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59)
359화 상응하는 대가
“이 일을 당주께서도 알고 계시오?”
“하후씨 가주가 관동 땅에 들어서자마자 사부님이 이 사실을 당주께 알리셨습니다.”
그러자 초휴가 웃음을 터뜨렸다.
“당주님이 알고 계시다니 내가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겠구려. 그분께서 바람막이가 되어 주시는 이상 하후진은 별짓 못할 거요. 풍운방 순위도 당주님이 하후진보다 상위이기도 하고 말이지.”
정주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마치 당주가 자기 수하라도 되는 양,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초휴의 말본새가 어이없어서였다. 당주가 초휴한테 일이 생기면 으레 대신 나서 치다꺼리해 주는 보모라도 된단 말인가. 하지만 입장을 바꿔서 정주해 자신이 당주라 해도 초휴를 보호해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긴 했다.
지금 조직 내 초휴의 독보적인 위상을 고려할 때, 남이 그를 죽이려 드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찌 수수방관만 하겠는가. 이처럼 자기 사람을 싸고도는 건 조직의 본능과도 같다. 하후씨만 해도 그렇다. 이번에 칠숙이 죽었기에 장로들이 하후진의 복수를 말리고 나선 것이다. 만약 죽은 이가 하후무강이었더라면 어느 장로가 하후진의 출수를 막을 수 있었겠는가.
이 무렵 하후진은 관서지부가 소재한 구화성(九華城) 성문 앞에서 오가는 객상들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무도종사급인 자신의 기세를 완전히 갈무리한 채로 말이다.
해서 남들 눈에는 그저 화려한 도포 차림에다 분위기가 범상치 않은 중년의 대갓집 나리로 보였다. 그래도 뭔가 콕 찍어 말할 순 없어도 만만해 보이는 상대가 아닌 건 분명했다. 해서 지금 그가 길 한가운데를 막고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감히 싫은 소리 한마디 못했다.
하후세가의 가주로서 그는 수년째 집안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하후씨의 가주라 하면 다들 으레 영예로운 자리라고 여기겠지만, 사실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는 앉아본 사람만이 알 터였다. 당장 지금만 해도 자기 사람의 복수를 해주고 싶어 미칠 지경이건만, 정작 가주로서는 아무 힘도 쓸 수가 없어 급기야 혈혈단신 직접 나서기까지 했다. 세상천지에 이보다 더 역설적인 일이 어딨을까.
이번에 그는 하후씨의 가주가 아닌 개인 하후진의 자격으로 왔다. 아직도 그의 곁에는 칠숙과 같은 심복들이 있지만, 이번에 한 명도 데려오지 않았다. 이번에 십중팔구 초휴를 죽이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초휴는 관중형당의 상징적인 인물이고 이곳은 적진의 심장부인 관중 한복판이다. 범 한 마리 죽이자고 범의 소굴로 뛰어든 셈인 것이다.
자기가 이곳을 활개 치고 다니도록 관중형당 측에서 내버려 둘 리도 없다. 어쩌면 관중 땅에 발을 디딘 직후부터 자신의 행적 하나하나가 보고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떻단 말인가. 이번 관중행은 반드시 결행해야만 했다. 하후진 자신과 자신의 심복들을 떳떳이 대하기 위해서라도 선택의 여지는 일절 없었다.
이때 정주해는 떠나지 않고 여전히 관서지부에 남아있었다. 관사우가 하후진을 막아설 거라는 걸 알게 된 이상, 두 무도종사의 싸움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주해가 관중형당에 몸담은 지도 어언 십년이 넘었다. 소싯적에 관중형당에 거두어져 양성되었건만, 여태 관사우의 출수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강호에서 관사우의 실력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의 풍운방 순위는 거품이 낀 것이라고 여기는 자들이 대다수였다.
