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16)
316화 그를 내어놓아라
강도연이 사라지자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 위진은 꼼짝없이 화노의 수중에 떨어졌다. 그래도 달아나려 몸부림쳐봤지만 화노는 아예 진기로 뇌진탕을 일으켜 그를 기절시켜 버렸다. 중상을 입은 이숙은 저지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위가의 덕을 입고 사는 문객인 건 맞지만 목숨은 하나뿐이다. 화노의 실력은 이미 똑똑히 보았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자다. 섣불리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자신의 목숨은 물론 위진도 더 위험해질지 모를 일이 아닌가. 해서 위진이 끌려가는 걸 두 눈 뜨고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화노가 완전히 사라지길 기다렸다가 이숙은 절뚝거리며 발걸음을 뗐다. 당장 이 일을 위가의 장로이자 위진의 부친인 위동명(衛東明)에게 알리는 게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 위가로 돌아간다면 좋은 소리 듣기는 글렀으니, 이대로 종적을 감출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관중에 발붙이고 살려면 위가에 밉보여서는 두고두고 곤란할 터. 해서 위가로 돌아가는 쪽을 택했다.
위가의 직계 장로인 위동명은 육순이 넘은 삼화취정으로, 현임 가주인 위묵구보다 한 연배 위였다. 늘그막에 아들 위진을 얻은지라 과도한 애정을 쏟았고 결과적으로 망나니로 키워내고 말았다. 물론 평온한 시절이라면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관서 땅에서 위가 이름으로 덮어주지 못할 실수나 잘못이 뭐가 있겠는가. 문제는 그가 초휴를 건드렸다는 사실이었다. 위동명은 이 엄청난 소식을 듣자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하도 가슴이 떨려서 이숙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길래 평소 내가 뭐라고 했더냐. 잠시도 진아(辰兒)한테서 눈을 떼지 말라고 했지!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두 눈 멀쩡히 뜨고 애가 끌려가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고? 그걸 지금 보고라고 하는 것이냐!”
이숙은 그저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위진의 주둥이가 위진의 몸에 달려있어 제멋대로 떠들어대다가 그리된 걸 어쩌란 말인가. 아예 입도 벙긋 못하게 주둥이를 꿰매기라도 했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저 위동명이 맘껏 화풀이라도 하게 두는 게 상책일 터였다. 어설프게 변명이라도 했다가는 그를 더 폭주시키기 쉬웠다. 이처럼 한바탕 소리를 질러대어 화가 반분이나마 풀린 위동명은 뒤늦게 초조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초휴가 아닌 다른 사람이나 세력이 아들을 건드린 것이라면 문제는 간단했다. 위가의 장로로서 불호령만 내리면 상대로부터 아들을 되찾는 건 물론이고 배상이나 사과까지도 받아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아들을 끌고 간 자가 초휴의 수하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초휴가 자기 실력으로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상대임을 모른다면 그건 치매를 의심해야 할 터였다. 그는 고민 끝에 이숙을 잡아끌며 말했다.
“가자. 가서 가주를 뵈어야겠다. 진아를 구해달라고 청해보자고!”
이윽고 두 사람은 위묵구가 폐관 중인 밀실 앞에 당도하여 문을 두드렸다. 위묵구는 지난번 초휴와의 대결에서 수세에 처하며 자극을 받은 탓인지, 그 후로 이곳에서 수련하며 지낼 때가 많았다. 문중 사람이라면 가주가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생활을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특히 그가 폐관 수련 중일 때는 웬만해서는 절대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게 불문율처럼 되어있었다. 그런데도 돌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위묵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젠장, 무슨 큰일이 터졌길래······.’
위묵구가 밀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위동명이 벌게진 눈을 들이대며 부르짖었다.
“가주, 제발 우리 진아를 구해 주시구려!”
이게 무슨 소린가. 위동명이 이곳에 나타난 것만도 뜬금없는데 느닷없이 자기 아들을 구해달라니?
“대체 무슨 일입니까. 위진이 또 무슨 사고를 쳤길래요?”
위가의 젊은 세대 가운데 위진은 사고뭉치로 유명했다. 그간 위묵구가 나서서 뒤치다꺼리한 것만도 벌써 몇 번인지 몰랐다. 해서 위동명이 들이닥치자마자 위묵구는 지레 두통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 같았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길 테지만 폐관 수련 중임을 뻔히 알면서 또 그 망나니 같은 아들놈 일로 훼방을 놓다니······. 위동명이 나이를 먹을수록 사리분간을 못 한다는 생각에 그는 부쩍 기분이 나빠졌다. 해서 위동명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성가시다는 듯이 팔을 크게 내저으며 짜증부터 냈다.
