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8)
그때 밖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고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바닥에 널브러진 시신 두 구를 발견한 순간, 그는 얼굴에 핏기가 가시면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러나 가까스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후, 문을 닫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초휴에게 물었다.
“공자님, 어쩌자고 심씨 가문 사람들을 죽이셨어요?”
이게 어찌된 일인지 고비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별일 없었던 것 같은데 잠깐 사이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이냐. 초휴가 감정만 앞서는 사람도 아니질 않는가. 이씨 가문이야 초씨 가문보다 실력이 약하니, 문중의 반대만 해결하면 저들을 어찌 죽여도 상관없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그가 건드린 건 심씨 가문 사람이다. 그것도 자그마치 총집사 심용이다. 이번엔 제대로 일이 터지고 말았다!
시신에서 단검을 뽑아 든 초휴는 몸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담담히 말했다.
“이게 다 이자들이 자초한 거야. 마활의 일로 날 협박하는데 어쩌겠어. 저들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판인데.”
그러자 고비가 만면에 수심이 가득하여 말했다.
“공자님, 그러잖아도 도적들과 어울려 다니실 때부터 이런 날이 올까봐 걱정됐어요. 결국 마활을 알아본 사람이 나타났으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이번에 심용을 죽인 일은 쉽게 넘기기 힘들 겁니다.”
심씨 가문은 이씨 가문과 차원이 다르니 쉽게 못 넘어갈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사람을 죽이기에 앞서 해명할 말을 이미 생각해두었다. 그는 심용의 품 안에서 이승이 써준 확약서를 꺼내들었다. 확약서에는 심용이 내세운 조건과 이승이 수락한 내용이 모두 적혀있었다.
“이것 좀 봐라, 이렇게 변명거리가 버젓이 있지 않느냐. 이번 난관을 넘는 건 생각보다 쉬울지도 모르니, 시신을 수습하고 나와 함께 본가로 돌아가자.”
고비는 한동안 입을 다문 채, 물끄러미 시신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공자님의 실력이 강해질수록 사고를 치는 수위도 동반상승하는구나!
초휴는 본가로 돌아가자마자 진 집사를 찾아가 초종광을 불러달라고 청한 후, 가문의 모든 장로들과 일부 집사들도 소집했다. 진 집사는 초휴가 또 무슨 일을 저질렀나 궁금했지만 캐묻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지금 초휴의 위상이 예전과는 다른 만큼 자신도 아랫사람으로서의 선을 지켜야만 했다.
초종광이 회의실로 들어섰을 때 다른 사람들도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초종광의 얼굴에는 성가셔죽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자기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방해받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방해하는 자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초휴였다.
“이번엔 무슨 일이냐? 사고 좀 작작 치고 다니라고 지난번에 경고했을 텐데?”
그러자 초휴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제가 심씨 가문의 총집사 심용을 죽였습니다.”
“뭐라고?”
초종광은 화들짝 놀란 나머지 입가로 가져가려던 찻잔을 손안에서 산산조각내고 말았다. 다른 장로들도 하나같이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초종광이 노여움을 못 이겨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아들을 가리키며 일갈했다.
“이놈의 자식!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게야? 이제는 아무나 마구 죽여대기로 작정한 게야? 그러면 창란검종의 종주도 한번 죽여보지그래?”
그러자 초휴가 이승의 확약서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아버님, 고정하시고 이것부터 봐주십시오. 제가 처음부터 심용을 죽이려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자의 횡포가 너무도 심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씨 가문에서 저를 암살하려 할 때 한몫 거들었고,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는 우리가 접수한 이씨 가문의 재산을 삼분의 이씩이나 내어놓으라는 요구를 해왔습니다. 이 얼마나 오만방자하고 천인공노할 일입니까! 소자가 그만 분함을 참지 못해 심용에게 칼을 날리긴 했으나, 그자의 실력이 의외로 형편없어서 그걸 막지 못하고 숨진 것입니다.”
장로들도 확약서의 내용에 일제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이 축날 위기 앞에서는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봐도 이번 일의 책임은 심용에게 있는 게 확실했다. 초씨 가문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으면, 이씨 가문이 멸문당한 후에도 재산을 내어놓을 것을 요구하며 협박을 해대느냔 말이다. 다만 입장을 바꿔 초휴가 아닌 자신들이 심용한테 대놓고 그런 모욕을 당했다면 어땠을까. 분명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감히 그를 죽일 엄두는 못 냈을 것이다.
