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57)
357화 하후씨의 내부 갈등
한편 하후무강은 하후씨의 본가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칠숙의 시신이 놓여 있었고 하후진이 그 앞에서 먹구름이 낀 듯, 음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하후진은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누가 칠숙을 죽였느냐?”
하후무강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초휴예요. 하지만 아버지, 초휴가······.”
“닥치거라!”
하후진은 하후무강의 말을 사정없이 끊은 뒤,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느냐! 모든 일은 결과가 중요할 뿐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 난 초휴가 어땠는지에는 관심 없다. 지난번에도 말하지 않았느냐. 일을 벌이기 전에는 신중하게 고민하고 이길 거라는 확신이 없으면 절대 나서지 말라고.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냐. 패배한 것도 모자라 칠숙의 목숨까지 잃다니! 한 번 진 건 그러려니 넘어갔고 두 번째 패배했을 때도 용서했다. 하지만 또다시 초휴에게 졌으니, 이건 네 능력과 마음가짐에 큰 하자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네 천부적인 재능에 감사해라. 네가 내 자식 중 가장 뛰어나지만 않았다면, 난 너를 진즉에 폐했을 거다!”
하후무강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후진은 아들에게 변명할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이번 패배는 참으로 처참했고, 아끼던 칠숙까지 잃었다. 하후진의 분노는 진심이었다.
칠숙은 문객 중 그가 가장 아끼던 심복이었다. 하후진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바칠,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심복 말이다. 하후진에게는 칠숙처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부하가 몇 명 되지 않았다. 하후진은 그 몇 명을 가족보다도 더 신뢰했다. 그리고 그 소중한 칠숙이 하후무강 때문에 죽었다. 그를 잃은 게 견딜 수 없이 아까웠지만 동시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기도 했다.
아무리 목석같은 그라도 왜 부하를 끔찍이 아끼는 정이 없겠는가. 그와 칠숙이 함께한 세월이 이십여 년이다. 그토록 깊은 정을 줬던 부하가 비명에 갔으니 감정의 동요가 폭풍처럼 일어나는 건 당연했다.
하후진은 싸늘한 눈동자로 하후무강에게 매섭게 명령했다.
“당장 사당으로 꺼지거라! 칠숙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깊이 반성해. 이번 일은 내가 관중형당에도 반드시 책임을 물을 테니까!”
하후진은 침착하고 냉정한 인물이라 지금처럼 분노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만약에 이번에 죽은 게 칠숙이 아니라 하후무강을 따라다니는 호위였다면 이러진 않았을 것이다. 한 번 더 하후무강을 꾸짖고 실패를 밑거름 삼아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선에서 그쳤을 테니까.
젊은 신진 무사들의 다툼에 하후진 같은 중진이 끼어드는 건 안 될 건 없지만 조금은 체면을 구기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칠숙이 초휴에게 목숨을 잃었으니 하후진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만약에 그가 나서지 않는다면 칠숙과 같은 지위의 다른 심복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하후진이 하후씨를 모두 소집하여 관중형당을 압박하려는 그때, 하후씨의 제자 한 명이 헐레벌떡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가주 님! 장로님들이 의논할 일이 있으니 오시랍니다!”
하후진은 뭔가 생각나는 게 있었는지, 무거워진 안색으로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죽지 못해 사는 늙은이들이 또 귀찮게 할 모양이군!”
강호에는 큰 문파와 종문들이 수도 없이 많은지라 구대 세가 내에서도 툭하면 서열이 바뀌곤 했다. 종문은 무공으로 전승되는 만큼, 종문 사람들 대부분이 죽어 없어진다 해도 무공을 이어나갈 제자가 있고 그에게 종문을 재건할 의지가 있다면, 그 종문은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종문과는 달리, 세가는 오로지 혈통에 의해 전승된다는 태생적 열세와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이런 까닭으로 구대 세가는 혼인동맹이나 가칙(家則)을 정비하는 방식으로 세력을 더욱 키워나가는 한편, 범할지도 모를 실수와 오류를 가급적 줄이는 노력을 병행해왔다. 하후씨는 구대 세가 중 서열 삼 위의 가문이다. 실력은 충분히 막강하니 ‘안정’을 추구할 시점이었다. 이런 방침은 현재 하후세가가 시행하는 제도에서도 알 수 있었다.
