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7)
그가 짜 맞춘 그림에 의하면 우선 남상망산의 도적떼가 초휴에게 귀순했고, 그들을 통해 첫 장삿길에서 북상망산의 도적떼를 소개받았으며, 그 참에 도적들과 협정을 맺어 무사히 상망산을 통과할 수 있었다. 세상에 어쩌면 이리도 아귀가 딱 맞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을까. 남북 상망산이 본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니, 만약 초휴의 수하들이 남상망산 도적떼가 확실하다면 북상망산 도적떼와도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그후에 초휴가 아우 초상한테 자신의 상단을 빼앗겼다는 소식은 심용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초휴가 상망산을 지날 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과는 달리, 그의 아우는 첫 장삿길에 오르자마자 끔찍한 일을 당하고 말았다. 세간에서는 초상이 도적들에게 까불다가 그리되었다고 했지만, 막상 그 일을 자세히 짚어보면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심용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됐어, 이것으로 초휴의 약점을 잡은 거야! 그는 예전에 받아둔 이승의 확약서를 꺼내들며 미소를 머금었다.
“찢어버리지 않길 정말 잘했군. 이제 제대로 써먹어야겠어.”
그러고는 하인을 돌아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사람아, 그런 일을 왜 진작 내게 알려주지 않은 게야?”
“소인이 도적질을 했었다는 과거를 말씀드리는 게 꺼림칙했습니다. 당시는 아직 대인을 모시기 전이라서 말씀드릴 기회가 없기도 했구요. 물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나불댈 일도 아니었고요.”
하인이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하자 심용이 파안대소를 터뜨리며 큰소리를 탕탕 쳤다.
“잘했어. 이번에 자네의 공로가 아주 커! 초휴란 놈의 상판대기를 보러 가자꾸나. 이승이 가문의 재산 중 절반을 주겠다고 했었지. 초휴 놈더러 적어도 삼분의 이는 도로 토해내라고 윽박질러야겠다.”
그 무렵 초휴는 후원에서 검을 연습하고 있었다. 불현듯 나타난 세 고수의 존재가 모종의 위기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저들이 우호적인 목적으로 이곳에 왔는지의 여부부터 타진해볼 생각이었다. 물론 자신의 실력이 저들에게 밀리지만 않는다면, 저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따라서 현재 실력이 충분치 못한 그로서는 무조건 실력부터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였다.
그때, 고비가 헐레벌떡 대문을 박차고 들어와 나지막한 소리로 아뢰었다.
“공자님, 심씨 가문의 심용이 찾아왔습니다.”
초휴는 검을 내려놓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심용이라? 그게 누군데?”
그제야 고비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초휴가 그런 이름을 모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던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서둘러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심용은 심씨 가문의 총집사예요. 실력도 약하고 능력도 평범한데, 창란검종의 제자인 심백과 심씨 가문의 현임 가주 심묵이 모두 그자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 덕에 문중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가주조차도 그에게는 공손히 대할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자가 나를 왜 찾는 건데?”
초휴가 여전히 납득이 안 된다는 표정을 짓자 고비도 고개를 내저었다.
“그야 소인도 모르죠. 하인 하나만 달랑 데리고 와서는 다짜고짜 공자님을 만나겠답니다.”
초휴는 일단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고비가 이미 주루의 방 한 칸을 통째로 예약해, 만날 장소는 정해진 상태였다.
이윽고 웃는 낯으로 방에 들어선 초휴는 그에게 예를 갖추며 인사를 건넸다.
“심씨 가문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군요. 무슨 용건으로 저를 찾으셨는지요?”
인사를 받아놓고도 심용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오만방자한 눈빛으로 그의 뒤에 서있는 고비를 힐끗 쳐다보았다.
“공자와 중요한 얘기를 하게 될 텐데, 다른 이의 귀에 들어가면 좋을 게 없을 거외다.”
심용의 태도에 초휴는 기분이 상했지만 일단 고비를 물러가도록 했다.
고비가 사라지고 나서야 심용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초휴에게 보라며 건네주었다. 그건 이승이 작성한 확약서였는데, 이승이 초휴를 죽인 후 초씨 가문의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심용이 나서서 보호해준다는 조건하에, 사례로 이씨 가문 재산의 절반을 심용에게 내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이것은 미수에 그치긴 했어도 눈앞의 이 늙은이가 이씨 가문과 더불어 자신의 암살을 공모했다는 증거이기도 한 셈이었다. 이씨 가문의 당사자들도 죄다 죽고 없으니, 심용자신이 이 일을 떠벌리지만 않으면 확약서의 내용은 그대로 묻히고 아무도 모를 터였다. 굳이 이 확약서를 훈장이라도 되는 양 당당히 초휴에게 보여준 속내가 무엇일까?