심용이 표면상으로는 일개 집사라고 하나, 엄연히 현재 심씨 문중에서 가주 다음가는 위상을 누리고 있는 거물이었다. 창란검종의 제자로 들어간 심백과 현임 가주 심묵이 모두 그의 손에서 자랐고, 심지어 어린 시절 심묵은 그를 ‘용숙부’라고 불렀었다. 훗날 가주 자리를 승계한 심묵이 장로 여러 명을 참살하여 문중 방계혈족들을 덜덜 떨게 만들었던 당시, 그들의 입지는 심용이라는 일개 집사만도 못했었다. 심용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초휴가 확약서를 보여줬음에도 초종광의 분노는 여전히 식을 줄을 몰랐다. 그는 잡아먹을 듯이 초휴를 노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고작 홧김에 사람을 죽였단 말이지? 심씨 가문에서 심용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아닌 무려 심용을 죽였다. 차후로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생각이나 해본 게야? 천하에 불효막심한 놈! 네놈이 집안을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초휴는 부친의 엄살이 내심 못마땅했다. 심씨 가문이 막강하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겁먹고 위축될 필요가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일이 생길 걸 대비해서 변명거리와 해결방안을 마련해 두었다는 사실이었다. 초휴가 공손히 아뢰었다.
“아버님, 사람이 죽었습니다만 우리한테 대책이 없는 게 아니니 너무 노여워 마세요. 저들이 비록 우리보다 실력이 강하다고는 해도 우리를 압도할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간 심씨 가문이 통주부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누렸던 것은 단순히 무공실력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심백이 창란검종의 제자로 들어간 때문이었습니다. 창란검종이 대단한 종문인건 사실이나 우리라고 해서 그런 든든한 후원세력을 찾지 못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창란검종은 위군에서 가장 큰 종문이고, 칠종팔파(七宗八派, 일곱 개 종문과 여덟 개 문파) 가운데 단연 서열 일위를 차지한다. 우리가 어디 가서 그만한 후원세력을 구한단 말이냐?”
초종광이 벌게진 두 눈을 부릅떴으나 초휴는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얘기를 이어나갔다.
“남북불종(南北佛宗)조차도 강호 전체를 제패할 만큼의 힘은 없는데, 그까짓 칠종팔파가 무슨 대수겠습니까? 강호에서 후원세력을 찾지 못하면 대신 조정의 힘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 위군이 명목상으로는 북연의 속지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북연조정의 통제를 받길 거부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북연조정도 어찌할 방법이 없고요. 이런 때 우리가 북연조정의 밑으로 들어갈 의사를 밝히면 어떨까요? 우리가 실력 면에서는 관심 받기 어려울지 몰라도 최소한 자발적으로 북연과 군신관계를 맺은 첫 무림세력이 되는 만큼 나름 본보기가 될 수 있으니, 북연조정에서도 우리를 박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 뒤에 북연조정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면, 창란검종도 감히 우리를 건드릴 엄두를 못 낼 겁니다.”
장로들이 서로 곁눈질을 하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초휴가 밝힌 원대한 계획에 과장된 일면이 약간 있긴 했지만 찬찬히 곱씹어 보면 나름 일리가 있었다.
북연조정은 꽤 오래전부터 위군의 땅덩이를 노려왔지만 위군 무림세력의 저항이 워낙 완강해서, 그들과의 충돌을 꺼려 해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초씨 가문이 동제에서 왔음을 감안할 때, 애당초 위군 자체에 귀속감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따라서 이번 일을 계기로 북연조정에 의탁할 수만 있다면 이것이 초씨 가문에게 있어 매우 좋은 기회임은 분명했다.
말을 마치고 난 초휴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눈앞의 난감한 상황을 모면해볼 생각으로 잔꾀를 부려 이런 구상을 제시한 건 아니었다. 다만 일이 성사된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 될 거라는 것은 찜찜했다.
그가 이미 말한 대로 초씨 가문이 북연조정에 귀순하면 북연에 투항한 첫 위군 무림세력으로서 섭섭지 않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위군 무림 전체의 공분을 사서 그들의 공동표적이 되는 날엔 가문이 절단 날 수도 있었다.
