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27)
327화 초휴의 가치
날이 밝자 관중 네 개 지역 장형관 중 세 명이 형당 대청에 집결했다. 물론 나머지 한 명은 영원히 참석하지 못할 터였다. 집형사 측에서는 사명 혼자만 오고, 나머지 두 수령은 불참했다. 집형사는 관중형당의 전투력을 상징하는 정예 조직이니 이런 일까지 그들이 나설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사명은 그저 집형사를 대표해 참관 자격으로 왔을 뿐이니, 딱히 발언할 일은 없을지도 몰랐다.
위구단의 죽음은 실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역대 장형관 중 뜻밖의 죽음을 맞았던 자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자기 수하에게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한마디로 위구단이 첫 사례인 셈이다. 초휴를 어찌 처리할지는 관중형당 법도의 지엄함이 달린 중대사안이기도 했다. 해서 형당 내 실권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의무가 있었다.
이윽고 관사우가 수하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다들 의견을 말씀해 보시오. 초휴의 일을 어찌 처리하면 좋겠소?”
가장 먼저 발언한 이는 은백통이었다.
“당주, 이 마당에 그런 하문은 뭐하러 하십니까? 초휴가 우리를 죄다 바보 천치로 아는 모양입니다. 같잖지도 않은 변명을 해명이랍시고 내놓으며 우리를 기만하려 들고 있습니다. 위구단은 분명 초휴가 죽인 것입니다!”
형당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구단과 은백통의 불화가 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묵은 원한의 깊이를 생각하면 위구단의 죽음은 은백통이 박장대소를 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실제로 앓던 이가 빠진 거 같은 기분인지라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초휴와의 원한도 깊다는 사실이었다.
자그마치 제자 둘이 그에게 당했다. 하나는 폐인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초휴의 간계에 죽었다고 추정되는 상황이다. 이 빚을 반드시 청산하고야 말리라고 벼르던 중에 위구단이 죽은 것이다. 그건 경사지만 초휴까지 죽는다면 겹경사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은백통의 발언을 듣고 난 초사마가 담담히 물었다.
“우리 관중형당은 늘 명확한 증거에 근거해 일을 처리해왔소. 하지만 지금 초휴가 위구단을 죽였다는 확증이 있소이까?”
지난번 은백통이 초휴를 손 보려 했을 때도 초사마는 딴지를 걸고 나섰다. 그것만도 은백통은 앙금이 쌓였는데, 이제 같은 일이 되풀이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물론 초사마와 초휴가 결탁한 사실을 그가 알 리 만무하니, 기분이 상해 되물었다.
“흥, 증거? 바보 천치라도 금세 간파할 일에 증거 따위가 왜 필요하다는 거요!”
이에 초사마도 첨예하게 맞섰다.
“그대에게는 증거가 없을지 몰라도 내게는 있소. 사건 발생 당시, 위가 측은 죄다 전멸하여 증언할 수 없지만, 현장에는 초휴의 수하 외에도 양릉이 있어서 모든 걸 지켜보았소. 그는 이미 본부로 소환되어 증언도 했소이다. 다른 사람 말이라면 믿기 어렵다 쳐도, 설마 위구단의 양자 말도 못 믿겠단 소리요?”
초사마가 이번엔 관사우에게 아뢰었다.
“당주, 양릉을 들게 하시어 하문하심이 좋겠습니다. 물증은 없으나 유력한 목격자니까요.”
“좋다. 양릉을 들게 하라.”
관사우의 허락이 떨어지자 잠시 후, 양릉이 다소 불안한 기색으로 대청에 들어섰다. 사실 그는 본부에 와본 적이 거의 없는 터라, 이처럼 거물급들이 모인 자리는 처음이었다. 명의상으로는 위구단의 양자지만, 실상은 그저 위구단의 잡일이나 처리하는 심부름꾼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위구단은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키울 마음이 없었기에 본부에 데려와 인맥을 만들어 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양릉이 한껏 긴장된 표정으로 상관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순찰사 양릉이 당주님과 여러 대인을 뵙습니다.”