초휴는 굳은 표정으로 확약서를 탁자 위에 내던지며 차갑게 물었다.
“이걸 내게 보여주는 의도가 무엇이오?”
“그야 간단하오. 애당초 이씨 가문은 재산의 절반을 내게 주기로 약속했었소. 물론 결과적으로 당신이 죽기는커녕 되레 그들이 죽고 말았지. 당신이 이씨 가문의 전 재산을 통째로 삼켰고 말이야. 따라서 나는 당신이 빼앗아간 내 몫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러 온 것이오. 단, 절반이 아니라 삼분의 이를 내놓아야 할게요.”
초휴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심 집사, 늙어서 노망이라도 났소? 이씨 가문을 도와 날 죽이려 한 것만도 괘씸하기 짝이 없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해놓고도 그걸 달라는 근거가 뭐요?”
”근거가 뭐냐고? 초휴 당신이 남북 상망산의 도적떼와 결탁해서 지나가는 상단을 공격하는 것도 모자라, 자기 가문의 상단에도 손을 대고 심지어 자신의 아우마저 불구로 만들었다는 사실, 그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게 그 근거요.”
심용은 이렇게 내뱉으며 간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심용이 협박을 하자 초휴의 얼굴에는 미미한 경련이 일었다. 담담한 표정과는 달리, 마음속에서는 한바탕 성난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도적과 결탁해 가족을 참살하는 것은 사형에 처해지고도 남을 중죄임은 초휴 자신도 잘 알기 때문이다.
다급한 마음에 벌떡 일어난 그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말했다.
“심 집사, 음식은 아무거나 집어 먹어도 되겠지만, 말은 함부로 내뱉으면 곤란합니다. 내가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어찌 그런 황당무계한 짓을 저지르겠소이까?”
“그렇지. 당신은 미치지 않았지. 허나 미치지 않고서도 능히 미친 짓을 벌일 수 있는 게 바로 당신이거든.”
심용은 자신의 뒤에 서있는 하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왕이(王二), 네가 지난날 초 공자한테 별로 깊은 인상을 못 남긴 모양이로구나. 초 공자가 기억이 되살아나도록 네가 몇 마디 해줘야겠다.”
그러자 왕이라고 불린 하인이 앞으로 나서더니 히죽대며 비아냥거렸다.
“초휴 공자, 남상망산에서 당신의 검이 연노삼한테 중상을 입히던 광경이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르는군요. 당시 마활이 당신을 도와 연노삼의 무리를 죽일 때, 나는 잽싸게 도망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요. 지금은 그때보다 팔자가 더 폈고 말입니다. 정말이지 당신의 그 두둑한 배짱은 탄복할 만합니다. 어떻게 마활을 자기 곁에 둘 생각을 다 하셨습니까?”
초휴는 자기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문제가 거기서 터졌구나. 하지만 이건 그저 공교롭게도 일이 겹쳤을 뿐이니, 상대방의 세 치 혀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고 그는 다짐했다. 애당초 초휴가 자신의 오른팔로 마활을 택한 것은 일단 그의 무공실력이 뛰어났고 대범한 가운데 세심한 구석이 돋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유를 한 가지 더 들자면 마활이 남상망산에서는 몇 번 도적질에 나섰을지 몰라도, 북상망산에서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그나마 자신의 얼굴을 본 몇 안 되는 사람들도 가차 없이 죽여 입을 막아버렸기 때문에, 설령 바깥세상에 나온다 해도 그를 알아볼 자가 없을 거라는 점도 감안했던 것이다.
