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장가의 축수연(祝壽宴)
일국의 천자가 바뀐 셈이니 그 밑의 신하들도 물갈이되는 건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관중형당의 오랜 노장인 사도행과 방화는 딱히 초휴와 척진 일이 없으니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컸다. 그들마저 잔혹하게 내친다면 누가 초휴를 위해 일하려 들겠는가. 하지만 초휴는 두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자기 사람으로 과반을 채워야 안심이 될 터였다.
“위장릉의 관할 아래 있던 주부는 오늘부로 양릉이 맡는다.”
이번 일에 양릉의 공이 실로 컸으며, 초휴에 대한 충성심도 입증되었다. 따라서 위장릉의 주부는 양릉의 차지가 되는 게 당연했다. 양릉이 실력은 특별하지 못했지만, 워낙 기지가 뛰어난 데다 능력도 받쳐주었다. 그건 오랜 세월 위구단을 대신해 온갖 잡무를 빈틈없이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증명되었다. 그런 기지와 능력이 없었으면 위구단이 그를 오랜 시간 곁에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양릉은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예를 올렸다.
“대인, 감사합니다!”
이 감사 인사는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이번 처사만 봐도 과연 초휴는 위구단과는 확실히 다르지 않은가. 지난 세월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해 위구단을 모셨지만, 그는 공수표만을 남발했을 뿐, 실질적인 이익은 하나도 챙겨주지 않았다.
심지어 위구단의 성명절기인 ‘추룡수’조차 죽은 그날까지 반푼어치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반면 초휴를 따르기로 한 이후, 벌써 주부 두 곳이 양릉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물론 위험이 따르긴 했지만, 그에 대한 대가 또한 막대했다.
초휴가 말을 이었다.
“강도연은 순찰사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해서 그가 다스렸던 주부 두 곳을 각기 귀수왕과 두광중에게 맡겨 관리토록 하겠다.”
귀수왕과 두광중은 초휴 휘하의 양대 진영을 대표하는 존재다. 무공 실력은 그리 강한 편이 못 되어도, 그간 많은 분량의 업무를 처리함으로써 그 능력은 충분히 검증되었다.
“그리고 건주부 순찰사직은 당아가 맡는다.”
초휴의 수하들 가운데 당아와 안불귀의 실력이 가장 강하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초휴의 직감으로는 당아의 실력은 이게 전부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아직 선보이지 않은 비장의 무기가 더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하지만 초휴에게는 감추고 싶은 타인의 비밀을 캐는 취미 따위는 없었다. 지금까지 선보인 실력만으로도 순찰사 자리를 감당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이치대로라면 안불귀의 실력도 순찰사직을 수행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삼화취정을 뚫기 위해 한창 폐관 수련 중이었고, 이제 출관이 머지않았으니 말이다. 다만 그의 성격상 순찰사는 적합지 않으니 본인이 자신 있는 분야, 즉 ‘살인’에만 집중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대략 논공행상이 끝나니 이로써 관서에는 총 여섯 명의 순찰사가 존재하게 되었다. 그중 네 명이 초휴의 심복임을 감안할 때, 위구단 시절보다 관할지에 대한 장형관의 실제 장악력은 훨씬 더 커지게 되었다.
초휴가 좌중을 둘러보며 냉랭히 말했다.
“최근의 관서는 내우외환에 시달려 왔소. 아까도 말했듯이 밖을 잘 다스리려면 집안 단속부터 철저히 해야 하는 법! 내부 문제는 얼추 해결된 셈이니, 이제 밖의 문제에 신경을 써야겠지. 우선 각자 자신의 세력을 정비한 다음, 최종적으로 모든 세력을 집결하여 일거에 문제를 해결하도록 합시다!”
좌중에는 비장감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무래도 관서 지역이 진정한 안정을 되찾으려면 조만간 한바탕 살육전이 몰아칠 수밖에 없는 듯했다. 일단 초휴가 관서지부에서 행한 일들이 당장 관서 무림세력들에 영향을 미친 건 없었다. 조직 내부를 정비했을 뿐이기에 강호에까지 파급될 일은 아니었다. 해서 장가 및 기타 무림세력들의 눈에는 초휴가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다지는 데 전념하는 것으로 비쳤다. 아무래도 위구단의 세력을 인계받자면 여러모로 신경 쓸 일이 많을 테니, 자기들을 건드릴 여력은 당분간 없을 거라며 한숨 돌린 셈이다.
