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생사의 갈림길
초휴는 이제 막 천자망기술의 입문 단계에 들어섰다. 해서 대성 후에나 기대할 수 있을 법한 천기의 예측을 통한 귀신과도 같은 위력을 당장 발휘할 수준은 못 되었다. 하지만 다급한 이 상황에서 입문한 것만도 어디인가.
풍무랭은 확실히 강했으니, 천자망기술의 투시 앞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는 난공불락의 기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천지와 혼연일체가 된 월녀검은 과연 허점을 찾아내기 어려운 검법임이 분명했다. 하늘이 전수한 검법이라는 꼬리표까지 달고 있지 않은가. 굳이 허점을 찾으려 한다면 온 천지를 상대로 허점을 찾아내야 할 터였다.
물론 허점이 없다는 건 검법에 국한해서 그런 것일 뿐, 사람도 그렇다는 건 아니었다. 초휴는 무심결에 월녀검에 균열을 일으킴으로써 상대의 평정심을 무너뜨려 폭주케 했다. 이것이 바로 풍무랭의 허점이었다. 바로 마음의 허점!
검날이 허공을 찢으며 극강의 위력을 쏟아내자 비바람마저 검기에 갈라졌다. 초휴 일신의 기세가 강해졌다가 약해지고, 또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는 가운데 상대 주위에 늘어져 있던 실선들이 응집되며 하나의 궤적을 형성하는 게 보였다. 끊임없이 변화를 일으키는 상대 진기의 운행도 초휴의 눈에 죄다 투영되었다.
지금 초휴는 중상을 입은 상태인지라 기회는 단 한 번뿐인 셈이었다. 단번에 결정적인 허점을 장악해야만 풍무랭을 죽일 수 있을 터였다. 흔들거리는 실선들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듯이, 풍무랭은 지금 격분한 상태라서 검세의 중앙부가 가장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윽고 유난히 흔들리는 실선 한 가닥을 포착한 초휴는 이내 출수에 들어갔다.
중상을 입은 그는 오른팔 대신 왼손으로 칼을 들고, 극악한 마기와 혈련신강을 최대치로 응집시키기가 무섭게 풍무랭을 향해 치고 나갔다. 그 광경에 구경꾼들은 드디어 초휴가 미친 줄 알고 혀를 끌끌 찼다. 저 몸을 하고서 덤벼들다니, 모닥불로 날아들어 타죽는 불나방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하지만 정말 놀라운 장면은 그다음부터였다.
초휴의 칼과 풍무랭의 검이 충돌한 순간, 영악하게 천마무 도신의 각도를 비틀어 응축된 마기를 터트려냈다. 그 바람에 풍무랭의 월녀검이 산산조각이 나고 만 것이다!
“안 돼!”
풍무랭이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 이로써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또 한 번 잃은 셈이었다. 이제 더는 마음을 기댈 곳이 없게 되었다. 자기 눈앞에서 검이 그 지경이 되어버리자 그는 순식간에 광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말았다.
검을 잃은 그는 빈손으로 검지(劍指)를 취해서 휘두르기 시작했다. 검세는 얼핏 월녀검을 휘두를 때와 같아 보일지 몰라도, 광적인 분노와 살기로 흔들리고 있었다. 초휴의 눈에는 그게 모조리 다 보였다. 그의 출수 궤적을 의미하는 실선들이 갈수록 심하게 요동치며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초휴는 정신력을 극대치까지 끌어올려 상대의 검지에 맞설 채비를 갖췄다. 그리고 마치 풍무랭과 동귀어진이라도 하려는 양, 조금도 몸을 사리지 않고 일도를 힘껏 휘둘렀다.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폭발음이 터지고 사방으로 선혈이 튀면서 초휴가 순식간에 풍무랭을 스쳐 갔다. 군중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구멍이 드러난 초휴의 늑골 부위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찰라에 천자망기술로 상대의 출수 궤적을 탐색한 결과, 가까스로 몸의 위치를 옮기고 일신의 호체강기를 한곳으로 응집시켜서 이 정도 선에서 끝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상대의 가공할 일격에 늑골이 아닌 심장이 으스러져 버렸을 터였다.
