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85)
385화 부옥산에 마영(魔影)이 드리워지다
이번 일전은 방칠소의 승리로 보였지만, 초휴 역시 나름의 소득이 있었다. 천자망기술은 이처럼 심신이 심한 압박감 아래 놓인 상황에서만 상위 경지로 뚫고 올라설 수 있었다. 방칠소라는 뛰어난 기재가 수련을 도와준 덕으로 초휴는 단시간 내 천자망기술을 숙련된 경지까지 터득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까지 얻었다.
하지만 방칠소는 더는 그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농락당한 것만 해도 몹시 불쾌했다. 무슨 승부가 자신이 이겼는데도 손해를 보았다는 기분이 든단 말인가. 신진 기대주들을 위한 비무가 종료되었으나 상품이 즉시 지급되지는 않았다. 천하검종대회가 최종적으로 마무리된 후 일괄적으로 지급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순서로 무도종사급 고수들의 대결이 이어지자, 다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좌중의 대다수 무사들에게 있어 무도종사급 고수들의 대결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대결 자체를 이해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저 보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두고두고 우려먹으며 잘난 척하기에 충분했다.
한정일을 비롯한 오대 검파 대표들이 서로 곁눈질을 하더니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누각에서 나와 비무대에 올랐다. 이들이 등장하자 관객석은 온통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오대 검파를 대표하는 검도종사(劍道宗師)들임을 알아본 것이다. 월녀궁을 대표해 나온 궁장 여인은 당대 월녀궁 궁주인 ‘월영성흔(月影星痕)’ 임풍아(林風雅)였다.
강호에서 그녀의 유명세는 그리 크지도, 그리 작지도 않았다. 물론 그 유명세는 대부분 월녀궁 궁주라는 그녀의 특이한 신분에서 비롯된 것이다. 풍운방 순위는 좌망검려 한정일보다도 높은 이십오 위지만, 사실 그 순위는 거품이 낀 것이라는 게 강호인들의 인식이었다. 그녀의 실제 실력으로는 풍운방 삼십 위권에 드는 것도 버거운데, 자그마치 이십 오위라니! 이는 월녀궁 궁주라는 신분에 더하여, 워낙 여자가 귀한 풍운방인지라 그 덕을 톡톡히 본 것이었다.
등에 검 일곱 자루를 메고 있는 장검산장 무사는 장검산장 장주인 ‘무심검총(無心劍冢)’ 정정산(程庭山)이었다. 원래 열 자루를 메고 있었으나 세 자루는 부러졌다. 한 사람을 죽일 때마다 검 한 자루씩 부러져 나간 셈인데, 이렇게 죽인 셋 중 한 명은 지난날 장검산장과 불구대천의 원수를 맺었던 흉악도였고, 나머지 두 명은 강호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악명을 떨치던 마도의 거물들이었다.
정정산의 실력이 무도종사급 가운데 약한 편은 아니지만, 장검산장이 요즘 들어 부쩍 하락세인데다 여자도 아닌지라, 누릴 수 있는 특혜 같은 건 없었다. 해서 그의 풍운방 순위는 삼십위 권에도 진입하지 못한 삼십삼위에 머물러왔다. 온몸을 하얀 천으로 뒤덮은 검왕성 무사는 현 검왕성 형검당(形劍堂) 상좌인 ‘무형검(無形劍)’ 백잠(白潜)이었다. 풍운방 순위는 좌망검려 한정일 바로 다음인 삼십 위였다.
검왕성 사대 검당 중 형검당은 검세와 검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한다. 백잠은 이미 자신의 검세와 검법에 있어, 무형의 것으로 유형의 것을 제압하는 경지에까지 오른 상태였다. ‘무형검’이라는 그의 별호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이것만 봐도 그의 검법수련이 얼마나 전율을 자아낼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마지막은 풍운검총의 대표였다. 미간에 부러진 검의 표식을 가진 백의 차림의 맨발 청년이 그였는데, 다섯 무도종사 가운데 단연 대단한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실 풍운검총의 근원은 검을 숨기던 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의하면 상고시대 검도 고수들은 죽을 때가 되면 자신이 쓰던 검을 일정 장소에 숨기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오랜 습관은 어느덧 관습처럼 굳어져 장검의 무덤이 형성되었으니, 이름하여 ‘풍운검총(風雲劍冢, 영웅들의 검 무덤)’이라 불리었다.
