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46)
346화 통천무종의 실험
괴물 떼에게 쫓기던 두 사람은 낭인 무사로 이제 막 선천경에 오른 수준이었다. 괴물들은 아무리 봐도 속세에서 흔히 보는 사자, 호랑이보다 약해 보였지만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게 문제였다. 괴물들이 빽빽하게 끝도 없이 늘어선 모습을 보니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을 것 같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많은 수의 적을 두려움 없이 상대할 수 있는 건 무도종사의 경지에 오른 무사뿐이다. 무도종사급의 무사라면 무도진단(武道眞丹)을 응집한 힘으로 천지의 힘을 자유자재로 전환하여 만 명의 적이라도 거침없이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전에 초휴가 수많은 적을 한꺼번에 상대할 때가 비슷한 경우였다. 그러나 사실 당시에는 적들이 초휴의 무시무시한 살기에 겁을 먹었던 게 컸다. 만약 그들이 죽기 살기로 초휴에게 달려들었다면 초휴는 적지 않게 생사의 고비를 맞았을 터였다.
그러나 생존의 욕구가 강한 무사들과는 달리 저 괴물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쫓기는 무사들에게 참혹하게 살육을 당하면서도, 마치 만년은 넘게 굶은 것처럼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덤벼들었다. 다급하게 쫓기던 두 무사는 초휴를 발견하자 살았다는 듯, 초휴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들은 여전히 달려드는 괴물들을 뒤로하고 절박하게 외쳤다.
“초 대인! 제발 살려주십시오!”
초휴는 뜻 모를 미소를 슬쩍 지으며 말했다.
“내가 내키면 가끔 자비를 베풀 줄도 알지. 진심이 담긴 구명 요청은 내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다.”
마음이 움직인다는 말에 한 사람은 눈동자가 밝아졌지만, 또 다른 무사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과연 초휴는 급격히 낯빛을 바꾸고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너희처럼 꼼수 부리는 것들이야. 다음 생에서는 꼭 명심해라. 어떤 수작을 부리든, 너희와 비교할 수도 없이 강한 상대의 눈에는 그저 가소롭고 불쌍해 보일 뿐이란 것을!”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초휴는 두 사람을 괴물 떼 한가운데로 날려 버렸다. 뒤로 물러서던 무사도 초휴의 장력을 피할 수는 없었다. 살점이 뜯기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두 선천경 무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괴물 떼의 밥이 되어 버렸다. 그들이 남긴 흔적이라고는 핏자국밖에 없었다.
초휴는 무감각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두 사람은 제 발로 사지를 찾아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은 괴물 떼를 초휴가 있는 곳으로 유인하고서는 살려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자기들을 살려주지 않으면 초휴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 도와줄 수밖에 없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초휴가 자신들의 시커먼 속을 거울 보듯이 꿰뚫어 볼 거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이 야비한 꼼수만 부리지 않았다면 초휴는 그들을 도와줬을 것이다. 어쨌든 초휴도 괴물 떼가 있는 곳으로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쪽에 무엇이 있는지 탐색할 필요는 있었다.
두 명의 선천경 무사를 모조리 씹어 삼킨 괴물들은 한층 더 피에 굶주린 기세로 밀물처럼 초휴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외강경에 올라 강기를 쓸 줄 아는 무사라면 누구나 살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쓸어버릴 수준의 괴물들이었다.
초휴가 외사자인을 취하자 손가락 사이에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무시무시한 진동을 동반한 불음이 폭발하듯 울리며 수 장 안팎으로 원을 그리듯 퍼져 나갔다. 그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괴물이 칠공(七孔)으로 피를 쏟으며 즉사했다.
지금까지 초휴는 외사자인을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를 교란하는 보조적인 용도로만 사용했다. 상대했던 적들이 매우 강력해서 외사자인 자체만으로 죽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때문이다. 그러나 숫자만 많고 그다지 강하지 않은 괴물들은 외사자인만으로 대량 살상이 가능했다. 외사자인을 취한 초휴가 길을 지나가자 그 자리마다 괴물들의 시체가 빽빽이 쌓여 장관을 이뤘다. 괴물들이 우르르 쓰러지고 나자 저 멀리 궁전으로 짐작되는 건물의 윤곽이 보였다. 적지 않은 수의 사람이 그곳에 있는 듯했다.