물론 어떤 경우이건 모두 훗날에 벌어질 일들이니, 그때가 되도록 그가 여전히 초씨 가문에 남아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는 마당에, 설령 위군 무림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해도 초휴의 입장에서야 아무 상관도 없었다.
물론 초종광은 초휴의 그런 속내까지 알 리가 없었다. 그저 늘 그래왔듯이 성가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초종광이 마침내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한 번만 더 사고를 치면 네게 맡긴 가업을 전부 회수하고 사당에서 반성시키겠다고 분명 경고했었다. 그리고 너는 또 내 말을 거역하였구나!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하여 너를 어찌 처결할지는 심씨 가문의 의견에 따르도록 할 테니, 당장 사당으로 가서 반성하고 있어. 이번 일로 심씨 가문이 우리를 적으로 돌리는 날엔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
그 말에 초휴의 얼굴은 급속도로 굳어졌다. 초종광이 저렇게까지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심씨 가문이 먼저 도발해왔다는 분명한 증거를 제시했고, 그 바람에 분을 못 이겨 사람을 죽이긴 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충동적으로 벌어진 일이었으며, 그에 대한 대책도 문중사람들 앞에서 제시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초종광은 심씨들과 충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만 앞서서, 아들을 벌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니.
“여봐라, 당장 저놈을 사당으로 데려가서 제대로 반성을 하는지 잘 감시하도록 해라.”
초종광이 명을 내리자 하인 둘이 멈칫대며 걸어 나와 초휴의 눈치를 살폈다. 한낱 아랫것이 웃전을 거칠게 다룰 수는 없으니, 초휴가 순순히 협조해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초휴도 당장은 어쩔 수가 없어 고분고분 그들을 따라나섰다. 솔직히 이번 일만큼은 자신의 계산착오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줄곧 냉정함을 유지해왔다. 심지어 심용을 죽였을 때도 이성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기에 난국을 타개할 대책을 빈틈없이 세울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유일하게 계산에서 놓친 부분이 초종광이었다. 아무리 만사 귀찮아하는 부친이라고는 해도 명색이 한 가문의 가주씩이나 되는 위인이 어쩌면 저리도 소심하고 일 벌이길 두려워하는 것일까. 애당초 초씨 가문이 저런 인물에 의해 통주부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이 기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초휴가 하인들을 따라 회의실을 나서자, 그동안 내내 입도 벙긋 안 하고 있던 첫째 초개가 만면에 희색을 띠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세 아우 중 단 한 놈도 자신의 적수로 생각 안 하고 있었건만, 언제부턴가 갑자기 초휴가 급부상하더니 급기야 가주 자리까지 노리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초상이 불구가 된 것을 시작으로 초생도 큰 잘못을 저질러 자신의 처소에 유폐되고 말았고, 가장 위협적이었던 초휴는 심씨 가문의 총집사를 죽이는 바람에 스스로 제 무덤을 파고 말았다. 초휴가 모든 실권을 박탈당하고 사당에 갇혀 반성이나 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이로써 초개의 가주자리 승계에 걸림돌이 될 만한 요소들은 모두 제거된 셈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초개는 희열을 감출 수가 없어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저 모자란 아우 놈들이 감히 자기와 맞장을 떠보겠다고 나쁜 머리들을 굴려대더니만, 결국 하나같이 자기 꾀에 넘어갔고 장차 가주가 될 자신의 위치는 여전히 공고하지 않은가.
초종광은 짜증이 잔뜩 서린 얼굴로 사람들을 내쫓다시피 돌려보낸 다음 진 집사에게 지시했다.
“자네가 심씨 가문에 다녀와야겠네. 가급적 몸을 낮추고 어찌하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겠는지 저들의 의사를 타진해 보게. 우리는 이 일로 심씨 가문과 충돌할 의사는 조금도 없다는 점도 분명히 밝히고.”
진 집사는 무슨 말인가 꺼내려다가 결국 한마디도 못 한 채 한숨만 내쉬며 가주의 명을 이행하러 갔다.
애당초 심용이 자신의 심복인 왕이 한 명만 데리고 초휴를 만나러 갔기 때문에 진 집사가 찾아가 상황 설명을 하고 나서야, 심씨들은 심용이 죽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일로 심씨 가문은 발칵 뒤집혔고 결국 폐관수련 중이던 심묵에게도 보고가 올라갔다.
끝
ⓒ 봉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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