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82)
382화 마염불(魔炎佛)이 건곤(乾坤)을 진압하다
현 강호에서 섭동류의 명성이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정작 그가 실력을 입증해 보인 횟수는 매우 적었다. 용호방 십 위권에도 들 수 있었던 것도, 실력보다는 잘 돌아가는 머리로 얻은 유명세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간 죽은 듯이 수련에 매진하고 한패선의 가르침까지 받은 지금, 섭동류는 자기 실력을 의심하는 세간의 의혹을 제대로 불식시키는 중이었다.
건곤능운(乾坤凌雲), 손으로 강산을 움켜잡다!
강력한 장력(掌力)의 파동이 동심원을 그리며 밀려들더니, 천마무에 응축되어있던 마기를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도신을 따라 초휴의 몸을 덮쳐왔다. 이에 초휴가 위기감을 느꼈음은 물론이다.
섭동류 본인의 몸에 축적된 힘만도 대단한 데다, 취의장 비전 절기인 건곤능운수는 실로 신통하기 그지없었다. 손으로 건곤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그 어떤 강기의 힘도 건곤능운수가 생성하는 파동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단순히 힘의 대결이라면 초휴는 그 누구도 겁나지 않았다. 천마무에 마기와 살기가 재장전되며 그의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순식간에 망아살경으로 빠져든 가운데 살기가 구중천까지 치솟고 마염이 활활 타오르며 천마무가 섭동류의 제압에서 벗어났다.
곧이어 그 살기와 마염이 고스란히 섭동류를 향해 덮쳐갔다. 천마무를 휘두르는 초휴의 몸 주위로 섬찟한 마신의 허상이 다시금 응집되더니, 소름 끼치는 악귀의 울부짖음이 칼날의 움직임을 따라 터져 나왔다.
섭동류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냉정을 유지하려 했으나, 당혹해하는 표정을 감출 방법은 없었다. 사실 그가 초휴와 결전을 벌이기로 마음먹었던 이유가 있었다. 초휴가 대광명사의 오기조원 상위급 고수들과 한바탕 차륜전을 치르고 난 뒤, 대부분의 내력이 소진되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거 단단히 잘못 짚은 게 아닌가. 초휴는 언제 그렇게 싸웠냐는 듯, 여전히 엄청난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대체 초휴의 저력은 얼마나 심후하단 말인가.
마음을 다잡은 섭동류의 양손이 연이어 물결치자 강맹한 기세를 뿜어내던 건곤능운수에 오묘하게 부드러운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천지건곤(天地乾坤)에 음양의 기운이 섞이며 생성된 힘이 섭동류의 수중에서 무한한 변환을 일으키더니, 광기 가득한 초휴의 도세를 받아쳐 소멸시켜 버렸다.
순간 초휴의 눈에서 살기가 가시는가 싶더니 전신에 현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천자망기술이었다! 예전이라면 이처럼 격전을 치르는 중에 천자망기술을 시전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 천자망기술의 수련이 지지부진한 수준에 머무르긴 했어도 종전에 비하면 많이 숙련된 상태였다. 해서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정신력을 극대치로 집중시켜 천자망기술을 시전할 수 있었다.
취의장의 비전 절기인 건곤능운수는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것이 겪을수록 기이했다. 조금 전은 초휴의 마기 실린 도강을 맞바로 쳐내더니, 지금은 또 건곤이 분화되며 그의 살기 가득한 도강도 막아내지 않았는가 말이다. 하지만 천자망기술을 시전하는 초휴의 눈에 더는 그것이 기이하게 보이지 않았다. 상대의 출수 궤적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초휴의 도세도 속도가 늦춰지며 아까와 같은 위력을 이어가진 못했다. 대신 뚫어지도록 섭동류의 출수 궤적을 지켜보다가 건곤능운수가 다시금 시전되려는 찰라, 기다렸다는 듯이 예상되는 궤적을 봉쇄함으로써 출수에 엇박자를 내게 하는 데 성공했다.
무려 열 번도 넘게 번번이 출수가 천마무에 가로막히자, 엉망으로 맥이 끊긴 건곤능운수는 무력화되고 말았다. 섭동류는 낭패한 심정에 피까지 토할 뻔했다. 이상하게도 자기가 출수하려고 겨냥한 곳마다 대기하던 천마무가 간발의 차이로 다 막아버리는 게 아닌가. 이래서야 건곤능운수를 제대로 시전할 방법이 없었다.
