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64)
364화 마도회맹(魔道會盟)
밤이 무르익은 시간.
누군가 초휴가 묵고 있는 검리각 객실의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흰옷 차림의 낯선 중년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나요.”
외양과는 달리 귀에 익은 음성인지라, 초휴는 그가 육 선생임을 알아챘다.
“여긴 좌망검려가 운영하는 검리각인데.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셔도 괜찮으신가요?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시려고요?”
그 말에 육 선생은 히죽 웃으며 자기 면상을 가리켰다.
“허허, 이런 재주도 없었으면 무상마종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겠나. 염려 말게. 설령 연불합이 지척에서 나를 봐도 전혀 눈치채지 못할 테니까. 왜냐고? 나는 지금 지극히 전형적인 정도 무림 인사의 신분이니까. 동제 남양의 낭인 출신 협객, ‘송도검(松濤劍)’ 서송도(徐松濤)라는 인물이지. 잘 기억해 두라고.”
“네에? 그럼 진짜 서송도는요?”
초휴가 궁금하다는 듯 묻자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니 답했다.
“이미 해치웠지. 그것도 아주 감쪽같이.”
초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일 뿐,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마도의 손속이 이렇듯 잔악한 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유유상종이라고, 초휴, 이 어용 마교 제자도 자연스럽게 진짜 마도에 물들어가는 중이었다. 지금 육 선생이 더없이 공손하고 우호적인 태도로 초휴를 대하고 있지만, 이게 그의 본모습은 아니다. 무상마종의 중견 고수로서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을 마도 흉수가 그의 실체인 것이다.
이번에는 육 선생이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나저나 자네가 성녀 대인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 이번 마도회맹에 자네가 음마종 대표로 참석한다고 말씀하시길래 깜짝 놀랐지 뭔가. 그런 임무까지 맡다니, 자네 혹시 정식으로 음마종에 들어간 건가?”
“그럴 리가요. 성녀 대인께선 관중을 벗어나기가 힘들고, 당장 음마종에 그분을 대신할 만한 다른 제자도 없으니까요. 해서 임시로 제가 나서기로 한 거지요. 아 참, 육 선배님! 은마 세력 중에서는 성녀 대인의 실력이 강한 축에 들겠지요? 그분 신분이 좀 특수해 보이던데 말입니다.”
“무도종사의 실력이니 당연히 강하지. 그리고 성녀대인의 신분이 특수한 게 아니라, 원래 음마종의 신분 자체가 특수하네. 지난날 음마종이 곤륜마교의 종속 세력이던 시절, 두 종문은 상당히 긴밀한 관계에 있었지. 음마종의 종주와 성녀가 곤륜마교의 마사(魔使)도 겸임할 정도였고, 지위 면에서도 우리 무상마종보다 한 수 위였거든.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음마종 제자들이 정도 종문에게 많이도 죽었다네. 배신자까지 나온 바람에 성녀 대인 한 분만 남고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게지. 그러나 성녀 대인 한 분만 남았어도 음마종은 전승될 걸세. 그분의 위상도 여전하니 말이야. 일전에 성녀 대인께 신세를 진 일도 있으니, 이번 마도회맹에서 자네를 힘껏 돕겠네. 그럼 지금 당장 나와 함께 골목산장으로 가세나. 그전에 마도 쪽 위장 신분이 필요하겠는걸. 근래에 마도 측에 배신자나 첩자들이 적잖게 섞여들어서 다들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까. 자칫 경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어. 음마종도 배신자 한 놈 때문에 그 지경이 되었으니 말이야. 물론 정도 세력과 어울릴 때야 관중형당 장형관이라는 자네 신분이 참으로 요긴하지. 누가 자네를 곤륜마교의 전승자라 의심하겠는가. 그러나 우린 지금 마도의 모임에 가야 하니, 자네 신분이 자칫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거든.”
그 점에 대해서라면 육 선생이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초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근래 들어 정도 인사들도 섣불리 신뢰하기 어려운 마당에, 잔악하고 음험하기로 유명한 마도 무리야 오죽하겠는가. 육 선생이야 곤륜마교와 무상마종 간의 특수한 관계 덕에 쉽사리 속여 넘겼고 이처럼 도움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곤륜마교와 그다지 긴밀한 관계가 아니었거나 심지어 지난날 곤륜마교를 배반했던 명마 세력이라면, 초휴가 곤륜마교 전승자라고 밝히는 순간 해코지를 하려들 지도 모르는 일이다.