지난날 초광가의 실력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고 전적 또한 화려했다. 그가 혈혈단신 양쪽 진영에 뛰어들어 전쟁을 막은 일화는 두고두고 강호인들의 찬탄을 자아내는 대목이었다. 그가 최고 전성기 시절에 기록했던 풍운방 순위는 이 위였다. 관사우가 당주 자리를 승계할 당시, 초광가와 관중형당의 명성이 이미 온 강호에 자자한 상태였다. 해서 관사우가 알게 모르게 그 후광을 입은 건 사실이었다. 전적 면에서 초광가와 비교 불가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후광 덕에 풍운방 팔 위에 오를 수 있었고, 이는 두고두고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강호인들의 생각은 관사우의 순위가 실제 실력에 비해 다소 높이 책정되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만 나무랄 일도 못 되었다. 출수 횟수도 얼마 되지 않는 데다, 이마저도 혀를 내두르며 격찬해댈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그런 관사우가 무슨 덕과 재주가 그리도 많아 팔 위에 올랐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 팔 위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해 보자. 풍운방에서 관사우 바로 위의 순위에는 대광명사 망염선당의 상좌 ‘구묘용수’ 허운 대사가 있다. 무공과 불법에 모두 정통한 그는 작금의 대광명사 내에서 명실상부 최고의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내지르는 광망은 심지어 방장인 허자를 능가한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관사우 밑으로는 청룡회의 수장인 ‘언월청룡’ 보천남이 있다. 극단적인 광기로 유명세를 누리며 한평생 무수한 살육을 자행한 그는, 청룡회 말단 살수로 시작하여 수십 년 만에 최고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소문에 의하면 보천남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암기를 써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당당히 표적의 코앞까지 걸어가서는, 이제 곧 내가 당신 목을 베겠노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죽이는, 참신한 허세와 광기의 소유자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는 신기하게도 단 한 차례도 실수를 한 일이 없었다. 해서 이 세상에 보천남이 죽이기를 원치 않았으면 모를까, 일단 죽이려고 작심한 이상 살아남은 자는 없다는 말까지 강호에 나돌았다. 의뢰인과 가격 흥정만 제대로 되면 대광명사의 방장이나 용호산 천사일지라도 서슴없이 죽일 자가 바로 그였다.
이처럼 유명한 두 사람의 틈바구니에 낀 상태니, 상대적으로 관사우의 존재감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실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것도 당연했다. 물론 정주해 입장에서는 자기 조직 수장의 실력이 강한 것이 좋을 게 당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관사우의 실력을 의심하는 소문들은 너무도 무성했다. 게다가 이를 반박할 만큼 관사우의 출수가 뒤따라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반박하려야 반박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닥쳐온 이 순간이야말로 당주의 실력을 똑똑히 확인할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관서지부에서 정주해가 초휴와 한담을 나누고 있을 때, 돌연 천지도 뒤엎을 강력한 위세가 온 지부를 짓눌러왔다. 한여름 폭우가 퍼붓는 듯한 거센 압박감에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정색한 표정으로 눈빛을 교환한 후 동시에 밖으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밖에는 하후진이 뒷짐을 진 채, 우뚝 서 있었다. 그 일신의 기세에 천지마저도 뒤흔들리면서, 관서지부의 상공에는 먹구름이 짙게 끼어 극강의 섬뜩함을 자아냈다.
분명 하후진, 혼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엄청난 기세는 천군만마와도 맞먹을 정도로 두렵기 그지없었다. 해서 초휴의 수하들은 제자리에 얼어붙어 감히 손가락 하나 까닥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말로만 듣던 무도종사의 가공할 위엄과 위력을 똑똑히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단신으로 능히 천군만마에 필적할 위엄과 위력 말이다!
천인합일의 경지가 힘에 있어, 그리고 천지에 대해서 대략적인 깨우침만 있는 것과는 달리, 무도종사는 체내에서 무도진단을 응집하여 직접 천지를 움직일 수 있는 존재이다. 무도를 수련하는 과정에서 경지에 오른 무도종사는 언제라도 천지의 힘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운용하는 게 가능했다. 즉, 내력을 과도하게 분출하지 않는 한, 무도종사는 무제한으로 천지의 힘을 흡수하여 자신의 내공으로 전환해서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 따라서 무도종사의 위력은 천군만마와도 필적한다는 세간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천인합일 무사가 한도 끝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무도종사급의 존재는 굳이 사람을 머릿수로 세서 죽이지 않는다. 천군만마라 할지라도 두려움 없이 쓸어버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는 진단경(眞丹境)이 무도종사로 불리는 까닭이기도 했다. 문파나 종문을 세울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를 무도종사라 일컫는다. 그런 존재가 문파나 종문에 딱 한 명뿐일지라도 상관없었다, 그 한 사람이 무도종사의 경지에 오른 것만으로도 그 조직은 강호의 주요 조직으로 발전할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한마디로 강호에서 번듯한 조직 대접을 받고 못 받고는 무도종사의 보유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무엇보다도 확연한 잣대인 셈이니까. 이를 보유한 조직은 명실상부한 주요 조직으로 자타공인 받겠지만, 그렇지 못한 조직은 그저 고만고만한 조직끼리 토닥대는 곳이라는 취급을 받을 뿐이다.
