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11)
311화 풍파가 가라앉다
평소에도 하후씨 내에서 하후무강에 대한 평판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의 도량이 좁고 성질도 괴팍하다는 걸 문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건만, 선아가 죽은 지금이야 오죽할까. 해서 하후무강이 맘껏 폭주하도록 그냥 내버려 둔 채, 다들 멀찌감치 피해있기에 급급했다. 어설프게 그의 분풀이 상대가 되고픈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니까. 자기 처소 문만 열려도 그는 어김없이 욕을 퍼붓곤 했다.
“썩 꺼지라고 했······.”
이날도 어김없이 욕을 퍼부으려던 그는 흠칫 놀라 도로 삼키고 말았다. 처소로 들어선 비단 도포 차림의 중년인은 하후씨의 가주이자 그의 부친인 ‘신소릉운(神霄凌雲)’ 하후진(夏候鎭)이었기 때문이다. 워낙 인재가 풍년인 하후세가였지만 하후진은 청년 시절 평범한 자질 탓에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었다. 스물 남짓에야 선천경에 들어섰는데, 이건 일반 강호인이라면 빠른 편일지 몰라도, 하후씨 내에서는 별로 주목받을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선천경을 뚫은 그는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단숨에 어기오중의 단계를 뛰어넘고 무도종사가 되었다. 게다가 수완도 매우 노련해서 능수능란하게 모든 적수를 물리친 끝에 압도적 기세로 하후씨 가주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다. 아들의 못난 꼴을 지그시 바라보던 그가 담담히 물었다.
“왜, 승복을 못 하겠더냐? 이번엔 네가 직접 나서려고?”
하후무강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부친의 준엄한 눈빛에 자꾸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다.
“평소 내가 너를 어찌 가르쳤더냐? 독사를 죽이려다 실패하면 되레 네가 물릴 수도 있다고 당부했었지? 적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출수를 안 할 거라면 모를까, 기왕에 하기로 한 이상은 반드시 일격필살로 숨통을 끊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어찌 되었느냐. 너는 시종일관 장난처럼 계획을 세워 실행했고, 상대를 무시하는 우까지 범했다. 천하의 젊은 연배들 가운데 네가 절대 강자라도 되는 줄 알았던 게냐? 우리 하후씨가 과거 곤륜마교처럼 무소불위의 기세로 천하를 장악한 절대지존의 위치인 줄 알았느냔 말이다. 네 눈에는 세상이 만만하게 보였더냐?”
하후무강이 변명할 말을 찾느라 머리를 굴리고 있자니 부친의 호통이 이어졌다.
“여전히 궤변만 늘어놓을 생각이냐?”
하후무강은 그저 입만 실룩댔다. 찍소리도 안 했는데도 이런 불호령이 떨어질 것 정도라면, 진짜로 변명이라도 하는 날엔 귀싸대기를 맞을 게 뻔하지 않은가.
“흥! 네놈 생각을 내가 모를 거 같으냐? 네놈은 타고난 자질이 뛰어난 덕에 어릴 때부터 승승장구해왔지. 그래서 이처럼 세상을 만만히 보는 못된 버릇이 생긴 게야. 애당초 네가 낙가 계집 때문에 막천림과 마찰을 빚었을 때도 내가 당부했었지. 상대는 어쨌거나 상양 막가의 자제니까 절대 그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말이다. 지금 막천림이 너보다 못하다고는 하나,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 정면에서 너와 맞설 수는 없어도 뒤에서도 가만있으리라는 보장은 어디 있느냐? 네가 수세에 처해 있을 때, 얼마든지 뒤에서 비수를 찔러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초휴는 또 어떻고? 용호방 순위도 너보다 위일뿐더러, 신병대회를 계기로 관사우의 뜨거운 신임을 받는 인물이다. 지금이야 순찰사에 불과해도, 이런 기세로 나아간다면 장차 장형관이 될 것이고, 먼 훗날 관중형당 당주가 될지도 모르지. 자칫 이번 일로 관중형당의 미래를 책임질 거물급 인물과 깊은 원한을 맺게 된다면, 우리 하후씨에도 분명 나쁜 영향이 미치리라는 걸 왜 생각 못 한단 말이냐? 이 정도 얘기했으면 알아들었겠지. 너는 다 좋은데 그 과도한 자만심이 문제야. 그것만 아니면 너는 하후씨의 차기 가주로 전혀 손색이 없어. 평범한 집안이라면 좀 자만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겠지. 하지만 너는 대를 이어 하후씨를 짊어져야 할 몸이야. 자만심에 휩쓸리는 순간, 가문을 말아먹는 건 시간문제라는 말이다!”
