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15)
315화 체면 봐주기
뭣도 모르고 공공장소에서 초휴를 욕하다가 그의 수하에게 정통으로 걸렸으니, 위진은 실로 난감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리 심한 말을 한 것도 아닌 듯했다. 그저 두어 마디 초휴의 험담을 한 게 뭐가 그리 대수란 말인가. 게다가 위진은 지난번에 위가가 초휴에게 밀렸다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저 위구단의 체면을 봐서 밀리는 척해준 거라고 여길 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한 위진의 간덩이는 끝없이 부풀어 올랐다.
“흥! 초휴의 수하인가 보군. 당신 눈에는 초휴가 관중형당 당주로 보이는 모양이지? 그래서 감히 흉도 보면 안 된다는 건가? 이봐, 여기는 진주부야. 초휴가 대장 노릇을 하는 건주부가 아니란 말이다!”
위진이 한마디도 안 지고 대들자, 한모 등은 본능적으로 슬금슬금 물러나 그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물론 초휴를 흉본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막말로 욕인들 못 하겠는가. 실제로 강호에도 그를 욕하는 자들은 수두룩했다. 하지만 욕하더라도 남들이 안 듣는 데서나 해야 할 게 아닌가. 이건 그의 면전에서 한 거나 다름없게 되고 말았으니 꼼짝없이 경을 치게 생겼다. 하필 그걸 초휴에 대한 충성심이 절절 끓는 화노가 들었으니, 이제 좋게마무리 짓기에는 그른 듯했다.
위진이 고개를 숙이긴커녕 강경하게 뻗대자 화노의 눈에 냉기가 흘렀다. 초휴에 대한 화노의 충성심은 그가 자기에게 많은 걸 주었다는 사실에 기인했다, 또한 그가 준 모든 걸 끝까지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본인의 의지도 한몫했다. 바야흐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때가 된 것이다.
이처럼 공개적으로 초휴를 욕한 위진을 벌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여태 자신이 초휴 덕에 얻은 모든 것에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감히 초휴 대인을 욕하고도 잘했다고 대드는 거냐? 좋다. 그럼 네놈을 건주부로 데려가 줄 테니 어디 당사자 앞에서 실컷 욕해 보아라.”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노가 대뜸 위진을 잡으려 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어디선가 검망 한줄기가 번쩍하더니 화노의 앞을 가로막았다. 동시에 위진의 눈에는 생기가 돌았다.
“이숙(李叔)! 날 좀 구해줘!”
바람처럼 나타나 위진을 보호하고 선 자는 외강경의 실력으로 위진의 보호를 맡고 있는 위가의 문객이었다. 그는 내심 앞뒤 분간 못 하는 위진에게 화가 났다. 집안에서야 제멋대로 굴어도 어물쩍 넘어가질 테지만, 밖에 나와서도 입단속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사고를 치니 왜 안 그렇겠는가. 하지만 위가의 직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날엔 보호를 맡은 자신도 책임을 피할 수가 없을 터였다. 일단은 화노에게 숙이고 봐야 했다.
“화노 대인, 우리 공자님이 아직 어린 탓에 철없이 초 대인을 욕되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 한 번만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지요. 이처럼 사소한 일을 굳이 크게 키울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보아하니 기녀도 끼고 질펀하게 놀던데 뭐가 어리단 거요? 툭하면 진주부로 와서 주색잡기에 혈안이 되던데 말이지. 우리 대인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소. 사람은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이오. 내가 모시는 상관이 이런 모욕을 당했는데, 부하 된 자로서 어찌 가만히 있겠소이까. 그냥 넘길 일이 아니지. 좋소. 당신네 공자가 철이 없다고 했던가? 나한테 넘기시오. 건주부로 데려가서 바짝 철이 들도록 제대로 교육을 시킬 테니까!”
이숙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정말 위진이 화노한테 끌려가게 내버려 두면 죽지는 않더라도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를 일이 아닌가.
“화노 대인, 정말로 우리 위가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으실 겁니까?”
웃을 듯 말 듯 하던 화노의 표정에 순간 비웃음이 잔뜩 깔리더니, 급기야 ‘퉤!’하고 침을 뱉기에 이르렀다.
“애당초 위가에 체면이란 게 있기는 했나? 지난번 당신네 가주 위묵구가 초 대인께 시비를 걸러 왔었지. 그리고 결과가 어찌 되었소? 꽁지 빠진 개처럼 슬며시 장형관 뒤에 숨어서 빠져나갔었지.”
