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18)
318화 오기조원에 이르다
위장릉의 팔뚝이 피로 범벅된 건 물론, 그의 이마도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설마 외강경 두 명에게 이처럼 속절없이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방금 종이 한 장 차이로 팔이 통째로 날아갈 뻔했다. 이젠 군말이고 뭐고 필요 없다. 그저 도망만이 살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순찰사의 체면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싸움을 계속하다가는 외강경 강호 포두들에게 목숨까지 내어놓게 생겼다. 하나뿐인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말이다!
위장릉이 도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안불귀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뒤쫓아서 끝장을 내야 할 듯싶었지만 당아가 막아섰다.
“쫓지 마라. 나도 이제 기진맥진이야. 자네 혼자서는 추격해봐야 끝장낼 수가 없어. 게다가 대인도 안 계신 이 마당에 정말 저자를 죽이기라도 할 셈인가?”
안불귀는 힘에 능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저 힘에만 능할 뿐이었다. 약삭빠른 위장릉이 꽁무니를 빼기로 작정한 이상, 안불귀는 결국 그를 놓칠 게 뻔했다. 게다가 엄연히 존재하는 직급의 차이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지금 위장릉을 죽이면 그건 하극상 중에서도 죄질이 극악한 하극상일 수밖에 없었다. 더는 관중형당의 녹을 먹고 살 수 없게 됨을 뜻한다.
당아의 만류에 안불귀는 중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중검을 도로 묶어 등에 멨다. 그제야 당아가 귀수왕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 보기에 위가는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요. 자기네 사람이 우리 수중에 잡혀있다는 건 가문의 체면이 달린 문제니까 말이오. 사람을 내어달라고 온 위장릉마저 중상을 입혀 쫓아냈으니, 위가로서는 미치고 팔딱 뛸 일이지. 이치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귀수왕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심각하기는! 이제 곧 대인께서 나오실 텐데 뭐가 걱정이야? 대인 앞에서 위가가 까불어 봤자지.”
초휴의 무지막지한 살성(殺性)을 떠올린 당아는 귀수왕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초휴의 명성은 관중형당 내에서보다 바깥세상에서 더 대단했다. 특히 동제 제주부 인근에서 그의 유명세는 독보적이었다. 만약 제주부 현지의 무림세력 가운데 위가와 실력이 비슷한 어느 세력이 지금 초휴에게 도발을 할 계획이라고 가정해보자. 과연 그들에게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길 용기가 있을까?
위가가 초휴에게 제대로 쓴맛을 보면 절로 포기하고 물러나기가 십상일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일단 초휴가 저들에게 쓴맛을 보이기로 작정한 이상, 순순히 물러나게 둘 리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위가의 명맥이 끊길지도 모를 일이다. 위가라고 해서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으니, 정말로 쓴맛을 보기도 전에 지레 물러날 가능성이 클 터였다.
바깥이 이처럼 시끄럽게 돌아가는 데도 나 몰라라 하고 거의 한 달째 폐관 수련을 지속한 초휴는 마침내 오기조원을 뚫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오기조원에 이르렀다고 해서 지난번 외강경에서 삼화취정으로 올라섰을 때만큼 실력의 급상승이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체내의 역량이 좀 더 균형감 있게 변하면서 ‘기’가 한층 더 완벽하게 다듬어졌다고나 할까.
어느 무도종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천지가 하나의 큰 세상이라면 인체는 그 속의 작은 세상인 셈이다. 따라서 자기 몸으로 무공을 연마함으로써 종국에는 천지의 도를 깨우칠 수 있다.’
정기신 합일을 이룬 초휴 몸속의 다섯 장기는 오행이 끊임없이 맞물려 이어짐으로써 전신에 매우 미묘한 균형이 이루어졌다. 진기의 총량이 증가하긴 했지만 그리 대폭 증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출수해보면 삼화취정 시절과 비교해 폭발력과 진기에 대한 장악력, 그리고 진기의 회복능력이 훨씬 증강된 것만은 분명했다.
