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54)
354화 파전(破箭)
칠숙은 마지막 화살을 초휴에게 겨눈 상태를 흩트리지 않았다. 이 화살도 불발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다만 초휴가 자신을 놔두고 하후무강을 추격할 것을 대비해 조준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칠숙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어차피 가주의 은혜로 살아난 목숨이니 하후씨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바쳐야겠지. 하후 공자가 무사히 빠져나간다면 가주의 은혜는 보답하는 셈이다. 네가 어떻게 내 화살 두 발이나 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게 화살만 있다고 여긴다면 오산이야. 공자가 살아서 무사히 빠져나갈 때까지는 나를 죽일 수 없을 것이다!”
초휴는 내박인의 추진력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칠숙의 바로 앞에 당도했다. 그가 마도를 격출하자 마기가 가득한 도망이 순식간에 칠숙을 덮쳤다.
“그렇게 죽는 게 소원이라면 확실하게 보내주겠다!”
초휴의 요사스러운 도망이 자신을 엄습하자 칠숙은 독기를 담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마지막 화살을 쏘지 않고 거두며 자신의 거대한 화살을 눌렀다. 그러자 거대한 활과 화살은 딸깍딸깍 기계 변환 음을 내며 합쳐지더니, 순식간에 한 자루의 짧은 창으로 변했다. 화살촉이 날카로운 창끝 역할을 했다.
칠숙의 화살 이름은 ‘현기(玄機)’로 상고시대 천기문의 신병 ‘현기변’의 고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무기였다. 전설에 의하면 상고시대 신병인 현기변은 십팔반(十八班) 병기로 자유자재로 형태 변환이 가능한 전천후 무기였다고 한다.
현기변의 모조품인 칠숙의 현기는 세 가지 형태로만 변환할 수 있었는데, 평소에는 휴대하기 편하도록 상자 형태였고 원거리 공격 시에는 활로, 근접 공격 시에는 짧은 봉이나 창으로 변환하여 사용했다. 그러나 칠숙이 현기를 근접전용인 단창으로 변환한 건 처음이었다. 전에는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창을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초휴의 요사스러운 도망을 막았다. 자신이 할 줄 아는 게 화살을 쏘는 것만이 아니라던 칠숙의 장담이 거짓은 아니었다. 그는 창법도 제법 알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탈백십삼전과 비교하면 평범한 수준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탈백십삼전이 없는 칠숙은 이빨 빠진 호랑이나 다름이 없어서 초휴의 아비도삼도를 버티지 못하고 점점 뒤로 밀려났다. 마도가 하늘을 삼키듯 번쩍 허공을 가르자 아비마도의 삼중 변화가 하나로 응집되며 커다란 폭발음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칠숙은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그는 초휴가 여전히 칼을 쥐며 다가오는 것을 보자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괴물 같은 놈!”
그는 초휴에게 심각한 내상을 입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저렇게 폭발적으로 휘두를 힘이 남아 있다니, 저게 괴물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그건 초휴를 과소평가한 칠숙의 오산이었다.
초휴가 내상을 입은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의 심장에는 유리금사고가 있었으며, 몸의 충격을 진정시킬 수 있는 내사자인을 취했기에 칠숙의 예상처럼 내상이 심각하지는 않았다. 초휴에게는 아직 싸울 힘이 충분했다.
반면 칠숙은 탈백십삼전에 강기를 불어넣느라 이미 적지 않은 내력을 소모했다. 게다가 창법의 수준도 높지 못하니, 초휴의 공격에 처참하게 밀리며 피를 토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 가망이 없다는 걸 직감했으나 그래도 지금쯤이면 하후무강이 통천탑을 빠져나갔을 거라고 자신을 위안했다. 초휴가 마기를 내뿜으며 다시 칼을 휘두르자 칠숙은 손에 쥔 단창을 급히 두 동강 냈다. 그러자 강기가 날리며 초휴가 손에 쥔 천마무를 뒤덮었고 창신은 하늘을 뒤덮을 듯, 무수히 많은 수의 암기로 분해되어 초휴를 향해 물 샐 틈 없는 기세로 날아갔다.
