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30)
330화 초휴의 패도(霸道)
관서지부 내에 사도행, 방화, 양릉, 강도연, 네 명의 순찰사가 모두 집결했다. 지금 이들의 심적 상태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뉘었다. 일단 양릉은 자신의 모든 걸 던진 도박판에서 이긴 것을 자축했다. 초휴의 편에 선 선택이 성공한 것에 대해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초휴가 장형관이 되었으니, 그간 줄곧 초휴를 도와왔던 자신에게도 적잖은 보상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이와는 달리, 사도행과 방화는 여전히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아무리 하룻밤 새에 천하가 바뀌었다고는 하나, 초휴가 관중형당에 반평생 넘게 헌신해온 그들마저 내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이었다. 게다가 초휴와는 줄곧 그다지 좋을 것도, 별로 나쁜 것도 없는 관계를 유지해왔으니 딱히 청산해야 할 악연도 없었다. 그러나 강도연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 따로 없었다. 그간 초휴를 음해할 궁리를 해온 흔적들을 말끔히 없애긴 했다, 그럼에도 뭔가 흔적이 발각될까 봐 전전긍긍이었다.
회의실의 네 사람은 이처럼 자기만의 생각에 잠긴 탓에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잠시 후 초휴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장형관 특유의 검은 장포를 걸친 모습은 유난히도 고압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일신에서 뿜어 나는 기세 또한 전임이었던 위구단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이에 순찰사들은 흠이라도 잡힐세라, 자기도 모르게 앉은 자세를 바로 하며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초휴가 상석에 앉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나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장형관 대인을 뵙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사도행과 방화는 자기들보다 새카맣게 어린 후배 놈한테 밀리다 못해, 이처럼 예까지 올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에 갈등이 깊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장형관의 모습으로 나타난 초휴와 맞닥뜨리니, 행여 했을지도 모를 그 고민이 새삼 어리석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가공할 실력은 물론이려니와, 저 당당하고 고압적인 기세만 봐도 초휴를 상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못 배기겠다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진작부터 무의식중에 이 현실을 인정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물론 복잡한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거짓이겠지만 말이다. 지난날 초휴가 막 관서에 발을 디뎠을 때 그들은 초휴와 인사를 나누기는커녕,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만에 초휴에게 깎듯이 예를 갖추어야 하는 처지가 되니 마음 한구석이 착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초휴는 깔끔하게 한 손을 휘저으며 장형관으로서의 첫 발언을 시작했다.
“다들 앉으시오. 피차 한솥밥을 먹은 지 오래된 식구들이니 새삼 긴 인사를 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제 이곳 수장이 바뀌었으니, 쇄신을 통해 위구단이 망쳐놓은 관서의 기강과 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오.”
사도행과 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초휴의 천하가 되었으니 어쨌거나 그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건 없다. 초휴의 성격상 저리 나올 줄은 충분히 예견했던 바다. 한바탕 갈아엎어 위구단의 흔적을 없애지 않는다면 그게 되레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초휴가 근엄히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뿐이오. 대외적으로 절대지존의 막강한 형당이 되는 것! 관중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한시도 저들이 잊지 않게 해야 하오. 앞으로 여기 있는 누구든 무림세력의 반역과 과오를 눈감아주고 타협하다가 적발된 자는 내 처사가 무정하다는 원망을 하지 말아야 할 거요. 능력 없는 순찰사는 당연히 갈아치워야 하는 법이니까!”
이에 사도행이 의문을 제기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문다고 했습니다. 만에 하나 무림세력이 연합하여 들고 일어나면 어찌합니까? 단일 세력을 상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텐데요. 관서의 힘만으로 저들을 진압하는 데 실패한다면, 그래서 자칫 일이 커져 당주님 귀에까지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우리 모두 징계를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일이 커질 건 왜 걱정하오? 설령 그리되더라도 내가 나서 해결하면 그만이지. 그대들은 그런 걱정은 말고 내 명을 집행하는 데만 신경 쓰시오.”
