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10)
310화 적을 제압하는 법
꼼짝없이 초휴에게 목덜미를 내맡긴 임남업의 표정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 초휴는 기가 완전히 꺾인 그를 노려보며 강하게 추궁했다.
“말해라. 누가 시켰느냐?”
순간 임남업은 갈등에 휩싸이고 말았다.
‘말하라고?’
그게 쉬우면 뭐가 걱정이랴. 섣불리 털어놓았다가 그 사실이 하후무강의 귀에 들어가는 날엔 또 험악한 꼴을 면치 못할 텐데.
“보아하니 아직도 뜨거운 맛을 덜 본 모양이로구나. 임가장이 강동에 있다지? 당신 목숨이야 둘째 치고 다른 식구들은 어쩔 테냐? 사실대로 불면 임가장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나, 입을 열지 않고 버티겠다면 몰살을 각오해야 할 거다. ‘설마?’ 하는 의심 따위는 버리는 게 좋을 거야. 내가 그런 짓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는 건 당신도 잘 알 거 아닌가.”
초휴는 침착하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말을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임남업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그의 말이 절대로 허언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휴를 죽이기로 작정한 당시, 그들은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려고 그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청룡회나 관중형당 시절을 막론하고 애먼 남의 가문과 종문에 피바람을 일으키는 게 그의 전매특허라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 그가 그 전매특허를 실행할 수도 있다고 공언한 이상, 못 할 이유는 조금도 없는 것이다. 의심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임남업이 이를 악물며 물었다.
“정말로 우리 임가장은 건드리지 않을 거요?”
“나는 적어도 내가 한 말에는 책임을 진다. 그건 내 행적에서 여러 번 입증된 사실이다.”
임남업은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리고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하후무강이 은밀히 연락해왔소. 우리더러 동제 무사들을 선동하여 당신을 죽이라고 했소이다.”
“하후무강?”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위에 있는 무사들은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번 사건 뒤에 이 모든 걸 획책한 자가 있었다니! 그리고 그 경악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하후무강의 수작에 말려들어 초휴한테 개죽음당할 뻔했는데 어찌 분노치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들을 더 분노케 한 건, 하후무강에게 화를 내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후씨와 같은 대단한 가문의 잘나신 자제가 부린 술수에 농락당했다 한들, 당장 그걸 찾아가서 따질 수나 있겠는가. 과연 그들같이 뒷배 없는 말단 무사의 하소연을 들어줄 데가 있기나 할까?
하후무강의 이름을 듣자 안색이 돌변한 건 초휴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해서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었다. 왜냐면 신병대회가 끝난 지도 이미 오래되지 않았는가. 하후무강이 정말로 복수할 생각을 품었다면 진작에 시도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잠잠한 걸 보니 ‘자신과의 악연은 잊었나 보다······’ 하고 무심히 넘겨 버렸다.
해서 초휴는 줄곧 태자나 이황자가 이번 일을 꾸민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그들 수준의 능력과 이유쯤은 있어야 이처럼 단시간에 이와 같은 규모의 일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뜬금없이 하후무강이라니! 이건 정말로 뜻밖의 인물이 아닌가. 초휴가 당황한 나머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하자, 임남업은 자기 말을 못 믿어 그러는 줄 알고 다시금 힘주어 말했다.
“내가 한 말은 죄다 사실이오. 아까까지만 해도 하후무강의 시녀인 선아라는 계집이 주루 위에서 모든 걸 다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오!”
임남업이 손가락으로 주루 쪽을 가리키자, 초휴의 시선도 그쪽을 향했다. 그의 입가에 음산한 미소가 떠오른 것도 잠시. 돌연 손에 힘을 주더니 단숨에 임남업의 목을 으스러뜨렸다. 임남업은 목뼈가 결딴나는 순간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금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해놓고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초휴가 그의 시신을 한옆으로 내던지며 말했다.
“임가장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지, 네놈을 살려준다고 한 적은 없다!”
