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71)
371화 꼬리 내린 잠부자
파산검파 제자들이 어찌 초휴의 이름을 모르겠는가. 그 이름은 잠부자의 입을 통해 종문 내에 알려졌다. 본인의 직계 제자가 죽었으니, 그의 사인에 대해서도 종문에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산검파는 평범한 제자 하나 죽었다고 해서 종문의 힘을 동원하여 복수에 돌입할 여력 같은 건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제자 하나 잃는 것으로 끝날 손실을, 훨씬 더 크게 키울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만약 초휴가 한낱 무명지배였다면 그 이름도 흐지부지 묻히고 말았을 터. 하지만 결과적으로 초휴는 관중형당의 장형관이 되어 온 강호에 이름을 떨치는 중이다. 상대가 이처럼 훌쩍 커버렸으니 어쩌겠는가. 파산검파 장문인은 잠부자에게 원한은 잊고 슬픔을 추스르라는 위로만 건넬 뿐이었다. 하긴 예나 지금이나 잠부자의 꼴로 봐서는 그다지 슬퍼 보이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이때 정작 발끈한 건 잠부자가 아닌 다른 제자들이었다. 예전에 초휴를 직접 본 적이 없을 때야 그러려니 잊고 지냈다. 그러나 말로만 듣던 사문의 원수를 눈앞에 마주하니 가만히 있는 것도 창피하다 싶어서였다. 모른 척 고개 숙이고 있는 건 남들 눈에 비굴하게 비칠 수가 있으니, 일단 발끈하는 시늉이라도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잠부자가 이내 그들을 제지했다. 그리고 그들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이더니 억지로 자리에 끌어다 앉혔다.
사실 잠부자가 약간의 허장성세로 실력의 모자람을 포장해온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허장성세마저 지금의 그에겐 사치였다. 자신의 진정한 실력을 본인이 어찌 모르겠는가. 요즘 파산검파가 어떠한 실력인지도 당연히 잘 알았다. 그렇다면 초휴와 대립각을 세워봤자 본인만 손해라는 결론이 남는다. 때문에 잠부자는 자기 제자를 죽인 흉수임에도 초휴와 맞설 생각을 접은 지 오래였다.
사실 이는 비굴한 게 아니라 현명한 처사이기도 했다. 잠부자는 오랜 강호행 끝에 파산검파 장로 자리에 오르기까지, 늘 이성적이고 지혜롭게 행동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런 처세방식이 아니었더라면 이 험난한 강호에서 몇 번이고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이처럼 잠부자가 지레 꼬리를 내리자, 초휴도 그와 더는 대립할 필요를 못 느꼈다. 그 역시 현명한 사람인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잠부자가 초휴와 원한을 맺은 거지, 초휴가 잠부자에게 원한이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초휴의 눈에 비친 잠부자는 마지못해 원한을 잊고 치욕을 삼키려고 애쓰는 듯 보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런 척할 생각도 없는 눈치이니, 지난날의 복수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게 확실했다.
이때 초휴의 어깨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초 형! 여기서 또 보게 되네?”
뒤돌아보니 다름 아닌 사소루였다. 그의 곁에는 천하맹 소속으로 보이는 천인합일 고수들의 모습도 여럿 보였다. 아직 사소루의 실력이 여의치 않은지라 이번 대회는 초휴처럼 무슨 대표의 신분이 아니라, 그저 구경차 온 것이었다.
초휴는 웃으며 그를 반겼다.
“자네가 올 줄 알았지. 이번 대회가 서초에서 개최되는데 천하맹이 빠질 리가 없을 테니 말이네. 아 참, 천하맹 진(陳) 맹주님도 오셨는가?”
“안 오셨어, 천하맹에 워낙 처리할 일이 많아야지. 내 사부님이 여기서 노닥거릴 틈이나 있으시겠나. 하긴 사부님 성격으로 봐서는 안 오시는 게 오대 검파에도 좋지. 저들이 자칫 한 마디라도 잘못했다가는 사부님이 당장 달려들어 설전을 벌이실 테니 말이야. 주먹이나 안 나가면 다행이지.”
