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33)
333화 일벌백계를 하다
대개 장만산과 같은 노강호는 케케묵은 사고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기 마련이다. 타협과 양보야말로 수백 년 동안 전통처럼 이어진, 세가들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처세술이었다. 저번에 초휴한테도 그리했듯이 말이다. 일단 음으로 양으로 암계와 출수를 병행한 다음, 성공하리라 점쳐지면 여세를 몰아 상대의 숨통을 끊고, 실패할 것 같으면 패배를 자인하고 물러나는 식이다.
이처럼 간을 보는 시간이 긴 만큼, 정식으로 혈전에 돌입한 상태가 아니라면 될 수 있으면 끝장을 보려는 출수는 자제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너도나도 죽는 건 양측 모두 피하고 싶을 테니까. 하지만 초휴의 방법은 이런 전통적인 방식과는 정반대였다. 출수를 안 했으면 모를까, 한 이상은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관사우는 겨우 한 달의 말미를 주고, 이 기한 내에 장형관으로서의 자질과 가치를 입증해 보이라고 요구했다. 그러니 모든 갈등 상황을 불씨 하나 안 남게 확실히 끝내서, 관서 지역을 안정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법은 간단했다. 가차 없이 칼날을 휘둘러 관서 전역을 공포에 떨게 만들면 ‘안정’은 자연히 뒤따라오지 않겠는가.
가문의 사람들이 사방에서 연신 죽어 나가는 소리에 장만산은 고통스러운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결정적인 한 번의 실수로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 예전에는 순망치한의 교훈만을 되뇌며 초휴의 기세가 너무 기고만장해지지 않는 선에서 견제만 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야 자기가 어떤 존재를 건드렸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위가가 짓밟혔을 때만 해도 노야는 그들의 출수가 무모하고 대처가 서툴렀다고 내심 비웃었다. 그러나 그게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제 장가의 차례인 것이다.
이런저런 회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결국, 마음의 정리를 끝마친 장만산이 눈을 번쩍 뜬 순간, 그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초휴, 반드시 우리 장가를 몰살하겠다고 하니 나도 한 가지 알려줄 게 있다. 우리는 네놈 생각처럼 순순히 쓰러질 가문이 아니다. 황천길을 가더라도 죽기 살기로 네놈 이빨 몇 개는 부러뜨리고 갈 것이다!”
“허허, 이거 미안하게 되었소. 내 이빨이 워낙 튼튼해서 아무리 딱딱한 걸 씹어도 멀쩡하거든. 장가 정도는 뼈째로 씹어도 전혀 문제없소!”
장만산은 초휴와 더는 말을 섞을 이유를 못 느꼈다. 장만산 일신의 모든 혈기가 수중의 장검에 유입되자 질박하고 고풍스럽던 검이 돌연 사악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사실 강호에는 위가 노야처럼 극도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기개 없는 노년 무사들은 소수였다. 이처럼 마지막 혈기마저 불태워 사생결단을 내려는 용기백배한 자들이 대부분이란 말이다.
초휴가 단단히 살심을 품은 이상, 부질없는 희망은 버려야 했다. 지금 이 판국에 장가가 온전하길 바란다면 욕심이고, 적어도 초휴에게 중상이라도 입힐 수 있으면 다행일 터였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그와 동귀어진하는 것! 핏빛 혈검이 창공을 가르자 심후하고 충만한 검세가 꿈틀대는 족족 대지가 격렬히 흔들렸다.
지세곤, 군자이후덕재물(地勢坤, 君子以厚德載物)!
자고로 군자는 기세가 대지처럼 무한하고 후덕하여 만물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럼으로써 어떤 역경이든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장가의 곤원검결(坤元劍訣)은 심후하고 충만한 검세가 대지처럼 묵직하고 안정적인 특징을 지녔다.
하지만 이때만큼은 살기충천하여 산도 뽑아낼 괴력으로 초휴를 덮쳐왔다. 그 일검의 위세는 실로 놀라웠다. 하지만 치러야 할 대가 또한 막대해서, 한 번 출수할 때마다 장만산의 생명력 역시 크게 깎여나갔다.
이 압도적인 힘을 뚫고 공격하기란 어려웠다. 심지어 천자망기술로도 허점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휴에게 방법이 없겠는가. 그의 수중에 무한한 마기가 응집되었다. 그리고 일검을 내리치니 살의가 구중천까지 치솟으며 망아살경으로 빠져들었다. 마기와 살의가 교차하는 가운데, 초휴는 맞바로 아비도삼도 중 제 삼도를 내리쳤다. 마기 속에 신성함이 깃든 강력한 심판의 칼날이었다.