부친의 호된 질타에 하후무강은 감히 추임새도 못 넣고 식은땀만 줄줄 흘렸다. 평상시 같으면야 부친의 잔소리쯤은 한 귀로 듣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잔소리가 초휴와 결부되고 나니, 이제야 자신이 얼마나 자만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는 초휴를 적수로 생각지도 않았고, 동제 전역을 무대로 했던 계획도 그저 상대를 혼내주고 싶다는 일념에서였다. 결과적으로 이처럼 망신살이 뻗쳤고, 선아가 죽고 풍무랭도 죽었다. 일을 그르친 건 둘째 문제고, 이번 일을 계기로 초휴와는 철천지원수가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이번 일로 얻은 건 하나도 없고 막대한 손실만 생긴 것이다.
“아버님, 그럼 소자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흥! 그걸 이제야 묻는 거냐? 네놈이 얼마나 큰 사달을 일으켰는지 알고서 묻는 소린가 이 말이다! 네가 은밀히 동제 무사들을 도발하는 데 이용했던 무사들이라고 해 봤자 그저 뒷배가 없는 말단 무사들에 불과했다. 진정한 거물급들은 네놈의 그 얕은수에 전혀 넘어가지 않았어. 결과적으로 이번 일이 우리 가문의 명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를 생각해 보란 말이다. 네놈이 굴린 잔머리였다는 사실은 세상에 다 알려졌고 관중형당도 곧 알게 되겠지. 이런 마당에 또 출수를 감행한다면 관중형당의 뺨을 때린 데 이어서 진흙탕에 쓰러뜨리고 짓밟는 셈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관사우가 직접 우리한테 따지러 올 테지. 네가 단번에 놈을 죽였더라면 어떻게든 이 아비가 나서서 무마하는 선에서 끝낼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네놈이 실패하는 바람에 초휴의 위상만 더 올라가 버렸다. 이 여파는 오래갈 것이니 적어도 지금은 초휴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게다가 월녀궁 쪽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제기랄, 감히 네놈이 아비한테 알리지도 않고 풍무랭 같은 자를 숨겨두었다니! 지난 세월 월녀궁이 사방으로 풍무랭을 잡으러 다녔던 사실을 몰랐단 말이더냐? 이번 일이 알려지자 풍무랭이 죽어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월녀궁에서 따지러 왔다. 그곳 아녀자들의 도량이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더군. 게다가 장로들도 너를 아주 괘씸하게 여기고 있어. 오늘부로 사당에 너를 연금한다.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다. 사당 밖으로 한 발짝도 나설 생각은 하지 마라!”
말을 마친 하후진은 차가운 코웃음만 남긴 채 나가버렸다. 사실 하후진의 내심은 겉으로 드러낸 만큼 화가 난 상태는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후무강을 몰아붙인 것은 어쩌면 이 일이 하후무강에게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후진은 일찍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덕분에 경쟁과 경계에 시달릴 필요 없이 묵묵히 자신의 정신력과 잠재력을 갈고닦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기회가 주어지자 단번에 용이 승천하듯 치고 나가며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정반대였다.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주위의 칭찬만 받다 보니 제대로 된 역경과 고초를 겪어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결국 과도한 자만심이라는 병폐를 낳고 만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철저한 자기반성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본인의 결점을 고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니 나쁜 일이라고만 볼 수는 없었다.
하양부에서의 일전으로 동제 전역이 한바탕 끓어 올랐지만, 하후씨의 개입으로 진정세를 띄더니 유야무야 잦아들었다. 초휴가 죽은 것도 아닌지라, 관중형당도 이번 일 때문에 하후세가에 따지러 가지는 않았다. 월녀궁 쪽은 하후세가에서 어떤 방법으로 수습했는지는 몰라도, 더는 풍무랭의 은닉을 문제 삼지 않고 곧 잠잠해졌다.
