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22)
322화 직접 터뜨리다
‘자기 관을 보기 전에는 눈물을 흘릴 줄 모른다’라는 옛말은 지금의 노야에게 너무도 어울리는 것이었다. 진작 도주할 궁리를 했더라면 초휴도 천인합일 고수인 노야를 확실히 잡는다고 장담하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격전 끝에 위가 측의 태반은 시체가 되어버렸고 노야도 진기 소모가 막대했다. 이제야 도주를 생각했다는 건 누가 봐도 너무 늦었다.
노야 수중의 장검이 다시금 허공으로 치솟더니 순식간에 얼음 빛이 도는 강기의 파문(波紋)이 물결치며 천지의 힘을 끌어냈다. 이에 극한 냉기의 힘이 파문 속으로 유입됨과 동시에 맹렬히 초휴를 덮쳐왔다. 자신의 몸이 한기의 보호를 받는 이 틈을 타서 노야는 도주할 생각이었다. 초휴가 아닌 이상, 천인합일 고수가 가는 길을 감히 누가 막겠는가. 자기 목숨이 아깝기는 천하의 당아와 안불귀도 예외는 아닌지라 어쩔 수 없이 길을 터주고 말았다.
바로 이때, 초휴가 원만보병인을 출수해 지고지순한 무한 광명을 터뜨려냈다. 격렬한 폭발음이 일며 노야의 한빙강기가 파괴된 것을 확인한 초휴는 즉시 내박인을 출수해 빛의 속도로 노야 앞을 막아섰다. 곧장 내리친 아비마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성(神性)마저 깃들어 섬뜩함을 더했다. 노야가 기겁하여 검을 휘두르니, 검날에 천지의 힘이 실리면서 얼음 폭풍과도 같은 강기가 몰아치며 초휴의 일도를 휘감았다. 하지만 광폭한 마도의 기세를 못 이기고 이내 와해하고 말았다.
노야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얼음 빛이 감도는 오급 보병의 검신에 균열이 일기 시작하더니 결국 산산조각이 나고 만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초휴의 눈동자에 살의가 차오르더니 이내 망아살경에 빠져들었다. 노야는 최근 십여 년간 출수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의 검도 십여 년간 피 맛을 보지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병기로서의 예기를 상실한 데다, 검의 주인도 살기와 전의를 전혀 받쳐주지 못했다. 그러니 검이 부서지지 않고 버틸 수 없었다.
반면 초휴는 최근에만도 허다한 살육전을 치렀다. 자칫 지옥으로 떨어질 생사결만도 무수히 겪은지라 그간 축적된 살의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처럼 지독한 살의를 겪어본 적이 없는 노야는 더럭 겁을 집어먹고 몸과 마음이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때 초휴가 천자망기술을 시전했더라면 노야의 전신 곳곳에서 무수히 많은 허점을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망아살경에 빠져든 지금, 그의 머릿속은 죽이겠다는 생각만으로 꽉 차 있었다. 이런 상태로는 천자망기술을 시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면승부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데 굳이 허점을 찾아 기습할 필요가 무에 있겠는가. 그의 주먹에 무한한 살의로 응집된 힘이 실리며 주위의 모든 것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그리고 망아살권이 벼락처럼 내리꽂히려는 그 위치에 바로 노야가 있었다!
사실 에 속한 무공의 태반을 강호인들은 식별해내기 어렵다. 예컨대 초휴가 익힌 ‘대혼원공’과 같은 내공류의 공법은 초휴가 먼저 밝히면 모를까, 겉만 보고 그가 그런 무공을 익혔음을 알아낼 자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망아살권은 예외적으로 명성이 높았다. 동제 군부의 적잖은 무사들이 이 권법을 익힌 터라, 살의를 극한대로 응집하면 일권을 내지르기도 전에 그 살의만으로도 상대의 몸이 찢길 수 있다는사실은 유명했다.