그러고 보니 초휴도 천하맹 맹주 진청제(陳靑帝)의 유별난 성질머리에 관한 풍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가까이하기엔 여러모로 까탈스러운 존재임은 분명했다. 순간 사소루가 슬며시 초휴에게 다가서더니 소리를 낮춰 말했다.
“초 형, 잠시 후 이 대회에 문제가 생기거나 혹은 앞당겨 종결되면 그 즉시 부옥산을 떠나게. 여기서 머무르지 말고.”
“응? 그건 왜인가? 무슨 정보라도 들은 게 있는 건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번 대회가 평탄히 흘러갈 성싶지 않다고 하시더군. 아무래도 오대 검파가 마도를 도발하려는 속셈인 것 같다고 하셨어. 마도 측에서 가만히 당하고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사부님 말씀이, 자기가 마도였다면 당장 출수해서 이 부옥산 전체를 결딴낼 거라 시더군. 해서 우리 천하맹도 그저 구경이나 하러 온 거야. 구경이 끝나는 대로 곧장 여길 뜰 거고 말이지. 마도와 오대 검파 간 싸움에 끼어들어서 득 볼 게 없으니까.”
초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다른 종문도 보는 눈이 있어서 오대 검파가 이 대회를 빌미로 무얼 하려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는 오대 검파의 내부 일인 데다, 근자에 마도 세력이 소생하려는 기미가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해서 조만간 싹을 솎아낼 필요는 있겠다 싶어 굳이 저지하려 들지 않은 것이다.
초휴가 물었다.
“진 맹주께서는 돌아가는 상황을 꿰뚫고 계시면서도 자네를 이 위험천만한 곳으로 보내신 건가?”
이에 사소루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안 될 게 뭐가 있어? 이건 엄연히 마도와 오대 검파 간 싸움이고 우린 제삼자일 뿐이잖아. 천하맹은 이 싸움에 끼어들 생각이 전혀 없다니까.”
순간 초휴는 할 말이 궁해졌다. 보아하니 진청제는 절반만 맞춘 셈이 아닌가. 이번 대회에 마도가 출수하리라는 건 제대로 짚었지만, 그 파장이 얼마나 클지를 예측하는 건 실패했다. 얼핏 보기엔 검도와 마도 간의 대결로만 보일지 모르나, 이 대결이 일파만파로 커졌다 하면 순식간에 정도와 마도 간의 대결로까지 비화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물론 일이 그리된다 해도 천하맹과는 별 상관없긴 했다. 원래 천하맹은 정도와 마도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양측의 싸움이 촉발되더라도 이 중립 세력에게 불똥이 튈 가능성은 없을 터였다.
이때 문득 잠부자를 발견한 사소루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저자는 지난번 슬며시 꽁무니 뺐던 그 파산검파 장로가 아닌가? 자네가 저자와 맺은 원한은 어찌하고 이리 태평한가?”
초휴와 지내는 동안 사소루는 얼추 그의 성격 파악을 마쳤다. 패도적이고 강압적이다 못해 더러 광기마저 내비치는 이 사내와 원한을 맺을 수 있는 자는 딱 두 가지 유형뿐이다. 여간해선 죽이지 못할 자와 이미 죽은 자! 그러나 잠부자는 초휴 실력으로 충분히 죽일 수 있는데도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둘 중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은 셈이니 사소루로서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초휴가 사소루의 말을 정정했다.
“저자가 나에게 원한을 가진 거지, 내가 저자한테 원한이 있는 건 아니니까.”
초휴의 대답을 들은 사소루는 그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보나 마나 파산검파 측에서 먼저 꼬리를 내린 것이리라. 사소루도 서초에 근간을 둔 만큼, 파산검파의 안팎 상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았다. 천하의 정상급 거대 문파 입장에서 볼 때, 무도종사가 한 명뿐인 파산검파같은 세력은 그저 무림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한 부분일 뿐이었다. 딱 한 명뿐인 무도종사의 실력도 그리 강한 축에 들지 못하는 데다, 다음 세대에서도 탁월한 인재가 배출될 가능성이 없는 난감한 형편이었다.