그러자 은백통이 기다렸다는 듯이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가 자네를 왜 불렀는지 잘 알 테지. 자네는 위가 측이 자네의 의부를 살해했다고 증언했더군. 그러나 당시 자네에게는 말 못 할 고충이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네. 지금 여기 우리 앞에서는 솔직하게 털어놔도 무방할 것이야. 대체 누가 위구단을 죽였는가?”
이에 양릉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은 대인, 지금 무슨 말씀이신지요? 말 못 할 고충 같은 게 제게 왜 있겠습니까. 의부님은 위가에게 살해당하신 게 맞습니다.”
순간 은백통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자리에 대비하고자 이미 그는 양릉의 뒷조사까지 했었다. 당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양릉과 초휴는 친분은 고사하고 충돌을 빚은 일까지 있었던 경쟁 관계였다. 위구단이 자기 양자를 밀어주고 초휴를 견제할 목적으로, 원래 초휴에게 갔어야 할 주부를 양릉에게 넘겨 그를 순찰사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둘 사이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해서 양릉이 위구단의 시해 진범으로 위가를 지목하자 은백통은 초휴가 뒤에서 협박한 결과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인제 보니 초휴의 협박으로 진실을 밝히지 못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물러설 은백통이 아니었다.
“흥! 양릉, 잘 생각해서 말해야 할 것이야. 여기는 본부고, 당주님도 지켜보고 계신 자리라는 걸 명심해야지. 다시 한번 기회를 줄 테니 제대로 답하는 게 좋을 거다! 누가 위구단을 죽였나!?”
천인합일 고수의 기세에 눌린 양릉이 식은땀을 비 오듯 흘렸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저는 사실만을 아뢰고 있습니다. 대인께서 백번을 하문하셔도 제 대답은 마찬가집니다. 위가 노야가 의부님을 죽였습니다!”
그러자 은백통이 두 눈을 부릅뜨며 한 번 더 양릉을 몰아세우려는데 초사마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만하면 되었소. 위세로 눌러 거짓 증언이라도 받아내야 속이 시원하시겠소?”
관사우도 은백통을 힐끗 째려보더니 양릉에게 물러가도 좋다고 명했다. 이에 양릉은 무거운 짐이라도 내려놓은 양 황망히 물러갔다. 하지만 좌중의 눈에도 양릉의 태도가 왠지 미심쩍은 건 사실이었다. 설령 초휴가 협박했다고 한들, 여기 본부에까지 와서 위구단의 양자로서 사실을 고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대관절 초휴가 무슨 기막힌 술수를 부렸길래 이처럼 양릉을 맘대로 다루는지, 그들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관사우가 사명과 소습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자네들도 의견을 말해보게. 이 일을 어찌 보는가?”
은백통이 두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지금 자기와 초사마의 의견이 반반 갈린 셈이니, 저 두 명이 초휴의 처벌에 동의하면 관사우도 과반수의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사명이 딱 잘라 말했다.
“집형사는 이런 일에 관여해오지 않았으니, 당주께서 결정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사명이 기권을 선택한 건 당연했다. 초휴와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데다, 딱히 반감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집형사는 관중형당의 정예 역량으로 살인 임무를 전담한 조직이다. 해서 그 외 잡스러운 일까지 관여하고 싶지도 않았고 관여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묵묵히 생각에 잠겨있던 소습이 입을 열었다.
“저는 이일을 좀 더 신중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호방 십 위권인 초휴가 강호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 존재인지 다들 알고 계실 테지요. 우리가 그간 얼마나 존재감 없이 움츠려 지내왔습니까. 우리에 대한 강호인들의 인식은 골치 아픈 사건이나 대신 처리해주는 포리(捕吏) 정도에 불과했던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간만에 초휴가 이런 선입견을 보란 듯이 깨고 우리의 위상을 드높이지 않았습니까. 이제 강호인들의 뇌리에 관중형당의 이름 넉 자가 단단히 각인되게 되었단 말이지요.”
