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35)
335화 미리 포석을 깔다
관사우는 다른 의미에서 또 한 번 의아한 눈길을 초휴에게 보냈다. 그에게 이처럼 원대한 안목과 구상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기존의 장형관들은 시야가 오로지 자기가 맡은 지역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자기 지역만 잘 관리하면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역대 당주들은 초휴와 같은 안목을 가졌었고, 지금의 관사우가 그렇듯이 관중형당이 안고 있는 한계를 깨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관중형당의 일원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청년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 아닌가.
잠시 생각하던 관사우가 입을 열었다.
“초휴, 관중형당의 규칙을 그대도 알겠지만, 우리는 매우 엄격하게 상벌을 가린다네. 이번 일은 그대가 자청한 것이니, 잘 해내더라도 따로 상을 주진 않을 걸세. 그 반대로 실패해서 형당 전체에 악영향이 미치게 되면, 지금 갓 임명된 장형관 자리를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리하겠는가?”
“소인은 형당 사람입니다. 어찌 형당의 이익을 고민하지 않겠습니까. 다들 자기 몸 사리기에만 급급하고 진취적으로 나서지 못한다면 형당의 상황은 후대로 갈수록 점점 더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초휴의 목소리는 어느덧 격앙되어 있었다. 하지만 관사우는 여전히 초휴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쨌든 초휴가 진취적인 마음가짐을 가졌다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였다. 설령 그게 본인을 위해서일진 몰라도 성공하기만 하면 형당 전체가 이득을 보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대의 결심이 확고한 것 같으니 한번 추진해보게. 하지만 심사숙고한 뒤에 결행했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노파심이네만.”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당주님.”
초휴는 허락이 떨어지자 부리나케 관사우 앞에서 물러났다. 여기에 왔던 목적은 제양산에 갈 합당한 구실을 만들고자 함이었으니 더 머물 필요가 없었다. 물론 관사우에게 했던 말과는 달리, 실제로 그 땅 자체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서초는 국토 곳곳이 울창한 숲과 산천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많은 산 가운데 관서에서 서초로 통하는 제일 관문이 바로 제양산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큰 산이 가운데를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탓에, 번듯한 대로 하나 없이 허접한 오솔길 몇 갈래가 있는 게 전부였다. 그 주위로는 주부라 일컫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시골 마을 몇 개가 흩어져 있었다.
물론 이 일대에도 여러 세력이 자리 잡고 있긴 했으나 대부분 군소 종문세가들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암암리에 결탁한 산적 무리가 있었다. 대놓고 객상의 보따리를 강탈하는 건 산적들이지만, 뒤에서 이들을 움직이는 건 종문세가들이었다. 사실상 그들 모두가 한 패거리인 셈이었다. 다만 서초와 관중을 오가는 객상들 대부분이 서초 쪽 무림세력을 뒷배로 두고 있는지라 섣불리 건드리기는 어려웠다. 해서 만만한 객상들만 골라서 털었지만, 그래도 수입은 짭짤한 편이었다.
이 무렵 제양산 서쪽에서는 화노가 횡도산장(橫刀山莊) 양가의 장주인 양정위(楊霆威)와 대면하고 있었다. 그가 갑작스레 관중형당 강호 포두 신분을 들이대며 방문한 바람에 양정위는 적잖이 당황한 상태였다. 제양산 일대가 서초 국경 내에 포함된 지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관중형당 관할지도 아니었다. 워낙 산림이 빽빽이 자리 잡은 탓에 그리 큰 규모의 주부를 세우기도 마땅찮은지라, 관중형당이 줄곧 눈길조차 안 주었던 곳이었다.
그런 관중형당에서 갑자기 사람이 뜬금없이 방문한 게 당혹스럽긴 했으나, 그래도 양정위는 정중하게 화노를 대했다.
“화노 대인께서는 어인 일로 이곳 횡도산장엘 오셨소이까? 병기를 사시게요?”
횡도산장은 제양산 일대의 기타 군소세력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위장 신분을 갖고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병기 제조 및 판매를 주업으로 삼았고, 제품의 질도 썩 괜찮은 편이었다. 기껏해야 이급 내지 삼급짜리지만 칼날이 예리하고 견고한 데다 가격도 적당했다. 그러나 이곳 인근을 지나는 상단의 실력이 약하고 그들이 소지한 화물이 값어치가 있어 보일 때는 서슴없이 산적으로 돌변하여 사람도 죽이고 물건도 빼앗는 게 그들이었다.