사도행은 무슨 말인가를 덧붙이려다가 황급히 도로 삼켰다.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한 지금의 초휴한테 대놓고 이의를 제기하는 건 현명치 못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까짓것 겉으로는 명을 받드는 척하면서 뒤로 슬며시 봐주면 될 일이 아닌가. 어떤 경우건 현지 무림세력과 부딪히는 일만은 피하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간 무림세력들이 자신에게 꼬박꼬박 재물과 수련자원을 상납해온 걸 생각하면 저들에게 각박하게 굴 자신이 없었다.
사도행이 머릿속에서 자신이 절충한 결론을 내리고 있자니 초휴가 불쑥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이로써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은 다 한 셈이오. 다음은 묵은 빚을 청산해야겠군그래.”
좌중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초휴가 무얼 하자는 건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해설이라도 내놓듯 그는 강도연을 향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강 대인, 어찌 생각하시오?”
줄곧 복잡한 잡념에 시달리던 강도연은 갑작스레 지목받자 흠칫 놀라 억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초 대인, 무슨 말씀이신지요?”
“무슨 말인지 몰라서 묻는 건가? 강도연, 우리는 지난날 좋은 동료 사이였지. 그런데 내가 그대에게 뭘 그리 잘못했길래 해괴한 유언비어를 퍼뜨려 나를 궁지로 몰아넣으려 했을까? 자,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소?”
강도연은 낯빛이 죽은 사람처럼 하얘져서는 황망히 항변했다.
“초 대인, 억울합니다! 대인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우린 좋은 동료 사이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제가 미쳤다고 이 좋은 사이를 깨뜨릴 짓을 작당했겠습니까.”
“왜 그따위 짓을 했는지는 그대가 잘 알 테지.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 점이 몹시 궁금하군그래.”
“초 대인, 제가 그런 짓을 했다는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그럼 저도 두말없이 인정하고 대인의 처분을 받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인께는 아무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인정할 수 없습니다.”
강도연은 식은땀이 흥건한 와중에도 태연을 가장하려고 용을 썼다. 이미 흔적 없이 모든 증거를 없앤 끝인지라, 초휴가 심증만으로 자신을 떠보는 것이라고 애써 자위하면서 말이다.
묵묵히 듣고만 있는 사도행과 방화는 진작부터 강도연이 그런 짓을 벌였으리라 짐작을 했었기에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초휴에 대한 소문을 접한 순간, 강도연이 하는 짓임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도연이 아닌 다른 순찰사들이 그런 짓을 벌일 이유가 없으니까. 그들은 초휴가 이 사태를 어찌 처리할지 철저히 제삼자로서 지켜보고자 했다. 자칫 애먼 일에 휘말리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으니까.
초휴는 시종일관 강도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눈빛에 살기라곤 없었으나 무형의 압박감이 강도연을 짓눌렀다.
“인정할 수 없다고? 그대가 인정하고 안 하고는 내 알 바 아니지. 당신 말처럼 증거는 없소. 내가 증거를 찾아가며 일하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근래 들어 관서에서 적잖은 사람이 죽어 나갔으니 나도 더 이상의 살육은 원치 않소. 해서 그대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줄 생각이오. 첫째, 스스로 무공을 폐하고 관중형당에서 꺼진다. 둘째, 도저히 자진해서 못하겠거든 내 손을 빌려서 한다.”
이번에야말로 양릉만 차분할 뿐, 나머지 세 사람은 아연실색했다. 초휴가 이 정도로 독하게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강도연은 주부 두 개를 다스리는 순찰사다. 그에게서 직위를 박탈하는 것만도 가혹하기 짝이 없는데 무공까지 스스로 폐하고 나가라니! 이는 강도연더러 자살하라는 소리와 다를 게 없었다. 이에 강도연도 격분했다.
“초휴! 어쨌거나 나는 관중형당의 순찰사요. 증거 하나 없이 다짜고짜 나한테 이럴 수는 없는 거요! 당주 앞에서 직접 내 결백을 밝히겠소. 내가 당신 뜻대로 순순히 당할 줄 알았다면 오산이오!”
일이 이쯤 되니 사도행과 방화도 더는 좌시만 할 수 없는지라 황급히 만류하고 나섰다.