“우리에게도 초휴와 같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강호가 잊게 만들면 곤란합니다. 한마디로 초휴는 이제 관중형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본 사건을 조사하여 처리는 하되, 반드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자칫 졸속(拙速)으로 이 사건을 처리해서, 우리 뺨을 우리 손으로 때리는 결과가 빚어진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세간에서 우리를 얼마나 비웃겠습니까.”
소습은 길게 발언하는 내내, 초휴를 엄벌하자는 건지 아니면 그냥 넘어가자는 건지 속내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좌중의 사람들이 그 정도 눈치가 없겠는가. 소습은 은연중 초휴를 편들고자 하는 의도를 내비친 셈이었다. 초휴가 위구단을 죽였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곤 하나, 당시의 정황이 모든 면에서 초휴가 진범임을 말하고 있으니 증거가 딱히 필요치 않았다. 거듭 조사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소습이 신중한 조사 운운한 것은 초휴가 관중형당에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강조하기 위한 서론에 불과했다.
소습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부터 은백통의 낯빛은 부쩍 어둡게 가라앉았다. 솔직히 말해서 소습이 초휴 편을 들고 나설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대 장형관 중 소습이 가장 젊고 실력도 단연 강했다. 평소 껄렁껄렁하니 진중치 못한 태도와는 달리, 실제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다. 이는 그가 내린 결정이 은백통과 초사마를 합친 것보다 비중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역대 당주 가운데 단연 말에 힘이 실렸던 인물은 전임 당주인 초광가와 현임 당주인 관사우를 꼽을 수 있다. 초광가는 개인적인 매력과 출중한 실력으로, 관사우는 관중형당을 반석 위에 올려 중흥기를 맞게 한 공적 때문에 그랬다. 해서 형당 내에서는 두 사람의 말이 곧 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라도 관사우는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만 할 터였다.
관사우는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여전히 고심했다. 솔직히 말해서 관중 땅에서 초휴의 위상이 이처럼 올라간 건 누구도 예상 못 한 값진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초사마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소습까지 초휴의 편을 들고 나서는 상황이다. 이로써 초휴의 가치는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았다. 소습은 자기 세력을 규합하는 등의 꼼수를 부리는 일도 없이, 늘 진정으로 형당의 이익만을 우선하여 생각하는 인물이 아닌가. 한마디로 이들 중 가장 마음이 투명한 인물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런 그조차도 초휴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것은, 초휴의 징벌이 형당에 있어, 하나도 좋을 게 없음이 증명된 것이었다. 다만 관사우는 초휴를 이대로 무죄로 처리하는 게 어딘가 타당치 않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뇌리에 자리 잡기에 앞서, 일전에 매경령이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해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선언했다.
“소습의 말대로 이 일은 확실히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우리 형당이 큰 손해를 보게 될 테니까. 해서 위구단 피살 건은 당분간 계류토록 한다. 몇 사람 보내서 주시하는 것으로 일단락 짓고, 최종 판결 전까지 초휴는 이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간주한다.”
관사우의 선언에 가뜩이나 안 좋던 은백통의 표정은 처참하게 구겨졌다. 얼굴에 분통이 터진다는 기색이 한가득했다. 관사우가 초휴의 혐의를 확실히 벗겨준 건 아니지만, 사건을 당분간 계류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이대로 종결짓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관사우에 대한 매경령의 영향력이 지대할 거라고 했던 초휴의 말은 이로써 적중한 셈이었다. 원래는 신중하게 처리하려던 그가 결국 자기 입으로 사건 종결을 선언해버리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때 초사마가 다시 발언했다.
“당주, 지금 관서 장형관 자리가 비어있습니다. 초휴가 그 자리를 맡게 하심이 어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