초휴의 처참한 몰골을 동정하던 구경꾼들은 풍무랭 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헉!’하며 놀라고 말았다. 창백해진 얼굴로 제자리에 서 있는 그의 목에 피를 머금은 도흔(刀痕) 한 줄기가 선명하지 않은가.
그는 고개를 쳐들며 해탈이라도 한 듯한 눈빛을 보였다. 뒤이어 뭐라고 말하려는 듯했지만, 점차 도흔이 벌어지며 선혈이 분수처럼 솟구치더니 ‘쿵’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제야 초휴는 참았던 긴 한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마침내 이겼다. 하지만 천행(天幸)이 따른 덕에 이겼음을 부인하기 어려웠다. 천자망기술은 그에게 겨우 한 번의 기회만 허락했다.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의 여부는 온전히 초휴 본인에게 달려있었던 셈이다.
방금 초휴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상대의 허점을 간파하고 최후의 일격으로 상대의 호체강기를 파괴했다. 그러고는 아슬아슬하게 급소를 피하며 상대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요행히 의도치 않게 월녀검을 파손시킨 덕에 상대가 미쳐서 폭주했고 결정적인 허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완전히 이성을 잃은 풍무랭은 온몸 곳곳이 허점투성이였다. 상대의 정신이 이처럼 엉망으로 붕괴하지 않았더라면 애당초 허점을 간파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초휴가 무슨 수로 그 막강한 실력을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풍무랭의 마지막 눈빛을 초휴는 미처 보지 못했다. 사실 그는 일찌감치 연인이 자진한 그 시점부터 마음이 죽어버린 상태였다. 겉가죽만 남은 채 과거의 잊지 못할 기억만을 되뇌며 걸어 다니는 강시라고나 할까.
그런 그에게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았고, 계속 살아갈 동력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끝날 줄 모르고 고통스럽게 이어지던 회한의 세월은 초휴로 인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것이 풍무랭에게는 해탈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가 해탈을 맛본 것과는 별개로 현장의 무사들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방금 자신들이 무엇을 보았는지가 믿기지 않았다.
‘설마 초휴가 저런 막강 고수를 죽인 거야? 고작 삼화취정이 무려 천인합일을?’
이처럼 황당한 전대미문의 사건을 그들이 언제 겪어보기나 했을까. 하지만 믿을 수 없는 꿈같은 일이 방금 눈앞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이건 엄연히 현실이었다. 설마 이 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은 꿈을 꾼 건 아닐 테니까. 그 일을 초휴가 해낸 것이다. 도대체 초휴 실력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그를 바라보는 중인의 눈빛은 하나같이 공포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저게······사람이야?’
그런 반응을 보인 건 주루에서 지켜보던 선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줄곧 자기가 모시는 공자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자부해왔다. 하후 공자도 한 경지를 뛰어넘어 오기조원을 죽여봤으니까. 그런 일쯤은 그에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제아무리 뛰어난들 그가 천인합일을 죽일 수 있을까? 게다가 풍무랭은 평범한 천인합일도 아니었다. 수많은 천인합일 가운데 단연 최상급 고수로 손꼽힐 만한 자였다. 그런 인물을 초휴가 죽였다.
선아 정도의 실력으로는 초휴와 풍무랭 간의 일전이 얼마나 긴박하게 전개되었는지, 초휴가 상대에게서 어떤 허점을 찾아냈는지, 이런 심오한 것들까지 간파했을 리 만무했다. 그건 초휴를 둘러싼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강호인의 뇌리에는 초휴가 고전을 면치 못했던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만이 중요하게 남을 뿐이니까.
한마디로 오늘 벌어졌던 세기의 대결은 ‘초휴가 풍무랭을 죽였다’, 이 단순한 한 문장으로 귀결될 터였다.
