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58)
358화 혈혈단신 관중으로 향하다
하후진이 단독으로라도 관사우에게 따지러 가겠다고 결심한 그 무렵, 명진의 비보도 대광명사로 날아들었다. 워낙 길이 멀다 보니, 시신의 운구에 앞서 비보부터 도착한 것이다. 금강원 내. 넋을 잃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명진의 사부 혜진(惠眞)의 눈은 무한한 슬픔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슬픔이 너무도 깊은 나머지 분노마저 덮어 버릴 정도였다.
금강원 장로인 혜진은 일찍이 천인합일에 올랐으나 백 세를 훌쩍 넘긴 고령인 탓에 기혈의 쇠퇴를 겪는 중이었다. 명진이 그의 유일한 제자인 건 아니지만, 가장 아낀 애제자임은 분명했다. 노여움을 잘 타는 충동적 성격에다 불의를 못 참는 의협심이 꼭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모난 돌이 둥근 돌이 되려면 세월이 특효약인 법이다. 여러 차례 이런 성격으로 인한 시행착오를 겪은 후로 고칠 점은 고쳐가며 대오각성을 이루긴 했으나, 이미 무도종사가 될 기회는 놓친 뒤였다.
한편, 명진은 젊은 축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창 장년의 연령이니 기회는 있을 터였다. 수련에 방해가 되는 성격을 고치기만 한다면, 그래서 노목금강심경의 참뜻을 제대로 깨닫기만 한다면 훗날 무도의 궁극인들 못 이루겠는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번 겁난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사실 그는 초휴의 손에 죽은 게 아니라, 제대로 노기를 다스리지 못한 자신의 손의 최후를 맞은 거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명진의 복수를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었다. 복수하는 데 있어 잡다한 이유가 왜 필요하겠는가. 그가 명진의 사부라는 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했다. 그는 잠부자가 아니다. 자기 제자가 살해당했는데도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복수를 포기하는 그런 부류와는 거리가 멀다는 말이었다. 꼭 초휴를 증오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초휴를 처단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대광명사의 무사들이 육신은 더없이 강건할지 몰라도, 육신 수련을 위주로 해 온 무사들은 대개 나이가 들면서 기혈의 쇠퇴를 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힘의 강도도 덩달아 급추락하는지라, 초휴와 일대일로 맞붙었을 때 과연 목숨을 빼앗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게다가 초휴는 관중형당의 장형관으로 조직의 요직에 있는 인물이다. 초휴를 죽이려면 관사우라는 관문부터 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무도종사급의 관사우는 더더욱 그가 어찌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혼자 결론 내기가 어렵게 되자, 혜진은 선원을 나서 금강원 상좌인 ‘위타존자(韋陀尊者)’ 허언(虛言)을 찾아갔다. 허언은 혜진보다 연배는 하나 높지만, 나이는 훨씬 적어서 아직 백 살도 채우지 못했다. 체구도 튼실하고 외양도 남성미가 넘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중년의 승려로 보였다.
대광명사는 무려 만년 가까이 대를 이어 내려왔다. 그 옛날 대겁난 시절에도 이미 존재했던 조직인 만큼, 현재 대광명사 내에는 수 대에 걸친 제자들이 혼재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백 살, 삼백 살의 고령 화상이 연배 상 까마득한 후배인 십 대 나이의 어린 제자를 거두는 경우도 허다했다. 허언이 바로 그러한 경우로 ‘허(虛)’자 돌림의 무사 중, 그는 꽤 젊은 축에 들었다.
금강원으로 들어선 혜진은 허언을 향해 합장해 보였다.
“소사숙을 뵙습니다.”
허언이 아직 젊던 시절, 혜진은 진즉 수련이 경지에 이르러서 무승을 가르치는 교두(敎頭)도 역임했었다. 하지만 엄연히 항렬의 고하가 존재하는지라 허언을 ‘사숙’이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순순히 이렇게 부르자니 좀 억울한 감이 있어 앞에다 ‘소(小)’를 덧붙였던 건데, 그 입버릇을 아직도 고치지 못해서 지금도 그리 부르고 있었다. 혜진을 보자 허언이 탄식을 내뱉었다.