검도 고수들이 소지했던 검인 만큼, 그곳에는 진귀하기 그지없는 보병(寶甁)은 물론이고, 심지어 신병도 있었다. 검의 주인이 죽은 후, 그의 제자나 종복들이 고인의 병기를 지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풍운검총 주변에 모여 살았고, 후대로 갈수록 그 인원수는 점점 더 늘어났다. 그들이 뭉쳐서 집단 체제를 정식으로 구축했고 마침내 검도 종문이 세워졌다. 왕년의 무수한 무도 고수들이 남긴 무공들을 전승한 풍운검총은 그 심후한 저력을 내세워 오늘날 오대 검파 중 명실상부한 일인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게다가 풍운검총은 어떤 시기에 일시적으로 고수의 부재를 겪더라도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상고시대부터 존속되어온 검의 무덤에서 그들이 어떤 괴기스럽거나 사악한 것들을 동원할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천년 전 풍운검총이 한 차례 공격받은 적이 있었다. 풍운검총 전체를 통틀어 고수라고는 다 늙은 무도종사 한 명뿐이었던 터라, 이를 우습게 본 적대 세력들이 쳐들어간 것이었다.
상대측은 무도종사만도 여섯 명이었고, 여러 종문의 연대 아래 고수들이 결집하여 풍운검총을 완전히 묵사발 낼 계획이었다.
풍운검총의 유일한 무도종사는 자신의 선혈을 제물 삼아 풍운검총으로부터 검령(劍靈)을 불러내 출수케 했다. 오랜 세월 무수한 검도 혈기가 융합된 끝에 형성된 이 무지막지한 존재는 상대편 무도종사 여섯을 모조리 죽이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 인해 온몸의 피를 모두 소진한 풍운검총 무도종사는 사흘 만에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풍운검총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온 강호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설령 풍운검총에 단 한 명만 남더라도 그자의 수중에 어떤 비장의 무기가 숨겨져 있을지 모를 일이니까.
종문의 내력과는 별개로, 지금 이 맨발 청년의 개인적인 내력 또한 독특하기 짝이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풍운검총 내, 검의 장지(葬地)에 외부인은 일절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진기를 가진 무사는 출입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접근하기만 해도 침입자의 진기에 반응해 방어 진법이 가동되기 때문이었다.
이곳 주위는 빽빽한 숲이 둘러싸고 있어 야생짐승의 출몰도 빈번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야생늑대 한 마리가 남자 아기를 장지 내 부러진 검 옆에 물어다 놓더니 매일 나타나 젖을 물려 키웠다. 신통하게도 그 아기는 울지도 않고 떼를 쓰지도 않았는데 세 살이 되어서야 풍운검총 측에 발견되었다. 아기의 존재에 풍운검총 전체가 발칵 뒤집혔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아기는 옆에 있던 부러진 검과 모종의 영적 감응을일으키는 관계에 있었다. 그 결과, 이미 기령(器靈)이 소실된 지 오래였던 그 검에 기령이 새로 깃들었고, 이로써 한낱 부러진 검은 신병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아기는 자라서 풍운검총의 제자로 거두어진 것은 물론, 급기야 지금은 작고한 전임 풍운검총 장문인이자 노검신(老劍神)으로 이름을 떨친 곽묵(郭墨)의 직계 제자가 되어, 그 밑에서 검술을 배웠다. 그에게는 부모도 없고 성과 이름도 없는지라, 곽묵이 ‘연지(燕支)’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기 시절, 버려진 그의 곁을 지켜주었던 부러진 검의 이름이 바로 ‘연지’였기 때문이다.
연지는 풍운검총 내 단연 특별한 존재로 떠올랐다. 태어나자마자 신병을 지닌 셈인 데다, 심지어 그 신병과 혈육처럼 연계되어 있기까지 했으니까.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른 뒤에는 신병을 체내에 품을 수도 있었는데, 그 때문에 나이를 얼마를 먹건 간에 여전히 젊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연지의 현 풍운방 순위는 이십삼 위지만, 그의 실력이 정확히 그 순위가 아닐 거라는 데는 강호에 이견이 없었다. 출수 횟수가 많지 않을 뿐, 한번 출수하면 그의 부러진 검날 아래 목숨을 부지한 자가 없을 만큼 극강의 공격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지는 사실상 이 다섯 고수 가운데 최강자인 동시에, 그 실력을 제대로 드러낸 적이 없는 미지의 인물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변이 없는 한, 이 부 비무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단연 큰 사람은 바로 연지인 셈이다.