지금의 하후세가에서는 이미 폐관하여 은거한 지 오래인 노야를 제외하면, 그 어느 개인의 말에도 결정적인 힘이 실리는 경우가 없었다. 그건 가주라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후진이 명목상의 가주이긴 하나, 그 위에 열 명이 넘는 장로들이 있어 층층시하(層層侍下)를 견뎌야 했다. 장로들 가운데 일부는 실력이 하후진만 못한 자들도 있었으나, 강호에서의 경험만큼은 더없이 풍부한 백전노장들이었다. 이들은 실권은 없을지 몰라도 하후진이 결행하려는 일을 저지할 권한은 충분했다. 이는 가주인 하후진이 자칫 잘못된 결정을 내림으로써 가문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사태를 막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하후진이 무슨 개혁이라도 해보려면 사전에 철저히 검증을 거쳐서 장로들의 만장일치를 이뤄내도록 만전을 기해야 했다. 사사건건 이런 식이니 가주된 입장에서는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규칙은 가주 한 사람의 결정적인 실수로 가문에 해를 끼치는 결과를 막는 데는 좋을지 몰라도, 가문의 발전이 더뎌지고 조직이 비대해져서 야기될 폐단이 만만치 않았다.
이때 하후씨 대청에는 십여 명의 장로들이 가부좌를 틀고 좌정해있었다. 겉보기엔 노쇠한 몸뚱이에 행동도 굼떠 보였으나, 그들의 실력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들은 지난날 최약체가 천인합일이었고, 좀 강하다 싶으면 심지어 무도종사급 고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남은 수명을 걱정해야 할 고령에 접어들자 무도종사급도 출수할 기회가 없어졌다. 해서 모든 실권을 내려놓고 수양에만 전념하는 중이었다.
이윽고 대청으로 들어선 하후진이 상석에 자리 잡고 앉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장로 여러분,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습니까?”
장로 중 수염과 머리가 온통 하얗게 센 최고 연장자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듣자니 가주께서 우리 하후세가의 역량을 동원하여 관중형당을 압박할 계획을 세우셨다던데 사실이오?”
하후진은 이미 그들이 무슨 일로 자신을 호출했는지를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의 예측이 맞았음을 확인한 그의 입가에 냉소가 그려졌다.
“그게 어떻다는 겁니까? 대장로, 다른 의견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대장로는 하후씨 노야와 같은 연배의 어른으로, 지난날 무도종사급의 경지에도 이르렀던 고수이다. 다만 당시 노야의 자질이 워낙 독보적으로 출중했던지라 대장로는 줄곧 그 그늘에 가려져 별 두각을 내지 못했었다. 그런 사정은 천수를 다해가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해서 비록 본인은 빛을 못 봤어도, 어떻게든 자신의 직계 후손 중에서 차기 가주를 배출하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게 여의치가 않아서, 그저 수십 년에 걸쳐 가까스로 엄청나게 자질이 뛰어난 자손 하나를 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하후진과 같은 연배인 탓에 그 자손 또한 가주 승계 경쟁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이처럼 대를 이은 경쟁 구도에서 대장로는 숙명적으로 번번이 하후진과 부딪혔다. 하후진은 그런 대장로가 너무도 미워서, 내심 그가 빨리 죽어주길 바랄 정도였다. 살아있으면 걸리적거리기나 하고 수련자원이나 축낼 뿐, 가문에 도움 될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대장로는 느릿느릿 말을 이어갔다.
“가주, 그대는 하후씨 전체의 가주일세. 그대의 일거수일투족이 하후씨의 운명과 직결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하지 않겠소. 물론 어찌 된 일인지는 나도 들어서 잘 알지. 아무래도 가주께서 하후무강을 너무 귀하게 키운 탓이 아닌가 싶은데. 강호에서 매운맛을 보고도 생각이 아직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니 말이오. 강호에서 패배란 늘 겪는 일이 아니겠소. 왕년에 노부는 강호에서 홀로 온갖 난관을 헤치며 패배도 수없이 겪었지. 그러나 차라리 죽을지언정 절대 가문에 도움을 청한 적이 없었소. 게다가 이번에 사람이 죽었다고는 하나, 그가 우리 가문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한낱 문객 하나 때문에 이렇게 이성을 잃다니? 심지어 가문을 동원해서까지 관중형당을 압박할 생각이라니 가당치도 않소. 그리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말이지.”