“명진의 일은 나도 들어서 알고 있소. 그러나 혜진, 그만 마음을 추스르시구려.”
고개를 끄덕이는 혜진의 눈가가 다시금 슬픔으로 젖어 들었다. 그가 재차 입을 열기도 전에 허언은 그가 하려던 말을 대신했다.
“혜진, 나더러 관중형당에 가서 따져달라는 말을 하려고 온 거 아니오? 그러나 나는 포기하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겠구려. 나는 물론이려니와, 이 절 안의 그 누구도 나서 주지 않을 거외다. 강호의 원한은 강호에서 해결해야 하는 법! 명진과 초휴 간의 원한은 명진이 죽음으로써 종결된 셈이니 그만 잊도록 하시구려.”
“어째서요!?”
혜진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허언이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금강원 무사들은 대개 성격이 불같았다. 설령 혜진 본인이 이일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허언이 먼저 나서 관사우에게 따지러 갈 줄 알았건만, 따지는 건 고사하고 자신을 말리려 들다니! 혜진의 적잖이 놀란 모습에 허언이 다시 탄식을 내뱉었다.
“관중형당 측에서 전갈을 보내왔소. 망염선당(妄念禪堂)의 상좌인 허운(虛雲) 사형께서 일찍이 선대 당주인 초광가에게 신세 진 일이 있으셨다더군. 초광가 생전에는 그 신세를 갚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관중형당의 요청으로 지금에 갚아야 할 판이 된 거요. 허운 사형이 한번 내뱉은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는 그대도 잘 알겠지. 일이 이리된 이상, 나도 그대도 그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는 거요.”
혜진이 땅이 꺼질세라 한숨을 내뱉었다. 가뜩이나 노쇠해 보이던 그의 모습이 한층 더 구부정하니 늙어 보였다. 망염선당의 상좌 ‘구묘용수(九妙龍手)’ 허운이 어떠한 인물이던가. 대광명사 삼대 선당 및 육대 무원의 상좌를 통틀어 가장 실권이 막강한 존재다. 대광명사 내에서 방장 ‘석가존자(釋迦尊者)’ 허자(許慈) 다음가는 명실상부한 이인자라고 해도 좋을 터였다.
게다가 허운은 허자 항렬 중에서도 연배가 독보적으로 높은지라, 그들 모두가 대사형으로 대우해왔던 인물이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허자가 방장 지위에 오르게 된 이유는 세간에 줄곧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대광명사 안팎을 막론하고 허자 항렬에서 허운의 명성이 가장 높았건만, 결과적으로 허자가 방장이 되었으니 모두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허운과 허자 간에 갈등이 생기거나 하진 않았다. 되레 허자가 방장이 되어 기반이 약하던 초기에 허운이 전심전력으로 도움으로써, 그가 지금과 같이 확고한 위상을 누리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따라서 현재 대광명사 내에서 허운의 말 한마디는 방장의 말과 다름없는 무게가 있었다. 허운이 과거에 진 신세를 갚아야 한다고 말한 이상, 허언은 반박할 수 없고 혜진은 더더욱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힌 채 맥없이 걸어 나가는 혜진의 뒷모습을 보는 허언의 심경은 착잡했다. 하지만 허운의 체면도 체면이려니와, 명진의 위상과 실력이 조직 내에서 그리 대단한 축에 드는 건 아닌지라, 그를 위해 조직 전체가 대대적인 복수에 나서는 것은 무리인 게 사실이었다. 막말로 현재 대광명사 내 젊은 연배 가운데 가장 걸출하다고 인정받는 ‘명왕(明王)’ 종현(宗玄)이 죽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터였다. 허운의 체면은 둘째치고, 설령 방장이 복수할 생각이 없다 해도 대광명사 전체가 격노하여 복수를 해야 한다며 들고 일어났을 테니까.