초휴는 오기조원을 뚫은 뒤에도 금방 나오지 않고 천자망기술을 한 층 더 파고들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경지의 향상은 성공했으나 천자망기술은 좀처럼 진전되지 않았다. 해서 이번 폐관은 절반의 성공인 셈이었다. 아무래도 이 기이한 공법은 천지의 힘을 빌려 터득하거나, 실전 중에 자연스럽게 깨우치는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천자망기술의 진가는 천지의 기운을 예측하여 그 변화를 추산하는 데 있다. 예전에 초휴가 천자망기술로 상대의 허점을 간파할 수 있었던 것은 입문만 해도 가능한 잔재주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특별히 대단할 건 없었다는 말이다.
천자망기술을 대성하면 미풍만 스쳐도 얼마 후 어느 지점에 나무의 잎사귀가 떨어질지 예측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 인과 관계를 추산해 낼 수 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지금의 초휴 능력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상대의 허점을 간파하려면 상대가 실수를 범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 상대가 어찌 나오느냐에 따라 허점의 간파 여부도 결정되니, 한마디로 피동적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상대가 시종일관 난공불락의 냉정함을 유지한다면 끝내 허점을 간파하지 못할 테고, 천자망기술은 쓰임을 잃게 되는 것이다.
지난번 풍무랭과의 일전은 순전히 요행이 따라준 덕이었다. 그의 정신이 급격히 무너지는 바람에 천인합일의 고수임에도 순순히 허점을 내어준 격이다. 설령 실력이 풍무랭보다 못하더라도 정신에 아무런 허점도 보이지 않는 강철 심장의 소유자와 싸웠더라면 초휴는 천자망기술을 아예 써먹지도 못할뻔했다. 이런 까닭에서 초휴는 소성(小成)하기라도 바라야만 했다. 그래야 애써 비급을 손에 넣은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초휴가 출관하자 귀수왕 등이 알아채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오기조원에 들어서시고 막강한 실력의 성취를 이뤄내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
“에이, 이 사람들이 또 이러는군. 그런 인사말은 필요 없대도. 그나저나 지난번 당구 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초휴가 폐관 중이긴 했으나, 생사가 걸린 중요한 폐관은 아니기도 했고 거리도 가까워서 바깥 동정을 감지할 수 있었다. 다만 귀수왕이 끝내 그를 불러내지 않은 것으로 봐서, 그들 선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일 거라고 짐작했다. 해서 즉각 나오는 대신, 약간의 주의력을 바깥으로 분산시켜 사태 추이를 관망하다가 여차하면 뛰쳐나가 도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양측이 출수하는 기미가 감지되는가 싶더니, 당아와 안불귀가 협공으로 상대를 물리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해서 굳이 나가지 않고 수련을 이어간 것이었다.
위장릉이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내심 쾌재를 부르며 안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아와 안불귀가 그를 격퇴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라면 초휴가 친히 나섰을 게 아닌가. 일단 초휴가 폐관을 풀고 뛰쳐나온 순간, 일은 일파만파로 커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위장릉이 제 발로 걸어서 건주부 순찰사 당구를 벗어나는 건 포기하게 되었을 테니 말이다.
귀수왕이 그간의 사정을 초휴에게 보고한 후 물었다.
“대인, 아무래도 위가에서 이대로 물러나진 않을 성싶습니다. 어찌 처리하면 좋을까요?”
이에 초휴가 거침없이 살벌한 지침을 내렸다.
“가서 그 위진이라는 놈을 사람 구실을 못 하게 만들게. 앞으로 주둥이 단속 잘하도록 따끔히 버르장머릴 고치란 말이네. 위가는 신경 쓸 것도 없네. 또 도발해온다면 관서 땅에서 사라지게 만들어줘야겠지. 어차피 언제 닥쳐도 닥칠 일이었어.”
귀수왕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저런 무자비한 반응을 보일 줄 진작 예상했었다. 상관의 패도적 기질을 보아온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던가. 물론 그것도 다 실력이 받쳐 주니까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가 막 관중형당에 들어와 관사우와 위구단 앞에서 절절매던 당시를 생각하면 절로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그 무렵, 위장릉도 보고차 위가에 와 있었다. 그의 보고는 삽시간에 위묵구의 대로를 불러일으켰다.
위묵구가 수중의 찻잔을 거칠게 내던지며 일갈했다.