하지만 장만산이 끌어낸 대지의 힘 앞에서 극강의 마기는 결국 붕괴하였고, 급기야 그 검세가 다시금 초휴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천인합일의 고수가 힘에서 점한 우세는, 출수 시 천지의 힘을 빌린 때문이기도 했다. 방금 장만산이 정혈을 태워 가며 내지른 일검은 곤원검결에 천지의 위력까지 더해진 것인 만큼, 그 위력의 끝을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해서 아비도삼도가 정면승부에서 패한 것이다.
하지만 소멸해 가던 마기 속에서 찬란한 광채 한 줄기가 터져 나왔다. 눈도 멀게 할 그 찬란함에는 신성하고 순결한 부처의 광명이 가득했다. 이름하여 원만보병인!
순식간에 악마가 부처로 변했다. 두 무공의 간극이 워낙 큰지라, 이 강렬한 반전에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맨 앞에서 이 변화를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하는 장만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판이한 속성의 두 무공을 동시에 수련하는 무사들도 있는 건 사실이었다. 심지어 그 수가 적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처럼 극과 극인 두 무공의 전환이 물 흐르듯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건 처음부터 초휴의 심중에 부처도 없고 마귀도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초휴에게 있어 모든 무공은 살인의 수단일 뿐이었다. 바로 이점 때문에, 두 종류의 무공 사이를 제한 없이 넘나들며 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극양의 광채를 내세운 공격에 장만산은 잠시 후퇴하는 듯하더니, 이내 태세를 가다듬어 지곤(地坤, 대지)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장만산의 일검에 그 위력이 오롯이 실리면서 또 한 번 초휴를 수세로 몰아넣었다. 그가 검을 내리칠 때마다 가해지는 충격이 계속되자 초휴는 내상을 입고 기혈도 뒤집혔다. 낯빛도 벌게졌다, 하얘졌다 반복되는 게 극도로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이를 본 장만산은 다시 한번 이를 악물며 각오를 다졌다. 초휴가 장가를 몰살하겠다면 본인 또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해주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처럼 장만산이 더욱 여세를 몰아가는 와중에 초휴가 돌연 고개를 번쩍 들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할 만큼 다 했소? 그럼 이제 내 차례로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심연처럼 변한 초휴의 눈동자가 장만산을 응시했다. 이로써 상대의 의식 세계를 손쉽게 장악한 초휴는, 그의 정신을 바닥 모를 심연 속으로 끌어당겨 피폐 시키기 시작했다. 원래 이혼대법과 같은 정신력 계통 무공은 자기보다 경지가 높은 실력자에게 시전하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상대가 정신비법을 수련한 적이 없어도, 초휴보다 우위에 있는 기혈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장만산은 기혈까지 태워 가며 초휴와 격전을 치른 데다, 잇따라 곤원검결을 시전한 탓에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러니 이혼대법에 저항할 여력이라곤 없었다. 자신의 의식이 초휴에게 장악되기 시작한 것을 감지한 그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죽어도 초휴와 같이 죽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처절히 죽기 살기로 발버둥 쳤다.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싶은 찰라, 장만산은 가슴 한가운데가 싸늘해지는 걸 느꼈다. 고개를 숙여 보니 칠흑처럼 변한 천마무가 자신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었다. 초휴가 거칠게 칼을 빼내었으나, 도신에는 선혈 한 점 묻어있지 않았다. ‘쿵’하고 쓰러진 그는 억울함에 눈도 감지 못한 채 숨이 끊어졌다.
“노야!”
장만산이 무너진 것을 보자 장가에 곡소리가 메아리쳤다. 너나없이 비통함을 못 이기고 피를 토하듯 절규했다. 자신의 안위만 챙겼던 위가 노야와는 달리, 장만산은 문중에서 명망이 매우 높았다. 위가 노야가 폐관 수련에 들어간 십수년간 거의 문중 일을 나 몰라라 했던 것과는 달리, 장만산은 친족들을 챙기는 걸 소홀히 하지 않았다. 가주가 따로 있는데도 그는 험난한 파도를 헤치며 장가라는 거대한 함선을 지금까지 몰아왔었다.