따라서 노야도 상대의 권법이 일격필살의 망아살권임을 금방 인지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전신의 한빙강기를 오른팔에 응집시킨 노야는 검지(劍指)를 질러 주의의 강기를 죄다 얼렸다. 곧이어 두 번째 검지로 얼린 강기의 힘을 한데 합쳤다. 그러자 강기가 폭발하는 대신, 내부적으로 더욱 단단히 결속되어 위력이 배가되었다. 뒤이어 신들린 듯한 속도로 잇따라 아홉 갈래의 검지를 내지르자, 아홉 갈래의 힘이 빙산처럼 겹겹이 합쳐졌다. 이때 노야의 낯빛은 설산의 눈을 방불케 할 정도로 창백해진 상태였다.
이것이 바로 위가가 지닌 비장의 무기, ‘구중한산검(九重寒山劍)’의 실체였다. 지난날 노야의 성명절기이기도 했다. 실력이 한창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젊은 시절에는 구중한산검의 위력 또한 절정에 달했었다. 하지만 노구의 몸으로 동일한 초식을 시전하고 난 지금, 그의 진기는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노야가 이처럼 힘겹게 내지른 구중한산검이 망아살권과 정면충돌하니, 강력한 한기가 초휴의 모든 내장과 경맥을 거칠게 휩쓸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초휴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린 데 이어서 붉은 기운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망아살경에 빠진 초휴는 여전히 물러날 줄을 몰랐다. 물론 이때조차도 그의 이성은 멀쩡히 살아있었지만, 워낙 살의의 영향력이 크다 보니 상대를 죽이지 않고 도중에 멈추기가 불가능했다. 내사자인으로 상세의 악화를 막을 생각도 미처 못하고 다시금 망아살권과 구중한산검이 격렬히 충돌했다. 이번에는 겹겹이 얼려진 힘이 파괴됨과 동시에, 초휴의 오른팔에도 한기가 베고 지나간 상처로 선혈이 낭자했다.
하지만 이건 그저 외상에 불과했다. 초휴가 상처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원만보병인을 출수하니, 눈도 멀게 할 극강의 광채가 살기를 싣고 터져 나왔다. 노야가 전력을 다해 막았으나. 상대의 권인이 일으킨 충격으로 기혈이 끓어오르며 몸이 절로 밀려났다. 다음으로 태산도 가를 엄청난 힘과 함께 대금강륜인이 출수되면서 양측간에 또 한 번 거대한 충돌이 일었다.
이때 초휴의 상태는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기관 장치처럼 기계적으로 한 초, 한 초, 대금강륜인을 잇달아 내지르고 있었다. 이제 양측은 체력과 진기, 그리고 의지력의 무한 대결에 돌입한 것이다. 하지만 초휴의 젊음은 경지의 열세를 보완해주고도 남았다. 게다가 유리금사고의 존재와 정상급 종문에 못지않은 일신의 여러 무공이 든든히 뒷받침해 주며 힘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으니, 두 사람은 백중지세를 이루었다.
이처럼 열 합 남짓의 충돌이 연달아 이어지자 노야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피를 토하고 말았다. 더는 버틸 수 없을 듯했다. 아무도 물러날 생각을 안 하는 이 격전을 끝내려면 상대를 죽이든가, 내가 죽든가 둘 중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상대를 죽일 자신은 없고, 내가 죽자니 그건 너무 두려웠다. 해서 이판사판 달아나고 싶었지만 지금 물러났다가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물러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출수가 자신도 모르게 굼떠졌다. 노야의 속내를 간파한 초휴는 이때를 놓칠세라 앞의 인법보다 훨씬 복잡한 손짓을 취해 보였다. 순간 그의 손에서 오색 찬란한 광망과 함께 오행의 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생상극을 이루며 일시에 터져 나왔다. 일륜인이 위용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일륜인을 전에도 시전한 적이 있었지만 삼화취정일 때는 흉내만 내는 데 그쳤을 뿐, 진정한 위력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일륜인은 오기조원의 경지에서 진정한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었다. 체내 오행의 힘이 균형을 이루며 완전한 오행 합일을 이루어야 일륜인의 위력이 최대치로 치솟을 수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오행의 힘과 더불어 다섯 가지의 힘이 상생상극을 이루자, 이로 인해 축적된 힘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합쳐진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이상의 융합 효과로 한 층 강화된 힘이 노야의 경맥을 파열시킨 결과, 그는 피를 토하며 거칠게 튕겨 나가고 말았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빛 한 줄기가 번쩍하며 그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피가 솟구치면서 그의 수급은 어느샌가 초휴의 손에 들려 있었다.
