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67)
367화 엽천사의 등장
초휴는 육 선생과 한옆에 앉아서 대청 안의 마도 무사들을 관찰했다. 명마와 비교해 은마 측은 훨씬 단출해 보였다. 무상마종 같은 규모의 세력은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 삼삼오오 이루어진 작은 집단이었다. 작은 집단이라고 상위 경지 무사들의 전투력도 약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번듯한 규모를 이루기엔 머릿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해서 육 선생도 굳이 그들을 초휴에게 소개할 필요는 못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은마 측 실력이 약하다고 예단할 수는 없었다. 은마가 왜 은마겠는가. 어둠 속에 숨어있으니 ‘은마’인 것이다. 어둠을 벗어나 제대로 실력을 보인 적이 없으니, 은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누가 정확히 알 수 있으랴. 초휴의 경우만 봐도 그랬다. 비록 마도의 계승자라고 사칭하는 처지이긴 하나, 진짜 신분과 위상은 절대 얕잡아 볼 수준이 아니지 않는가. 이곳에 온 다른 은마 무사들도 분명 그럴 터였다. 강호에서 어떤 위장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를 일이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은마 측에는 위서애같이 정도 종문에 정면으로 저항했던 거물급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 옛날 명성이 자자했던 마도 거물이 모두 죽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어둠 속에 도사린 채, 기회를 엿보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이윽고 반 시진 정도가 지나서야 나찰교와 사극종 대표가 당도했다.
서역 가까이 극서 황량한 사막지대에 자리한 나찰교는 모든 제자가 악귀 가면을 쓰고 다니기로 유명했다. 수련하는 무공 때문에 그러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특한 수련법으로 인해 용모 자체가 악귀처럼 변하는지라, 가면을 쓰나 안 쓰나 별 차이가 없다고도 했다.
한편, 사극종 대표는 천인합일 한 사람과 오기조원의 젊은이 하나였는데 어딘가 괴이쩍은 분위기를 풍겼다. 상식대로라면 천인합일 무사가 선배 대접을 받기 마련이련만, 어찌 된 게 사극종 사람들의 행동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대청에 들어올 때도 젊은이가 앞장서 들어오더니만, 세력마다 하나씩 배정된 자리에도 그 젊은이가 냉큼 앉아버린 것이다. 천인합일 무사는 시종처럼 뒤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이런 황당한 광경에 좌중은 눈살을 찌푸리며 사극종 젊은이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남성미 넘치는 준수한 인물의 젊은이는 헐렁한 검은 도포 차림이었다. 간간이 앞섶이 벌어질 때 드러나는 가슴팍에서는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교룡 문신이 엿보였다. 손에는 핏빛이 감도는 용 형상의 창을 들고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절로 피비린내가 맡아졌다.
천인합일이면 어디에 내놔도 한가락 하는 고수로, 어느 세력에서나 중견 역량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하후씨같은 구대 세가의 경우만 봐도, 칠숙이 한낱 문객 신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까칠한 하후무강마저 고분고분 선배로 예우하며 공손히 굴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 저 젊은이는 천인합일을 시종 부리듯 하고 있으니, 강호의 예법 따위는 국에 말아 먹은 듯했다. 그렇다면 저자는 혹시 사극종 종주의 친아들이라도 되는 신분일까?
사람 마음은 매한가지인지라, 은마 측의 누군가가 비아냥댔다.
“당신네 사극종은 갈수록 가관이구려. 무슨 조직이 위아래도 없어 보이니 말이지. 천인합일 무사가 버젓이 있건만, 어찌 오기조원 따위가 떡하니 그 자리를 차지하는가 말이오? 설마 이 마도회맹에 무슨 장난이나 하고 놀자고 온 것도 아닐 텐데.”
순간 육 선생이 초휴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저자는 적련마종(赤練魔宗) 종주의 제자인 해영종(解英宗)이라고 하네. 적련마종도 한때는 우리 은마의 주요 종문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형편없이 몰락하는 중이지. 아마 종문 전체를 탈탈 털어봤자 백 명도 안 될걸세.”
사극종 젊은이가 뭐라 답변하기도 전에 구상자가 초휴를 힐끗 보며 끼어들었다.