이숙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초휴의 수하가 이처럼 대놓고 위가를 모욕하고 나올 줄은 예상 못 한 때문이었다.
“위진 공자, 먼저 가시오. 내가 뒤를 봐줄 테니.”
이제 싸움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해서 일단 위진부터 피신시키고 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화노의 비웃음이 뒤따랐다.
“가긴 어딜 가? 아무도 여길 못 떠날 줄 알아라!”
화노는 물속을 노니는 물고기처럼 괴이하게 몸을 놀리더니 순식간에 이숙의 앞을 막고 섰다. 상대의 신법이 이처럼 빠를 줄 생각지도 못한 이숙은 화노의 공격을 막고 볼 생각에 반사적으로 장검을 휘둘러 수 척 길이의 검강을 쏘아냈다. 하지만 이숙이 출수한 강기의 세기를 본 화노는 조소를 머금었다. 상대의 나이를 보아하니 자기보다 훨씬 많은 듯한데 검강이 일 장 길이에도 못 미치는 외강경이 아닌가. 한마디로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화노가 일장을 내지르자 적홍색 강기가 밖으로 발출되지 않고 장중(掌中)에 응집되었다. 그는 손에 맺힌 강기로 이숙의 검강을 받아냈다. 그 결과, ‘펑’하는 소리와 함께 이숙의 검이 화노를 몇 발짝 밀어내긴 했으나 동시에 수중의 장검 또한 순식간에 적홍색으로 물들더니 사악한 화기(火氣)가 이숙의 체내로 유입되어 경맥을 태우기 시작했다. 극심한 고통에 그의 낯빛은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화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양손을 결인하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이숙 체내의 화기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듯 이에 반응했다. 경맥을 태우는 동시에 기혈의 힘을 밖으로 세차게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화노는 이숙의 허점이 드러나길 기다렸다가 일장으로 그를 날려버렸다. 이때의 신체 접촉을 교량 삼아, 이숙의 체내에 유입되었던 화기가 기혈의 힘과 더불어 화노의 체내로 회수되었다. 눈 깜박할 새에 기혈의 힘을 상대에게 뺏긴 이숙의 낯빛은 종잇장처럼 새하얘졌다.
화노의 무공은 서역의 한 부족에게 전승받은 것으로, 마공은 아니지만 괴이쩍고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화기를 상대의 체내로 유입시키면 상대가 이를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는 이상 경맥을 태운 후 도로 회수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상대가 가진 기혈의 힘도 일부 빼앗아 올 수가 있었다. 요약하자면, 싸울수록 상대의 힘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공격자 자신이 점점 더 강해지는 원리였다.
이리하여 몇 합 만에 이숙은 중상을 입고 말았다. 이때 위진은 아직 문밖에도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도주하기엔 이미 늦은 듯 보였다. 이를 본 이숙이 이를 악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으나, 그의 두 눈동자는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초휴가 동급 무사들 가운데 단연 압도적인 존재인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외강경에 갓 들어선 그의 수하마저도 이처럼 전투력이 고강하단 말인가!
하긴 그는 화노가 청룡회 살수 출신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개 세가에서 문객 노릇이나 하는 그와 비교해서 헤치고 나온 아수라장이 다른 것이다. 청룡회 살수들이 동년배 가운데 최강의 경지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동급의 경지와 비교할 때 전투력에서 그들 대부분을 압도하는 건 사실이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살수들은 살인에 최적화된 무공을 익힌 자들이다. 동급의 상대를 동시에 몇 명이고 상대할 실력이 안 된다면 어찌 살수 노릇을 하겠는가. 죽이기는커녕 되레 죽어 나가게 될 텐데.
“내가 말했지, 아무도 여기서 나갈 수 없다고!”
화노는 부상이 심한 이숙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몸을 날려 막 주루를 나가려던 위진을 붙잡으려 했다. 위진이 곧 그의 손에 잡히려는 찰라, 돌연 진주부 순찰사 강도연이 나타나더니 화노를 향해 일장을 내질렀다. 그 강력한 장력을 이기지 못한 화노가 비틀대며 밀려나자, 강도연이 대충 아무렇게나 손을 휘둘러댔다. 그건 화노 장중의 그 사악한 화기를 전부 몰아내기 위한 손짓이었다.
