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56)
356화 인정(人情)
관중형당은 매우 특수한 조직이긴 했지만, 본질적인 성격은 강호의 여타 종문과 다르지 않았다. 종문이 일원을 비호하고, 일원은 그 대가로 종문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일종의 공생 관계라는 점에서 말이다.
관중형당에 가입한 이후로 초휴는 이미 관중형당의 명성을 한껏 드높여 주었다. 지금은 초휴 덕에 통천탑에서 획득한 보물까지 얻게 되었으니, 앞으로도 초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관중형당이 나서서 그를 보호해 주지 않겠는가. 그가 거침없이 명진을 죽인 것도 뒤에 관중형당이 든든히 버티고 있기에 가능했다.
물론 관중형당도 귀찮은 일에 나서지 않는 편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대처한다면 어떻게 강호인들의 인심을 얻겠는가. 자신의 일원도 보호하지 않는 세력은 불화와 분열을 겪다가 종국에는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얼마 안 가 울지(尉遲)가 초휴를 찾아와, 관중형당의 본부에 들르라는 관사우의 전갈을 전했다. 오랜만에 초휴를 본 울지는 이번에는 먼저 그에게 예를 표했다.
“초 대인, 이번에 큰일을 하셔서 강호에 대인의 소문이 무성하더이다.”
울지는 사리 분별이 뛰어난 자였다. 전에는 초휴와 자신의 급이 비슷하여 어깨를 나란히 하며 편하게 대했지만, 현재의 초휴는 어엿한 장형관이었다. 울지가 극진하게 모실 정도의 직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옳았다.
초휴는 손을 내저으며 그를 만류했다.
“울지 형, 우리가 안 시간이 얼만데 갑자기 남처럼 왜 이러시오?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 주시구려. 통천탑에서의 일이야 원래 강호에서는 더 강한 자가 가장 많은 몫을 차지하는 법이 아닙니까. 설마 이 내가 다른 사람이 보물을 가져가게 순순히 놔뒀을 리는 없지요.”
울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이번에 대광명사의 사람을 죽인 건 과하지 않았나 싶소. 초 형의 수법이 너무 악랄해서 일을 원만히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거 같소. 어쨌든 당주께서 돌아오라고 한 것은 이 일을 상의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초 형도 마음의 준비를 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오.”
울지는 초휴에게 악감정이 일지 않았다. 초휴가 눈치 빠르게 대처했기 때문이었다. 울지가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초휴를 대인이라고 칭하기는 했지만, 초휴가 사양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불편한 감정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호칭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별문제 될 일이야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초휴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울지는 선심을 써서, 어떻게 해야 이번 일을 넘길 수 있을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귀띔을 해 준 것이다. 그러나 걱정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던 초휴는 기분 좋게 껄껄 웃으며 손을 모아 감사를 표했다.
“미리 알려주셔서 고맙소이다.”
두 사람은 나란히 관중형당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관중형당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중이었다. 초휴는 도착해서 바로 관사우를 접견하지 않고 머무를 만한 방을 잡아달라고 울지에게 부탁했다. 초휴는 현재 장형관 신분이니 그 정도의 대우는 받을 자격이 있었다.
밤이 깊어 초휴가 방에서 차를 마시는데 갑자기 방안으로 검은 안개처럼 뿌연 마기가 빙빙 감돌며 흘러들어오더니, 코를 찌르는 짙은 향기와 함께 매경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초휴는 흠칫 놀라며 물었다.
“부인, 형당 본부에서 출수하다니, 관사우에게 들킬까 두렵지 않으십니까?”
매경령은 초휴의 옆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요염한 말투로 대답했다.
“관사우? 그는 내가 감추는 한 절대 눈치챌 수 없어요. 그리고 부인이라는 그 호칭 좀 어떻게 안 되겠어요? 내 진짜 정체를 알잖아요. 그대는 설마 내가 평생 관사우 같은 늙은이 곁에 붙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초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매 종주?”
그러자 매경령은 정색을 하며 손을 휘저었다.