섭동류는 마치 무언가에 단단히 홀린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심지어 부친에게 이 초식을 갓 배운 후 대련(對鍊)에 들어갔을 당시, 부친이 자신이 공격할 지점을 미리 알려주며 겨루던 때로 돌아간 듯했다. 건곤능운수를 궁극의 경지까지 수련한 자가 아니라면 이처럼 철옹성과 같은 방어로 건곤능운수를 막아내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섭가의 비전 절기가 외부로 유출되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건곤능운수는 지난날 섭인룡이 상고시대 공법들을 나름 조합하여 스스로 창안해낸 무공이다. 취의장 내에서도 섭인룡 부자 두 사람만이 구사하는 터라, 이것이 유출되었을 가능성은 전무(全無)했다. 초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또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건지 섭동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도세의 강도가 갈수록 거세지고 도강도 맹렬함을 더해가며 끊임없이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이런 곤란한 상황을 그대로 놔둘 순 없었다. 섭동류가 코웃음을 치는가 싶더니 일권과 함께 번쩍하며 눈을 찌를 듯한 금망을 터뜨려냈다. 한낮의 태양이 바짝 몸 옆에 다가온 양, 강렬하기 그지없는 광채였다. 영원토록 소멸하지 않고 빛날 광채의 정체는 바로 북연 무림의 거두인 한패선의 독문 절기인 이었다.
지난날 한패선이 제일 먼저 수련했던 건, 전공을 세운 보상으로 북연 조정에서 하사받은 연체공법이었다. 이를 계기로 무도에 심취하게 된 그는 각처에서 손에 넣은 아홉 가지 연체공법을 종합하여 이 호양구극현공을 완성 시켰다. 이는 매섭고 패도적인 위세를 특징으로 한다. 단순히 연체공법의 일종이라기보다는, 내력의 축적이 뒷받침된 극강의 현공(玄功)으로서 저력 또한 심후하기 그지없었다.
여기에다 한패선 본인의 무공 초식을 적용해서 상상을 초월할 위력 향상을 가져왔다. 원래 북연군 장수 출신인 그는 살상력이 뛰어난 중병기(重兵器) 종류를 다루었다. 창은 물론이고, 방천화극과 청룡언월도 등도 두루 사용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그 어떤 병기도 자신의 단련된 철권(鐵拳)만큼 유용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모든 병기를 내던지고 권법 수련에 전념했다.
그리고 왕년에 병기 다루던 실력을 응용하여 호양구극현공에 접목함으로써, 지금 섭동류가 시전하는 권법이 완성된 것이다. 한마디로 이 강렬하기 그지없는 광채를 터뜨리며 그가 내지른 일권에는 중병기에 필적하고도 남을 위력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고 보면 틀림없었다.
극강의 광채가 초휴의 일도와 정면충돌한 순간, 무진장한 광채의 폭발과 함께 마기가 점차 사그라들었다. 뒤이어 격렬한 강기의 파동이 터져 나오자, 그 충격으로 비무대가 뒤흔들렸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섭동류가 여세를 몰아 몸을 곧추세우더니 초휴를 향해 또 한 번 가공할 일권을 내질렀다. 마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길게 뻗은 창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듯한 자세였다. 그 일련의 움직임은 기세면 기세, 속도면 속도, 어느 것 하나 놀랍지 않은 게 없었다. 하지만 그런 공세 앞에 노출되고도 초휴는 되레 입가에 냉소를 머금었다.
설마 섭동류가 초휴와 근접전이라도 치를 작정인 걸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초휴는 대금강신력을 수련한 뒤로 온몸이 빈틈이라곤 전혀 없는 철옹성과도 같았다. 제아무리 두 사람이 바짝 붙어 싸운다 해도, 초휴의 심후한 내력과 대금강신력으로 강화된 육신의 힘은 호양구극현공을 수련한 섭동류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을 터였다.
초휴가 천마무를 거두고 지권인을 취하자 복잡한 수인에서 천지를 제압할 강기가 발출되었다. 십여 장 반경 내 모든 공간이 초휴의 강기에 지배되었다. 그러자 그 영향권 안에 들어온 섭동류의 일권이 마치 늪에 깊숙이 찔러넣은 창처럼 움직임이 정체되며 기세가 약화하기 시작했다. 패기롭게 내지른 창, 다시 말해 그의 일권은 원래대로라면 거침없이 직하하여 초휴를 가격했어야 했다. 하지만 지권인에 갇혀버리자 위력이 반감되어 종전의 그 매섭던 기세를 유지하지 못했다.
