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4)
이른 새벽, 정개산은 곤히 잠자고 있었다.
개산무관은 낮에는 백 명에 달하는 수련생들로 북적이지만 밤만 되면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몇 명만 남아 무관을 지켰다. 개산무관의 수련생들이 매우 많다고는 하지만 그들을 내부적으로 구분 짓는 기준은 분명히 존재했다.
낮에 오는 수련생들에게는 평범한 타격초식만 가르쳤다. 단, 은자를 내는 경우에 한했고 내지 않으면 쫓아냈다. 정개산이 이름을 떨치게 된 계기가 열금수(裂金手)라는 별호 덕분이었건만 그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내공조차 가르쳐주지 않았다. 반면에 일 년 내내 개산무관에서 기거하는 수련생들이야말로 정개산이 자신의 무공을 전수하는 진정한 정식 제자들이었다.
이씨 가문이 초휴를 칠 계획인 것을 정개산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중간다리 역할만 맡았으니, 결과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많은 도움을 줬는데도 이씨 가문이 초휴를 죽이는 데 실패한다면, 그런 형편없는 가문은 통주부에 계속 남아있을 필요가 없을 거라는 생각만 했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밤이 되자 정개산은 평소처럼 잠자리에 들었다. 고령의 나이지만 이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한 덕분에 지금껏 무공실력을 유지해올 수 있었다.
이윽고 초휴의 무리가 개산무관에 당도해 대문을 두드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정개산의 제자 하나가 욕을 바가지로 해대며 나와서 문을 열었다.
“제기랄, 지금이 몇 시인데 잠도 못 자게 이 난리야?”
대문이 미처 다 열리기도 전에 그의 눈앞에 예리한 도광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그의 머리통이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동이 트기 전인지라, 그 떨어지는 소리가 정적을 깨고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뒤이어 초휴의 무리가 줄줄이 개산무관으로 들어서니, 깊이 잠들었던 정개산도 잠에서 깨지 않을 수 없었다. 허둥지둥 옷을 걸쳐 입고 방에서 뛰쳐나온 그는 초휴의 무리와 바닥에 널브러진 제자의 시신을 발견하고 안색이 돌변했다.
지금쯤이면 이씨 가문에서 손을 쓰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어떻게 초휴가 멀쩡히 살아있는 거지? 게다가 흉흉한 기세로 쳐들어와 살생을 범하고 자기한테 칼까지 겨누고 있질 않은가 말이다. 그는 계획이 어그러졌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러나 애써 당황한 기색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초휴를 꾸짖었다.
“초휴, 이게 무슨 짓이냐? 내 무관까지 쳐들어와 사람을 해치다니, 가문의 징계가 두렵지도 않다는 것이냐?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는 잊은 거냐! 연배로만 따져도 나는 엄연히 네놈의 웃어른뻘 되는 사람이란 말이다.”
초휴가 칼을 들고 성큼성큼 다가오며 차갑게 받아쳤다.
“웃어른 좋아하시네. 아랫사람을 지옥으로 보내려는 게 웃어른이 할 짓인가? 늙은것이 외손주한테 가주 자리 쥐어주려고 애쓰는 거야 그렇다 쳐도, 최소한 내 앞길은 가로막지 않았어야지. 어서 꺼져라!”
핏빛으로 물든 초휴의 칼끝이 윙윙 소리를 내며 정개산을 향해 치고 들어왔다. 연달아 실전경험을 쌓으면서 그의 혈도경은 이미 고도의 경지까지 올라서 있었다. 정개산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고 노기충천하여 반격에 나섰다.
“이 미친놈! 무공 좀 익혔다고 눈에 뵈는 것도 없는 게냐?”
사실 정개산은 초휴가 젊은 나이로 이처럼 빨리 응혈경에 이른 것에 매우 놀랐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자신은 그저 나이가 많아 선천경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 아닌가. 한평생 무도의 길을 걸어온 무림 대선배인 자신인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까만 애송이 따위가 위아래도 모르고 칼을 들고 설쳐대는 꼬락서니가 같잖지도 않았다.
화가 치민 정개산이 열금수를 펼쳐내자 원래 붉은 기가 비쳐 보일 만치 하얗던 두 손이 둥그렇게 부풀어 오르면서 마치 괴수의 앞발처럼 시커멓게 변했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섬뜩했다.
정개산의 열금수는 본디 철사장(鐵砂掌)의 일종이나, 위력 면에서는 철사장보다 다소 우위에 있었다. 일반적인 철사장은 그저 외력을 이용해 양손 맨손바닥을 담금질하고 약초의 도움을 받는 정도에 그치는 반면, 정개산의 열금수는 내력이 뒷받침되어야 수련이 가능한 것이었다.