주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관서지부 무사들은 그만 혼이 달아나고 말았다. 초휴의 수하들도 이때만큼은 예외가 아니었다. 초휴가 천인합일을 죽이고 돌아왔다는 사실은 다들 아는 바였다. 하지만 그저 말만 듣고 아는 터라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직접 목격하니 그 당혹감과 충격이란 듣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노야의 수급을 손에 든 초휴는 부상 치료와 진기 회복을 위한 단약을 입에 넣었다. 솔직히 말해서 노야와의 이번 일전은 그에게 별다른 압박감을 주지 못했다. 심지어 강동오협의 정불휘와 악전고투를 벌였던 당시보다도 수월했던 게 사실이다. 원인은 간단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노야가 죽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죽기를 꺼린 나머지, 생명이 경각에 달린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들 다하는 정혈 태우기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그만큼 몸을 사렸다는 얘기다. 기혈이 많이 쇠진된 노야와 같은 고령의 무사에게 있어 정혈을 태우는 건 남은 수명을 불사르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애석하게도 목숨을 걸 각오로 싸우지 않은 그와는 달리, 초휴는 그의 목숨을 뺏고야 말겠다는 일념뿐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노야는 온전한 몸으로 이 위기를 탈출해 진상을 밝힘으로써, 초휴가 궁지에 몰리는 꼴을 보고야 말겠다는 환상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사용하기를 꺼리며 아껴두었던 그의 정혈은 허무하게도 관서지부 대청 바닥을 적시는 데 쓰였다. 이윽고 주위의 무사들을 둘러보며 초휴가 근엄히 말했다.
“위가가 감히 위 대인을 시해했다. 이는 지엄한 관중형당의 법규를 모독하고 역심을 품은 반역행위다. 그 죄를 물어 위가 늙은이를 처단했으나 아직 위가의 잔당들이 남았으니, 나와 함께 출동해서 저들을 궤멸한다!”
이에 양릉도 뒤이어 소리쳤다.
“초 대인을 따라 위가를 치러 간다!”
양릉이 실력은 초휴만 못해도, 위구단의 양자라는 신분이 이런 때 매우 요긴하게 작용했다. 위구단이 죽음으로써 다들 무의식중에 양릉을 위구단의 대리인으로 간주한 것이다. 적어도 관서지부에서만큼은 양릉의 존재감이 초휴보다 커서 말에 더 힘이 있었다. 이윽고 무사들이 지부 밖으로 몰려나온 후, 초휴는 두광중 무리를 불러 전음으로 은밀히 일렀다.
“위가를 쓸어버리는 데 자네들은 갈 필요 없네.”
이에 두광중 등이 놀라 눈이 둥그레졌다.
위가를 멸문하는 일은 큰 공을 세울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함께 갈 필요가 없다니······?
‘우리가 공을 세우길 원치 않으시나? 대체 어째서?’
‘슬슬 우리를 버릴 준비를 하시려는 건가? 이제 우리가 필요 없어서?’
이처럼 머릿속이 복잡해져 감히 입을 떼, 묻지도 못하는 모습에 초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엉뚱한 생각들은 말고. 다른 일을 맡기려는 거다. 위구단의 시신을 자네들도 봤지? 두광중, 진방, 유성례 자네들은 전문가니까 감쪽같이 시신을 조작해주게. 싹 다 자리를 비워줄 테니, 그 틈에 증거인멸을 하란 말이다. 정 곤란하면 시신을 훼손해도 상관없네.”
위구단을 죽인 게 위가라고 발표한다면 세간에서 과연 곧이곧대로 믿어줄까? 그럴 리도 없거니와, 애당초 그러리라 기대할 수도 없었다. 일부 소수의 사람만이라도 믿는 쪽을 ‘선택’해주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해서 지금 초휴가 위구단의 시신을 처리하려는 건, 세간의 눈을 속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초휴가 죽인 흔적이 선명한 시신을 가지고 위가에 죄를 전가할 순 없는 노릇이니, 최소한의 포장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