초휴는 청룡회 표식이 지워진 철 가면을 꺼내 쓰며 쉰 목소리를 내어 보였다.
“저는 마도에 갓 입도한 임엽이라 합니다. 육 선생께선 안녕하시지요?”
“허허, 청룡회 가면이로구먼. 정체를 숨기기에는 쓸만할 것 같군. 그러나 자네의 그 독특한 무공이 문제인데, 되도록 출수는 자제하는 편이 좋겠네. 그렇지 않았다간 자칫 눈썰미가 예리한 자에게 들킬지도 모르니까.”
검리각을 나선 두 사람은 곧장 골목산장으로 향했다. 사실 골목산장(骨木山莊)은 허허벌판에 버려진 산장으로, 이름 자체만도 기괴하지만, 그 유래는 더 섬찟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산장의 장주는 정도 출신의 성격 좋고 의협심도 강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도 비법을 수련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지는 바람에 사람의 피와 살로 단약을 만들어 먹어야만 생명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서 그는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수많은 강호인을 자기 산장으로 초대해 끌어들였고, 일단 이곳에 발을 디딘 사람 중 살아나간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제물이 된 사람들의 몸에서 단약 제련에 필요한 피와 살을 추려내고 남은 뼈는 골목산장을 공고히 보강하는 건자재로 사용한 것이다. 골목산장이라는 명칭은 그렇게 붙여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결국 꼬리가 밟혔고, 장주도 정도 세력에게 처단되었다. 물론 주인 없이 방치된 골목산장은 점차 황폐해져 갔다. 그리고 이곳에서 죽어 살과 피, 그리고 뼈까지 빼앗긴 억울한 원혼들이 워낙 많은지라, 지금도 한밤중만 되면 귀곡성이 흘러나와 소름 끼치도록 공포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니 골목산장은 ‘귀곡산장(鬼哭山莊)’이기도 한 셈이다.
황폐한 산장들은 음산해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골목산장은 건물부터가 기괴하기 짝이 없었으니, 어디는 시커멓고 어디는 괴이한 회백색이 감도는 게, 보는 이로 하여금 괴이쩍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했다. 골목산장이 가까워지자 육 선생이 음성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초 소협, 자네는 곤륜마교의 직계 전승자일세. 그러나 오래도록 마도 측과 교류가 없어서 잘 모르지 싶어 하는 말인데, 오늘날 마도의 양상은 옛날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 있다네. 물론 자네가 그런 걸 일일이 다 신경 쓰고 관여할 필요는 없지. 다만 이것 한 가지만은 기억해 두게. 곤륜마교의 직계 전승자라 하면 거의 모든 마도인들에게 존중받을 신분이겠지만, 지금 자네는 엄연히 음마종의 대표로 온 게야.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죽을필요는 없어. 우리가 자네 뒤를 든든히 받쳐줄 테니 말이네. 우리 은마는 명마와는 오래도록 화합을 이루지 못했네. 감히 성교를 배반하고 구차하게 연명한 자들이니까 말이지. 최근 몇 년 사이 저들이 적잖은 실력을 비축한 건 사실이나, 우리 은마도 숨어지냈을지언정 절대 저들보다 약하진 않네. 자고로 외부인을 치려면 우선 안쪽부터 다스리라는 말 있지. 이번 마도회맹도 불가피하게 한바탕 집안싸움을 벌인 뒤에야 대외적 입장도 하나로 정리할 수 있을 걸세.”
초휴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시치미 뚝 떼고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쯤이야 굳이 육 선생이 가르칠 필요도 없는 초휴의 전매특허가 아니겠는가. 두 사람이 산장 안에 들어서자 악귀 가면을 쓴 삼화취정인 흑의 무사 두 명이 뛰어나와 저음으로 소리쳤다.
“웬 놈들이냐!”
육 선생이 영패 두 개를 던져주자 그걸 살펴본 그들은 두 사람한테 예를 갖췄다.