그랬기 때문에 장만산의 죽음은 장가 전체의 싸우려는 의지를 붕괴시키기에 충분했다. 저항할 투지와 용기를 완전히 잃은 그들은 속속 도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투지도 용기도 사라지고 오합지졸이 돼버린 자들이 초휴의 정예 무사들이 쳐놓은 포위망을 뚫을 순 없었다. 그중 태반은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이 참담한 살육극을 보다 못한, 다른 세력에 속한 무사들이 너도나도 이곳을 뜨려 했다. 그러자 그들의 귓전에 초휴의 서릿발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누구도 움직이지 말라. 축수연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그들은 일순간 온몸이 경직된 채 우느니만 못한 억지 미소를 지었다. 초휴가 장가를 멸한 후 또 뭘 하려는 건지 겁이 나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설마 이들 모두를 일망타진이라도 할 참이란 말인가. 좌불안석하는 그들의 모습에 초휴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노가, 왕가, 청평검종(靑萍劍宗), 전철당(戰鐵堂)······, 미안하지만, 이들 종문세가의 결정권자들은 앞으로 나오시구려.”
명이 떨어진 순간, 호명된 십여 세력 측 사람들의 안색이 돌변했다. 이들 모두 장가가 관중형당 본부를 압박하기 위해 연판장을 작성하는데 동조했던 세력들로, 초휴의 징벌을 요구하는 데 동참했었다. 당시 주동자였던 장가가 짓밟힌 지금, 나머지 공범들도 색출하여 묵은 빚을 청산하려는 것인가?
그들이 속속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초휴는 한마디 말도 없이 지켜만 보고 있었다. 주위에는 장가 제자들이 살육당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그 비명과 절규에 잔뜩 위축된 그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식은땀만 줄줄 흘리며 서 있었다. 이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초휴가 입을 열었다.
“요즘, 그리고 오늘만 해도 관서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 더는 피를 보고 싶지 않소. 따라서 그대들은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은 일제히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인제 보니 그들 모두를 몰살시킬 만큼 초휴의 광기가 극에 달한 건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안도감을 느끼기도 전에 초휴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대들이 지은 죄가, 아예 없던 게 되는 건 아니겠지. 사람의 탈을 썼으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지 않겠소? 해서 말인데, 각자의 세력이 소유한 재산 절반을 관서지부에 내놓으시오. 그걸로 빚을 청산하는 거로 칩시다. 억울하지는 않을 거요. 목숨값이 그 정도는 되어야지.”
좌중의 안색이 또 한 번 돌변했다. 이로써 초휴는 완전히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사자가 일단 아가리를 벌린 이상, 살코기 맛을 보기 전에는 포기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한 점도 아니고, 다리 한쪽을 통째로 뜯어먹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이건 해도 너무했다. 누군가가 반박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초휴가 검지를 뻗어 보이며 냉랭히 말했다.
“기회는 단 한 번! 그 소중한 기회는 이미 그대들에게 주어졌소. 그걸 받을지 거부할지는 전적으로 그대들의 몫이오.”
방금 반박하려던 자는 멈칫하더니 결국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다. 장가가 어떤 꼴을 당하고 있는지 똑똑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중인데, 어찌 초휴의 말을 거역하겠는가. 이번에 단행된 일벌백계(一罰百戒)는 초휴의 예상대로 효과가 탁월했다. 그 ‘일벌’의 대상이 자그마치 관서 무림의 우두머리 격인 장가이니만큼, 효과는 더없이 뛰어나고 확실했다.
반 시진이 지나자 장가 사람들에 대한 처벌은 얼추 마무리되었다. 드문드문 도주하는 잔당들이 있었으나 대세에 큰 지장은 없었다. 뒤이어 장가의 재산도 싹쓸이한 후 초휴가 철수를 명하자, 그의 수하들은 속속 하산하기 시작했다. 남겨진 무사들은 벌벌 떨며 피바다가 된 장가의 모습을 넋을 잃고 쳐다만 볼 뿐이었다.
이제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졌다. 앞으로 관서 땅에서 평안하게 살려면 모든 이들이 초휴 앞에 납작 엎드려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지난날 관사우가 관중형당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손에 묻혔던가. 하지만 이 핏빛 과거는 어느덧 노강호들의 기억 속에서마저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초휴가 그 기억을 똑똑히 상기시켜주었다. 그것도 당시의 관사우보다 더욱 혹독하고 잔인한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