“당신네 은마도 오기조원 잔챙이한테 자리를 내주지 않았나. 그런데 우리는 왜 안 된다는 거지?”
아까 초휴에게 패하긴 했으나 그다지 심한 상처를 입진 않았다. 해서 구상자는 처음의 요사스러운 미모를 완전히 회복한 상태였다.
해영종은 차갑게 대꾸했다.
“구상자,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주제가 된다고 생각하나? 오기조원도 오기조원 나름이지. 조금 전, 우리 임엽 형제에게 신나게 얻어터진 걸 벌써 잊은 건가? 오기조원에게 패한 당신조차 한자리 차지할 염치가 있는 마당에, 임엽이 어째서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건가. 하지만 저 사극종 애송이는 얘기가 다르지. 무슨 자격으로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단 말인가.”
명마 가운데 사극종은 실력도 별로인 데다, 지난날 정도 종문 앞에 납작 엎드려 살아남았다. 그 오명은 아무리 세월이 지났어도 쉽게 씻겨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해서 명마 세력 내에서조차 사극종의 평판은 별로였고, 툭하면 조소와 멸시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해영종이 아는 한, 최근 몇 년 사이 사극종은 위아래를 막론하고 쓸 만한 무사가 없는 실정이었다. 오죽 인물이 없었으면 신병대회 때 동개태 같은 자를 내보냈겠는가.
그리고 그 동개태마저 사태 파악도 못 하고 섣불리 사극종에 발을 디뎠다가 초휴에게 처단되고 말았다. 이 일은 마도 종문 사이에서도 두고두고 비웃음거리였다. 사극종이 제대로 된 제자 하나 배출하지 못한 건 둘째치고, 기껏 영입한 자가 순식간에 명줄이 끊어질 팔자였다면서, 운이 없어도 저렇게 없을 수가 없다고 비아냥댄 것이다. 해서 지금 해영종도 거리낌 없이 대놓고 사극종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적련마종과 사극종 사이의 묵은 원한이 있는 탓이기도 했다. 명마와 은마 간의 은원 관계는 복잡하기로 따지자면 정도 종문들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이번 회맹만 해도 제육천마종이 중재자로 나서지 않았더라면 양측이 진즉 맞붙어 끝장을 보고 말았을 터였다. 해영종의 도발에 사극종 천인합일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분을 참지 못한 그가 출수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자리에 앉아있던 젊은이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그는 여전히 핏빛 용창(龍槍)을 손에 잡은 채 입을 열었다.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 여기에 앉았냐고 물었소? 말주변이 없는 편이라 해명하기가 성가시군그래. 내 수중의 ‘혈교(血蛟)’로 답을 대신해드리지. 그리고 내 이름은 ‘애송이’가 아니라 엽천사(葉天邪)라 하오. 사극종 엽천사!”
그러자 해영종이 같잖지도 않다는 듯 피식대며 받아쳤다.
“못 들어본 이름인걸!”
핏빛 용창이 바닥에 끌리는가 싶더니, 그의 눈동자가 뱀눈처럼 곧추서고 안색도 진홍색으로 변했다.
“지금부터 확실히 기억하게 될 거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엽천사의 몸이 핏빛 광망처럼 변하더니 곧장 해영종을 덮쳐갔다. 핏빛 용창에 조각된 교룡의 울부짖음이 뇌성처럼 사방에 진동하니, 그 가공할 기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해영종의 진홍빛 장도도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하늘도 뚫을 기세로 짙은 핏빛 광망을 응집시켜 상대를 치고 나갔다. 엽천사에 못지않은 강력한 예기가 연신 터져 나오니, 그 안에는 검은 기운마저 감돌았다. 그것은 극독 성분을 지닌 죽음의 기운이 분명했다.
적련마종의 무공은 매섭기 그지없는 살기의 힘을 응축시킨 데다, 사악한 죽음의 기운까지 더해져 적을 살상하는 특징을 지녔다. 위력 역시 기대 이상으로 살벌함은 당연했다. 반면 엽천사의 창술은 얼핏 봐서 특별하지 않은 것 같아도 위력이 실로 대단했다. 천인합일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고, 따라서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었다.