천자망기술은 내력을 소모하는 기공은 아니었지만, 정신력 소모가 컸다. 초휴 역시 종전과 같은 수준의 천자망기술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했으므로 칠숙의 지금 이 공격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이건 칠숙의 마지막 필살기였다. 무기의 변환이라기보다는 무기를 희생해가며 시도하는 최후의 공격인 것이다.
활줄이 천마무를 돌돌 휘감는 동시에 무수히 많은 암기가 비 오듯 정면으로 쏟아지자, 초휴는 어쩔 수 없이 칼을 버리고 독고인을 취하며 암기를 방어했다. 초휴가 모든 암기를 가까스로 막았을 때, 칠숙은 이미 젖 먹던 힘을 다해 무고 밖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행여 놓칠세라 초휴는 빛의 속도로 그를 쫓으며 천절지멸망아살권(天絶地滅忘我殺拳)을 출수했다. 극도로 응집된 살기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칠숙의 등에 내리꽂히자, 그는 내장 조각이 섞인 피를 토했다.
이어서 초휴가 권법을 장법인 천절지멸대자양수(天絶地滅大紫陽手)로 바꾸어 내지르자 칠숙은 사악한 자양마염(紫陽魔焰)을 온몸으로 맞으며, 또다시 보라색과 검은색의 마기로 범벅이 된 피를 토했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칠숙의 의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초휴에게 치명타를 계속 맞으면서도, 그 타격을 추진력 삼아 무고 밖으로 뛰어내리더니 뿌연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초휴는 무고 밖을 벗어난 칠숙을 굳이 쫓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칠숙은 도망치다가 목숨이 끊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천절지멸대자양수 자체의 폭발력은 그리 강력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후에 칠숙의 몸으로 파고든 자양마염의 위력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전력을 쓸 수 있는 상태의 칠숙이라면 자양마염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초휴에게 여러 번 치명타를 입은 뒤, 천절지멸망아살권으로 깊은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야말로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에서 자양마염을 맞았으니,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목숨을 지킬 방법은 단 하나, 우연히 만난 천인합일의 고수가 체내의 자양마염을 제거해 주는 것뿐이었다.
초휴가 그를 굳이 쫓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도 많은 힘을 소진했기 때문이었다. 초휴가 때를 맞추어 천자망기술의 새로운 경지를 터득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엄청난 실력자인 칠숙에게 목숨을 빼앗겼을지도 몰랐다. 끝내 초휴가 이기기는 했지만, 체력 소모가 심한 상태니 그를 쫓는 것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챙기는 게 더 급했다.
잠부자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초휴를 응시했다. 초휴의 실력이 칠숙을 압도할 정도로 강할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막강한 칠숙이 초휴에게 치명상을 입고 피를 토하며 도주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초휴는 멍하니 선 잠부자를 향해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잠 장로, 내가 뭐라고 했소. 하후무강의 편에 서는 건 실수라고, 후회하게 될 거라고 하지 않았소. 이제 눈으로 결과를 확인했으니 깨달았겠지. 내 말이 옳았고, 당신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초휴가 손을 휘두르자, 활줄에 감겨서 던져 버렸던 천마무가 둥둥 떠오르며 초휴의 손에 돌아왔다. 천마무의 마기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자 초휴는 말없이 천마무를 세차게 휘두르며 잠부자를 공격했다.
여봉선과 뒤엉켜 싸우던 잠부자 역시 두말없이 자전청광검의 푸른 검망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그는 증폭시킨 검망으로 초휴를 공격하는 대신 여봉선의 방천화극을 길게 뿌리치더니 제자들과 함께 도주하기 시작했다.
역시 잠부자는 늙은 여우라고 할 만했다.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한 쪽으로 기우는 것을 확인하자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도주를 택하다니, 이 얼마나 과감한 결단력인가.
그는 여봉선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초휴가 칠숙을 압도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실력을 갖췄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굳이 여기서 초휴와 싸워서 아까운 목숨을 버릴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초휴가 말한 것처럼 잠부자는 초휴의 편에 서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초휴의 편에 섰다면 통천탑의 모든 것을 독점하지는 못했겠지만 적어도 삼 분의 일 정도는 차지할 수 있었을 터였다. 지금처럼 빈털터리로 도망치는 것보다 백배는 낫지 않는가.