그나마 초휴와 마활 간의 관계가 노출된 것은 그들이 처음 만난 그날, 연노삼을 죽였을 때가 유일했다. 당시 연노삼의 부하들 수가 워낙 많다 보니 무공을 할 줄 아는 자들 위주로 해치운 탓에 더러 살아 도망간 자들도 있었다. 당시 초휴는 연노삼의 부하들이 감히 도적의 신분으로 통주부 경내에 발을 디딜 수는 없을 거라고 방심한 나머지, 굳이 그들을 잡아 죽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것은 확실히 초휴가 간과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하필 그때 저런 독사 같은 자가 빠져나가 통주부에 발을 들여놓았고, 심씨 가문에 들어간 것도 모자라 자그마치 심용의 눈에 들었으며, 급기야 오늘 마활의 정체를 까발리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걸 우연의 일치라고만 말하기에는 지지리도 운이 따르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이윽고 초휴가 감았던 눈을 뜨며 다시 자리에 앉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 나더러 당신의 입을 막는 데 들어갈 돈을 내어놓으라는 거군요.”
초휴가 이처럼 빨리 안정을 되찾는 모습에 심용은 되레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한 짓을 한사코 잡아떼던 자가 빼도 박도 못할 증거 앞에서는 이내 태도가 돌변해 여유로울 정도로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 대범한 정신상태만큼은 높이 평가해줄 만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도 딱 거기까지였다. 지금 심용의 머릿속은 온통 이씨 가문의 재산을 도로 받아낼 궁리로만 가득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초휴를 향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으름장을 놓았다.
“바로 그거요, 초휴 공자. 내가 한 가지만 충고할까? 이씨 가문의 재산을 순순히 내놓지 않으면 당신이 한 짓을 내가 온 동네방네 떠들어댈 거요. 당신의 운명은 불구가 된 당신의 아우보다도 더 비참하게 될 거란 이야기요.”
“심 집사, 이거 너무 사람을 몰아세우는군요. 이씨 가문의 재산 중 삼분의 이를 이미 초씨 문중에 바쳤소이다. 지금 내 수중에는 삼분의 일밖에 안 남았소. 그런데 어떻게 삼분의 이씩이나 내어놓으라는 겁니까!”
초휴가 인상을 찡그리며 항변했지만 심용은 들은 척도 않고 막무가내로 나왔다.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나에게는 결과가 중요할 뿐 과정은 따지지 않을 거요. 열흘을 주겠소. 그 안에 내가 원하는 것을 내놓지 않으면, 그때 가서 후회해도 소용없어. 초종광의 손에 죽게 되더라도 내 원망은 하지 마시게.”
그러자 초휴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물론 그 요구에 더 이상 협상의 여지는 없겠지요?”
심용이 벌떡 일어나더니 초휴의 어깨를 툭툭 치며 거드름을 피웠다.
“다른 사람 같으면 협상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자네만은 그럴 자격이 없다네. 자네는 자네의 약점이 내 손안에 있다는 사실만 명심하면 되는 거야.”
푹!
뜬금없는 소리와 함께 심용의 웃는 낯이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그는 차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초휴가 자신의 가슴에 찔러 넣은 단검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가까스로 입을 떼어 쉰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나, 나는 심씨 가문의 총집사야. 네놈이 감히 나를 죽인다고?”
초휴는 심용의 물음은 아랑곳없이 그의 입을 틀어막은 채 손에 쥔 단검을 몇 차례 비틀었다. 이윽고 심 집사의 숨이 끊어지자 시체를 바닥으로 밀쳐낸 초휴는 왕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왕이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려 하자 초휴가 냅다 단검을 던져 그를 몸뚱이째 벽에 꽂아버렸다. 이리하여 방금전까지 혈색 좋게 살아있던 사람 두 명이 졸지에 싸늘한 시신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번만큼은 초휴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가 심용을 죽인 것은 그가 자신을 조롱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남한테 비웃는 소리 몇 마디 들었다고 해서 이성을 잃고 광기를 터뜨릴 정도로 형편 없지는 않았다. 심용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진정한 이유는 자신의 약점이 그의 손에 잡혀있다는 심용의 말 때문이었다.
이씨 가문의 재산 중 삼분의 이를 내어놓으라는 심용의 이번 요구는 들어줄 수도 있었다. 일단 자기 몫인 삼분의 일을 내주어 급한 불을 끈 다음, 차후로 어떻게든 방도를 마련해 남은 삼분의 일을 마저 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한도 끝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심 집사가 그의 약점을 쥐고 있는 이상, 한번 고개를 숙이면 두 번째, 세 번째에도 계속 굴복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내 약점이 상대방의 수중에 떨어진 이상, 꼭두각시처럼 상대방의 요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꼴이 되고 만다. 초휴는 그런 꼴을 당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심용을 죽일 수밖에!
끝
ⓒ 봉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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