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49)
349화 여봉선의 매력
하후무강이 갑자기 도끼눈을 떴다. 일행 중 하후무강의 내력 소모가 가장 컸다. 하후씨의 어신술은 위력이 무시무시했지만 그만큼 힘도 많이 소모되었다. 정신력이 그리 강하지 않은 조무래기 괴물들은 하후무강의 어신술로 즉시 파괴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물밀 듯 무한대로 몰려오는 괴물들을 계속 이런 식으로 상대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하후무강의 정신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바닥이 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다른 방법을 찾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하후무강은 낭인 무사들을 향해 돌아서며 고함을 질렀다.
“너희가 앞에서 막아라.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면 모두에게 상을 내리겠다!”
그러나 그들은 하후무강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사실 하후무강이 주겠다는 상이 탐이 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하후무강 같은 젊은 준걸과 교분을 맺을 좋은 기회이긴 했다. 하지만, 죽고 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예상과 달리 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않자 하후무강은 살벌한 눈빛으로 결인을 취해 어신술을 최절정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 결인을 취한 손에서 검고 심오한 기운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힘이 향한 곳은 괴물 떼가 아니라 전면에 서기를 거부한 무사들이었다.
기껏해야 외강경 수준인 이들은 하후무강의 어신술에 전혀 대항하지 못하고 단번에 의식을 빼앗겨버렸다. 결국 그들은 하후무강이 조종하는 대로 전방을 향해 강기를 내뿜었다. 그러나 제일 앞에 나선 무사는 괴물의 공격을 몇 번 막지도 못하고 모든 강기를 소진한 뒤, 벌떼처럼 달려드는 괴물에게 살 한 점 남김없이 물어뜯기고 말았다. 무사가 쓰러진 자리에서 참혹한 피 안개가 일었다.
하후무강은 괴물의 밥이 된 무사 따위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공간 비전함 안에서 진반을 꺼냈다. 진반 위에는 네 자루의 소검이 꽂혀 작은 검진(劍陣)을 이루고 있었다. 하후무강이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부친에게 선물 받은 것인데, 명성이 높은 장검산장(藏劍山莊) 사절(四絕) 검진의 축소판이었다. 일단 사용하면 산산이 파열되니 실제 쓸 수 있는 건 단 한 번뿐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여 선물한 보물이었으나, 지금은 이걸 꺼내지 않을 수가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검진이 작동되자 네 자루의 소검이 하후무강의 주변을 둘러싸며 그를 보호했고, 하후무강의 어신술에 조종당하는 무사들은 하후무강의 방패막이가 되어 구할이나 되는 괴물 떼를 온몸으로 막으며 길을 열었다. 간혹 인간 방패를 뚫고 하후무강에게 달려드는 괴물들은 검진의 힘에 휘말려 숨이 끊어졌다.
그렇게 하후무강은 유유히 앞으로 나가더니, 곧 순조롭게 진법 속으로 사라졌다. 월녀궁의 두 여제자는 하후무강이 빠져나가는 장면을 지켜보다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외쳤다.
“저 후안무치한 놈!”
하후무강이 방금 한 짓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비열한 작태였다. 월녀궁 사람들은 제멋대로에 억지를 부리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당당한 명문 정파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후무강이 방금 저지른 짓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손가락질을 받을 추태였다. 안비연은 나머지 두 제자처럼 분개하지 않고 조용히 미간을 찌푸렸다.
하후무강이 떠난 뒤 괴물들의 공격이 더욱 거세지자 그녀들의 진기 소모는 한층 더 심해졌다. 월녀궁의 월녀검전은 위력이 대단했지만, 매 초식마다 천지의 거대한 힘을 끌어 써야 하니 진기 소모가 극심했다. 해서 일대일 대결에서 월녀검전의 위력은 놀라울 정도로 폭발적이었지만 이렇게 수많은 괴물이 떼로 달려드는 상황에서는 무력하기만 했다. 게다가 하후무강이 떠나고 낭인 무사들이 목숨을 잃어 인원이 줄자, 안비연의 예상대로 괴물들은 더욱 맹렬하게 달려들어 버티는 게 점점 더 힘들어졌다.