“이 바보 같은 자식! 그깟 일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해?”
위장릉은 그저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가주님, 절대로 제가 사정을 봐준 게 아닙니다. 초휴의 수하인 당아와 안불귀, 그 두 변태 같은 놈들이 외강경 주제에 삼화취정과도 맞먹을 실력을 보였다니까요. 두 놈이 협공해온 데다, 건주부 놈들도 벌떼처럼 몰려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포위하는데, 제가 실력 발휘나 제대로 할 수 있었겠습니까.”
바닥에 떨어진 자기 위신을 조금이라도 주워 담아 볼 생각에 위장릉은 당시의 상황을 수배나 부풀려 과장되게 설명했다. 마치 당아와 안불귀가 초휴와 다를 바 없었던 양 말이다. 위묵구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노야가 폐관 중인 후원으로 향했다. 이처럼 엄청난 일을 그 혼자 감당할 자신이 없으니 노야와 의논하려는 것이었다.
설명을 다 들은 노야 역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당분간 몸을 사리고 있는 게 상책이리라고 생각했건만 저들이 우릴 가만 내버려 두질 않는구나. 일이 이처럼 커져 버렸으니 침묵만 지킬 수도 없겠지.”
“위진 그 철없는 놈이 사사로이 초휴를 좀 욕한 걸 갖고 다짜고짜 경계를 넘어 사람을 잡아가다니요. 그 수하 놈들의 패악질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위장릉이 위진을 데리러 갔으나 안 가느니만 못한 꼴을 당하고 왔습니다. 중상까지 입었고요. 이런 판국에 우리가 물러난다면 위가의 위신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고 말 겁니다.”
미간 깊숙이 내 천자(川)를 그린 채 묵묵히 듣고만 있던 노야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안 되겠다. 나와 함께 위구단을 만나러 가자.”
“네? 설마 아직도 위구단이 초휴를 제어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위묵구가 석연찮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위구단과 초휴 간의 불화설은 이미 관서 전역에 퍼진지 오래였다. 세간에서는 초휴가 자기만의 세력을 구축하면서, 실질적으로 위구단과 대등하게 맞서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제어할 수 없다고 해서 위구단이 언제까지고 두 손 놓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위구단과 하루 이틀 알고 지내온 사이도 아니고, 그가 어찌 나올지 뻔히 예측되니 하는 소리다. 워낙 옹졸하고 탐욕스러운 인물이야. 특히 그 대단한 권력욕은 말로 표현 못 할 정도지.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좋은 게 좋다고, 은퇴도 앞둔 마당에 굳이 초휴 같은 수하와 반목하려 할까. 하지만 위구단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자야. 우리가 아니더라도 위구단은 진작부터 초휴를 어찌 손봐 줄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을 거다. 우리가 이참에 그에게 기름칠을 좀 하고 좋은 빌미도 만들어 주자꾸나. 위구단으로서는 거절할 이유도 명분도 없을 것이야.”
한편, 위구단은 관서지부 내에 있는 자신의 서재에서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장형관씩이나 돼서 거느리고 있는 순찰사 하나 어찌해볼 방도가 없다니. 이런 일은 아마 긴긴 관중형당 역사에서도 미증유의 상황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 은퇴 전에 반드시 초휴를 밟아 버리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져 갔다.
초휴와 좋게 끝내야겠다는 건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퇴직하면 그간 모아둔 것들을 챙겨 들고 이 불편한 관서 땅을 떠나 다른 곳에서 노후를 보낼 작정이었기에 초휴의 눈치를 볼 필요를 못 느꼈다. 성격상 그는 초휴 말고도 많은 이들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었다. 일단 장형관 쪽만 보더라도 은백통은 그의 숙적이고, 소습과 초사마와도 우호적인 사이가 아니었다. 수하들 쪽도 양자인 양릉 외에는 미덥게 느껴지는 자가 없었다. 관사우 쪽도 예외는 아니었다. 은퇴를 앞두고 마음이 붕 뜬 탓인지, 그가 지금까지 보여온 행동들이 관사우의 심기를 불편케 한 것이다. 이런 판국에 계속 관중형당과 관계를 유지하고 살 생각을 한다면 그야말로 치매를 의심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