말을 마친 초휴의 시선이 다시금 주루 쪽을 향했다. 그의 눈에 살기가 차올랐음은 물론이다. 그의 몸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주루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때 선아는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으나 한발 늦고 말았다. 순식간에 초휴에게 길이 가로막힌 그녀의 얼굴은 시체처럼 새하얘졌다. 일이 어찌 된 건지는 안 봐도 뻔했으니, 임남업 무리의 무능과 배신을 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살기등등하여 다가오는 초휴의 섬찟한 기세에 그녀는 일단 이 위기를 모면하고 볼 생각으로 되는 대로 입을 열었다.
“저기, 그게 아니라······.”
하지만 그녀가 제대로 말을 꺼내 보기도 전에 초휴의 눈동자가 심연처럼 변해 그녀의 정신세계를 장악해 버렸다. 그리고 선아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칠흑 같은 마기로 휩싸인 천마무가 그녀의 가슴을 관통한 뒤였다. 연신 입에서 피를 콸콸 쏟는 와중에도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초휴를 응시했다.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왔을 리도 없건만, 단 한마디 해명조차 들어보려 하지 않고 다짜고짜 목숨을 끊는단 말인가.
하지만 그녀의 의문이 길게 이어지기도 전에 초휴는 거칠게 칼을 도로 뽑아냈다. 그녀의 시신이 둔중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지자, 주위 사람들은 경기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아리따운 여인도 가차 없이 죽이다니, 대체 저자의 심장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단 말인가. 이 일에 임하는 초휴의 태도는 실로 경악 그 자체였다.
이 여인은 하후무강의 측근이다. 하지만 초휴는 상대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대번에 숨통을 끊어버렸다. 이것만 봐도 그가 장차 하후씨를 어떻게 대하려는지 불 보듯 뻔했다. 바야흐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날 싸움을 시작하려는 게 아니겠는가! 공개적인 선전포고라도 해도 좋을 터였다.
초휴가 도신에 묻은 선혈을 털어내더니 선아의 시신을 가리키며 담담히 말했다.
“누구든 시간이 허락되면 하후세가로 저 시신을 운구해 주시오. 아마도 하후무강이 섭섭지 않게 보상을 할 거요. 그리고 이 말도 함께 전해주면 좋겠소. 기왕에 거하게 놀아보자고 판을 벌였으니, 나 초휴도 끝까지 놀아줄 의향이 있다고! 그리고 최후에 놀이판에 끝까지 남아있는 자가 누가 될지는 두고 보면 알 거라고!”
말을 마친 초휴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거리를 천천히 지나 하양부를 벗어났다. 누가 봐도 상세가 위중함을 알아챌 정도로 그의 안색은 창백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든 지금의 그를 해코지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길 담력을 가진 자는 없었다.
수라지옥을 방불케 했던 살육의 현장에서 초휴는 이미 그들의 간담을 재기 불능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설령 그가 길바닥에 쓰러져 죽기 직전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다 한들, 시험 삼아라도 그를 건드려 볼 자가 어디 있겠는가. 다들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멀거니 지켜만 볼 뿐이었다.
순조롭게 하양부를 벗어난 초휴는 입에서 선혈을 왈칵 쏟아냈다. 이미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진 얼굴에서 핏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양부를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그는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 풍무랭을 죽인 후 그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 틈을 노린 적의 공세가 이어질 게 두려워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하고 두 명을 더 죽였다. 해서 상세는 부쩍 더 악화하고 말았다.
이래저래 하양부는 상처를 치료하기에 적절치 않았고, 그렇다고 이런 상태로 여정을 이어가는 것도 무리였다. 가까스로 인적 드문 야산에서 동굴 하나를 발견한 그는 잠시 이곳에서 요양하기로 마음먹었다. 초휴는 지금 외상보다도 내상의 치료가 더 시급했다. 월녀검전의 위력은 그 정수를 터득하는 순간 상상을 초월할 수준으로 치솟는다. 그런 위력으로 내지른 풍무랭의 일검에 늑골 부위가 뚫리면서 검기가 유입되어 체내 경맥의 파열로 이어졌다. 검기를 완전히 몰아내자면 당분간 시간이 소요될 터였다.