그때 여봉선이 안비연 일행을 힐끔 보더니 돌연 손가락을 깨물었다. 그의 손가락에서 흘러내린 피가 은빛 방천화극에 떨어지자 병기는 순식간에 적홍빛으로 변했다. 여봉선이 새빨갛게 물든 창을 들고 결인을 취하자 놀랍게도 얼굴 위에 핏빛 부적문이 뭉게뭉게 떠올랐다. 그 부적문은 뜻밖에도 여봉선의 잘생긴 얼굴과 묘한 조화를 이루어 사악한 아름다움을 풍겼다.
여봉선이 자신의 몸을 둘러싼 기세를 최대치로 끌어 올려 방천화극을 휘두르자, 십여 장의 길이에 달하는 적홍색 강기가 소용돌이처럼 몰아쳤다. 그 소용돌이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괴물 떼가 피바람과 함께 발기발기 찢기며 순식간에 길이 만들어졌다.
막천림은 어안이 벙벙했다. 전력을 다하는 여봉선은 그도 이번에 처음 본 것인데, 설마 이토록 무시무시한 광경을 연출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여봉선은 안비연을 돌아보며 외쳤다.
“내 뒤에 붙어 따라오시오!”
안비연은 잠시 멍해졌다. 초휴와 한패인 여봉선이 자신을 도울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여봉선은 안비연이 그러거나 말거나 방천화극을 휘둘러 피로 물든 길을 내며 꿋꿋이 앞으로 전진했다.
안비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두 사매를 불러 여봉선의 뒤를 따르며 괴물들을 죽여 나갔다. 그렇게 괴물들과 혈투를 벌이며 한참을 길을 내고 있는데, 문득 진법의 압박이 사라지며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괴물들도 진법의 효력이 다한 것을 느꼈는지 썰물 빠지듯이 물러났다.
여봉선의 안색은 창백해 보였다. 괴물들이 사라지자 여봉선의 얼굴에 나타났던 기이한 부적문도 자취를 감췄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안비연은 그런 여봉선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곧 예를 표했다.
“여 공자 덕분에 살았습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어요.”
사실 안비연은 여봉선을 은근히 깔보고 있었다. 여봉선이 강호에서 별로 유명하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안비연의 착각이었다. 여봉선은 초휴, 하후무강 등 용호방의 십 위권에 오른 준걸들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 놀라운 실력자인 것이다.
여봉선은 손을 휘휘 저으며 사양했다.
“나도 살아야 하니 도운 것뿐이오. 안 소저가 정녕 감사하다면 초 형과 월녀궁 사이의 은원은 잠시 내려놓는 게 어떻겠소. 풍무랭의 일은 초 형이 의도한 바가 아니니 말이오. 그리고 그건 이미 충분히 설명한 거로 압니다. 초 형은 지금 관중형당의 장형관으로, 월녀궁과 척을 질 이유가 전혀 없소. 월녀궁을 일부러 자극해 봐야 까다로운 적만 늘어날 뿐 얻을 이익도 없고 말이오. 안 소저도 깊이 생각하고 행동해주셨으면 합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 안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 공자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월녀궁과 초휴의 일은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초휴가 일부러 시비를 걸지 않는 한 우리 월녀궁도 그를 성가시게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안비연의 대답은 명쾌하고 빨랐다. 사실 안비연은 굳이 초휴를 적으로 돌릴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제양산에 올라 완아가 초휴를 추궁한 것도 그저 체면 때문에 저지른 일에 불과했다. 월녀궁은 이미 하후씨를 문책한다며 난리를 피우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하후씨의 조롱거리가 되어 체면만 구겼다. 월녀궁의 제자들은 초휴를 보자, 하후씨에게 억지를 부리던 그 버릇이 또다시 발동했을 뿐이었다. 하후씨를 못 건드린다고 관중형당의 초휴도 못 건드릴 이유가 어디 있을까.
월녀궁의 제자들이 초휴에게 따지는 장면을 많은 사람이 보면, 땅에 떨어진 월녀궁의 체면이 조금은 살아날 것이라고 비연은 생각했다. 해서 완아를 막지 않았던 것이었다. 막천림의 말처럼 상대가 여봉선이나 막천림이었다면, 초휴처럼 다짜고짜 무력을 쓰는 대신 참을성 있게 완아에게 사정을 설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초휴가 미인이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완력을 쓸 줄은 미처 몰랐다. 월녀궁 역시 그대로 물러날 수만은 없었기에 결국 초휴와 적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봉선이 월녀궁을 구한 뒤 초휴와의 화해를 요청했으니, 안비연의 입장에서는 괜한 악연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었다. 안비연은 초휴의 실력을 두 눈으로 직접 본 뒤, 완아를 말리지 않았던 것을 은근히 후회했었다. 초휴 같은 자를 적으로 돌려서 좋을 일이라곤 없었으니까.