그로부터 보름 후, 초휴는 동굴에서 나왔다. 보름 만에 접한 정오의 햇빛이 어찌나 강렬한지, 제대로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안색은 여전히 창백해서, 요양을 통해 상세는 좋아졌을지 몰라도 손상된 원기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을 말해주었다. 이번에 그가 입은 중상은 관중형당으로 복귀해도 당분간 폐관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 이참에 원기 회복을 위한 요양을 빌미로 미뤄두었던 오기조원도 뚫어볼 생각이었다.
그는 동굴에서 나오자 하후세가의 동정부터 살폈다. 그 결과, 하후무강은 연금되었고, 하후씨는 이 사태를 수습하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로써 이번 일이 하후무강의 독단적인 계획이었고, 문중의 개입은 없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 정말로 하후세가에서 초휴를 죽일 마음이 있었더라면, 초휴도 그리 쉽사리 도주하지 못했을 테고, 하후씨도 그리 빨리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초휴가 관중형당으로 돌아가는 길목의 한 마을에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그를 찾아왔다. 그는 초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었으니, 다름 아닌 관중형당 산하의 관동지역 장형관인 ‘만검류’ 소습이었다. 소습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초휴는 의아함을 금치 못하고 물었다.
“소 대인께서 여기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소습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자네가 동제에 화약 한 무더기를 터트려놨으니, 관중형당에서 모를 수가 없지 않은가. 이처럼 대단하신 인물의 귀환 길에 관중형당이 한점의 성의도 표하지 않는다면 자네가 서운할 거 같아서 말이지. 사실은 하후씨 측에서 재차 자네에게 출수할 것이 염려되어 내가 마중 나왔네. 그런데 자네가 쥐새끼처럼 잘도 숨어다니는 바람에 내가 찾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아는가. 자네가 여기 나타났다는 제보를 듣자마자 달려온 길이네.”
“이처럼 마음 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공손히 답례의 인사를 올리던 초휴는 문득 뭔가가 생각 난 듯 물었다.
“그런데 당주님이 대인을 보내신 겁니까?”
자기가 소습과 그리 막역한 사이도 아니건만, 하필 그가 왔다는 게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초휴의 뇌리를 스쳤다. 누군가 마중을 나온다면 자신의 상관인 위구단이 왔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어떤 짐작이 뇌리를 스친 순간, 초휴는 내심 냉소를 금치 못했다.
초휴의 질문에 소습은 잠시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허허허, 다들 자네가 위구단과 불편한 사이라고들 하니 내가 온 게지. 굳이 이런 사실을 당주님 앞에서 덮어줄 마음도 없었고 말이야. 당주께서 장형관 네 사람 앞에서, 자네를 데리러 사람을 보내야겠다고 하셨거든. 당연히 위구단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지. 하지만 사람은 늙을수록 죽는 게 무서워지는 모양인지, 아니면 위구단 그 노인네가 하후씨의 출수가 겁나서 그런지는 몰라도 당주님의 말씀을 못 들은 척하더군. 해서 이 일이 나한테 떨어진 거지. 내가 요즘 한가한 편이었거든.”
소습이 가감 없이 사실을 털어놓았음에도 초휴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위가와 장가의 일로 인해 초휴와 위구단의 사이가 제대로 틀어진 건 확실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위구단이 당주 앞에서도 대놓고 자신을 모른 체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마도 이번 일을 계기로 관사우는 위구단에게 크게 실망했을 터였다. 명색이 상관이라는 자가 위험에 빠진 자기 수하를 구하러 가는 일에도 이렇게 몸을 사리다니, 훗날 관중형당이 위기에 직면한다면 그가 어찌 나올지는 뻔하지 않겠는가.
평소에야 더러 사심을 채울 수도 있고 심계를 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조직의 체면이 달린 일에조차 평소의 그런 태도로 임한다면, 치매를 의심해봐야 할 심각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물론 머지않아 은퇴를 앞둔 입장이라 당주의 눈치를 볼 거 없이 막 나가자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에 대한 조직 수장의 시각은 냉정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과연 위구단은 계속 관중형당에서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