앞으로 시간이 흘러 그 알량한 고수마저 고갈되는 날엔 파산검파는 지리멸렬의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고, 풍만루가 지은 노랫말에서도 삭제될 건 뻔했다. 해서 그들 나름대로 강구해 낸 처세법이 ‘웬만하면 굽히고 들어가자’였다. 만만한 종문들을 상대할 때는 칠종팔파의 기세로 누르되, 상대하기 어렵다 싶은 세력에 대해서는 주저 없이 꼬리를 내리는 것이다.
이때 뒤에 몰려있던 군중 속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거물이라도 납신 건가?”
초휴의 질문에 사소루가 고개를 저었다.
“거물급들은 이미 부옥산에 다 와 있지. 이제야 산을 오르는 자라면 이름도 없는 자일 게 뻔해.”
그러면서도 두 사람의 시선은 무의식중에 그쪽으로 향했다. 초휴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좀처럼 웃음기를 보이지 않는 사소루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스쳤다.
“파산검파와의 원한은 해결되었을지 몰라도 저자와는 아닐 테지. 듣자니 북연에서 누가 자네 이름을 들먹거리기만 해도 저 인물이 부들부들 떤다더라고.”
지금 막 산을 오른 이는 준수한 외모에 기품이 남다른 청년이었다. 순금 문양을 수놓은 비단 도포 차림에다, 주위에는 벌떼처럼 모여든 무사들이 우글거렸다. 초휴도 아는 얼굴이었으나 오래도록 만난 적 없었던 인물! 다름 아닌 취의장 섭동류였다.
사소루가 한 말처럼 아직 그와는 정리할 악연이 남아있었다. 일전에 초휴는 그의 수중에서 보물을 탈취했고, 그는 추격대를 보내 초휴를 죽이려 했다. 당시 고립무원 처지로 온갖 고초를 겪었던 걸 생각하면 초휴의 마음에도 진한 앙금이 남아있었다.
섭동류를 한동안 응시하던 초휴가 불쑥 물었다.
“섭동류가 오기조원에 이르렀나?”
초휴가 섭동류를 상대한 뒤, 마지막으로 접했던 정보로는 당시 고작 외강경이었던 섭동류가 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장기간 폐관 수련에 전념하는 바람에 용호방 순위가 십 위권 밖으로 밀려났었다. 하지만 지금은 떡하니 오기조원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는 섭동류 본연의 자질이 출중한 덕일까 아니면 그새 무슨 기연이라도 얻은 걸까?
사소루가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아직 몰랐나?”
“내가 뭘 몰라?”
“이런, 명색이 북연 출신 무사가 자기 지역의 근황 파악도 못 하고 있어서야 쓰나!”
“강호에 몸담은 이상 부평초와 다름없는 인생인데 출신 지역은 따져서 뭣 하게? 당장 눈앞의 일을 챙기기도 분주한데 북연까지 신경 쓸 정신이 어딨다고.”
심드렁한 초휴의 반응에 사소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막천림이 사소루를 가리켜 놀려대길, 사람이 하도 덤덤하고 무심해서 당장 머리 밀고 불가에 귀의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거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인제 보니 초휴의 성정도 사소루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한 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
인파에 둘러싸인 섭동류를 바라보며 사소루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섭동류가 기연을 얻긴 했는데, 그게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네. 일전에 섭동류가 여인에게 패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저 기고만장한 성격에 당연히 마음고생이 심할 수밖에 없었겠지. 해서 당장 모든 걸 때려치우고 폐관 수련에 들어간 거야. 그 후에 취의장에 급히 처리할 일이 생겼는데 공교롭게도 섭인룡이 자리를 비웠지 뭔가. 하는 수없이 섭동류가 대신 갔다가 북연 강호의 거두로 유명한 ‘석장군(石將軍)’ 한패선(韓覇先)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단번에 그의 눈에 들어 직계 제자가 되었다더군. 자그마치 무도종사급 부친에다 무도종사급 사부라니! 세상에 이처럼 엄청난 기연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아까와는 달리, 섭동류를 바라보는 초휴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집을 나서자마자 무도종사인 사부가 생기다니, 저 재수 없는 자식의 운이 보통 좋은 게 아니질 않은가. 게다가 한패선은 평범한 무도종사가 아니다. 소속 문파는 없어도 북연에서의 명성이 독보적인 데다, 실력도 족히 무도종사의 정상급이라 자부할 만한 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