쉬체경일 때에는 철사장을 수련한 것과 별반 다를 게 없고, 약초의 힘을 빌려 손바닥의 위력을 좀 더 증강시킬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일단 응혈경에 이르러 체내 기혈을 제어할 수 있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온몸 기혈의 힘을 두 손바닥에 몰아넣고 내력을 운용해 꾸준히 담금질하면, 열금수로 발출된 기혈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하여 급기야 맨손바닥만으로도 쇠와 돌을 쪼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초휴의 혈도검법이 음험하고 사악하여 종잡을 수 없다면 정개산의 출수는 바위처럼 안정된 무게감이 돋보였다. 초휴의 안령도가 흔들릴 정도로 정개산이 맨손바닥으로 세게 때리자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정개산은 힘에 있어 조금도 초휴에게 밀리지 않고 있었다. 그는 시커멓게 부풀어 오른 손으로 안령도를 붙잡더니 냉소를 지으며 이죽거렸다.
“이씨 가문의 총관을 죽였다고 나도 죽일 수 있을 거 같더냐? 이충, 그자는 일찍이 내상을 입어 제대로 완쾌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런 반쪽짜리 응혈경을 죽이더니 눈에 뵈는 게 없어진 모양이로군. 가소롭구나!”
순간 두 눈이 강렬한 살기로 뒤덮인 초휴는 안령도를 내던지고, 수리청룡의 비수를 꺼내들어 쏜살같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비수의 존재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공격이 이루어지면서 눈앞에 한 줄기 은빛이 번쩍하자, 그제야 정개산은 다급히 손을 들어 비수를 막으려 했다.
이때 초휴가 순간적으로 비수의 방향을 비스듬히 틀어 버렸다. 정개산의 오른쪽 손목 위로 은빛 검광이 스쳐감과 동시에 엄청난 양의 선혈을 내뿜으며 그의 손이 잘려나가고 말았다. 어찌나 많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던지, 사람의 끊어진 손에 그토록 많은 피가 들어있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초휴가 애당초 이번 일격으로 노렸던 것은 정개산의 목숨이 아니라 열금수를 폐하는 것이었다. 수리청룡을 목숨을 끊는 용도로만 쓰라는 법은 없으니까.
정개산이 고통을 못 이겨 울부짖으며 뒤로 피하려 했으나, 초휴의 은빛 검광이 이를 허락지 않고 계속 그를 한자리에 묶어두었다.
오른손이 잘려나간 상황에서 정개산의 무게중심이 어쩔 수 없이 왼쪽으로 쏠리다 보니 오른쪽 몸뚱이의 운신이 힘들어, 초휴의 공격에 신속히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초휴의 비수가 그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어 단번에 숨통을 끊어놓고 말았다.
초휴는 비수를 뽑아내면서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정개산의 실력이 강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이충보다도 못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론 정개산의 열금수는 위력이 대단했고, 힘의 세기로만 따질 것 같으면 선천공을 익힌 초휴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온몸의 위력이 과도하게 양손으로만 집중되면서, 정작 주먹과 다리를 이용한 타격력이 별 볼 일 없게 되어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다.
즉, 기괴하기 짝이 없는 초휴의 검술에 휘둘려서 그토록 공들여온 열금수를 잃고 나자, 다른 대안이 없는 정개산은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근본적인 패인은 정개산의 실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초휴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데 있었다.
“놈들의 머리를 잘라라. 내일 아침 초씨 본가에 선물로 보낼 것이다.”
말을 마친 초휴가 비수를 거두며 개산무관을 나서자 마활이 다급히 물었다.
“초 공자, 또 뭘 하러 가는 거요?”
“아직 날이 밝지 않았으니 잠깐 눈이나 붙여야겠소.”
초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밝아오자 조용하던 통주부의 거리는 온통 난리였다. 초휴의 패거리가 치우기 귀찮아서 내버려둔 시체들이 거리에 즐비하게 널려있는 걸 행인들이 발견한 때문이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통주부의 삼대 세력 중 하나인 이씨 가문의 정예무사들이 간밤에 몰살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엄청난 사건이 비밀에 부쳐질 리 만무했다. 한 시간도 못 되어 이 소식은 통주부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당연히 초종광의 귀에도 들어갔다. 초휴가 벌인 일인 줄 상상도 못한 초종광은 정확한 내막을 알지 못해 어안이 벙벙하여 연신 혼잣말만 중얼거렸다.
“이씨 가문의 정예무사들이 죄다 죽었다고?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그러자 진 집사가 옆에서 넌지시 아뢰었다.
“듣자 하니 초휴 공자님의 처소 후원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고 합니다.”