안비연이 못마땅해하는 사매 둘을 억지로 끌고 사라지자 막천림이 고개를 갸웃하며 여봉선에게 물었다.
“여 형, 설마 초 형과 월녀궁을 화해시키려고 안비연을 도운 건가?”
여봉선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초 형과 월녀궁의 싸움은 자존심 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하후무강처럼 죽여야만 끝나는 지독한 악연은 아니지. 초 형은 이미 강호에서 많은 이들을 적으로 돌렸어. 초 형이야 적 하나쯤 느는 건 개의치 않겠지만, 그 숫자를 줄일 수 있다면 줄이는 게 좋지 않겠나. 때마침 초 형과 월녀궁의 가벼운 악연을 풀어줄 좋은 기회가 생겼으니, 초 형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어 나선 걸세.”
막천림은 여봉선의 말을 듣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냉소적인 성격의 사소루가 왜 여봉선을 극진히 떠받드는지, 왜 천하맹의 후계자 자리를 여봉선에게 기꺼이 양보하려는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게다가 그 포악한 성정에 이익만을 좇는 초휴마저도 여봉선과는 진심으로 교분을 나누고 있지 않은가. 여봉선 같은 성품을 지닌 사람과 벗이 되면 절대 손해 볼 일이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세심하게 친구를 생각하는 자와의 교분을 굳이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여봉선의 진정한 매력은 뛰어난 무공보다 그의 인품 자체에 있다고 해도 좋을 터였다.
초휴가 여봉선과 막천림을 찾았을 때, 두 사람은 체력을 회복한 상태였다. 다만 여봉선은 진법을 깨려고 필살기를 사용하는 바람에 원기가 상했다. 진기를 어느 정도 회복하기는 했으나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밖에 나가서 몸조리를 철저히 해야 할 터였다.
막천림은 초휴를 보자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초 형, 초 형도 괴상하게 생긴 괴물들을 만났나?”
초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만났지만 내가 다 처리했어. 그리고 수확도 있었지.”
초휴는 그들에게 흉수의 심장을 보여주며 통천탑 안으로 들어와서 겪은 일을 설명했다. 모두 자기 사람들이니 진반에 관한 일 외에는 숨길 이유가 없었다. 막천림은 초휴의 말을 듣자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다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나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말인가. 통천탑 안으로 들어와 진법과 괴물에게 호되게 당한 건 막천림과 여봉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누구는 빈손이고 누구는 저런 보물을 손에 넣다니 차이가 너무 크지 않은가.
막천림도 통천탑 안에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했다. 특히 여봉선이 초휴를 위해 월녀궁을 도운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다 듣고 난 초휴는 여봉선에게 무거운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여 형, 정말 고마워.”
여봉선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운 전우였으니, 억지로 감격한 척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초휴는 자신이 사람을 제대로 봤음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 여봉선을 벗으로 두는 건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음을 말이다.
초휴는 몰락한 월녀궁 따위는 안중에도 없지만, 여봉선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적 하나쯤 늘어 봐야 신경도 쓰지 않지만, 그래도 느는 것보다야 줄어드는 게 신상에 좋지 않겠는가.
막천림은 옆에서 헤헤 웃으며 말했다.
“월녀궁 여자들이 억지스럽다고들 하지만 안비연은 그래도 다른 월녀궁 제자들과는 다르더군. 역시 괜히 이름값이 있는 게 아닌지 말이 통하더라고. 여 형이 이야기하니 금방 수긍하고 승낙을 하던데그래.”
초휴는 그의 말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막 형, 그 여자를 과소평가하다가 큰코다칠 거야. 말이 잘 통하는 게 아니라 이익을 계산하는데 능한 거라네. 애초에 나와 여 형이 어느 정도 실력을 갖췄는지 똑똑히 느끼게 해 주지 않았으면 그녀가 그리 쉽게 수긍을 했을 것 같나? 대접은 남이 해 주길 기대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는 걸세.”
막천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탄식했다.
“자넨 참 세상 피곤하게도 사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