물론 지금은 관중형당 사람과 대면한 자리인지라, 산적의 면모는 싹 거두고 장사꾼의 모습으로 돌아가 공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화노도 대충 답례한 후 본론을 꺼냈다.
“양 장주, 나는 관중형당 관서지부의 장형관이신 초휴 대인을 모시는 강호 포두요. 물건을 사려는 게 아니라 통보할 일이 있어 온 거요. 우리 대인께서 사흘 후 오시, 제양산 아래 청산진 동양루(東陽樓)로 제양산 인근 세력들의 수장들을 초대하셨소. 술 한잔 걸치며 여러 일을 논의하고자 하시니, 양 장주도 부디 늦지 말길 바라오.”
“초휴? 그 양반은 관서 장형관이신데 우리와 의논할 일이 뭐가 있으신지······?”
“나 같은 포두가 그런 것까진 알 수 없소. 어쨌든 나는 분명 통보했소. 오고 안 오고는 양 장주 마음이고. 그러나 불참할 시 어떤 후환이 닥칠지는 나도 잘 모르겠소. 양 장주 스스로 잘 생각해 보면 알 테지.”
양정위의 안색이 돌변했다. 화노의 어투에서 협박하는 느낌이 다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흔쾌히 답했다.
“염려 마십시오. 시간 맞춰 가겠소이다.”
횡도산장은 그리 강한 세력 축에 못 들었다. 가주라고 해 봤자 외강경에 불과하니, 눈앞의 화노도 그가 어찌해볼 상대가 전혀 아니다. 제양산은 워낙 관서와 지리적으로 가깝다 보니 오가는 객상들의 입을 통해 관서 쪽 소식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얼마 전 위구단이 죽었고, 초휴가 신임 장형관이 되었다는 소식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천인합일 고수도 파리 잡듯 때려죽인 인물이 오라는데 어찌 감히 거절할 수 있겠는가. 거절할 실력도 배짱도 없었다.
이렇듯 화노는 제양산 일대 주요 세력을 일일이 방문했고, 매번 똑같은 내용을 통지했다. 이건 초휴가 세운 계획의 일환이었다. 초휴는 통천탑이 드러나기 전에 사전 준비를 하려는 것일 뿐, 좀스러운 촌구석 산적들하고 아귀다툼을 벌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따라서 최대한 속전속결로 이들부터 제압한 후, 편안한 마음으로 제양산을 올라 대기할 생각이었다.
이윽고 사흘 후, 제양산 아래 청산진의 최대 주루인 동양루에는 외강경에서 오기조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력의 무사 십여 명이 모였다.
다들 제양산 일대에서 한가락 한다는 무림세력의 수장들로, 화노가 친히 방문하여 구두로 전달한 초대장을 받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완벽한 출석률을 보였고 감히 지각할 엄두도 못 내고, 일찌감치 이곳에 당도하여 초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왜 오라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초휴라는 관중형당 장형관에게 밉보이면 재미없을 거라는 생각만은 같았다. 상대는 실력도 광기도 두렵기만 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동양루에는 무거운 침묵이 짙게 드리워졌다. 그걸 깨고 나선 건 양정위였다.
“여러분,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아는 분 계시오? 관중형당 장형관이 우리 제양산 일대에 왜 관심을 가진다는 말이오? 진(陳) 형님, 뭐 주워들은 소식이라도 없소?”
양정위의 시선이 검은 도포 차림에 구레나룻을 기른 중년 무사를 향했다. 그는 바로 뇌운채(雷雲寨) 채주인 ‘흑마수(黑魔手)’ 진운(陳雲)이었다. 뇌운채는 제양산 일대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산채였다. 제양산 일대의 세력 대부분이 산적질을 부업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뇌운채는 오로지 오가는 객상을 뜯어먹고 사는 전문적인 비적 집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일대에서 뇌운채의 무력이 얼마나 강한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실제로도 뇌운채는 이 일대에서 가장 막강한 세력을 자랑했고, 진운 본인도 오기조원의 실력자였다.