초휴가 요양에 들어간 동안 하양부 관련 소식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이 소식은 동제 전역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사실 누군가가 뒤에 숨어 무사들의 분노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현명한 이들은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짐작이 맞았음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하후무강의 소행이라는 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각본이었다. 신병대회 당시 하후무강이 초휴와 원한을 맺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긴 했다. 그러나 세간의 눈에 비친 그 원한의 수위는 이 정도로 일을 벌일 정도는 아니었다. 하후무강은 아량이 좁아터져 조금만 당하고도 참지 못하는 쪼잔한 성질머리의 소유자라던 소문도 이로써 확인된 셈이었다.
물론 위의 두 사실보다 훨씬 더 세간을 경악시킨 것은 이번 사건에서 증명된 초휴의 실력이었다. 오기조원 세 명과 삼화취정 여러 명을 잇달아 참살한 일 외에도 무더기로 달려들었던 다수의 무사를 해치웠다. 혼자서 수백 명에게 산지옥을 경험케 하는 기염을 토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결정적인 건 초휴가 ‘이인검’ 풍무랭을 죽였다는 사실이었다.
풍무랭은 지난날 강호를 떠들썩하게 달구었던 인물이다. 오늘날에도 강호의 천인합일 중 내로라하는 실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런 인물이 삼화취정인 초휴에게 참살당했으니 세간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신병대회를 계기로, 북연과 관중에만 머물러 있던 초휴의 명성이 동제로도 많이 퍼졌는데, 이번 사건을 통해 동제에서 그의 위상이 거듭 확인된 것도 모자라 오히려 한층 더 높아진 셈이었다.
며칠 후 하후씨 저택.
운반되어온 선아의 시신을 하후무강이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측근들은 다 알았다. 그 무표정한 얼굴 뒤로 얼마나 무서운 활화산이 끓어오르고 있는지를!
이때 기껏해야 응혈경에 불과한 말단 무사 두 명이 초조한 기색으로 하후무강 맞은 편에서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선아의 시신을 운구해온 자들이었다. 하후무강이 후하게 보상해줄 거라는 초휴의 말을 그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당당한 구대 세가 중 하나인 하후씨라면 거기서 떨어지는 콩고물만 주워 먹어도 한평생 배곯을 걱정은 없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여기에 온 것이다. 물론 운구에 앞서 찜찜한 느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자기들이 시신을 옮기겠다고 분연히 나섰음에도 아무도 이를 가로채려 들지 않았으니까.
초휴가 ‘보상’을 입에 담은 이상, 서로 옮기겠다고 사람들이 나서는 게 정상이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현실의 상황은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었다. 하후무강은 시신을 보고도 여태 보상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뭔지 모를 찜찜함의 정체는 이것이었을까?
그중 한 명이 참다못해 용기를 내어 말문을 열었다.
“저기. 하후 공자님······?”
그가 입술을 들썩이기가 무섭게 하후무강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두 줄기 금빛 광망이 발출되어 그들 체내로 유입되었다. 그리고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어신술에 의한 강기가 그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렸고, 머리 없는 시신 두 구는 나란히 쓰러졌다. 황천길에 오르게 된 지금에야 그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애당초 자기들과 시신 운구를 다투려 한 사람들이 없었던 이유를 말이다. 뻔히 죽으러 가는 길인 줄 알면서 자청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분노를 분출하고 나서야 하후무강의 입에서 이름 하나가 튀어나왔다.
“초휴!”
지금 그는 너무도 초휴가 증오스러운 나머지 산 채로 찢어발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선아는 단순히 측근이기만 한 게 아니라, 그가 잠자리에서 사랑했던 여인이기도 했다. 지금 그에게 본부인이 없으니 선아도 시녀에 머물렀을 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유일한 애첩이 되고도 남았을 터였다. 그런 여인이 죽었는데 세상 어느 남자가 냉정할 수 있겠는가.
초휴가 예상 밖의 가공할 실력을 선보인 것도, 풍무랭을 죽였다는 사실도 그에게는 중요치 않았다. 남의 일인 양 일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당장이라도 초휴를 찾아내어 천 갈래, 만 갈래 난도질하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