하지만 하후진의 반응은 냉랭했다.
“이득이 없다고 하셨습니까? 칠숙은 하후씨의 사람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죽었어요. 하지만 정작 우리가 그 죽음을 눈감고 모른 척한다면 강호인들이 얼마나 우리를 비웃겠습니까?”
“가주, 듣기 싫은 말도 좀 들으시게! 죽은 그 문객은 원래 하후씨가 키우던 한 마리 개에 지나지 않았소. 그 개가 뛰쳐나가 누굴 좀 물었다가 맞아 죽었기로서니 뭐가 대수란 말인가. 까짓것 다른 개를 하나 더 키우면 되는 거 아닌가, 굳이 개 주인까지 이 일에 발 벗고 싸우러 나갈 게 뭐가 있소?”
이에 하후진이 더는 못 참고 탁자를 거칠게 내리치며 일갈했다.
“그는 개가 아니라 내 형제였습니다!”
대장로는 온화해 보이던 표정을 거두더니 하후진을 똑바로 응시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가주, 그대의 성씨가 무엇인지 잊지 마시게. 칠숙은 엄연히 남이오. 몸속에 우리 하후씨의 피가 흘러야 비로소 형제라 할 수 있는 거란 말이오. 막말로 이 일로 인해 직계도 아닌 방계제자 하나가 죽는다고 해도 아깝기 짝이 없을 텐데, 관중형당을 건드려서 대체 얼마나 큰 화를 자초하려는 건가! 그대는 가주된 몸으로 하후씨의 이익을 최우선시해야 하네. 가주의 생각이 모자랄 때 일깨워주려고 이 늙은이들이 이 나이에도 저승행을 미루고 아직 숨을 쉬고 있는 줄을 알아야지. 우리가 있는 한 그대는 반푼어치라도 가문의 힘을 동원할 엄두는 내지 마시오. 이 말 같지도 않은 일에, 금쪽같이 귀한 우리 하후씨 무사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소!”
좌중의 다른 장로들도 너나없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이미 열에 아홉은 대장로 편에 선 듯했고, 그나마 남은 하나는······ 중립적 태도를 견지했다. 이들 모두가 악감정을 품고 하후진과 대항하려는 건 아니었다. 다만 본능적으로 본인들에게 이로울 방향을 가고자 할 따름이었다. 비록 자신들은 실권을 잃은 지 오래지만, 그들의 자손들은 하후세가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터였다, 그러니 자손들에게 이로운 방향을 선택하려는 건 당연했다.
따라서 하후진이 하려는 모든 일에 있어서 옳고 그름의 척도는 자손들에게 과연 이로운 것일까의 여부였다. 하후진의 권세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견제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럴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장로들은 여지없이 그를 눌렀다.
망할 늙은이들을 눈앞에 한 무더기나 앉혀놓은 하후진은 울분을 참느라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제삼자의 눈에는 가주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려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본인은 시종일관 억울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너무도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하후진은 벌떡 일어나며 독한 말을 퍼부었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여러분에게는 가문의 이익이 그리도 중요하군요. 그러나 나는 오로지 내 사적인 복수만 생각할 겁니다. 하후씨의 힘 같은 건 필요치 않소. 내가 직접 관사우를 찾아가 시시비비를 따질 테니까!”
말을 마친 하후진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러자 장로 한 사람이 대장로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대장로, 오늘 우리가 가주를 좀 심하게 누른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나는 건 아니겠지요?”
“일은 무슨 일! 가주가 미쳤다고 그깟 피도 안 섞인 남 때문에 관사우와 원한을 맺을까.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모양이니 기껏해야 관중형당에 화풀이나 하러 가겠지. 일이 날 게 뭐가 있겠소. 그간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아온 세월이 길다 보니 간덩이가 커진 모양인데, 가주가 냉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우리가 옆에서 일깨워주면 되는 거요. 그게 우리 장로들의 역할이 아니겠소. 가주가 삐뚤어지는 길을 가면 바로잡아 주는 것! 충언은 귀에거슬린다 했으니, 가주가 듣지 않아도 어쩔 수 없겠지만, 여하튼 이게 다 가주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이러는 게 아니겠소.”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찬동의 뜻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