그런데 엽천사가 창을 내지른 순간, 꾸벅꾸벅 조는 듯 보였던 위서애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늙어 탁해진 눈동자가 무서우리만치 날카롭게 번뜩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쾅’하는 굉음과 함께 진홍색 창망과 적홍색 도망이 충돌하며 엄청난 파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좌중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 일어났으니, 해영종의 도망이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엽천사의 힘이 상대를 완전히 제압한 것이다.
이어서 엽천사의 용창 ‘혈교’가 쇠망치처럼 세차게 급강하하자, 태산이 정수리에 떨어지는 듯한 압박감에 노출된 해영종은 피를 토하고 말았다. 발밑의 지면도 계속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대결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엽천사의 무공이 괴력에 최적화된 것임을 알아챘다. 그의 필살기는 바로 이 괴력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힘을 지니게 될 정도로 수련한 오기조원이라면 천인합일도 두려울 게 없지 않겠는가.
두 합만에 상대를 무력화시키고도 엽천사는 출수를 거둘 의사가 없어 보였다. ‘혈교’를 힘껏 던지자 그 기다란 창은 살아 움직이기라도 하듯, 먹잇감을 포착한 교룡처럼 허공을 유유히 날아 해영종에게 덮쳐들었다.
해영종이 일갈하며 장도를 내뻗자, 도신의 한가운데가 쩍하고 갈라지며 무수한 핏빛 도망이 그 안으로 주입되었다. 이처럼 한껏 도망을 장전한 일도를 내리치고서야 엽천사가 던진 창을 아슬아슬하게 튕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고의적이었는지는 몰라도, 방향이 틀어진 혈교가 진홍색 강기를 발하며 초휴를 겨냥해 날아드는 게 아닌가. 이에 초휴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사극종 엽천사라는 저자가 아무래도 제대로 미친 모양이다. 자신의 위세를 떨치는 희생양으로 해영종 한 명만으로는 모자라서 초휴까지 노리려 드니 말이다.
초휴의 눈에서 예기가 터져 나오며 천자망기술이 시전되자, 혈교의 예상 궤적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초휴의 눈에 간파되었다. 그는 혈교가 거의 몸에 닿기 직전, 미끄러지듯 몸을 놀려 피해버렸다. 그리고 천마무 대신 장중(掌中)에 마기를 응집시켜 엽천사 쪽으로 혈교를 쳐내니, 혈교는 단번에 주인 쪽으로 방향을 틀어 날아갔다. 이때 좌중의 모든 이가 혈교의 소름 끼치도록 섬찟한 포효성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초휴가 마기의 힘으로 돌려보낸 혈교를 엽천사가 강기를 터뜨린 손으로 잡아챘다. 순간 막강한 두 힘이 부딪히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비록 뒷걸음질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초휴의 괴력을 여실히 체감한 순간이었다.
엽천사는 간담을 쓸어내리며 초휴를 쏘아보았다. 인제 보니 자기가 오기 전에 이미 누군가가 위세를 떨쳤고, 그자의 실력이 실로 범상치 않았음이 짐작이 갔다. 그자가 누군지는 말 안 해도 뻔한 일이지만.
이때 위서애가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뜨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극종의 그 교룡 내단(內丹)을 네가 체화시켰느냐? 보아하니 을 수련한 모양이로군. 실로 놀랍구나! 사극종이 수백 년에 걸쳐 시도해온 일을 자네가 성공시켰으니 말이야. 우리 은마의 젊은 세대가 막강한 게 자랑스럽지만, 인제 보니 명마의 어린 친구도 만만치 않구먼. 이 정도면 충분히 자네가 잘났다는 걸 과시한 셈이니, 자리로 돌아가게. 싸울 만큼 싸웠으니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테니까.”
이로써 위서애가 졸지에 엽천사의 내력을 자세히 밝힌 격이 되었다. 그 바람에 사극종 두 사람은 안색이 돌변했으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사실 그 둘이 숨겨왔던 소위 ‘작은 비밀’은 강호의 골동품과도 같은 위서애에게 있어서는 굳이 숨길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해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대로 말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