이때 초휴는 대광명사와의 원한 관계는 안중에도 없이, 관서에서 수련 겸 요양을 위한 폐관에 들어간 상태였다. 통천탑에서 가져온 흉수(凶獸)의 심장도 이참에 복용할 생각이었다. 사실 흉수의 심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피를 빼내서 단약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만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초휴의 수하 중에는 단약 제련사가 없고, 관중형당에 소속된 제련사에게 맡기기엔 마음이 놓이질 않으니, 다소의 손실 이 생기는 걸 감수하고라도 직접 피를 체화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흉수의 피가 초휴의 몸으로 유입된 순간, 유리금사고가 그 절반을 흡수했다. 나머지 절반은 마치 작열하는 화염처럼 순식간에 체내에서 타올랐다. 상고시대 흉수의 막강한 힘이란 오늘날의 무사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처럼 체내에서 격렬하게 반응하는 힘은 적어도 초휴가 그간 복용해온 단약 중에선 거의 없었다. 흉수의 피를 체화하는 한편, 이 힘으로 대금강신력을 연마함으로써 육신의 강도를 한층 더 높이는 수련도 병행했다.
이렇게 수일이 지났을 때, 초휴가 폐관 수련 중인 밀실 문을 귀수왕이 두드렸다. 정주해가 긴급한 일로 그를 찾는다는 전갈이었다. 초휴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중 산하 네 개 지부는 서로 간섭도 관여도 하지 않으며 각자 독자적으로 운영되어왔다. 관중형당 전체가 연루될 일이 아닌 바에야 서로 손잡일 일도 드물건만, 관동 소속의 정주해가 갑자기 무슨 일로 자신을 찾는단 말인가.
하지만 이번 폐관이 생사를 가르는 것도 아니고 상세도 얼추 완쾌된 끝이었다. 도중에 잠시 맥이 끊어진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지라 그는 정주해를 만나기로 했다. 초휴가 회의실로 들어서자 정주해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
“초 대인, 장형관으로 영전하심을 감축드립니다. 애당초 제가 대인의 비범함을 진작 알아보았더랬지요. 이로써 제 안목이 정확했음이 입증된 셈이군요.”
예전의 그는 성격이 스스럼없이 활발하고 우스갯소리도 곧잘 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초휴의 앞에서는 정중함과 공손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초휴는 그의 사부인 소습과 대등한 존재가 되었으니, 이와 같은 태도의 변화는 마땅할 터이다. 물론 속상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예전에 이 둘은 관중형당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준걸이라는 동등한 입지에 있었다. 초휴가 좀 더 우세를 띠긴 했었으나, 다들 두 사람을 동일 선상에 놓고 봐주었다.
그런데 그간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 초휴가 훌쩍 뛰어올라 어느샌가 그의 사부와 동급 지위를 갖게 되었다. 이것도 다 초휴가 시운을 잘 타고난 덕분이겠지만, 정주해로서는 열패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형당 내 더러는 실력이 초휴보다 더 막강한 이들도 있다지만, 그들 모두가 초휴와 같은 지위를 누리는 건 아니니, 그는 운마저 따라주는 셈이 아니겠는가.
“정 형, 우리 사이에 이런 격식 따위는 필요치 않소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날 찾아오시었소?”
초휴가 차를 따라 건네며 묻자 정주해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사부님께서 전해드리라는 말씀이 있어서요. 하후씨 가주 하후진이 동제에서 출발하여 이미 관동 땅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보아하니 초 대인을 노리고 오는 게 분명한 듯하니 조심하시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초휴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하후진 혼자서 오고 있다는 말인가?”
“네. 혼자서요.”
초휴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겠다는 표정으로 연신 아래턱을 매만졌다. 이는 평소 하후씨가 보여온 행보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대광명사 측은 이미 해결되었고, 하후씨 측 반응도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일단 저번처럼 흐지부지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어쨌거나 죽은 자가 하후씨 혈통도 아니질 않은가. 그게 아니라면 하후씨의 역량을 동원해 관중형당을 압박할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었다. 예컨대 관중형당에 모종의 시빗거리를 안김으로써 형당이 직접 초휴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말이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니고 가주 단독으로, 그것도 친히 출수를 감행하다니······. 그 정도로 그들이 초휴를 대단하게 여긴단 말인가? 하지만 자칫하다간 무도종사가 한참 실력이 밑인 무사를 괴롭힌다는 혐의와 오명을 쓸 수도 있는 일일 텐데? 이는 하후진 본인에게 결코 이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