과연 삼화취정과 외강경의 격차는 컸다. 초휴는 자기보다 하나, 심지어 두 개 경지 위인 실력자와도 감히 맞붙는 기염을 토했지만, 화노는 초휴가 아니었다. 일단 실력으로도 직급으로도 어쩔 수 없는지라 상대를 노려보며 따졌다.
“강 대인,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초 대인을 욕한 자를 감싸려는 겁니까?”
이에 강도연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나는 이곳 진주부의 순찰사다. 화노, 한 번만 내 체면을 봐주면 좋겠구먼. 이 일은 이대로 덮었으면 하네. 정 싸우고 싶으면 다른 지역으로 가서 하든가.”
진주부 경내 주루에서 싸움이 붙었으니, 진주부 순찰사가 관여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처사였다. 위진과 화노가 충돌하기 시작했다는 보고를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 길이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생각보다 화노의 태도가 훨씬 더 강경한지라, 중간에 낀 입장에서 난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원 위가는 건드리기 싫고, 초휴는 더더욱 건드리기 껄끄럽다. 그러니 차라리 다른 곳에 가서 싸우라고 권할 수밖에. 그러자 화노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강 대인의 체면을 봐서 위진을 죽이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건주부로 데려가긴 해야겠습니다.”
이에 강도연의 낯빛이 흙빛으로 변했다.
‘아니, 저놈이 위가 사람을 죽일 작정까지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는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애써 냉정한 척, 해 보였다.
“화노, 자네와 말장난할 기분이 아니네. 내 말뜻이 뭔지는 자네도 잘 알 게 아닌가. 진주부를 벗어나면 싸우든 말든 자네 맘대로 해도 좋아. 그러나 여기서는 일을 벌이지 말란 소리야.”
하지만 화노는 유들유들 자기주장을 밀어붙였다.
“진주부를 벗어났다가 저들이 위가로 도망치면 어찌합니까. 자칫 저들을 놓쳤다가는 제가 초 대인 밑에서 계속 부하 노릇 할 면목이 없는걸요. 저놈을 죽이지 않는 것만 해도 강 대인의 체면을 세워 드린 겁니다. 지금 당장, 기필코, 위진을 건주부로 이송해야겠습니다.”
화노의 태도는 지나치리만치 강경일변도였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이 폐부에까지 와닿은 위진은 강도연의 뒤에 숨어 벌벌 떨고 있었다. 순찰사가 어떻게든 막아줄 것을 기대하면서······. 이에 강도연이 뭐라고 몇 마디 더 내뱉으려는데 뜻밖에도 화노가 입막음이라도 하려는 듯 먼저 차갑게 쏘아붙였다.
“강 대인, 당신은 순찰사이시니 제가 체면을 봐 드리는 거라고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대인이 나타나지만 않으셨어도 진작 저놈의 검을 부러뜨리고 모가지도 날렸을 겁니다. 제가 이 정도로 체면을 봐 드렸으면 대인께서도 제 체면을 봐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개 강호 포두가 감히 순찰사이신 강 대인과 맞먹을 수야 없겠죠. 그러니 오늘 저자를 데려가지 못하게 된다면, 일단 저는 물러나서 초 대인께서 출관하시면 이 일을 고해바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우리 대인께서 직접 강 대인과 말씀을 나누셔서 해결하시면 되겠군요.”
화노의 협박 아닌 협박에 강도연은 얼굴이 시뻘게져 실룩거렸다. 일개 강호 포두가 이렇게까지 기어오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강도연은 나름 참을 줄도 알고 상황 파악이 빠른 자였다. 굳이 이런 일로 초휴와 사이가 벌어지고 싶지도 않았고 그의 독보적인 앙갚음도 두려웠다. 초휴에게 밉보이는 것보단 차라리 위가의 원한을 사는 게 낫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처럼 어떤 걸 선택하는 게 그나마 자신에게 유리할지 가늠해 본 강도연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초 대인이 나오면 나도 그에게 물어볼 참이네. 자기 수하가 이토록 버르장머리 없이 행동하고 다니는 걸 알고 있는지 말일세.”
이 말을 남긴 강도연은 어리둥절해 있는 위진을 버려둔 채 사라졌다. 화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강도연이 나중에 초휴에게 뭐라고 따지든 그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자신의 상관이 본인과 수하들의 허물을 정당화하는 데 얼마나 능한 위인인지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