“그 호칭은 집어치워요. 음마종(陰魔宗)의 역대 종주 중에서 곱게 죽은 사람이 없다니까요. 게다가 난 단 한 번도 음마종의 종주 자리를 계승한 적이 없어요. 음마종에 아직 사람이 몇 명 남아 있을 때, 난 음마종의 성녀였어요. 뭐 내가 그대에게는 선배인 셈이니, 성녀 대인 정도로 불러주면 좋겠네요. 그나저나 이번에 겁도 없이 사고를 거하게 치셨던데, 정말 간이 크군요. 대인이 뒷일은 생각도 안 하고 함부로 대광명사 금강원의 무술 교두를 죽였다는 소릴 듣고 관사우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잔을 집어던졌다니까요.”
관사우가 화를 내는 건 당연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초휴는 매경령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날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인간은 죽여주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게 대광명사든 수보제선원이든 알 바 아니죠. 목숨을 살려준다고 적이 친구로 돌변하기라도 할까요? 화해할 수 없다면 아예 죽여서 화근을 없애는 게 이득이지요.”
매경령은 초휴의 말을 듣고 손뼉을 치며 웃었다.
“관사우야 대인을 탓하지만 난 그렇지 않아요. 대광명사의 중놈들은 죽어도 싸니까요. 과거 곤륜마교가 멸망할 때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게 바로 대광명사거든요. 몇백년 전에 있었던 일이니 긴 얘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요. 하지만 훗날 아무 세력 기반이 없는 음마종은 그 까까머리 중놈들의 추격을 피해 강호를 떠돌아야 했어요. 정말 파렴치한 놈들이에요!”
매경령은 대광명사의 이야기를 하다가 사무치는 원한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는지, 이를 악물고 치를 떨었다. 물론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었다.
매경령은 손을 휘휘 저으며 초휴에게 말했다.
“큰 사고를 치기는 했지만 관사우가 크게 나무라지는 않을 거예요. 나도 옆에서 잘 해결되도록 많이 거들기도 했고요.”
초휴는 공손하게 손을 모으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성녀 대인.”
매경령은 또다시 손을 저으며 만류했다.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가 없어요. 일이 잘 마무리되면 나를 위해 해 줄 일이 있을 테니까.”
초휴가 물었다.
“어떤 일인지요?”
매경령은 찡긋 초휴에게 눈을 흘기더니 말했다.
“안심해요. 대인의 실력이야 내가 뻔히 아는데 설마 불가능한 걸 시키겠어요? 대인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 데다가 이득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알려주겠어요.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걸요?”
다음 날 아침이 밝자 초휴는 일찍 일어나 관사우의 방으로 향했다. 매경령은 관사우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관사우는 초휴가 들어오자 무거운 표정으로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초휴,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나! 단단히 당부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런 일을 저질러? 대광명사의 사람을 함부로 죽이다니, 관중형당과 대광명사가 자네 때문에 척을 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초휴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주님, 제가 죽이고 싶어서 죽인 게 아니라 대광명사의 화상이 먼저 저를 죽이겠다고 달려들었습니다. 강호에서는 시비를 가리자고 달려들면 상대해 주는 게 도리입니다. 그 대단한 북불종의 대광명사라고 한들 예외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명진이 친구의 원수를 갚겠다고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데, 기꺼이 가져가라고 제 목숨을 내줘야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이고 관중형당과는 무관하니 혼자서 감당하겠습니다. 게다가 명진과의 은원은 제가 관중형당으로 들어오기 전에 맺은 것이니까요. 제가 관중형당을 탈퇴하여 혼자서 뒷일을 감당하겠습니다.”
초휴는 통천탑에서 획득한 공법서들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통천탑이 출몰한 곳은 관중형당의 구역입니다. 이 보물들은 제가 통천탑에서 획득했으니 마땅히 관중형당의 몫이 되어야 옳습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저는 앞으로 더는 관중형당을 위해 일할 수 없겠군요.”
매경령이 보니 초휴의 눈빛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매경령의 눈에도 훤히 보이는, 그의 밀고 당기기 수법을 관사우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초휴의 수작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관사우는 적어도 관중형당 내에서 불화가 생길 결정은 내리지 않을 테니까.