초휴의 등 뒤에서 사납게 포효하던 괴물들은 궁전의 윤곽이 드러나자, 초휴의 외사자인에 걸려 죽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황급히 달아났다. 발톱을 숨기고 숨을 죽이며 물러나는 모양새가 마치 극심한 두려움에 시달리는 듯했다.
궁전 쪽에 서 있던 무사들은 갑자기 초휴가 등장하자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초휴의 등 뒤로 쌓인 엄청난 숫자의 괴물 사체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사실 그들 대부분은 괴물을 피해 도망치다가 궁전 앞까지 온 것이었다. 초휴처럼 가뿐히 괴물을 처리하지 못하고 힘겹게 도망쳐왔다는 점이 그와 달랐다. 초휴를 저대로 놔두면 어마어마한 수의 괴물들이 하나도 남지 않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들 중에는 초휴에게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친구라기보다 적이라고 해야 옳겠지만 말이다. 바로 파산검파의 잠부자였다. 잠부자는 초휴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차갑게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천인합일인 잠부자도 저런 괴물쯤은 별 힘을 들이지 않고 해치울 수 있었다. 단지 그가 구사하는 검결(劍訣)로는 초휴만큼 손쉽게 처리할 수 없을 뿐이었다.
초휴는 눈으로 궁전의 겉모습을 훑었다. 새하얀 백옥 재질이 주를 이루는 건물이었는데 대문은 육중하고 두꺼운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초휴가 오기 전 무사 몇 명이 문을 열려고 시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잠부자도 대문을 열기 위해 나섰지만 아무리 힘을 가해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살짝 흔들릴 뿐, 약간의 틈도 벌어지지 않았다.
무사들은 잠부자와 초휴를 번갈아 바라봤다. 두 사람이 힘을 합친다면 문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초휴는 잠부자가 아끼는 제자를 죽인 철천지원수가 아닌가. 두 사람이 손을 잡는 게 가능할까.
모두가 말을 꺼내기를 망설이고 있을 때, 후덕한 인상의 사십 대 중년 무사가 미소 지으며 두 사람 앞에 나섰다.
“초 대인, 잠 장로. 우리 중 이 육중한 문을 열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는 두 분 외엔 없는 듯하구려. 두 분 사이가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소이다. 그러나 통천탑 안에 가득 숨겨진 보물을 생각해서 개인적인 원한은 잠시만 뒤로 미뤄두면 안 되겠는지요?”
초휴는 거대한 청동문을 힐끔 보고는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안 될 것 없소. 복수한다고 날 쫓아온 건 저 사람이지 내가 아니지 않소.”
잠부자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합의를 보자 나머지 사람들은 멀찌감치 물러섰다.
초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두말하지 않고 대금강륜인을 취했다. 전신의 모든 진기가 실린 눈부신 불광이 인을 취한 손에서 뿜어져 나와 청동문을 어마어마한 힘으로 가격했다. 이어서 가만히 서 있던 잠부자의 손에서 검이 육중하게 변하더니, 십여 장 두께로 응집된 검강(劍罡)이 산천과도 같은 기세로 청동문을 때렸다. 그와 동시에 청동문에서 무시무시한 굉음이 폭발했으니, 이것이 바로 파산검파의 검법 중 하나인 금수산하검(錦繡山河劍)이었다.
파산검파의 검법은 그다지 유명한 편은 아니었다.
파산야우(巴山夜雨), 자전뢰정(紫電雷霆).
이 여덟 글자로 이루어진 검결이 진화하여 팔문검법(八門劍法)을 이루기는 했으나 그 위력이 강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천인합일의 고수인 잠부자가 내지른 검강이 약할 리는 없었다. 힘으로만 논한다면 이 금수산하검이 잠부자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검법이었다.