초휴가 걸어 나오는 모습을 하후진은 담담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서는 한치의 분노도, 회한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대가 초휴인가? 이처럼 젊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그래.”
하후무강의 무모하리만치 패기로운 오만함을 아비 된 자가 모를 리 있을까. 그러나 세상에 두려울 게 없던 그 잘난 아들이 초휴에게 연속 패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급기야 칠숙까지 죽었으니, 적대감을 떠나서 하후진이 초휴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이때 초휴 옆에 있던 정주해가 하후진의 기세에 눌려 등도 제대로 못 펴는 것과는 달리, 초휴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초휴는 태연히 받아쳤다.
“하후 가주도 제 생각과는 매우 다르시군요. 그깟 일로 가주께서 친히 이곳까지 왕림하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입니다. 무도종사급 고수께서 직접 복수하러 오시다니, 이 사람의 체면을 많이 생각해주신 모양이군요. 감사하긴 합니다만, 이를 어쩌지요? 강호 사람들이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무도종사가 새카만 후배를 괴롭힌다고 욕할지도 모르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하후진이 지그시 허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칠제(七弟)가 그대 손에 죽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 그와 나는 십년지기였어. 아주 고집이 센 친구였지. 그의 사부는 동제 군 출신의 고수로 창과 활에 정통한 사람이었어. 반면 자기는 자질이 우둔하여 그중 활쏘기밖에 깨우치질 못했고, 그나마도 사부만 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더군. 그게 확실히 해결되기 전에는 절대 창술까지 욕심내지는 않겠노라며 각오가 대단했지. 그의 사부도 그 고집을 꺽지 못 했으니, 말 다 한 셈이 아니겠나? 어리석은 녀석 같으니······. 후에 사부가 원수의 손에 죽으면서 그는 가까스로 중상을 입은 채 도망쳤고, 우연히 나를 만나 목숨을 건졌네. 내가 준 단약 한 병이 그를 소생시켰던 거지. 그렇게 건강을 회복해서 사부의 복수도 한 다음, 내가 누군지 탐문 끝에 찾아왔더군. 평생 은혜를 갚겠노라 말하길래 나는 농이려니 웃어넘겼지. 기껏해야 그걸 빌미로 하후세가에 문객으로 얹혀살 궁리를 하는 거로 생각했기 때문에 말일세. 해서 그러라고 하긴 했지만, 정말로 그가 그리할 줄은 몰랐네. 최근 몇 년 동안 그가 나를 위해 한 일들만 따져봐도 왕년의 그 단약 한 병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지. 평생 은혜를 갚겠다더니 과연 목숨까지 바쳐 갚았더군. 그는 나의 친아우나 다름없었네. 해서 나는 하후세가의 가주로서 온 게 아니라, 그의 형으로서 그대와 시시비비를 가리러 온 것이네.”
“시시비비? 가주님의 아들놈이 먼저 날 죽이려 들었소이다. 내가 칠숙이라는 자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저승에 있는 건 저일 겁니다. 그런데 저와 무슨 시시비비를 가리겠단 말입니까?”
초휴의 냉랭한 응수에도 하후진은 여전히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칠제는 나를 가주라 불렀어도 실제로는 아비나 형님 보듯 했었지. 그런데도 내가 그의 죽음을 모른 체한다면 강호인들의 비웃음은 차치하고라도, 나 스스로가 견디지 못할 걸세.”
순간 어디선가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애석하게도 이번에 헛걸음하시었소. 하후진, 아랫사람들 간에 맺은 원한에 강호의 대선배가 친히 나서다니, 이건 강호의 규칙에도 어긋나는 짓이오.”
골목 어귀에서 관사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로는 집형사 수령 사명 외에도 선별된 집형사 고수 십여 명이 따르고 있었다.
관사우에게로 시선을 돌린 하후진의 눈빛은 잔잔한 심해와도 같았다. 관사우의 출현은 진작 예견한 바였기에 놀랄 것도 없었다. 그간 하후진은 관사우와 별다른 교분도 없었다. 동년배이긴 하나, 관사우가 당주 자리를 이어받을 당시 하후진은 아직 가주가 되기 전이었던지라 그럴 기회가 없었다. 둘은 하후진이 가주가 된 후에 공적인 자리에서 서로 안면을 튼 후, 마주치면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는 정도의 관계였다.
“관 당주, 나는 그저 따지러 왔을 뿐이오. 이런 일에도 굳이 연배를 운운해야겠소이까? 초휴가 내 사람을 죽였으니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려는 것뿐이오. 그게 심한 처사라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