매경령이 옆에서 거들었다.
“대인, 얘기를 들어보니 대광명사의 화상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긴 했네요. 초휴 대인이 거기서 물러나 도망쳤다면 이렇게 관중형당에 통천탑의 보물들을 가져다주기는커녕 망신만 당했을 거예요. 명진이라는 자는 고작 금강원의 하급 무술 교두일 뿐이잖아요. 강호에서 별로 유명한 자도 아니고요. 고작 무술 교두 하나 죽었다고 대광명사의 주지가 직접 나서기야 하겠어요?”
매경령의 말에 관사우의 표정이 아까보다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비아냥거리는 말투였다.
“됐네. 괜한 수작은 집어치우게. 이번 일은 관중형당이 해결을 돕겠네. 하지만 다음번에는 일을 저지르기 전에 먼저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도록 하게. 계속 이런 식으로 굴다가 관중형당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사고를 치는 날에는, 자네 혼자서 모든 걸 수습해야 할 걸세.”
초휴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예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당주님!”
관사우는 초휴에게 신중하라고 했지만, 사실 초휴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명진을 죽였다. 그는 관중형당에게는 이런 일쯤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초휴가 죽인 명진은 대광명사의 준걸도 아니었고 그다지 비중 있는 인물도 아니었으니, 대광명사도 괜히 시끄럽게 관중형당에게 책임을 따지는 않을 터였다.
만약 관사우가 대광명사의 미움을 사기 싫어, 초휴를 감싸지 않고 외면한다면 초휴는 바로 혼자만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초휴에게 관중형당은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한 발판일 뿐,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곳은 아니었으니까.
관사우는 울지를 불러 염주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사람을 시켜 이 염주를 대광명사에 전달하고 이 말도 전하도록 해라. 초휴와 명진의 원한은 초휴가 관중형당에 가입하기 전에 맺은 것이 아니겠는가. 강호의 일이란 원래 그런 것이며 사람의 목숨은 꺼진 등불과 같으니 현명한 처신을 바란다고.”
울지는 염주를 건네받으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이게 무엇인지요?”
관사우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광명사의 산하에는 삼대 선당(禪堂)과 육대 무원(武院)이 있지. 그중 삼대 선당은 육대 무원보다 지위가 높아. 전임 당주인 초광가(楚狂歌) 대인은 일찍이 삼대 선당의 수장인 망염선당(妄念禪堂)의 상좌 ‘구묘용수(九妙龍首)’ 허운(虛雲)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있었지. 해서 허운이 이 염주를 대인에게 남겼다네. 이것이 인정이지. 망염선당의 상좌가 인정으로 나서면 충분히 이번 일을 무마할 수 있을 거야. 설령 금강원의 상좌 ‘위타존자(韋陀尊者)’ 허언(虛言)이 직접 나선다고 해도 그의 입김은 허운에게는 한참 못 미치지.”
초휴가 듣고 보니 참으로 의아했다. 그는 금강원에서 자신을 찾는다면 관사우가 금강원의 상좌 허언을 직접 상대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해결하다니 의외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렇게 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었다. 과거 초광가는 거협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수많은 사람을 구했다. 강호에 초광가를 은인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수두룩한데, 그중 대광명사의 사람이 없었을까.
그러나 인정은 인정일 뿐, 이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대가로 지불 할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닌 건 아니었다. 해서 초광가는 죽기 전, 관중형당이 큰 위기에 몰렸을 때도 허운이 남긴 이 징표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인정은 이런 작은 일을 해결할 때에나 유용한 것이고, 관사우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관사우는 한 번 더 주의를 준 후, 초휴를 물러나게 했다.
관사우는 허운의 징표를 쓰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초광가에게 은혜를 입은 건 허운 한 사람이지 대광명사 전체가 아니지 않는가. 어차피 그 징표는 허운이 죽고 나면 무용지물이 될 터였다.
관중형당이 자신과 대광명사의 갈등을 해결해 주자 초휴는 안심하며 관서로 돌아가 폐관 수련 준비를 했다. 부상을 치료할 겸, 새로 입수한 대금강신력을 연마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