그로부터 수일 후, 장가에서는 노야 장만산의 백여든여덟 살 맞이 축수연 준비가 시작되었다. 강호의 관례상, 엄청난 고령이거나 덕망이 대단히 높은 강호의 대선배가 아닌 바에야 일반 종문세가에서 축수연을 치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개 천인합일의 무사는 수명을 이백 살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육순, 칠순, 팔순······ 등등 매번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축수연을 한다면 그 돈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번번이 축하 선물을 가지고 오라는 소리로 보일 테니, 주최 측도 내빈 측도 꺼림직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런 까닭으로 대부분의 무사는 수명이 다하기 전, 그나마 일정한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을 때 상징적으로 한 차례 축수연을 치르곤 했다. 장만산의 경우는 올해로 백여든여덟 살로, 이는 상서로운 숫자들의 조합인 셈이다. 게다가 아직 싸우지도 못할 정도로 기혈이 쇠퇴하지도 않았으니 축수연을 치를 만했다.
물론 이유가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초휴가 장형관으로 승진하자 장가 측은 순순히 승복하고 더 이상의 저항은 단념했다. 이 때문에 장가의 위신은 크게 실추되었으니, 축수연이라도 해서 분위기 전환을 꾀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축수연에 관서의 모든 강호세력을 초청하여 초휴에게 꼬리를 내린 이유를 변명할 생각이었다. 우리 장가가 비록 초휴의 체면을 봐서 양보는 하였으되, 그건 관중형당 장형관이라는 그의 신분을 존중해서 그런 것이지, 절대 그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고 말이다.
위가가 멸문당한 지금 장가는 명실상부 관서의 제일 세가가 되었다. 비록 초휴 앞에서는 수세를 면치 못했으나, 다른 관서세력과 비교하면 여전히 존경과 우러름을 받는 대상인 것이다. 사흘 후, 축수연이 정식으로 시작되자 구원부는 무림 축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관서 땅에서 장가가 친히 보낸 초대장을 받고도 감히 이를 거절할 무림세력은 없었기 때문이다. 구경차 몰려든 낭인 무사 중에는 어떻게든 이 틈바구니에 껴서 인맥이라도 넓혀볼까 하는 의도로 기웃거리는 부류도 있었다.
이 무렵, 구원부 동쪽 주루에 젊은 무사 하나가 한껏 무료한 표정으로 술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약관도 채 안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천경이었는데, 강호 전역을 놓고 봐도 그 나이에 이 경지라면 꽤 수련이 빠른 축에 들었다. 그 옆에 있던 외강경 중년 사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도련님, 이제 정오가 되면 노야의 축수연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러고 계시면 어찌합니까. 축수 선물은 준비하셨습니까?”
이 젊은이는 장가의 젊은 연배 가운데 가장 촉망받는 제자인 장동래(張東來)였다. 장곤택의 직계 후예는 아니지만, 워낙 자질이 뛰어난지라 어려서부터 장만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왔다. 어린 시절 다른 제자들이 장만산 앞에서 입도 벙긋 못하고 벌벌 떨던 것과는 달리, 유일하게 장만산의 무릎에 앉아 ‘노야~, 노야~’ 불러대며 어리광을 피웠던 귀하신 몸이었다.
장동래가 장성하면서 그의 자질도 더 빛을 발해갔다. 성격상 게으른 한량처럼 보이는 것만 빼면 장만산은 그를 더없이 흡족하게 생각했다. 장곤택의 반발이 염려되지만 않았으면 그를 가주 승계자로 정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그를 아끼는 마음이 컸다. 장동래는 중년 무사의 재촉에 느긋이 답했다.
“뭐가 그리 급해서 안달이오? 막말로 축수연이 끝나고 간다고 노야께서 뭐라 하실 것도 아닐 텐데.”
장동래가 자신만만하게 여유를 부리자 무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도련님, 다른 도련님들은 진즉에 온갖 궁리 다 짜내가며 노야의 환심을 살만한 선물을 준비한다고 난리들인데, 도련님은 어찌 이리도 한가하십니까. 다른 이들에게 선수를 뺏길 게 염려되지도 않으십니까?”