“대인, 이건 너무 가혹한 처사입니다. 숙고해 주십시오.”
사실 그들은 강도연과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다만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고 느껴진 게 문제였다. 오늘은 강도연이 당한다지만 내일은 자기 차례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일단 이런 선례를 남기는 것을 막는 게 중요한 터라, 그들로서는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초휴는 그들의 만류를 귓등으로 흘리고 계속 강도연을 압박해갔다.
“보아하니 두 번째 선택지를 택하겠다는 소리군. 좋다. 원하는 대로 해 주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초휴의 몸이 번쩍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강도연 앞에 섰다. 뒤이어 금빛 광망과 함께 대금강륜인이 격출되자, 순식간에 온 회의실이 찬란한 금빛으로 물들었다. 지금 초휴의 실력으로는 다소 약한 천인합일을 해치우는 거야 일도 아닐 터. 바로 얼마 전에도 위가 노야가 그렇게 죽지 않았던가.
그러니 애당초 강도연은 반격할 실력도 못 되었다. 피할 겨를도 없이 가까스로 이 일격을 막아냈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의 알량한 강기로는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얼핏 막아낸 듯 보였으나, 곧이어 충격을 이기지 못한 강기가 파괴되면서 사람도 튕겨 나가고 말았다. 튕겨 나가는 속도보다 더 빨리 강도연을 따라잡은 초휴는 단전에 일장을 내리쳤다. 곧장 무지막지한 장력이 가해지며 그의 단전이 파괴되었음은 물론, 경맥마저 파열되고 말았다.
강도연의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그의 두 눈엔 회한과 절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고통과 충격을 이기지 못한 그는 결국 혼절하고 말았다. 초휴가 이를 지켜보며 담담히 말했다.
“강 대인을 모셔가라. 연일 격무에 시달리더니 지병이 도져서 휴양이 필요할 것 같다. 아마 두 번 다시는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실 모양이군그래.”
그의 호령이 떨어지자 강호 포두 여러 명이 들어와서는 죽은 개처럼 축 늘어져 있는 강도연을 끌고 나갔다. 이 참담한 광경을 끝까지 지켜본 사도행과 방화는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로써 초휴의 패도적 기질과 거침없는 위세를 새삼 확인한 셈이었다. 하긴 감히 위구단도 죽인 자가 강도연에게 손을 쓰는 걸 주저하겠는가. 그리고 강도연이 죽을죄를 지은 것도 사실이었다.
꼼수를 부린 상대가 초휴가 아니었으면 어찌어찌 빠져나갈 수도 있었으련만, 상대를 단단히 잘못 골랐다. 상식도 안 먹히고 증거도 필요치 않은 소통 불가한 존재를 두고 그런 얄팍한 수를 썼으니 누굴 원망하겠는가. 그가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강도연은 빼도 박도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무공을 폐하라면 폐해야 하고, 관중형당에서 꺼지라고 하면 꺼질 수밖에.
이윽고 초휴가 사도행과 방화를 돌아보더니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
“두 분은 방금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오. 내가 그리 꽉 막힌 사람도 아니잖소. 먼저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험한 꼴 볼 일이 없다는 사실만 명심하면 되니까. 두 분은 강도연과는 다르니, 당연히 그와는 달리 대우해드려야겠지요.”
이에 두 사람도 우느니만 못한 억지 미소를 지었다. 물론 초휴의 말이 못 미더운 건 사실이지만, 자신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믿도록 노력해야 했다. 정말이지 절대로 강도연과 같은 꼴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곧이어 초휴가 두광중과 귀수왕을 불러들이더니 근엄히 명했다.
“방금 뜻밖의 사태가 벌어져 우리 관서 지역에 인력 공백이 생겼다. 해서 순찰사 보직의 조정을 통해 관서를 안정시킬 것이다.”
이 말을 듣자, 줄곧 한쪽에 없는 듯이 있던 양릉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죽일 자는 죽이고 폐할 자는 폐했으니, 이제 자신이 치른 그간의 노고에 대한 보상을 받을 차례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