그러나 잠부자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조금 전의 상황이었다면 백이면 백 하후씨와 손잡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그때는 누가 봐도 하후씨의 승산이 훨씬 컸으니까. 초휴가 초절정의 고수를 압도할 정도로 실력이 강하다는 걸 대체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잠부자가 쏜살같이 도망치자 여봉선이 초휴에게 물었다.
“안 쫓을 건가?”
여봉선은 잠부자와 싸우느라 약이 바짝 오른 상태였다. 그처럼 여우같이 교활한 상대는 난생처음이었던 것이다. 서로의 필살기를 남김없이 쏟아부어 싸운다면 여봉선과 잠부자 중 누가 이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잠부자는 자신의 경지가 여봉선보다 명백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정면 승부를 피하며 싸움을 질질 끌었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여봉선이 초휴를 돕지 못하게 방해하면서 자신이 부상 당하는 것도 막는 것뿐이었다. 이 얼마나 짜증 나는 행태인가.
그러나 초휴는 손을 휘휘 저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일단 놔두지. 나도 사실 큰 내상을 입었어. 조금 전의 그 공격도 그냥 위협용으로 한 걸세. 그가 기어이 버텼다면 무슨 수를 동원해서라도 죽였겠지만, 알아서 도망을 쳤으니 일단은 놔두는 게 좋을 것 같군.”
여봉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초휴와 나란히 정중앙에 우뚝 서 있는 청동 나무로 향했다. 난장판으로 뒤엉켜 싸우던 무사들은 그들이 지날 때마다 순순히 길을 내주었다. 월녀궁의 제자들도 다른 무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승리하면 왕이 되고 패하면 도적이 된다고 했던가.
하후씨가 중상을 입고 도망쳤고 파산검파의 제자들도 도망을 쳤으니, 지금은 초휴가 이 구역의 최강자인 셈이었다. 낭인, 군소 문파 무사 중에서 천인합일이나 오기조원에 도달한 고수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실력은 칠숙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동급의 고수라도 칠숙과 그들의 격차는 엄청났다. 특히 윤라화 같은 작자는 칠숙의 화살을 세 발이라도 막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이때 요란한 진동음이 통천탑 전체를 가득 울리자 초휴가 급격히 굳은 얼굴로 다급하게 외쳤다.
“빨리 무고의 비전함을 챙기시오! 가장 꼭대기의 비전함을 제외하고 가지고 싶은 건 뭐든 가져가도 좋소!”
통천탑이 떨린다는 것은 다시 땅속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 영영 이곳에 갇히게 될 것이다. 물론 청동 나무의 꼭대기에 걸린 비전함은 초휴의 차지였다. 이곳에서 가장 많은 힘을 쓴 사람은 초휴였으니, 여봉선 등도 그것이 초휴의 몫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다른 사람들은 탐이 난다고 해도 감히 초휴에게 덤빌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초휴는 가장 꼭대기의 달린 비전함과 그 주위에 달린 다른 비전함들 십여 개를 챙긴 후, 즉시 사람들을 불러 떠날 준비를 했다. 여봉선 등도 초휴와 비슷한 갯수의 비전함을 챙기고는 더는 비전함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자연히 중간과 하부에 달린 비전함들은 군소 문파, 낭인 무사들의 몫이 되었다.
통천탑의 진동이 점점 심해지는데도 이들은 비전함을 챙기느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초휴는 이들에게 다급함을 알리고 싶은 호의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알려도 별 소용이 없을 터였다. 저렇게 많은 보물을 눈앞에 두고, 탐욕을 억누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초휴가 위험을 알려 봤자, 저들은 그가 보물을 독차지하려고 자신들을 겁준다고 여길 것이다.
초휴 일행이 통천탑을 벗어나자 통천탑 전체가 요란한 진동과 함께 땅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초휴를 따라 밖으로 무사히 나온 무사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초휴의 말을 듣지 않고 남아 있었다면 자신들은 땅속에 매장되었을 것이 아닌가.
통천탑이 완전히 땅속으로 사라지자 월녀궁 사람들은 비전함을 챙겨 즉시 길을 떠났다. 나머지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