 들려 있었다. 검신이 가늘면서도 기다란 게 일반 장검 너비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으나, 외양만큼은 수려해서 언뜻 아녀자들이 쓰는 검 같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상대의 경지가 천인합일이라는 사실이었다. 이제 막 장년의 나이에 접어든 자가 천인합일의 막강 고수라니!
생각지도 못하게 하늘에서 천인합일 고수 하나가 강림하듯 등장하자 현장의 무사들은 영문을 몰라 아연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천인합일 고수가 여기 나타날 리 없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동오협 가운데 최강 고수라고 해봤자 오기조원에 불과했다. 그러니 천인합일의 고수가 강동오협에게 신세를 졌을 리가 없고 따라서 이 자리에 출현할 일 또한 없지 않은가. 순간 군중 속에서 이 고수의 정체를 간파한 인물이 소리쳤다.
“풍무랭! 저자는 월녀궁(越女宮)의 반도인 ‘이인검(離人劍)’ 풍무랭(風無冷)이다!”
자신도 들어본 이름인지라 초휴는 흠칫 놀라 상대를 다시 쳐다보았다. 작금의 강호에서 그의 명성은 실로 컸는데, 그 이유가 월녀궁의 유일한 남자 제자였기 때문이었다. 월녀궁은 풍만루의 노랫말에 등장하는 오대검파 중 하나이자, 오대검파 중 유일하게 여자들로만 구성된 검파이기도 했다.
월녀궁의 조사는 상고시대의 오월(吳越) 출신 여인이었다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의 오군 낙가 일대의 지역이 당시의 출신지에 해당했다. 그녀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바가 없었는데 검법에 대한 자질이 너무도 뛰어나서, 하늘로부터 검법을 전수 받았다는 설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심지어 대나무 한 자루를 검 삼아 강호의 무수한 고수들을 물리쳐서, 당대 강호 최강으로 꼽혔던 검술종사(劍術宗師)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녀가 자신의 본명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의 출신지를 붙여 ‘월녀’라고 호칭했다.
월녀는 따로 제자를 두지 않았다. 괴롭힘에 시달리던 한 여자아이에게 검법 몇 초식을 알려주고 홀연히 사라졌는데, 그 후로는 종적이 묘연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 여자아이가 장성하여 강호에 이름을 떨치더니, 종국에는 ‘월녀궁’을 창건하여 오대검파의 일원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월녀궁에 관한 이야기는 이렇듯 신화나 전설 같은 소지가 다분하여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검법이 신묘한 것만은 분명했다.
월녀 자신은 검법의 체계적인 전승을 도모하지 않았다. 해서 지금의 월녀검전은 무도종사로 성장한 여자아이가, 월녀가 남겼던 검법에 자신이 깨우친 검도를 가미해서 작성한 것이다. 그리고 후대의 월녀궁 고수들이 차츰 이를 완벽에 가깝게 보완해 나간 결과로 현재의 검법이 완성되었다. 이런 까닭으로 월녀궁의 무사들은 한 가지 특징이 엿보였는데, 강한 제자는 더없이 강하고 평범한 제자는 더없이 평범하다는 것이었다.
강한 제자는 월녀검전의 정수, 즉 상고시대 검도종사였던 월녀가 남긴 검도를 제대로 터득하여 막강한 경지에 이른 경우였다. 반면, 평범한 제자는 월녀검전을 피상적으로 익힌 후, 후대의 월녀궁 무사들이 첨가한 요소들을 중심으로 수련한 경우였다.
후자의 경우, 실력이 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월녀검전의 정수 및 다른 종문에서 체계적으로 전승되는 무공에 비하면 실력이 처지는 게 사실이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오대검파에서 월녀궁이 차지하는 입지는 매우 불안정했다. 어떤 때는 상위서열에 섰다가 어떤 때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리고 현재는 월녀궁이 쇠락기에 접어든 시점인데, 오대검파의 바닥을 깔아주는 처지라고 할 수 있었다.
풍무랭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의 출신 내력은 매우 흥미로웠다. 월녀궁은 원래 남자 제자를 받지 않으니, 그는 제자 중 청일점이라고 해야 할 터였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제자도 아니었다. 애당초 월녀궁이 그를 제자로 거둔 적도 없거니와, 그가 지닌 일신의 무공을 회수하려고 사방으로 제자들을 풀어 추살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월녀궁의 제자들은 혼인할 수가 없다. 일단 월녀궁에 들어온 이상은 평생 검만 들여다보다가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러나 십여 년 전 한 제자가 낭인 무사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감행했고, 심지어 월녀검전을 그에게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물론 그 낭인 무사는 풍무랭이었다. 이런 엄청난 배신 행각을 월녀궁이 좌시할 리가 없었다. 즉각 이들을 잡아들일 추격대를 파견하는 동시에 그 제자에게 엄포를 놓았다. 제 발로 돌아온다면 그녀의 무공을 폐하지 않고 연금에 처하는 대신 풍무랭은 죽음으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이다.