양정위의 질문에 진운이 손을 내저으며 굵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초휴라는 자가 뭔 꿍꿍이속인지 난들 어찌 알겠소. 다만 이거 하나는 분명하지. 그래 봤자 초휴는 외부인이고 우리는 이곳의 주인이라는 사실! 우리가 똘똘 뭉쳐 초휴의 분열책에 넘어가지만 않는다면, 그자가 무슨 짓을 꾸미든 잘 대처할 수 있을 거요.”
이에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이때 밖에서 한바탕 어지러이 발소리가 들려오자,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 반사적으로 입을 닫고 자세도 바로 했다. 이윽고 전신에 검은 옷차림을 한 초휴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외양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단연 젊어 보였다. 하지만 일신에서 뿜어 나는 기세만은 위압적이기 그지없는지라, 그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들 가슴이 벌렁벌렁 널을 뛰는 것 같았다. 곧장 상석에 이른 그가 손가락으로 탁자 상판을 탁탁 치며 근엄히 입을 열었다.
“나는 초휴라고 하오. 주지하다시피 관중형당 산하의 관서지부 장형관으로 있소이다. 다들 내 이름을 알고 있으리라 믿소만?”
이에 양정위가 벌떡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강호에 명성이 자자하신 초 대인을 어찌 몰라뵈겠습니까. 당연히 잘 알고 있답니다. 소인은 횡도산장의 양······.”
하지만 그의 말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초휴는 단칼에 말을 잘랐다.
“개개인의 소개는 됐소. 내가 일일이 그걸 듣고 있을 시간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내가 누구인지나 알고들 있으면 그걸로 되었소.”
양정위의 낯이 순식간에 벌게졌다. 다른 이들의 눈에도 노기가 서렸다. 세상에 온갖 미친놈을 봐왔지만 이런 미친놈은 처음 보지 않는가. 분명 자기가 여기로 불러모아 놓고 상대방의 이름도 신분도 알 필요가 없다고 하니, 대체 뭐 하자는 수작이란 말인가. 혹시 우리를 엿 먹이려는 생각인가? 굳이 여기까지 초대해서 제대로 실컷 모욕이나 주려고?
하지만 부글부글 끓는 속내를 감히 초휴 앞에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초휴의 신분과 위세가 한마디의 불평도 허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속내를 초휴가 간파 못 했을 리는 없었다. 싸늘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본 그는 이내 본론에 들어갔다.
“오늘 내가 여기에 온 건 여러분에게 한 가지 통보할 일이 있어서요. 오늘부로 제양산 일대의 모든 통행로가 관중형당 관할권 내로 들어옵니다. 이곳의 무림세력도 마찬가지로 관중형당의 관리와 통제를 받게 되는 것이니, 지금껏 해왔던 산적 노릇도 중지해 줘야겠소. 수지타산도 안 맞고 자랑거리도 못 되는 일을 계속할 필요가 뭐 있겠소. 오늘부터 여러분은 제양산 일대 모든 통행로를 차단하고 통행료를 받으시오. 통행료를 완납한 상단에 한정해서 통과시키고 안전도 보장해줘야 합니다. 통행료를 얼마나 받을지는 알아서들 결정하되, 그중 육할은 관서지부에 바쳐야 하오.”
초휴의 선언에 좌중은 순식간에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알고 보니 초휴는 그들 모두를 손아귀에 넣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모든 기득권과 실익을 착취하려는 거였다. 말 몇 마디로 말이다. 그중 한 명이 박차고 일어나 일갈했다.
“초 대인, 이리하실 수는 없습······.”
하지만 그가 일어난 순간 초휴의 서늘한 눈빛은 이미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느샌가 이혼대법이 시전되며 강력한 정신력이 상대의 뇌리로 주입되자, 외강경에 불과한 그는 칠공(七孔)에서 피를 흘리며 경련을 일으키더니 털썩 쓰러져 숨이 끊어졌다!
숨소리도 못 내는 좌중을 싸늘히 노려보며 초휴가 선전포고처럼 말했다.
“뭔가 착오가 있는 모양이군. 나는 여러분과 의논하러 온 게 아니라 통고를 하러 온 거요. 따라서 여러분은 내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아 물론 반항할 자유는 드리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