“무상마종과 음마종의 대표분들이군요. 안으로 드시지요.”
초휴가 곁눈질로 그들을 보며 육 선생에게 물었다.
“저들은 누굽니까?”
“남해 제육천마종(第六天魔宗) 사람들이네. 제육천마종은 마도 내에서 중립적 입장인데, 굳이 따지자면 명마 쪽이라고 해야겠지. 성교 몰락 시 배반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도망쳐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지. 하지만 정파에서 저들을 건드리지 않은 건 순전히 저 멀리 남해 외딴섬에 떨어져 있는 존재기 때문이야.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이렇다 할 존재감도 없고 말이지. 성교가 몰락했다는 소식도 일이 다 끝난 다음에야 접했으니 알만하지 않는가. 해서 본의 아니게 성교에 미안할 짓은 하지 않았고, 우리 은마 세력도 저들을 적대시하지 않는 게야. 이번 마도회맹을 저들이 주관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라면 앙숙지간인 명마와 은마가 어찌 한 자리에 나란히 앉을 수 있겠는가. 오대 검파가 우리에게 검을 겨누기도 전에 우리끼리 싸우다가 지리멸렬하는 판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산장 깊숙이 이르러 있었다. 다 무너져가던 산장이 지금은 새로 정비를 마쳐 단정한 모습을 되찾은 상태였다. 그래도 왠지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산장 대청 전체에 음산하고도 사악한 마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이미 온 자들은 누가 봐도 극명하게 두 무리로 갈라져 있었으니, 인원수가 많은 쪽이 명마요. 적은 쪽은 은마 무리였다.
육 선생과 초휴가 들어서자, 중인들의 시선은 일제히 두 사람을 향했다. 그리고 육 선생이 무성의한 손짓 한 번으로 원래 모습을 드러내자, 은마 측 사람들이 속속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하지만 명마 쪽의 반응은 달랐다. 알록달록하니 기괴한 도안이 잔뜩 그려진 장포 차림의 천인합일 무사가 괴기스러운 웃음소리를 터뜨리며 깐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육진, 듣자니 무상마종과 장검산장이 한바탕했다면서? 그 때문에 마검 장상사고 뭐고 간에 헛물만 잔뜩 들이켰다고 들었네. 이참에 저들에게 복수라도 할 생각으로 온 건가? 그리고 자네 옆에 저자는 누군가. 마도회맹이 개나 소나 다 올 수 있는 곳도 아닌데, 고작 오기조원 후배 나부랭이를 데려와서 뭐 하자는 건가. 어린애한테 세상 구경이라도 시켜주려고?”
그 천인합일 무사는 기괴한 옷차림과는 달리, 외모에서는 요사스러운 미색이 흘러넘쳤다. 어찌나 이목구비의 선이 고왔던지, 얼핏 봐서는 남녀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목소리에서도 곱디고운 여성미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듣는 이로 하여금 닭살이 돋게 했다. 하지만 말본새만큼은 이렇게 밉살맞은 자도 드물겠다 싶을 정도로 독했다. 육 선생은 차갑게 받아쳤다.
“구상자(九湘子), 오독교 일이나 신경 쓰시지그래. 지금 그대가 우리 무상마종을 비웃을 처지가 되는 줄 아나? 지난날 오독교가 풍운검총의 검고(劍蠱)를 탐내다가 상대의 일검에 장로 여러 명이 죽어 나간 걸 내가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단 말이네. 그리고 옆의 이 분은 후배 나부랭이가 아니라 곤륜마교의 정통 승계자이신 임엽이라 하네. 더욱이 이번엔 음마종을 대신해 마도회맹에 참석한 걸세. 설마 이 정도 신분으로도 이곳에 참석하기에는부족하다는 말인가?”
그러자 구상자라 불린 자가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표정을 지으며 쏘아붙였다.
“저자가 음마종 성녀를 대신해 마도회맹에 참석을 한다고? 언제부터 음마종에 남자 제자가 있었다는 건가. 혹시 그 여자의 기둥서방 아닌가?”
자고로 주둥이를 험하게 놀리는 자는 세상천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해서 이런 비아냥 한 마디로 초휴가 열 받을 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