“내가 그깟 허접쓰레기들과 노야의 환심을 다퉈야겠나? 곤숙(坤叔), 염려는 붙들어 매시구려. 설령 선물 없이 빈손으로 가도 노야께선 여전히 나를 제일 귀여워하실 거란 말이오.”
그래도 곤숙이라 불린 무사의 잔소리가 이어질 기미가 보이자 장동래는 그의 말을 끊었다.
“거기까지만! 그만하래도 그러네. 나도 생각해 둔 선물이 있으니까. 듣자니 능주부(凌州府) 진가(陳家)가 최근 입수한 한옥소검(韓玉小劍)을 노야께 선물로 바칠 거라더군. 그 대가로 우리 장가의 지원과 도움을 받을 생각이겠지. 그걸 나한테 넘기라고 진가에 요구할 거요. 그래서 내가 그걸 노야께 선물로 드리겠다는 말이오.”
“하지만 도련님, 한옥소검이 얼마나 진귀한 건데요. 엄청 대단한 물건이니 진가에서 그걸로 노야께 점수를 딸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런 걸 도련님에게 선뜻 내어주겠습니까?”
“안 준다고? 흥! 순순히 안 주면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소. 내가 노야 앞에서 저들의 험담 몇 마디만 하면 축수연 음식도 못 얻어먹고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쫓겨날 텐데? 내가 두고 볼 거란 말이오. 과연 노야한테 한옥소검과 이 장동래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진가가 눈치껏 군다면 내가 나중에 노야께 그들을 좋게 얘기해 줄 수도 있겠지. 그 반대라면 한옥소검을 선물한 보람이 전혀 없는 꼴을 내가 만들어 줄 테니까!”
순간 돌연 아래층에서 손뼉 치는 소리와 함께 당아가 올라왔다.
“과연 장 공자는 보통이 훨씬 넘는군. 기껏 남이 준비한 선물을 눈 하나 까닥 안 하고 빼앗아서 자기 선물인 양 내놓을 궁리를 하다니 말이오. 이런 걸 두고 ‘차화헌불(借花獻佛, 꽃을 빌려다 불전에 바친다. 즉 남의 것으로 인심 쓴다는 뜻)’이라고 하던가? 그건 아니겠군. 불전이 아닌 노야한테 바치는 것이니. 그리고 장만산 그 늙은이는 성불할 자격 따위가 없으니까.”
이 말에 곤숙과 장동래의 안색이 돌변했다.
“너는 누군데 감히 그런 말을 하느냐!”
장동래가 발끈하여 일갈하자 당아가 태연히 응수했다.
“이 몸은 신임 건주부 순찰사인 당아라 하오. 마침 우리 대인께서도 축수연에 참석할 예정이신지라, 특별히 선물로 바칠 물건을 공자한테 빌리러 온 거외다.”
곤숙의 안색이 또 한 번 요동쳤다. 당아가 누구인지 왜 모르겠는가. 초휴가 거느린 투견 중 단연 최고로 흉포한 투견이 아닌가. 위장릉도 바로 그의 손에 죽었다. 하지만 장동래는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뭘 빌리고 싶다는 거요?”
당아는 여전히 유순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없이 극악했다.
“장 공자 당신의 모가지!”
“도련님, 도망치세요!”
곤숙이 다급하게 외치며 장동래를 잡아끌고 도망치려 했으나 당아의 신법이 어찌나 빨랐던지 순식간에 퇴로가 막혀버렸다. 용미추혼표 두 개가 번쩍 빛을 발하며 기이한 각도로 곤숙을 향해 날아들자 순식간에 그의 호체강기는 파괴되었다. 장곤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수중의 장도를 휘둘러서야 가까스로 이것들을 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미처 숨을 돌리기도 전에 몸이 멈칫하는가 싶더니, 그의 눈빛이 놀라움으로 뒤덮였다. 어느샌가 뒤에서 날아온 세 번째 용미추혼표가 그의 심장을 관통한 것이다.
당아가 슬쩍 몸을 한번 놀리니 순식간에 장동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장동래는 공포에 질려 제정신이 아니었다.
“날 죽이지 마라! 내가 바로 장가의······.”
하지만 그의 피 끓는 절규가 끝나기도 전에 당아의 단도가 그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그의 수급을 확보한 당아는 태연스레 이를 비단 함에 넣었다. 함 겉면에 핏자국 한 점 남기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함 뚜껑을 닫는 그의 입가에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축하 선물 획득 완료! 완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