“됐소, 듣고 싶지도 않습니다! 무슨 사고를 쳤건 간에 장로께서 위가의 이름을 팔아서 해결하면 될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위진 그놈이 돌아오는 대로 당장 녀석을 감금해 버리시오. 툭하면 가문에 우환만 안기는 그 망할 버르장머리를 이번에야말로 따끔히 고쳐주시란 말입니다!”
그러자 위동명이 우느니만 못한 미소를 쥐어짜며 매달렸다.
“위가 이름을 내세워 해결될 일 같았으면 진작 내가 했을 거요. 진아가 누구한테 잡혀간 줄 아십니까?”
“어느 놈이 감히 우리 위가의 자손을 잡아갔단 말이오! 혹시 원주의 장가에서?”
“장가가 아니고 초휴라고요, 초휴!”
“뭐라고? 초휴!”
위묵구가 안색이 돌변하여 거칠게 언성을 높였다.
“내가 폐관 전에 뭐라고 당부했소? 절대로 초휴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잖습니까. 때가 되면 초휴를 처리할 방법이 분명 생길 테니, 지금은 납작 엎드려서 죽은 듯 지내야 한다고 말이오! 그 잘난 아드님께서 참으로 장한 일을 하셨구먼. 감히 건주부까지 가서 초휴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을 하다니, 살기가 싫어져서 환장했답디까?”
이에 위동명이 다급히 해명했다.
“가주께서 오해하셨소. 진아가 제아무리 개망나니라지만, 초휴의 본거지에까지 가서 사고를 칠 리가 있겠소? 이번 일은 순전히 뜻밖의 사고였다니까. 그러니 진아만 탓할 일이 못 됩니다. 초휴의 수하도 분명 도가 지나쳤단 말이외다.”
그는 사건 경위의 설명에 들어갔다. 반푼어치의 가감도 없이 정말 있었던 사실 그대로 세세하게 읊었다.
“이런 팔푼이를 보았나!”
마음 같아선 더 심한 욕도 하고 싶었지만 위묵구는 애써 참았다. 평소 위진, 그놈의 주둥이가 방정이더니만 이번에도 예외 없이 그 입을 잘못 놀려 화를 자초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괘씸한 건 괘씸한 거고 지금은 위진을 구하는 게 급선무였다. 위가의 체면 때문에라도 그리해야만 했다. 초휴가 굳이 자기 수하를 감싸려 든다면, 위가라고 위진을 보호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잘잘못을 가리는 건 나중 문제고 위가의 제자가 상대에게 끌려갔다. 게다가 상대는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은 상태다. 그런데도 위가에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관서에서 위가의 명성은 크게 실추될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묵묵히 생각에 잠겨있던 위묵구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위진을 끌고 간 게 초휴 수하인 화노의 단독 결정이었다고 했소? 초휴가 개입한 게 아니고?”
위동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자신의 개인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라고 화노 본인 입으로도 분명히 말했었다. 게다가 요즘 초휴가 한창 폐관 수련 중인 건 관서 전체가 다 아는 사실이다. 위묵구가 고심 끝에 말했다.
“초휴가 아직 모르고 있을 테니 일이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겠소. 위가가 초휴와 한창 관계가 껄끄러운 시점이니 그와 정면으로 맞서기에는 위험부담이 클 수밖에 없소. 그러니 관중형당 내부적으로 해결하게 합시다. 위장릉더러 다녀오라고 하시오. 초휴가 나서지만 않는다면 순찰사의 권위로 강호 포두 하나쯤이야 찍어누를 수 있지 않겠소?”
“위장릉이요? 이 일이 위장릉만으로 되겠소이까?”
위동명이 의구심을 표했다. 비록 위장릉이 외강경 강호 포두보다 우위인 삼화취정 순찰사라고는 하나, 그는 여전히 화노가 두려웠다. 이에 위묵구가 코웃음을 쳐 보였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요? 나나 노야께서 직접 나서기라도 해야 만족하시겠소? 그 잘난 아들 하나 때문에 위가 전체를 위험에 빠뜨려야 직성이 풀리겠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아이고, 그럴 리가요. 가당치도 않은 말씀을요. 가주, 부디 노여움을 거두시구려.”