아까 선아가 풍무랭을 투입하기로 독단적인 결정을 내렸던 건, 초휴가 장차 큰 위협이 되리라고 직감한 탓이었다. 하후무강이 그를 심각한 위협으로 생각하지는 않았고, 이번 복수극도 그저 화풀이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초휴의 출수를 직접 목격한 그녀는 경각의 수위를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왕 판을 벌인 참에 초휴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하후씨에게 화근이 되리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오늘 풍무랭의 신분이 노출되면 당분간 또 숨어 지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런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녀가 그를 투입한 건, 초휴를 죽일 수만 있다면 그 정도 손실은 상쇄되고도 남으리라 믿어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초휴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치명적 우를 범하고 말았다. 물론 그녀를 탓할 일은 못 되었다. 풍무랭마저 당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쨌거나 일이 이리된 이상, 하후세가로 돌아가서 초휴를 죽이는 데 모든 걸 쏟아야 한다고 공자께 간언하리라 결심했다. 자칫 오늘 일이 하후무강의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새어나가는 날엔 초휴가 그를 통으로 씹어먹으려 들 텐데, 그런 무지막지한 강적과 어찌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있겠는가. 기필코 초휴를 제거해야만 한다!
한편 싸움이 벌어졌던 거리에서는 초휴가 중상을 입은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도 섣불리 덤벼들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정반대로 슬금슬금 도주하는 자들까지 속출했다. 초휴는 말 그대로 마신(魔神)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이런 자에게 자신의 목숨을 내맡기길 원한다면 그게 미친놈이 아니고 뭐겠는가. 그런 와중에 초휴의 살기 젖은 시선이 드디어 임남업을 향했다.
임남업이 죽고 안 죽고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초휴에게 중요한 건 과연 오늘 일을 누가 지시했냐는 그 사실일 뿐이다. 아까 풍무랭으로부터는 아무런 단서도 들을 수 없었다. 아차 하는 순간에 목이 달아날 판인데, 단서를 듣기 위해서 손속에 여지를 둘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니 이제 심문할 만한 자는 임남업 하나만 남은 셈이었다.
임남업은 초휴의 시선을 느끼자마자 바들바들 떨더니 이내 등을 돌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천인합일의 등장으로 이 끔찍한 상황이 종료된 줄만 알고 한시름 놓았는데, 저 야차 같은 놈이 천인합일을 참살하다니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이제 초휴에게 잡혔다가는 꼼짝없이 뼈도 못 추리게 생겼다. 일이 이 지경이 될 줄 알았더라면 일찌감치 도망쳤을 텐데 이처럼 재수가 없을 수가 있나!
하지만 지금 도망쳐도 늦지는 않을 터였다. 초휴는 천인합일의 막강 상대를 맞아 격전을 치른 끝에 중상을 입었으니, 아까만큼 몸을 빠르게 움직이지는 못할 거라고 그는 애써 자위했다.
사실 초휴의 현재 몸 상태는 그의 짐작대로였다. 상세가 실로 가볍지 않은 터라, 내박인의 위력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임남업이 얼마 도망가기도 전에 골목 어귀에서 웬 삼화취정 무사 하나가 불쑥 나타나더니 다짜고짜 그에게 주먹을 날리는 게 아닌가.
전성기 시절에야 이까짓 삼화취정 나부랭이 하나쯤 날려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죽어라 도망치기에만 급급한 상황에서 불의의 습격을 당한 탓에,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기습을 감행한 상대가 기세등등하여 말했다.
“이 망할 영감탱이, 감히 내 구역에서 주인 행세를 했겠다? 어디 혼 좀 나봐라!”
그 상대는 다름 아닌 하양부 지역유지인 청호방의 방주였다. 그는 아까 임남업 등이 청호방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짓뭉개며 일을 강행한 것에 진작부터 앙심을 품고 있었다. 아까야 상대의 기세에 눌려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찌그러져 있었지만, 지금 낭패를 당한 꼴이 되니 이때다 싶어 분풀이에 나선 것이다.
임남업은 뜻밖의 기습에 화가 솟구쳤으나 분노를 표할 겨를도 없이 뒤에서 살기가 덮쳐왔다. 순간, 그는 속으로 ‘아뿔싸!’를 외쳤다. 그러나 미처 돌아보기도 전에 시력마저 앗아갈 극강의 광채가 사방을 휩쓸었다. 그 엄청난 충격에 울컥 피를 토하는데, 어느샌가 나타난 초휴가 그의 목을 거칠게 움켜잡고 몸뚱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음산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족제비 새끼처럼 잘도 도망가더군. 계속 그렇게 도망가 보시지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