“뭐라고? 초휴 그놈한테 그럴 능력이 어디 있다고 그딴 허튼 소문이 돌아?”
초종광이 별 황당한 소리를 다 듣는다는 식으로 말하자 진 집사가 무어라고 설명을 덧붙이려는데, 하인 하나가 들어와 보고했다.
“가주님, 초휴 공자님이 오셨는데 가문 회의를 소집하라고 하십니다. 가주님께 드릴 선물이 있다면서요.”
그러자 초종광이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로 그놈이?”
이때 초휴는 회의실에 상자 네 개를 나란히 늘어놓은 채, 차를 마시며 다들 모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인과 초개, 그리고 장로들은 의구심이 가득 서린 눈빛으로 심상치 않은 초휴의 동작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반면, 둘째 부인과 초생은 당황한 기색으로 초휴의 시선을 피하는 눈치였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그들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시체가 되었어야 할 초휴는 버젓이 살아있고, 그 많은 이씨 가문의 무사들이 몰살당했다고 한다. 설마 은밀히 초휴의 뒤를 봐주는 세력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때 초종광이 회의실로 들어서더니 다짜고짜 초휴에게 물었다.
“이씨 가문을 몰살시킨 건 네 짓이더냐?”
“그렇습니다.”
초휴가 한껏 예를 갖춰 대답하자 초종광의 얼굴이 심하게 굳어졌다.
“지난번 내가 한 경고를 깡그리 잊어먹었단 말이냐? 당분간 저들을 건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지 않았느냐. 넌 도대체 이 아비의 말을 어느 구멍으로 들었단 말이냐?”
그러자 초휴가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버님, 소자는 그들을 건드릴 생각이 없었는데 저들이 먼저 공격해온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그 많은 사람들을 죽여서는 그 시신들을 굳이 제 집 안마당까지 끌어다 놓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들이 제 처소로 먼저 쳐들어왔고 저는 죽지 않으려고 막았을 뿐입니다.”
초종광이 생각해 보니 그 말에 일리가 있었다. 이씨 가문도 도가 지나치긴 했다. 한번 봐주었으면 얌전히 찌그러져 있으면 됐을 텐데, 이렇게 또 시비를 걸어오다니.
“알았다. 이씨 놈들더러 너한테 사죄하라고 할 테니 이번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사죄는 이미 받아냈으니까요.”
초휴는 미소를 지으며 좌중의 사람들에게 상자 세 개를 열어 보였다.
“이씨 가문 형제들인 이승, 이운, 이택의 머리입니다. 이제 이씨 가문은 수장을 잃었고 방계혈족도 찾을 수가 없으니 멸문한 셈입니다. 제가 이미 저들의 재산을 정리하러 사람을 보내두었습니다. 이제부터 통주부는 초씨와 심씨, 두 가문 천하가 된 것입니다.”
초휴가 이씨 가문 형제들의 수급을 공개하자 초종광은 물론이요, 좌중의 모든 이들도 일제히 넋 놓은 표정이 되고 말았다. 애당초 초휴가 그들의 머리를 잘라버린 탓에, 사람들은 몸뚱이만 남은 시신을 보고서 막연히 이씨 가문의 정예무사들이 죽었으려니 짐작했을 뿐이었다. 직계 자손들마저 죄다 목숨을 잃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의 잘라진 수급을 보니, 이씨 가문이 정말로 멸문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초휴의 손에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황당무계한 일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그들은 당혹스러웠다.
이윽고 초휴가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향해 예를 갖춰 말했다.
“아버님, 장로 어르신들! 제 수하들이 이미 이씨 가문의 재산을 접수하기는 했으나 재산의 규모가 어마어마하여 그들에게 관리까지 맡기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씨 가문의 재산 가운데 삼분의 이를 가문에 바치고자 하오니 이를 관리할 적당한 인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초종광과 장로들은 초휴의 말에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금 이씨 가문을 통째로 삼키게 되면 수혜자는 초씨 가문 전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장로들의 자손 모두가 초씨 가문 내에서 집사로 있는 한, 실질적으로 그 재산을 관리하여 이득을 챙길 주체는 바로 그들이었다.
특히 초종광은 지금 초휴의 태도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지난날 그렇게도 자신에게 맞서며 화를 솟구치게 하더니 이제야 철이 드는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초종광의 시선이 아직 열리지 않은 한 상자에 가서 머물렀다. 그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상자가 한 개 더 있군그래. 저 안에는 무엇이 들었느냐?”
이에 초휴가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상자를 여니 놀랍게도 정개산의 수급이 들어있었다.
“악! 아버지!”
둘째 부인은 비명을 지르더니 통곡하기 시작했다.
끝
ⓒ 봉칠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