두 사람이 연달아 문을 때리자 드디어 청동문에 약간의 틈이 생겼다. 미세한 틈이었지만 사람 몇 명이 드나들기에는 충분했다. 초휴와 잠부자가 앞장서자 나머지도 뒤를 따랐다. 두 사람 덕분에 모두가 궁 안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들어가자마자 펼쳐진 광경에 모두가 숨이 멎을 듯 경악했다. 잠부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휴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 세상으로 들어왔으니, 다른 자들보다 훨씬 넓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했다고 해도 좋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초휴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통천무종 놈들, 정말 신박하게도 놀았군.”
대전 안에 놓인 물체들은 하나같이 엽기적이어서 마치 도살장 안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일었다. 사방 천지에 각종 흉수의 절단된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어떤 것은 이미 오랜 세월 부식될 대로 부식되어 손으로 툭 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먼지처럼 우수수 부서져 내렸다. 땅바닥에 뿌려진 혈흔은 흉측하게 변색하여 시커먼 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엽기적인 건 주변에 놓인 새장이었다. 새장 안에는 이미 죽은 지 오래인 생체 실험물들이 들어있었는데, 기괴하지 않은 것이라곤 단 하나도 없었다. 새의 몸에 사슴의 머리, 거미와도 같은 여덟 개의 다리가 달린 실험체도 있었다.
사방에 널린 흉수의 시신과 새장 안에 든 괴이한 실험체를 보며 초휴는 통천무종이 이곳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알아차렸다. 통천무종은 이곳에서 끔찍한 생체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잠부자는 이 해괴한 광경에 감격이라도 했는지 잔뜩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과연 상고시대의 통천무종이로다. 천재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군. 상고시대의 대겁난이 성공했다면 무림 전체에 큰 축복이었을 것을! 참으로 안타깝구나!”
“이런 괴물을 만들어 내는 게 무림의 축복이라고?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 말고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이오? 보아하니 맛도 없어 보여 먹지도 못할 것 같은데.”
옆에 무사가 비아냥거리자 잠부자는 눈을 부릅떠서 흘겨보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당신들이 뭘 알겠소. 통천무종은 흉수를 대량 생산하려고 이런 일을 벌인 것이오. 흉수의 피로는 단약을 만들 수 있고, 껍데기로는 무기를, 골격으로는 진을 배치할 수 있지. 흉수의 모든 부위가 진귀한 보물이란 말이오. 다만 흉수는 쉽게 마주칠 수 없고 힘이 강해서 사람이 쉽게 찾아 도륙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 그래서 통천무종은 흉수의 혈맥을 평범한 맹수의 몸에 이식하여, 흉수를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었던 것이오. 흉수의 몸에서 나오는 진귀한 재료를 무림에 무한대로 공급할 수 있도록 말이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실험은 실패로 끝난 듯하군. 이곳에 만들어진 괴물들은 지금껏 살아 있기는 하지만 몸에 흉수의 혈맥을 간직하고 있지는 않소. 평범한 맹수보다 아주 약간 강할 뿐이오.”
초휴도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부자가 오랫동안 선생 노릇을 했다더니, 과연 그 경력이 무색하지 않게 박학다식하고 분석 또한 설득력이 있었다. 통천무종 괴짜들의 실험은 가히 창조적이라고 할 만했다. 다만 초휴가 보기에는 성공 가능성이 낮은 실험이었다. 그들이 이곳에서 한 것은 거의 창조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말이다. 맹수의 신체 부위를 이어 붙여서 괴상한 괴물을 만들고 생존하게 하는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인데, 하물며 맹수를 흉수로 재창조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일행은 점점 대전의 중심부로 걸어 들어갔다. 대전의 정중앙이 그들의 눈앞에 드러나자 그들의 눈은 일제히 번뜩였다. 중심부에 진법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흐릿해지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눈 부신 빛을 발하는 진법이었다. 진법의 상공에는 크기가 구촌은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심장이 얼음에 봉인된 채 떠 있었다. 그 심장에서는 생생한 활력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