초휴가 여세를 몰아 한 발 전진하며 원만보병인을 취하자, 순식간에 찬란한 광망이 폭발을 일으키며 섭동류의 일권과 충돌했고 그를 한 발 밀어냈다. 한 번 더 전진하며 이번엔 일륜인을 취하자 끊임없는 오행의 힘이 융합을 일으키며 막강한 강기를 터트려 냈고, 또 한 발 그를 밀어냈다. 초휴가 온통 금색 불광으로 둘러싸인 채 잇달아 불가의 인법을 내질렀다. 그러자 호양구극현공보다 족히 수배는 더 강력한 그 맹렬함에 섭동류는 연신 맥을 추지 못했다.
섭동류가 속절없이 밀리는 상황에 좌중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초휴는 이미 수차례나 강호에서 제 실력을 드러낸지라 그의 무공에 대해서는 사람들도 익히 들은 바가 있었다. 특히 강력한 힘에 있어 동급 무사 중 그에 비견될 적수를 찾기 힘들다는 것도 잘 알았다. 하필 그런 자를 건드렸으니, 이번만큼은 섭동류도 지독하게 운이 따라주질 않은 셈이다.
천신만고 끝에 한패선을 스승으로 모시고 파죽지세로 상승세를 이어왔건만, 오늘 저런 별종과 맞닥뜨려 패배의 쓴맛을 보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연달아 격전을 치르고도 여전히 이와 같은 폭발력을 낼 수 있는 초휴가 관중들의 눈에는 실로 불가사의하게 보였다.
아래에서 지켜보던 대광명사 화상들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지금 섭동류가 당하는 꼴이 아까 자기들의 처지와 별반 다를 게 없는지라 남의 일 같지가 않았던 탓이다. 초휴는 말도 안 되는 미친 공세를 퍼부은 끝에 힘으로 그들을 제압했고, 결국 줄줄이 비무대 밖으로 떨어뜨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섭동류는 대광명사 화상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연달아 수 초식이나 상대에게 밀리며 패색이 짙어지던 그의 눈에 서늘한 예기가 빛났다. 자신이 확실히 초휴를 과소평가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이 접촉할 기회가 없었던 시간 동안 섭동류가 대운을 업고 승승장구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초휴도 자신에 못지않게 무서운 성장세를 이어왔음을 알게 되었다. 초휴의 진을 빼려던 지연전술이 수포가 되었으니,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갔다가는 참담한 패배밖에 더 있겠는가!
사실 섭동류는 초휴한테 패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괴로운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는 적잖은 패배를 맛봤기에 새삼스러운 것도 없었다. 최근에만도 여자한테 패한 일로 두고두고 북연 무사들의 조롱거리가 된 처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엄연히 다르다. 이처럼 보는 눈이 많은 천하검종대회에서 압도적 열세로 초휴에게 패한다면 그 망신을 어찌 감당할까. 자신의 명성이 급전직하 추락할 테니 절대로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섭동류는 결심을 굳혔다. 단 한 차례의 격돌로 승부는 가려질 터였다. 심계로 가득 찬 그였지만, 늘 머리만 굴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결단을 내린 다음에는 일말의 주저함 없이 과감하게 결행할 줄 아는 게 바로 그였으니까! 최후의 일전을 각오한 이상, 큰 부상을 당할지 모른다는 염려나, 어느 선에서 출수를 멈춰야 할지에 대한 고민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초휴의 후속 공격이 이어지기 전에 섭동류의 몸 주위로 혈무(血霧)가 가득 피어올랐다. 뜻밖에도 정혈을 태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관중들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혈을 태우면 남의 몸을 상하게 하는 동시에 내 몸도 상하게 된다. 절체절명의 화급한 순간에나 사용할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하다니, 이 싸움이 친선대결이 아닌 진검승부가 되려는 모양이었다.
대결 심판을 맡아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정일은 반사적으로 저지하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어쨌거나 마지막 대결인 셈이니,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맘껏 싸우게 내버려 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대 검파의 표적은 엄연히 마도이고, 오늘 이 대회는 그들을 궤멸시키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그가 굳이 조무래기들 싸움이나 말리러 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