위동명이 허둥지둥 고개를 숙이자 위묵구는 더 상대하기도 귀찮다는 듯, 위장릉에게 해당 내용을 통보하게끔 조치하고는 도로 밀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 무렵 화노도 위진을 데리고 건주부 순찰사 당구에 당도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서니 당아, 안불귀, 랑왕 등이 모두 와 있는 게 아닌가.
화노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라도 돼? 어쩐 일로 죄다 여기에 모여 있는 거요?”
평상시 같았으면 다들 관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가, 여러 잡무를 모아서 보고할 때가 돼서야 한 번씩 건주부에 들리곤 했다. 그러니 이처럼 모두가 한날한시에 집결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화노의 질문에 귀수왕이 답했다.
“내일이 바로 봉록 받는 날이잖아. 평소에도 굼뜨더니만, 이젠 봉록도 남들보다 늦게 받을 생각인가?”
“아하!”
화노는 자기 머리를 ‘탁’ 쳤다.
요즘 하도 느긋이 살다 보니 봉록 받는 날도 잊고 지날 뻔했다.
이때 위진의 모습이 귀수왕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 자식은 뭐야?”
이에 화노가 위진을 한옆에 내동댕이치며 답했다.
“위가 머저리 한 놈을 잡아 왔소. 감히 내 앞에서 우리 대인을 욕하길래 따끔히 혼내주려고 데려왔지. 전담 경호를 받는 걸 보니 직계쯤 되는 모양인데, 귀수왕이 보기엔 어떻소? 내가 이 자식을 끌고 와서 대인께 폐가 될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화노도 전혀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막상 위진을 데려오긴 했지만, 오는 길 내내 그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자칫 초휴에게 나쁜 영향이라도 끼칠까 봐서였다.
귀수왕이 잠시 수염을 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제깟 놈이 직계면 대수야? 대인께서 친히 말씀하셨잖아. 위가는 걱정거리도 못 되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이야. 감히 대인을 욕하다니, 당장 흑뢰(黑牢)에 처넣을 놈이구먼. 일단 쓴맛부터 살짝 보여 줌세. 죽일지 살릴지는 대인께서 나오셔서 결정하시면 될 일이지.”
여기서 ‘흑뢰’란, 순찰사 당구 내에 극악한 범죄자들을 잠시 가둬두는 감옥인데 수감자의 수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관중형당이 일하는 방식상, 극악한 범죄자들은 증거가 확실히 밝혀지기가 무섭게 참살되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갇혀봤자 얼마 있지도 못하고 죽어 나가기 일쑤인 탓이었다. 귀수왕의 말을 듣고서야 화노도 마음이 놓였다. 그는 하급 강호 포두를 불러 위진을 넘겨준 후, 흑뢰에 푹 썩혀두라고 일렀다. 입으로 화를 부르는 게 어떤 건지 톡톡히 맛보여줄 생각이었다.
이때 밖에서 위장릉이 왔다는 전언이 들려왔다. 화노 등은 서로 시선을 맞췄다. 과연 위가의 동작이 재빠른 것 하나는 인정해줄 만했다. 위진을 데려오기가 무섭게 저들도 대적할 사람을 보내왔으니 말이다. 초휴 수하들의 눈에 위장릉이 우습게 보이는 건 사실이나, 그래도 그가 관서의 순찰사인 건 분명했다. 초휴가 폐관 수련에 들어간 지금, 건주부에는 직급으로 그를 대적할 만한 적수가 없는 셈이었다.
이윽고 위장릉이 흉흉한 기세로 들이닥치더니 주변을 둘러본 후 으름장을 놓았다.
“위진은 어딨느냐? 당장 그를 내놓지 못할까!”
물론 여기에 초휴가 있었더라면 감히 이렇듯 세게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순찰사 당구 내에는 강호 포두들 뿐이다. 그나마도 죄다 외강경들이니, 위장릉의 간덩이는 절로 부풀어 올라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초휴의 수하들은 만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귀수왕이 짐짓 슬픈 표정을 지어가며 능글능글 혀를 놀렸다.
“거참, 위 대인께선 등장도 요란하기 짝이 없으십니다그려.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내놓으라 하시다니요. 초 대인이 폐관 중이시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라면 언감생심 이곳 문턱을 넘을 엄두나 내셨겠습니까. 우리가 사람을 잡아 온 건 맞습니다. 지금 흑뢰에 가둬두었고요. 그자는 불경스럽게도 감히 초 대인을 모욕했습니다. 초 대인의 허락이 없는 한, 누구도 그를 데려갈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