여제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사문과 완전히 등지고 싶진 않았으나 풍무랭을 죽게 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해서 결국 자살을 택했고 홀로 남은 풍무랭은 강호를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당시 이 사건은 온 강호를 뜨겁게 달구었고 덕분에 그의 명성도 덩달아 올라갔다. 하지만 다들 그가 끝까지 월녀궁의 추살을 피하진 못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니 지금 그의 출현이 너무도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초휴가 눈에 힘을 주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와 악연이라곤 전혀 없는 당신이 여기 나타난 걸 보니 당신 배후의 인물이 확실히 똥줄이 탔나 보군. 가진 패를 모조리 동원해서라도 나를 죽이려 드는 꼴이니 말이야. 왕년에 월녀궁에 쫓겨 다니는 처지였던 것으로 아오. 하지만 어느 날 아무런 흔적도 없이 강호에서 증발해버리다시피 했었지. 말인즉슨, 누군가 당신을 구해주었을 거란 말이지. 지금 당신의 기세가 지난날 쫓기던 때보다 더 강해진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렇다면 그동안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거겠지. 그 오랜 세월 동안 당신을 감쪽같이 숨겨주고 수련자원을 줄곧 대줄 정도라면, 당신을 조종하는 인물이 만만한 위인은 아닐 테지.”
초휴의 말에 현장의 무사들은 아연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초휴의 말로 추론해보자면 누군가 뒤에서 이번 일을 획책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지금 이곳에는 들끓는 혈기로 초휴에게 복수하려는 무사들 외에 구경꾼들도 많았다. 그리고 강동오협과 사적으로 얽힌 게 없는 구경꾼들은 이성적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게 당연했다. 초휴의 말을 종합해 보니 뭔가 미심쩍다는 생각이 그들의 뇌리를 스쳤다. 뜬금없는 풍무랭의 출현은 그 직감이 정확하다는 쪽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이 모든 게 다 누군가의 음모에서 비롯되었다고?
풍무랭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물론 나는 당신과 아무런 원한이 없다. 그러나 당신을 죽여야만 발 뻗고 잠을 잘 것 같다는 사람이 검을 써달라고 하니 어쩌겠는가. 어차피 강호라는 게 그런 곳이니까.”
왕년의 풍무랭은 혈기 왕성하고 매력이 넘치는 강호의 준걸이었다. 여제자가 한눈에 반한 것도 모자라서 사문까지 배반해가며 사랑의 도피를 감행할만한 사내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월녀궁의 추살에 시달려온 세월은 너무도 길었다.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꽃처럼 화사하던 청년은 온데간데없고, 강호의 잔혹함에 심장이 차갑게 식어버린 냉혈한만이 여기 남아 있었다. 이제 그는 살인에 동원되는 한 자루의 검에 불과했다! 그동안 월녀궁의 눈을 피해 자신을 숨겨주었고, 지금의 실력을 갖추도록 무수한 수련자원도 제공해준 하후무강을 위해서라면 흔쾌히 그의 검이 될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윽고 그는 수중의 세검(細劍)을 들어 보였다. 그것은 월녀궁의 독문병기인 월녀검으로, 얼핏 한 자루 대나무로 보일 만큼 가늘고 길었다. 그 옛날 월녀가 무수한 고수들을 무릎 꿇렸다던 대나무를 본떠 만든 것으로, 그의 연인이 마지막으로 남겨준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유품이기도 했다. 이윽고 검광이 이는 순간, 바람과 구름도 가를 위력이 터져 나왔다!
사방이 질식할 듯 조용한 가운데, 그 찬란한 검망은 순식간에 한곳으로 응집되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건만, 어느샌가 검은 초휴의 목전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과연 월녀궁의 검법은 천하의 모든 검법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기괴하다는 평을 들을 만했다. 물론 월녀검전의 정수를 확실히 깨우치지 못한 상태에서는 평범한 검법일 뿐이었다. 파산검파, 창란검종 등처럼 검법을 주로 수련하긴 해도 최강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종문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월녀검전의 정수를 터득하고 나면 얘기는 달라진다. 얼핏 보기에는 검세가 단순한 게 그저 물이 흐르는 듯 보이지만, 초식 하나하나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천하무적의 검술이었다. 월녀궁의 제자가 수천 명이라 해도 진정으로 정수를 터득한 자는 백 명 중 한 명이나 될까. 지난날 월녀궁이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조차 그런 인물은 백 명을 간신히 넘었을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사실 풍무랭의 연인은 월녀검의 정수를 확실히 깨우치지 못했다. 오히려 외부인인 그가 이를 깨달았으니, 월녀궁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만한 상황이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월녀궁이 그를 죽이려 들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제자를 꼬여낸 것도 모자라, 검법의 정수까지 훔쳐서 터득한 불순한 사내를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는가.
그런 풍무랭의 일검이 닥쳐오자, 초휴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초휴는 삼화취정과 오기조원 사이에 애매하게 위치한 수준이었다. 오기조원을 돌파하는 게 다소 지체되고는 있으나, 그의 전투력은 이미 삼화취정의 경지를 능가했다. 정불휘와 같이 천인합일에 가까운 오기조원을 제외하면 웬만한 오기조원은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천인합일을 상대해야 했고, 이 간극은 여전히 넘기 어려웠다. 삼화취정과 오기조원의 간격은 작은 시내와도 같아서 다리가 긴 사람은 성큼 뛰어넘을 수 있어도, 오기조원과 천인합일 사이에는 도도하게 흐르는 대하(大河)가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즉, 죽을힘으로 헤엄쳐 건너려 해도 순조롭게 성공할 거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