하지만 그들의 비무가 단지 마도 측에 보여주기 위한 연극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많지 않았다. 오대 검파에게 있어 조화천마기는 별 의미도 없는 물건이었다. 이깟 헝겊 조각 때문에 그들끼리 박 터지게 싸울 필요가 애초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들이 비무대에 오른 유일한 목적은 마도 측의 출수를 유도하려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한정일이 근엄히 관객석을 향해 발언했다.
“여러분, 이제 이 부가 시작됩니다. 우리 다섯 사람이 보잘것없는 실력이나마 먼저 선보이려 합니다. 다만 오대 검파는 친선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일대일로 붙는 건 시간 낭비니, 다섯 명이 한꺼번에 출수하여 승부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섯 고수가 일제히 출수에 들어갔다. 이에 사람들은 일제히 넋을 잃고 그들의 현란한 출수에 빠져들었다. 무도종사가 동시에 다섯 명씩이나 맞붙는다니! 이처럼 대단한 구경거리 앞에서 어찌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 수 있겠는가. 하지만 초휴는 두어 번 힐끗 보고는 금세 흥미를 잃고 말았다. 연극을 한다는 티가 너무 심하게 나는지라 도무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얼핏 이 다섯 고수가 검기와 강기가 난무하는 가운데 열심히 싸우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상 제대로 된 공격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한정일은 좌망검려 특유의 강력한 검의를 아예 운용하지도 않았고, 정정산은 일곱 자루 중 고작 한 개만 사용했다. 백잠의 무형검은 화려한 볼거리에만 치중할 뿐, 내실 있는 검초(劍招)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임풍아도 다를 게 없었다. 하늘이 내렸다는 월녀검전의 위력은 온데간데없고, 심지어 앞서 출장했던 안비연보다도 못한 실력을 과시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가장 심한 건 연지였다. 다들 그가 어떻게 연지검을 자신의 몸과 융합시키는지 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데, 그는 아예 검을 뽑지도 않았다. 그리고 시종일관 진기를 응집시킨 검지로만 대적하고 있으니, 누가 봐도 심하다는 생각이 만들 수가 없었다.
물론 낭인 무사들의 입장에서야 그들의 출수에 얼마간의 내실이 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유명한 무도종사들의 출수를 보는 데 의의를 둘 뿐이다. 이미 앞선 비무에서도 충분히 볼 건 다 봤지 않았던가. 대략 한 시진 정도 혼전이 이어진 끝에 승부가 가려졌다. 뜻밖에도 최종 승자는 원래 승산이 가장 희박하리라 점쳐졌던 장검산장 정정산으로 결정이 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다들 승복하기 어렵다는 눈치였다. 저들이 정말로 진지하고 성실하게 비무에 임했더라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하지만 좌중의 반응에는 개의치 않고 한정일이 정중하게 공수의 예를 취하며 말했다.
“여러분, 이로써 오대 검파 쪽의 기량은 고하가 가려졌습니다. 장검산장 정 장주께서 검도에 조예가 깊으심을 확실히 알겠군요. 우리 네 사람보다 확실히 한 수 위의 실력자임을 인정합니다. 관중 여러분들 가운데 또 겨뤄보고 싶은 분 안 계십니까? 안 계신다면 이로써 조화천마기는 정 장주의 차지가 됩니다.”
아래에 있던 다른 무도종사들이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그렇다고 반박하지도 않았다. 오대 검파가 마도 측의 출수를 유도하기 위해 이번 대회를 개최한다고 취지를 밝혔을 때, 그들도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끼어들기도 성가시니 자연히 입을 다물 수밖에. 하지만 바로 그때, 아래쪽에서 나이가 느껴지는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오대 검파 여러분, 이제 연극은 다 했소? 장검산장 애송이가 검도에 조예가 깊기는 개뿔! 온종일 이 많은 사람의 눈을 속여가며 한바탕 놀아대는 재미가 컸겠소이다 그려. 까불어대는 놈일수록 더 빨리 죽는다는 이치를 설마 모른단 말인가? 거기 정 장주! 질문 하나만 합시다. ‘십방신검(十方神劍)’ 정남북(程南北)과는 어찌 되는 사이이오? 당신의 조부? 아니면 증조부? 그 자식도 검을 열 자루나 메고 발정 난 개처럼 강호를 쏘다니다가 나한테 걸려 목이 부러졌거든. 검 아홉 자루는 내 손에 부러지고 한 자루만 남았는데, 그게 나름 쓸만해서 우리 집 대문 빗장으로 쓰다가 지금은 처마 밑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았지.”